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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과 편견 (양장) ㅣ 앤의서재 여성작가 클래식 2
제인 오스틴 지음, 이신 옮김 / 앤의서재 / 2022년 3월
평점 :
명불허전 '오만과 편견'이 현대물로 둔갑했다. 원문은 원어민도 수월히 읽지 못하게시리 문법적 파격이 대다수일 정도다. '고전'이기 때문이다. 문법적 파격과 옛스러운 단어, 표현을 읽어 가기 위해 두꺼운 사전을 수시로 펼쳐야 했다.
본 번역서의 역자의 프로필에 보면 '원저자의 문체와 의도를 최대한 살리면서 한국 독자들이 편하게 읽을 수 있는'이라 되어 있다. 저자의 문체와 의도를 살리면서 (번역문이) 편하게 읽힐 수는 없다. 저자의 문체와 의도가 읽기 어렵다면 번역문도 읽기 어려워야 한다. 그게 저자의 문체고, 의도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저자가 '일부러' 그렇게 썼기 때문이다. 그걸 '쉽게' 풀어낸다면, 저자의 의도와 문체를 살렸다,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을까.
고전은 현대물이 될 수 없다.
고전의 어투와 고전의 정수를 현대물로 바꾸는 순간, 그건 고전으로서의 주체성을 잃는 셈이다.
홍길동전의 "어째서 소자를 불러 이르시기를, 호부호형을 못하게 하십니까?'라는 옛스러운 문투를 "왜 저를 불러다놓고는 아버지를 아버지라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게 해요?"라고 한다면 어때 보이는가.
'오만과 편견'은 200년 전에 쓰인 책이다. 미국이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때다. 영국 영어와 문화에서 채 벗어나지도 못했다. 원서에는 그 모든 환경과 정서가 담겨 있다. 고전 소설 원서읽기 북클럽을 진행하면서 수강생들이 가장 읽기 어려워했던 소설 중 하나가 '오만과 편견'이다.(결국 포기한 사람도 있었다)
그런데 이런 소설을 '읽기 쉽게' 현대어로 번역한 듯 보인다.(알라딘 제공 '미리보기' 기능으로 서두 서너 쪽을 참고했고 전문을 보지는 못했다)
우리에게 그 모든 걸 빼고 오로지 '내용 이해'만을 위해 '오만과 편견'을 읽히려 하는 책이라면 어떤 책이든 '쉽게 풀어 쓴', 혹은 '현대어로 풀어쓴'이라는 설명을 달아주면 친절할 것 같다. 저자에 관해, 집필 당시 배경에 관해 큰 관심 없을 수도 있는 '바쁜' 독자들은 원래 쓰인 '오만과 편견'이 그런 줄 알 수도 있으니까.
어떤 명작 고전 소설이라도 그렇듯이, 명작 고전 소설은 '줄거리'와 '이해'가 급선무가 아니다. 한 줄 한 줄에 밴 저자의 고뇌와 비범한 창의성, 그리고 그 행간에 가라앉아 있는 범상치 않은 메시지가 중요한 것이다. 보석 캐듯이, 그걸 파올려 갈 때, 명작고전을 읽는 즐거움을 향유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려면 그 소설은 독자보다 저자에 더 가까이 붙어 있어야 한다. 명작고전이라면, 독자도 그 '의도된 거리감'을 충분히 배려해 줄 의사가 있으리라...믿기에.
'오만과 편견'을 줄거리라도 이해하고 싶다면 이 번역본을 추천할 의사가 있다.
(번역의 정확도는 아직 파악하지 못한 상태라 언급을 미룸). 서두 몇 장만 보았지만 정말 '이해' 하나는 쉽게 된다.
그러나 고전의 맛과 혼을 살리려 애쓴, 그래서 잘 읽히지 않을 수는 있는
다른 번역본도 볼 필요가 있다.
순전히 참고용으로,
원서와 다른 번역본들의 첫머리도 감상해 보시길.
![](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2/0323/pimg_7056321233353363.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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