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레드 다이아몬드의 나와 세계 - 인류의 내일에 관한 중대한 질문
재레드 다이아몬드 지음, 강주헌 옮김 / 김영사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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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의 한 대학에서 강연한 내용을 엮은 책이다. 대부분의 강연집들이 그렇듯, 대중의 언어로 단순한 경어체 언어로 알기 쉽게 쓰여 있다. 기존의 제레드 다이아몬드 책을 얼마나 읽었는지 혹은 소화했는지에 상관없이 그가 연구해온 포괄적 과학과 인류학의 전문적 지식들을 잊고, 세계 속의 나, 그리고 인류 역사 속의 나라는 위치와 의의에 대해서 생각하게 한다. 


현대 사회에서 물질과 자본은 거의 신의 위치에 있다. 부와 부에 대한 생각은 종종 우리의 모든 생활과 의식마저도 지배한다. 하지만 개인의 부는 그 개인이 속한 사회적 환경에 의존하는 바가 크다. 어느 국가에서 태어났는지에 따라 추구하며 삶의 가치가 달라진다. 가난한 나라에서 기아에 허덕이는 사람들에게 예술가와 과학자 같은 것들을 꿈꿀 여유는 없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일자리를 구하기가 힘든 나라의 젊은이들은 불안한 미래에 발목잡혀 가정을 꾸리는 것조차 두려워한다. 가난하든 부자든 모든 나라마다 그 나라의 걱정거리가 있고 당면한 문제들이 산재해 있지만 속해 있는 나라의 국부는 개인의 삶에 있어 커다란 역할을 한다. 


우선 다이아몬드는 첫번째 주제로 왜 어떤 국가는 부유하고 어떤 국가는 가난한가에 대한 문제를 탐구한다. 나라의 부를 결정하는 것은 역사 문화 환경 제도 종교 등 다양한 요인을 꼽을 수 있겠지만 다이아몬드는 크게 지리적인 요인과 제도적 요인으로 구분하고, 제도적 요인보다도 지리적 먼저 요인을 강조한다. 예를 들어 열대지역 국가인 코스타리카는 온대지역 국가인 불가리아보다 정직하고 훌륭한 제도를 갖추었지만 불가리아를 비롯한 유럽 국가들보다 가난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국가들 상호간의 비교 뿐만 아니라, 개별 국가의 도시 사이에서도 뚜렷이 나타나는 현상이다. 미국의 경우 뉴욕주와 오하이오주는 열대지역에 가까운미시시피주와 앨리배마주보다 부유하고, 브라질의 경우 브라질 남부 온대지방에 위치한 리우데자네이루와 상파울루 같은 도시가 부유하다. 열대지역은 토양의 질이 낮은데 그 이유는 빙하기의 영향을 받지 못한 이유가 있고, 또한 잦은 비와 높은 기온이라는 기후조건이  유기물을 신속히 분해시키거나 비에 떠내려보내 토양에 스며들지 못해 농업 생산성이 낮다는 것이다. 아열대 지방에 동식물의 종이 너무 많은 것도 농업생산량을 감소시키는 요인 중 하나라고 한다. 생산량을 크게 떨어뜨리는 병원균과 벌레 곰팡이의 종류도 무궁무진하기 때문이다.  이는 열대성 질병과 높은 사망률로 이어져 잠비아의 경우 기대수명이 41세로, 경제활동인구 자체를 떨어뜨린다는 것이다. 영유아의 높은 사망율은 다시 가임기 여성의 가임 기간을 높일 뿐만 아니라 다시 높은 출산율에 따른 임신과 수유 기간을 늘리는 악순환을 되풀이한다. 


입지조건 역시 중요한 지리적 요인 중 하나다. 물류 수송이 용이하고 저렴한 바다와 강을 끼고 있는 나라들에 비해 강과 바다를 끼지 않는 내륙국이라는 환경 역시 가난을 부채질한다. '천연자원의 저주'라 불리는 패러독스는 풍부한 천연자원을 많이 가진 나라일수록 가난해지는 현상으로, 이는 천연자원이 한 나라의 일부 지방에 집중 매장되어 있어 내란의 원인이 됙고, 부패와 비리를 조장하며, 언제 고갈될 지 모르는 천연자원에 대한 의존성이 높아져 다른 분야의 경제 발전이 소홀해진다는 것이다. 


제도에 대해 말하자면, 무엇이 좋은 제도인지를 먼저 말해야 하는데 경제학자들이 찾아낸 12가지의 좋은 제도는 부패가 없고, 개인적 재산권을 안전하게 보호받고, 법치 제도가 보장되어 있고, 정부와 개인간의 법집행이 정의로우며, 안심할 수 있는 금융자본에 투자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 있고, 살인의 빈도가 낮고, 정부 효율성이 높고, 인플레이션이 잘 관리되고, 자본이 원활하게 흘러다니고, 무역장벽이 없고, 변동환율이 보장되고, 인적자본에 대한 교육투자가 잘 되어 있는 제도다. 농업에서 비롯한 중앙정부의 역사 역시 소득이 높다. 근대까지 소득이 낮았던 국가들도 일본, 중국, 말레이시아의 경우처럼 중앙정부가 일찍부터 있었던 국가들은 잠비아나 뉴기니처럼 중앙정부의 역사가 짧았던 국가들보다 현대의 경제성장률이 더 높다. 한국의 경우 일본 지배로부터 해방된 전후 1960년대 이후 필리핀에 비해 빠르게 경제성장을 할 수 있었던 요인으로 중국에 인접해 농업과 문자, 금속 도구들이 발달했고 제도적 측면에서 부국의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는 설명이 인상적이었다. 


성쇠의 반전이란 식민 유럽의 지배를 받기 전까지는 가장 부유했던 나라들이 아직까지 상대적 빈곤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현상이다. 그 시대의 식민전략은 이렇다. 멕시코, 과테말라, 페루, 볼리비아, 인도, 인도네시아 등의 나라와 같이 풍부한 천연자원과 착취할만한 부유한 원주민 사회가 있는 나라에서는 소수의 지배자로 군림하며 노동력과 제물을 착취하는 지배자가 되었고, 미국,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와 같은 나라에서는 착취할만한 부유한 원주민들은 없었지만 유럽인이 정착하기에 많은 이주민을 보내, 먹고 살기 위해 직접 스스로 일하게 했다. 후자의 경우 열심히 일한 대가를 정당하게 보상하는 비착취적 제도에 기반을 둔 정부가 세워졌지만 전자의 경우는 반대였다.


식민 정부는 지역민의 착취를 근거로 존재했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부패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p70)


중국이 세계 1위가 될 수 있는지,  개인의 위기와 국가의 위기는 어떻게 다른지, 전통사회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는지, 건강하게 삶의 질을 유지하며 오래 사는 법, 세계가 직면한 중대한 문제들에 대해서도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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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ueyonder 2016-05-13 17: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좋은 요약이네요! 책이 어떤 내용인지 일목요연하게 알 수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CREBBP 2016-05-13 18:40   좋아요 0 | URL
아 7장까지 있는데 제일 인상깊었단 1장과 2장의 내용만 정리했습니다. 책의 매용 자체가 조금 얇고 요약적입니다
 
과학의 망상
루퍼트 셸드레이크 지음, 하창수 옮김 / 김영사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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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누군가가 아인슈타인보다 예를 들어 두 배나 더 높은 두뇌를 가지고 태어났다고 하자. 그가 그 뛰어난 머리로 현재까지 축적된 과학적 지식을 모두 이해하고 또 아인슈타인의 두 배만큼에 해당되는 새로운 과학을 개척했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우리에게 모든 걸 설명하지는 못할 것이다. 아마도 그가 해줄 수 있는 최고 단계란, 우리가 아는 지식이 얼마나 보잘 것 없는 것인지, 우리가 진실에서 얼만큼이나 모르고 있는지를 어림해 주는 정도일 수 있다. 


우리는 모른다. 뭔가를 잘 모르면 모를수록 세계는 더욱 간단해진다. 모르는 크기만큼 믿음, 신념 혹은 상상으로 채울 수 있으니 말이다. 조금 더 아는 과학자들은 우리 인류가 과학이라는 도구로, 증명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통해, 알아낸 것과 알아내지 못한 것을 파악한다. 우리가 과학을 통해 알아내지 못한 것은 무엇일까. 한 사람의 독자로서, 저자가 제시하는 과학의 10가지 도그마란 '과학이 밝혀내지 못한 것' 쯤으로 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합리적으로 보인다. 저자 자신이 과학자인 루퍼트 셀드레이크는 책의 전반을 통해 정상 과학의 헛점을 밝혀내고, 그 헛점을 통해 과학 전반을 부정하면서, 형태공명이라는 자신의 새로운 이론으로 과학 전반에 대한 이론을 대치한다. 형태공명은 내게 매우 생소한 개념이다. 영문 인터넷 사이트를 여러군데 뒤져보니, 내가 보기에는, 루퍼트 셀드레이크의 고유 이론이지만 정상과학 내에서 받아들여지지 않는 듯하다. 그러나 과학이 아직 밝혀내지 못한 수많은 헛점을 이용해 초자연적 현상을 보이지 않고 증명되지도 않는 영적인 활동으로 설명하려는 지지자들 및 비슷한 연대들은 다수 확보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유용한 점은 현대 과학이 아직까지 알아내지 못한 것, 알아냈다 하더라도 의심해볼 만한 여지가 있는 것들이 무엇인지를 10가지로 요약해서 설득력있게 전달해준다는 점이다. 저자는 '도그마'라고 표현하는, 대부분의 과학자들이 당연시하는 열가지 핵심적인 신념들에 대해서 말한다.  그는 맹목적 신념에 입각한 과학에  대한 극단적 회의주의에 입각해 다시 독자에게 10가지 의문을 제기한다. 신념이라는 말은 종교적 신념이나 비과학적인 사상에나 적당한 말인데, 과학을 도그마라는 프레임으로 바라보는 저자의 시각은 근본적으로 대부분의 과학자, 혹은 일반적인 독자의 시각과도 불일치한다. 그러나 책이라는 것은 타협이 불가능하다.  일방적이다. 


첫번째 도그마는 과학이 모든 것을 본질적으로 기계적으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대표적 예로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를 꼽는데, 내가 보기에는 도킨스의 은유적 설명을 공격에 유리하게 해석하는 것 같다. 이 부분은 다분히 철학적 주제이며 17세기 부터 20세기 초반까지의 생기론자들과 기계론자들의 소모적 논쟁에 눈꼽만큼도 관심이 없는 내게 탁상공론에 불과했다. 그가 파악한 과학자들의 이 첫번째 도그마를 통해 독자에게 묻는 질문은, 그들을 포함한 우리 다수가 자신을 기계적 우주 안에 프로그램화된 기계라고 생각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 말에 대한 긍정도 부정도 유물론자들에 대한 공격을 위해 준비된 것이다.

 

두번째 도그마는 물질과 에너지의 총량이 항상 일정하다고 믿는다는 것이다. 저자가 지적하는 에너지 법칙의 홀은 다소 흥미롭다. 1990년대까지 지배적이었던 우주대수축이론은 '암흑 에너지를 동력으로 삼아 지속적으로 우주가 팽창한다는 새로운 비전으로 대체되었(p101)'다.  즉 중력이 지배하고 있는 우주는 서로 당기는 힘으로 인해 수축해야 정상이다. 따라서 우주팽창이 가능하려면 중력에 대항하는 추진력을 제공하는 더 큰 에너지가 필요하고, 그것이 우리가 무엇인지 전혀 모르는 암흑에너지라는 것이 최근의 정상과학이다. 하지만 우주가 계속 팽창하고 있다는 것은 그 암흑 에너지의 총량이 증가하고 있다는 뜻이므로, 우리가 믿고 있는 신념인 에너지의 보존은 도그마라는 것이다. 즉, 우주의 에너지 총량은 항상 동일하지 않다. 우주는 지금 암흑에너지로 인해 팽창하고 팽창에 의해 더 많은 암흑  물질이 생산되는 영구 운동 기계 와 같은 존재( p102)라는 것이 그의 견해다. 범위를 좁혀 생명체의 수준으로 이 문제를 살펴보면, 면밀한 실험을 통해, 섭취하는 음식물과 소비되는 에너지 사이에 불일치를 발견한 웨브의 사례를 소개한다.  유기체가 표준 물리학과 화학이 인식하고 있는 수준을 넘어선 형태의 어떤 에너지를 이용하고 있다는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음식물을 전혀 섭취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사례는 믿어도 되는 건지 의심스럽다. 43년간 먹지도 싸지도 않은 여자와 그 추종자들(추종자들 일부도 그렇게 함)의 존재는 먹는 대신 인간이 햇빛을 받아 에너지를 스스로 합성할 수 있다는 건가. 이런 류의 이야기는 귀신 나오는 이야기 만큼이나 황당하지만 레퍼런스들을 면밀히 조사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인도에서 음식물을 섭취 하지 않고 생존하는 능력에 대한 보편적으로 가장 설득력 있는 설명은 햇빛으로부터 혹은 호흡을 통해 특히 호흡에 내재하는 생명력인 프라다를 통해 에너지를 얻는다는 것이었다" (p111)

 

세번째 도그마는 자연의 법칙이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제로 중력상수 G, 미세구조상수, 광속과 같은 기본상수들은 중력상수 G의 값은 1973년부터 2010년 사이에 6.66659에서 6.734까지로 다르게 측정되었으며, 2002년 거슈타인의 연구팀은 하루 단위로 측정값이 주기적으로 달라진다는 것을 발견했다. 광속 역시 1927년 초속 299.796킬로미터로 수렴된 이래 영구적으로 인정될 것으로 생각되었지만, 이후 1945년까지 초속 20킬로미터 정도 떨어졌으며 40년대 말 다시 20킬로 상승, 1972년 정의상 광속이 고정되면서 c가 가진 변화 가능성이 배제되었다. 미터가 빛이 특정 시간 동안 움직인 거리로 정의됨에 따라 광속의 변화는 미터 길이의 변화도 일으키게 될 것이며, 시간 단위인 초 역시 빛의 개념을 적용해 여진상태의 세슘 133 원자에 의해 발산된 빛이 몇번 진동한 시간을 말하므로 시간의 개념까지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세번째 도그마를 강변하면서 다중우주와 진화론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을 드러내면서 형태공명이란 가설을 소개한다. 형태 공명에는 결정화 습성이니 결정체들이니 하는 부개념들이 함께 등장하면서 이제까지 주장해온 과학적 도구마들을 대체하는 도구로 소개되는데, 이론 자체가 듣도보도 못한 용어로 범벅이 되어 무슨 걸 말하는지 이해하기도 어려울 뿐더러, 애써 읽어 이해하고 파악한 아주 일부 내용들만으로도 다소 황당하기도 하다. 이후에 제시하는 과학의 모든 도그마들은 형태공명 가설로 설명한다.

 

네번째 도그마는 과학을 지배하고 있는 유물론의 핵심 교리가 물질만이 유일한 실재라는 것이다. 반대는 이원론이다. 유물론자들은 주관적 경험을 무의미한 것으로 본다. 이원론자들은 경험의 실제성은 인정했지만 정신이 어떻게 뇌 와 관계하는 지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못했다.  대표적인 유물론자 대니얼 데닛 프랜시스 크릭이 있다.  데카르트적 이원론은 인간의 정신을 육체와 분리된 것으로 보았고 인간의 육체는 의식을 가지지 않은 물질로 만들어진 기계로 생각했다. 간단하다 저자가 독자에게 묻는 것은 물질은 의식이 없느냐는 것이다. 의식이 단지 뇌 활동의 한 측면이거나 거기서 생겨난 부수적 현상이라고 믿는 것을 의심하라는 것인데, 아니 그럼 그 정신이 어디에서 왔다는 것인가 라고 물으면 다시 또 정체도 모르겠고 증거도 없는 형태공명 가설을 다시 들이민다. 결론은 다음과 같은데, 뭔가 멋있게 보이는 말들이 잔뜩 써있기는 하지만 나는 이해하지도 납득하지도 못하겠다.

 

"정신과 육체의 관계는 공간보다는 시간과 더욱 밀접하다. 정신은 가능한 미래들 가운데서 선택하며 정신과 인과관계는 에너지의 인과관계와는 반대방향, 즉 과거에서 미래로 흐르기보다는 미래에서 과거로 흐른다" 180

 

저자가 독자들에게 의심하라고 부축이는 나머지 과학적 도그마들은 지극히 당연하게 알고 있는 상식들이다. 자연은 목적을 가지지 않으며 방향을 가지지 않는다. 모든 생물학적 유전은 물질적이며 유전 물질과 DNA, 그리고 여타의 물질적 구조에 실려 이동한다. 정신은 뇌 안에 들어 있다. 기억은 뇌 안에 물질적 자취의 형태로 저장되며 죽음과 함께 완전히 사라진다. 텔레파시처럼 설명할 수 없는 초자연적 현상은 환각에 불과하다. 기계적 의학은 실제 작동되는 유일무의한 의학이다.

 

물론 이러한 도그마에 대한 의심은 과학을 더욱 발전시키는데 유용할테지만, 내가 보기에 대안으로 제시하는 형태공명이라는 가설 역시 가설에 불과할 뿐이고, 그 가설에 대한 증거라는 것이 치졸하게도 과학적으로 허술한 부분을 들쳐내는 것일뿐 실제로 그 공명한다는 정체불명의 영에 대한 합당한 근거가 되지는 못하였다. 과학의 구멍은 거대하고, 구멍을 메울 가설은 차고 넘쳤다. 증명되지 않은 것들은 때로 사이비 과학이라고도 부른다. 증명되지 않은 것들은 때로 정상과정의 분열된 틈을 타고 빠르게 정상과학을 차고 올라가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든다. 사실 사이비 과학 혹은 유사과학이라고 부르는 황당하고 이해불가능한 가설들은 새로운 패러다임이라는 매혹적인 유혹과 미세 크기의 가능성 때문에 존재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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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ueyonder 2016-05-11 14: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미있는 가설이네요. 상세한 요약 감사합니다.

CREBBP 2016-05-11 16:47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재미있긴 한데,가설 부분은 너무 어려워서 실제로 이해했다기 보다는 글자만 읽었다고 봐야할 거 같아요.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 - 로또부터 진화까지, 우연한 일들의 법칙
데이비드 핸드 지음, 전대호 옮김 / 더퀘스트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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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학창시절을 생각해보자. 사지선다형 답안지를 받아들고 답을 몰라 고민할 때 각자 찍는 노하우들이 있다. 모를 때는 무조건 3번이라고 하던 아이가 있었고, 자기는 무조건 2번을 찍어야 정답이라는 아이가 있었다. 이래 저래 귀만 팔랑거리다가 망쳐버린 시험을 만회하고자 중간고사 마지막 날 나름대로 고안해낸 찍는 방법이랍시고 1, 2, 3, 4 를 골고루 돌려서 찍다보면 보상은 딱 멍청한만큼 주어진다. 찍는 일에 이골이 난 학생들은 각 개별 문제들의 답이 독립적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듯하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답을 모르는 문제가 답을 아는 문제의 답에 영향을 끼치는지에 대한 쓸데 없는 고민보다는 문제 출제자의 정답 배치에 대한 어떤 경향을 발견하는 똑똑한 학생들은 왜 답을 찍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을까가 더 의문이지만, 어쨌든 답을 풀어 맞추건 가장 직관적이지 않다는 확률의 문제를 중간고사 시험 답안 찍기의 문제에 최적화시켜 점수를 올리는 일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것이 도박꾼의 오류다. 동전던지기에서 처음에 앞면이 더 많이 나오면 그 다음에는 뒷면이 더 많이 나와서 불균형이 해소될이라는 그릇된 믿음을 뜻한다. 아는 답과 모르는 답 사이의 불균형을 맞추기 위해 아는 답의 선택번호가 아닌 것을 찍는 것보다는 해당 선생님의 정답 배치 경향에 대한 직관이 알려주는 번호 하나를 우직하게 찍는 게 나은 것이다.

 

동전 던지기를 20번 할 때 확률이 2분의 1이라고 해서 처음 10번 모두 앞면이 나왔다면 다음에 던지는 동전은 모두 뒷면이 나올까? 아니다 처음 10번 던졌을때 모두 앞면이 나왔건 모두 뒷면이 나왔건 혹은 반반 나왔건 상관없이 나중에 열 번 던졌을 때 앞면이 나올 확률은 여전히 1/2 이고 뒷면이 나올 확률도 여전히 1/2이다. 아기가 영아돌연사증후군으로 사망할 확률은 1/1300이다. 부모가 부유하고 비흡연자이고 젊으면이 확률은 1 / 8543으로 내려간다. 생후 1 1 주된 아기를 영아돌연사증후군으로 일은 셀리는 1년 후 8주 된 아기를 같은 이유로 잃었다. 샐리 라이드 영아살해 혐의로 체포되어 유죄 판결을 받고 종신형에 처해진 이유는 소아과 의사 로이 메도우 경의, '한 가정에서 영아돌연사증후군네 의한 사망이 이런 두번 일어날 확률이 7300 만분의 일'이라는 법정 증언이 한몫 했다.

 

보렐 법칙이 있다. 확률이 아주 낮은 사건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는다 라는 게 이 법칙이다. 아무리 많은 수의 원숭이들이 아무리 오랫동안 타이핑을 아무렇게나 두드려도 세익스피어의 작품을 우연히 만들어 낼 수는 없다는 게 보렐의 법칙이다.  무시할 수 있을만큼 낮은 확률에 대한 보렐의 척도는 현실적으로 발생 불가능한 사건을 판단하는 기준을 제시한다.

 

우연의 법칙은 보렐의 법칙과 반대다. 보렐이 무시할 수 있다고 판정한, 개연성이 극히 낮은  사건들도 불가능하지 않을 뿐더러 거듭 일어난다. 통계학자도 아닌 의사가 계산한 확률은 틀렸다. 학창시절로 다시 돌아가자. 이번엔 시험시간이 아니라 기초 확률을 공부하는 수학시간이다. 사건들이 서로 독립적이라면 사건 각각이 일어날 확률들을 곱해서 구할 수 있다. 동전을 두 번 던졌을 때 둘 다 앞면이 나올 확률은 1/2 * 1/2이다.   네 개의 윷가락을 동시에 던졌을 때 윷이 나올 확률도 마찬가지다. (1/2*1/2*1/2*1/2 =) 1/16. 16번 중 한번만 윷이 나온다. 이것이 바로 매도우가 영아사망률을 계산한 방법이었다. 독립성이 존재하면 한 가정에서 영화 돌연사 증후군 사례가 2번 발생 할 확률은 1/8543 x 1/8543 으로 대략 7300 만분의 1이 맞다. 이렇게 낮은 확률은 사건은 백년에 한번 일어난다고 의사는 법정에서 진술했다. 한 가정내 영아돌연사증후군 사례들이 상호 독립적이라는 전제는 부당했고,  실제 데이타에 다르면 한 아기가 영아돌연사증후군으로 죽었을 경우 그 동생이 같은 이유로 죽을 확률은 평균보다 약 10배 높다. 이 차이 때문에 영아돌연사 증후군 사례가 두번 발생했을 확률이 더 커진다. 백년에 한번 일어난다는 증언 대신 1년에 약 4~5 번 발생하며 두 번째 영아 살해 사건 보다 더 자주 발생한다는 증언을 했다면 판결이 달라졌을지 모른다.

 

어떤 사건이 다른 사건의 발생과 상관없이 일어날때 이들은 서로 독립적이다. 독립 사건 두 개가 모두 일어날 확률은 간단히 첫째 사건의 확률과 둘째 사건의 확률을 곱하면 된다. 참고로,  두 사건중 촤소한 하나가 일어날 확률은 단단히 각 사건이 확률을 합한 값과 같다. 양쪽 다일 가능성이 없는 경우이다. 두 사건이 모두 일어날 확률은 곱하고 두 사건 중 하나만 일어날 확률은 더한다. 이 간단한 규칙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많겠지만  생활의 일부로서 직관적으로 알아채는 것은 의사로서는 어려웠던 모양이다.  여기서 논할 만한 일은 아니나 얼마전 5년만에 판결을 의식한 롯데마트 사장이 피해자들 대신 카메라에 대고 사과한 그 문제의 가습기 살균제에 의한 영아 및 산모 사망 사건을 돌이켜 본다면, 그 원인이 파악되지 못할 어떤 유해 환경에의 노출이 첫짜 아이 둘째 아이 그리고 연이어 계속되는 영아의 비극적 사망을 불러올 수도 있음을 의심하고 짐작할 수 있어야 한다.  혹은 알려지지 않은 유전자에 의한 돌연사가 계속될 수도 있겠다. 한 때 영국에서 수입산 영아 매트리스가 돌연사의 원인으로 지목되었던 점을 기억하는 나는 영아돌연사가 독립적이라고 생각지 않는다. 뭔가 습관상의 원인이 있을 것이다.

 

확률을 표현하거나 확률과 관련이 있는 단어는 불확실성과 예측 불가능성을 가진 실존에서 우주를 이해하려는 핵심적 의미를 지닌다. 가능성, 운명, 우연, 위험, 무작위성, 카오스, 승산 등 실존의 바탕을 설명하는 많은 단어들이 확률과 관련있는 단어들이다. 확률은 우연을 설명하고, 우연은 필연을 설명하고, 우주 탄생과 생명의 신비를 설명한다. 우연의 법칙은 함께 엮여서 서로를 강화하는 가닥들의 집합이다. 여기에는 필연성의 법칙, 아주 큰 수의 법칙, 선택의 법칙, 확률 지렛대의 법칙, 충분함의 법칙들이 상호 작용하여 겉보기에는 개연성이 지극히 낮은 사건을 설명한다. 금융위기, 예지몽, 로또에 중복 당첨 등이 그것이다. 필연성의 법칙은 무슨 일인가는 반드시 일어난다는 것이다. 가능한 결과들 각각이 발생할 확률은 아주 작더라도 그 결과들 중 하나는 확실히 발생한다. 이것은 개인성이 아주 낮은 사건을 확실한 사건으로 만든다.  아주 큰 수의 법칙이 재미있다. 원숭이가 세익스피어를 타이핑한다는 게 바로 이 큰수의 법칙이다. 기회들의 개수가 아주 많으면 아무리 이례적인 일도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주사위에서 6이 나올 확률은 아주 낮지만 한없이 던지면 그 사건의 발생은 불가피해진다. 아들을 낳기 위해 딸을 12명씩 18명씩 낳던 옛날 어머니들을 생각해보자. 그들에겐 죽어 제사 지낼 아들이 필요했다. 충분히 많이 낳다보면 언젠가는 아들이 생길 수도 있다는 아주 큰 수의 법칙은 아주 당연하게 알고 있었다. 무수히 많은 티샷을 날리면 언젠가는 홀인원을 할 수도 있는 거고, 연이어 두번씩 하는일도 가능한거다. 선택의 법칙은 연구 발견이나 점쟁이들이 흔히 쓰는 방법이다. 화살을 쏜 다음에 그 위에 표적을 그리면 누구든 맞출 수 있다. 기가막힌 비유다. 확률 지롓대의 법칙은 조건의 미세한 변화가 확률에 거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말해준다. 충분함의 법칙은 충분히 유사한 사건들은 동일하다고 간주해도 된다고 말해준다. 이 때 유사한 두 측정값을 동일하다고 간주하는데, 시간과 공간을 상대로 그 유사한 측정값의 범위는 해석자에 의해 무한히 확장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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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0년대에 프랑스에서 쓰여진 스탕달의 <적과흑>에서 비상한 머리를 가졌지만 비천한 신분으로 태어난 쥘리앙은 왕정복고라는 시대적 불운에 갇힌 자신의 운명을 사랑을 통해 보상받으려는 듯 갈구한다. 1857년에 출간된 플로베르의 <마담 보바리>의 주인공 엠마는 화려하고 우아한 귀족적 삶을 꿈꾸며 파멸을 향해 물질적 향락과 손에 잡히지 않는 쾌락을 추구했다. 


왕정과 귀족의 몰락이라는 시대적 방향에 눈 먼채, 무한한 부가 샘솟듯 공급되는 귀족들의 사치와 향락적 삶을 그린 《쾌락》은 19세기 말, 그러니까 그러한 체제말의 귀족의 몰락이 새로운 시대의 뒷전으로 사라지기 직전이라는 감각 없이, 타고난 신분상의 부와 향락이 영원할 것처럼 그려진다. 나른한 귀족들의 일상은 탐미적이고 퇴폐적이지만, 이것이 바로 엠마가 꿈꾸었던 그 우아하고 아름다운 부의 실체임을, 그리고 그런 꿈같은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집단이 실제했음을 알려준다. 


얼핏 쾌락이라고 하면 말초적인 감각적 즐거움을 쫓는 19금적인 혼잡한 섹스가 연상되지만, 그런 내용은 단 한 줄도 없다. 반대로 사랑이라는 것의 본질적 감정을 해부하듯 낱낱이 언어로 섬세하게 도려내어 테피스트리처럼 거대한 규모로 아름답고도 정교하게 그려냈다고 볼 수 있다. 나는 문학의 학문적 백그라운드가 없어서, 데카당스적이니 퇴폐주의니 유미주의라는 것의 정확한 뜻은 잘 모르지만, 이 소설은 과연 데카당스가 이런 것이구나 라고 알려주는 것 같다. 해설에 보면 퇴폐적 자연주의라는 말도 나오는데, 가령 에밀졸라가 생각들을 집요하게 언어로 직조해냈던 것을 돌이켜본다면, 사물과 자연을 보고 느끼는 것들을 있는 읽는 이로 하여금 머리속에 훤히 그려지도록 냄새와 촉감과 장면과 소리와 늒김까지도 정교하게 그리고 생생하게 전달하고자 했다는 면에서 오히려 에밀졸라의 소설보다도 더욱 자연주의라는 말에 수긍되는 책이다. 


책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대개는 백작과 공작과 무슨 대사 그리고 그 부인들이다. 그들의 눈에 마부라든가, 하인이라든가 집사 같은 사람들은 보이지도 않는다. 하인이 가져온 차를 마시고, 하인이 차려놓은 밥을 먹고, 하인이 사람들의 방문을 알리고, 마부가 모는 말을 타고 다니지만, 귀족들의 눈에 그들의 삶은 보이지 않는다. 어딘가의 구석에서 삶을 통채로 노동에 바쳐야만 귀족들의 향락적 삶을 가능하게 만드는 초라하고 황폐한 사람들이 마치 존재하지도 않는 것처럼. 그들의 눈에는 투명인간이다. 귀족들의  삶은 먹고 마시고 살아가는 실존에 대한 고민은 없다. 


만일 <적과 흑>의 쥘리앵이 운좋게 단눈치오의 소설 속 사교장 한 구석에 있다가, 그의 주특기인 뭐 성서 암기라든가 통채로 암기 같은 쇼를 보여주었다 하더라도, 그 젊고 아름다운 얼굴과 능력이 그 귀족들에게 는 조금도 주목할 것이 못된다. 사교장에서 하는 말들은 자신들의 탐미적이고 고상한 예술적 취향을 드러내는 것이 목적이다. 만일 프랑스 시골에서 마담 보봐리가 잔뜩 멋을 부리고 치장을 하고 나타났더라도 이 사람들 눈에는 투명인간으로 비쳐졌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몇천년동안 쌓아온 찬란한 예술적 문화적 유산을 가진 도시 로마는 최고의 배경이다. 등장하는 인물들이 바라보는 사물들(예술품들), 사용하는 물건들, 살아가고 또 방문하는 장소들은 모두 당장이라도 인터넷을 치면 화면 가득 사진들을 볼 수 있는 실제적 장소이고, 귀가 닳도록 들어 왔던 이탈리아 조각품과 회화작품들이다. 그들이 애정을 밀당하는 빌라 메디치와 스페인 광장, 그들이 돌아다니는 수많은 장소 모두 실제하는, 그리고 이탈리아의 예술혼이 깃들어져 있는 유서깊은 건축물들이다. 



새로운 애인을 손에 넣고 옛 애인을 되찾는 일을 똑같이 신속하게 진행시키고, 두개의 모험에서 어떤 상황이든 이용하려 하다보니 그는 여러 가지 장애에 부딪히고  곤경에 빠지고 기이한 경우를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거짓말과 방편과 비열한 수단과 꼴사나운 핑계와 야비한 속임수에 의지했다 374


이 문장은 전체 스토리를 한 줄로 요약해주고, 주인공 안드레이 스페렐리의 성격을 단적으로 나타내준다. 도시에서 가장 아름답고 세련되고 우아한 여인 엘레나와 사랑에 빠지지만 여자의 배신으로 헤어지고 나서 힘든 시간을 숱한 여성들과 사귀며 타락함으로서 보상받는다. 그런 타락은 파멸적인 허세로 치달아 결투로 이어지고 상대의 반칙으로 심각한 타격을 입어 사촌 누이의 별장에서 요양하며 덧없던 카사노바의 삶을 반성하던 중 누이의 친구인 마리아의 방문은 그를 다시 본능적 인간으로 회귀시킨다. 완전히 반대의 성격을 가진 엘레나와 마리아 두 여성은 후에 로마 사교계에 다시 나타나게 되는데, 우리의 바람둥이 안드레이는 자신이 진정으로 누구를 사랑하는지 헷갈려하는 것 같다.  물론 양쪽 다 온갖 상상할 수 없는 허언으로 구애를 한다. 엘레나가 팜므파탈적인 이미지라면 마리아는 순수하고 순결하고 종교적인 이미지다. 다른 남자와 결혼해서 남편과 함께 나타난 엘레나는 스페렐리보다 한 수 위다. 따라서 그녀의 말에 갈팡질팡하며, 그녀의 공식적 초대에 응해 호시탐탐 그녀의 남편이 자리를 비운 틈을 타서 달콤한 말로 구애를 하지만 쉽게 육체적인 합일을 이루지 못해 전전긍긍한다. 반면 마리아의 순수함과 죄의식은 안드레이에게 한없이 구애하게 만드는데, 그가 구사하는 시적인 언어는 퍼내도 퍼내도 끊임없이 샘솟는 옹달샘같다. 섬세하고 정교한 언어로 사랑의 감정을 마법처럼 구사하는 작가 단눈치오의 시적 영감은 끊임없이 애정을 갈구하는 바람둥이적인 기질이 없이는 불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오래전, <프랜즈>라는 시트콤의 열혈 팬이라면 로스가 결혼식장에서 자신의 신부의 이름을 레이첼이라 잘못 불러 결혼이 깨졌던 에피소드를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첫사랑이었던 레이첼은 로스의 무의식 속에서 언제나 '나의 신부'였던 모양이다. 그녀와 사귀고, 그녀와 죽도록 싸우고, 그녀와 헤어지고, 그녀를 극복하고 새로운 사랑을 만나 이제 행복의 길로 접어들려는 찰라에, 그녀의 이름이 결혼식장에서 나왔던 것이다. 우리의 인드레이도 같은 실수를 한다. 그 달콤한 언어로 결국은 마리아를 굴복시키고 이제 엘레나를 극복하고 사랑의 완성을 이루던 그 중요한 순간 안드레이는 마리아 대신 엘레나 라고 소리쳤던 것이다. 양다리의 최후는 이렇듯 허무하다. 바람을 필 때, 양다리를 걸칠 때, 과거의 연인을 극복했을 때, 실수를 조심해야 한다



과거의 감정과 현재의 감정을, 오래된 이미지와 새로운 이미지를 비교할 수 있다는게 미묘한 즐거움을 줘 212


어떤 곡이 단조에서 장조로 바뀌거나 비통한 불협화음을 이루었다가 여러 소절 지난 뒤에 기본음조로 돌아오듯이 그 목소리가 때때로 변화했다 바로 여성적인 음색이 될 때 다른 여인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그 말이 리듬이나 억양의 음악적 가치를 가지면 가질수록 상징적인 가치는 잃게 되었다 실제로 몇 분간 집중하고 나자 마음이 신비한 매력에 굴복했다. 그리고 악기로 연주된은 멜로디처럼 부드러운 억양이 필기를 기다리고 갈망하며 가만히 멈춰 있었다. 213


완전히 파멸 하고 싶은 유혹 같은 걸 느낀다 지금이 밤에 이 정적 속에서 내 영혼에 힘을 모두 끌어 모아 그 사람을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외칠 수 있다면 이 무거운 짐을 가슴속에서 덜어내고 목에 걸려 숨도 못 쉬게 하는이 응어리를 풀 수 있을 것 같다 292


어째서 그 모든게 순식간에 모두 흩어지고 사라져 버린 걸까 어째서 그 불꽃을 마음 속에서 키울 수 없었던 걸까 어째서 그 기억을 간직하고 믿음을 가질 수 없었던 걸까 그러니까 그의 원칙은 변하기 쉬웠다. 그의 마음은 액체처럼 유동적이었다. 그의 모든게 쉴 새 없이 변형되고 변질되었다.  정신력은 완전히 결여되어 있었다. 그의 정신의 본질은 모순으로 이루어졌다 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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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5-10 09: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5-10 12:4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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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얼 CEREAL Vol.11 - 영국 감성 매거진 시리얼 CEREAL 11
시리얼 매거진 엮음, 이선혜 옮김, 박찬일 글, 선우형준 사진 / 시공사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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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얼 Vol.7 였던 것 같다. 이 전편의 시리얼을 읽었던 게, 원서는 격월로 나오는 것 같은데, 국내판은 1~2년 늦게 번역되기 시작한 탓인지 그것보다 더 자주나오는 것 같다. Vol.7에는 원서를 번역만 했는데, 언젠가 부터 표지에 한국인 저자가 적혀져 있기에 관심이 생겼었는데, 한국어판에 한국인 저자를 추가해서 별도로 만들어내는 거였다. Vol.9에는 이병률이, Vol 10에는 오기사가 특별기고다. 오기사는 검색하니 너무나도 매혹적인 일러스트 그림들이 잔뜩 뜬다. 건축가이며 여행가이고 그리머라고 한다.Vol.10도 보고싶다. 엄지원 남편이라고.


이번호 특별 기고는 박찬일이다. 시리얼에 특별기고 하는 사람들은 한 가지 일에 전문가가일 뿐만 아니라 다재다능하는 사람인 것 같다. 그는 요리사이지만 그 전에 잡지 기자였다. 기자로 활동하다가 갑자기 요리에 흥미를 느껴 이탈리아에 요리와 와인을 공부하고 돌아와서 요리사가 되었는데, 시리얼에 실린 그 어떤 원문들 박찬일의 글이 좋았다. 글쓰는 요리사가 아니라 요리하는 작가 라고 말해도 될 것 같다. 문체, 주제, 공백, 사진 모두 좋았다. 박찬일 특집이라고 해도 될만큼 시리얼 기사 전체 중에서도 돋보였다. 


지난번에도 언급했던 것처럼 시리얼은 여행과 디자인 음식 예술과 관련된 기사를 싣는 잡지류다. 광고는 전혀 없고, 종이도 두껍고 고급이고, 사진 반, 글 반이다. 다른 잡지와 매우 차별화된 전략을 쓰는데, 첫번째는 자주 알려지지 않은 아주 작은 장소로 독자를 데려간다는 것이다. 두번째로, 정보지라기 보다는 감성지라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 잡지가 독자에게 주는 것은 느낌이지 정보가 주가 아니다. 위치 정보는 위경도 좌표로 주어진다. 


이번호에 여행지로 찾아간 곳은 도쿄와 시애틀, 비엔나 세 도시이고, 예술과 디자인 관련해서는 스프링 스트리트 101번지 저드재단과 덴마크 푸넨 섬에 자리한 헬레루프 매너하우스와 그곳에서 가구 디자인을 하는 쿠누드 에릭 한센, 보석 세공사 아티스트 케리 시턴에 대한 작품들, 그리고 풋웨어에 관련된 글들이 주를 이룬다. 비안나에서는 페이스트리와, 슈메이, 칼 오벅 금속 공예가를 찾았다. <슈메이를 찾아서>라는 기사 제목에서 슈메이가 무슨 먹을 것인가 혹은 디자인 브랜드인가 했는데 페이지를 넘겨보니 그들만의 유머감각이란다. 글을 쓴 릴리 뤼 브륑은 오스트리아 사람에게도 뜻을 물어보고 구글에도 찾아보고 여러 사람에게 묻지만 애매한 답만을 얻었다. 마침내 영문판 비엔나 생활 정보지 편집자인 지인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 답을 얻었는데, 그것은 권력을 조롱하는 것을 목적으로 생겨난 유머이고 거짓말이기도 하며, 다정한 마음으로 비꼬는 것이기도하다고. 농담을 넘어서 한 사람의 정신상태를 드러내기도 하는데, 삶을 대하는 방식이 자유방임적이고 보수적인 상태라는 말과도 통한다는 것이다. <비트겐슈타인의 조카>를 쓴 토마스 베른하르트도 조국 오스트리아 극혐했던 사람인데 그의 말 "죽음 앞에서는 모든 것이 우습게 느껴진다" 라는 말과도 통한다고. 알듯 말듯하다. 일본에서는 무인양품의 히라 겐야와의 대화, 신칸센 해부, 안도 다다오가 나오시아 섬에 지은 베네세 아트 미술관에 대한 내용이었는데, 사진상으로는 제주도에 있는 자이로스 로사이와 비슷하게 보인다.  


박찬일의 글은 재료에 대해 이야기한다. 새벽 경매시작 팔딱이는 생선이 산지를 떠나 요리사의 손에 들어왔을 때의 시간차에 의한 덧없음을 이야기한다. 추억이라는 글에서는 결핍 상태에서 뇌의 회로에 저장된 음식들이라는 주제로 추억의 먹거리에 대해 이야기한다. 군대의 간식인 건빵이 나란히 줄을 서 누워 있는 사진이 인상적이다. 그러나 그에게 춥고 황량한 결핍으로 강렬한 기억의 회로를 생성해낸 음식이 따로 있었다. 바로 이탤리 음식. 그는 따스하고 평화롭고 여유로운 이미지로 떠오르는 토스카나를 해변 아닌 내륙 지방 깊숙히 가혹한 겨울에 들어갔다. 이탈리아 와인을 취재해서 쓴 기사를 국내 잡지에 팔아 근근히 연명하고 있을 때였다. 바람이 불고 눈발이 날리던 그 날, 택시도 버스도 없는 목적지를 향해 방한 장비도 없이 얇은 코트 한 벌에 의지한 채 걸어가다가 막 문을 닫으려는 카페에서 카페라테 한 잔을 얻어먹었고, 그날 밤 낡은 여관에서 뜨거운 고추와 토마토가 들어간 싸구려 냄비요리를 먹었다. 지금 그가 일하는 식당에서 이 요리를 파는 것은 그 시절 그에게 '바치는 작은 인사'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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