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애의 마음
김금희 지음 / 창비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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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도씩 기온이 오르던 여름 휴가때 바닷가에서 읽었다. 읽은지 한참 되어서 내용이 기억이 안날 거 같았는데, 그래도 꽤 많이 굵직굵직한 사건이 떠오른다. 어떤 책은 읽은 지 몇 달만 지나도 뭐였더라 완전 까먹고 뭔가 힌트를 줘야 대략적으로 생각나는 경우도 많은데, 그래도 띄엄띄엄 기억나는 거 보면, 인상적인 소설이다. 그래서 때로 책에 대한 제대로 된 평가는 한참 두어달 후에야 제대로 내릴 수 있다는 생각도 해본다.


거칠게 요악한다면 각자 따로따로 상처받은 두 사람의 마음이 만나 만드는 사랑이야기다.  인상적인건 두 사람의 캐릭터다. 웃기지도 재미있지도 그닥 매력적이거나 특별할 것도 하나 없는 사람들. 따지고 보면 상처받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이 어디에 있으련만, 대개 소설 속 주인공들은 트라우마에 가까운 깊은 상처를 안고 산다. 경애가 안고 살아가는 상실과 상처는 혼자만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이다. 고등학교 시절에 영화 동아리 아이들과 지하 주점에서 파티를 하다가 화재가 났는데, 인구들 모두 죽고 혼자서 살았다. 게다가 직장에서는 파업 기간 동안 노조 위원장(?)에게서 성희롱을 당하고 이를 폭로했다가 회사는 물론 노조에게서도 미움을 받아 외토리이다. 그래도 경애는 꿋꿋하게 혼자서 잘 살아간다.


같은 회사에서 일하는 상수와 경애의 공통점이 있다면 주변 사람들에게서 소외된 건데, 경애의 억울함과 달리 상수는 올곧은 듯 하며 뭔가 눈치가 없기도 한 듯 한 성격적 결함(으로 주변에서 생각하는)에서 기인한다. 그런데 알고 보니 상수는 인터넷에서 유명세를 타는 인물이기도 하다. 남성인 상수는 페이스북에서 연애 코치를 하는 유명한 '언니'다. 어쩌다보니 인연이 닿아,  익명의 페이스북으로 상수는 경애의 과거와 현재 죽은 남자친구와 화재에 대한 사연을 모두 알고 있다. 게다가 상수는 아버지의 배경탓에 낙하산으로 들어왔기에 더욱 더 그를 향한 동료들의 시선이 곱지 않다. 둘다 회사와 동료 입장에에서 자를 수도 없고 두고 보기도 싫은 계륵 같은 존재다. 그러던 차에 둘을 베트남으로 전근을 보내는데. 거기서도 현실과 타협하지 않는 상수의 성격과 악착같은 경애가 기존에 영업하던 팀과 트러블을 일으킨다. 하지만 그런 사건들은 둘을 현실 세계에서 가까와지게 만드는데, 경애는 여전히 상수가 페이스북의 상담 '언니'라는 사실을 모른다.


이렇게 밋밋하게 스토리를 정리하다보니, 좋은 소설을 망쳐놓은 거 같은데, 실제 소설은 두 사람의 마음이 입체적으로 묘사되어 있고, 주고 받는 대사에서도 잔재미가 있다. 회사, 가정, 썸타는 경애 모두와 잘잘한 트러블을 겪는 상수, 그 중에서도 가장 큰 시련은 그에게 가장 큰 낙이자, 또다른 정체성이었던 페이스북 계정인 '언니'가 해킹당하는 것이다. 


익명성을 믿고 동성이라고 철석같이 믿으며 자신의 모든 걸 내보인 사람이 같이 일하는 동료라는 걸 알았을 때의 배신감은 어떨까. 용서하고 자시고의 문제라기 보다는, 현실에서는 한 번도 보이지 않았던 마음, 경애의 마음을 고스란히 내보였다는 데서 오는 혼란일 것 같다. 그래서. 그 이후, 안다고 무엇이 달라질까. 배반감에 몸을 떨며 없었던 시간처럼 마음을 거두어 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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