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과 소설가 - 대충 쓴 척했지만 실은 정성껏 한 답
최민석 지음 / 비채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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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마다의 고민이 가장 무거워


 시간이 가면 갖고 있는 고민들이 연륜이 쌓여 가벼워질 줄 알았는데 시간이 갈수록 고민들의 무게가 더 무거워진다. 어른들이 말씀하시기를 어른이 되면 지금의 고민이 더 해결하기 어렵다고 하더니 이제야 그말의 의미를 깨닫는다. 그 나이 때마다 그에 걸맞는 고민이 가장 나의 삶에 있어서 가장 무거운 추를 달며,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 무겁던 고민의 끝은 언제 골몰했나 싶게 휘발되곤 했다. 그 시간들이 지나갔으지 자연스럽게 말할 수 있지만 다시 그 시간으로 돌아간다면 그때의 고민이 가장 크게 마음에 자리 잡고 있을 것 같다.


<고민과 소설가>는 최민석 작가가 2015년 11월부터 2017년 2월 주간지 <대학내일>에 기고했던 칼럼을 엮은 에세이다. 책은 총 4장으로 되어 있고, 각 장마다 고민하는 이들의 사연을 자아,사랑, 관계, 미래로 나누어 그들의 사연에 따라 최민석 작가가 답변을 해주는 형식이다. 약을 처방하듯 고민하는 이들의 사연은 가벼운 것도 있지만 여전히 답을 하기 어려운 질문이 많다. 그럼에도 저자는 함께 고민하고, 자신이 지내왔던 시간들을 곱씹어 보며 경험했던 것들을 풀어 그들의 질문에 정성스레 답을 한다. 더불어 너무나 개인적이고 각각의 상황에 따라 답변이 달라지는 것들은 작가가 쓴 장편소설인 <능력자> <쿨한여자><풍의 역사>와 에세이 <베를린의 일기> <꽈배기의 맛>을 셀프 홍보 하기도 하고 때론 자신을 디스하기도 한다. 책을 읽으면서 마치 드라마 속 PPL을 보는 것 처럼 글을 읽으면서 저자의 책 제목이 각인되는 효과를 볼 수 있다.


지금도 풀어내지 못한 질문들, 답을 그는 유쾌하면서도 진중하게 풀어낸다. 대학생활을 하면서도 낭만적인 캠퍼스 생활 속에서 나와 마음이 맞는 친구들과 존경에 존경을 더할 수 있는 선생님을 만날 수 있었는가에 따라 삶이 달라질 수 있겠지만, 아쉽게도 그런 어른을 만나는 것이 쉽지 않다. 대학을 한참 졸업한 후에 '멘토'라는 유행처럼 번지고 너도나도 멘토라고 칭하며 그들을 따르기를 갈망하지만, 진정 생활 속에서 그들의 삶과 신념, 그들의 삶을 따를 수 있는지 반문하게 된다. 책을 읽으면서 점점 더 어려워지는 취업의 길목에서 대학생들이 겪는 어려움, 자아, 관계, 사랑, 앞으로의 미래가 그들의 머릿속에 어지럽게 자리잡고 있다. 이 길또한 지나가면 그때 그랬지하며 웃으면서 지나가겠지만 지금 그들에게는 가장 무거운 숙제가 아닌가 싶다.


이 책을 대학생 때 읽었더라면 그때 고민했던 많은 것들과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을 더 깊이 통찰할 수 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한참이 지나서야 깨달았던 것들을 누군가 나에게 깊이 조언해주었다라면. 예전이라면 질문자의 마음에 더 공감을 했겠지만 지금은 답변을 하는 저자의 마음이 더 이해가 간다. 콕 찍어 답을 내놓을 수 없는 문제가 많고, 때론 지금 답을 할 수 없는 문제들이 시간이 지나면 얻을 수 있는 것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그 시간을 지내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공감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에 따라 자신이 주어진 고민이 가장 무겁고,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모르는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같다. 최민석 작가의 솔로몬 같은 답을 읽을 때마다 나는 왜 그와 같은 어른을 만나지 못했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그의 조언이 나이에 불문하고 나만의 색깔을 갖고, 좋은 인성을 갖기 위해 노력하며, 어른으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 깊은 생각을 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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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 *(정현종 저, 《섬》, 문학판, 2015 - p.118~120


상대가 변하길 기다리는 것보다, 내가 변하는 게 언제나 빠르니까요. 타인의 부족함을 발견하면 그건 내 우월함을 증명할 근거가 아니라, 나 역시 크게 다르지 않은 인간이기에 나아져야 할 근거를 다시 확인하는 것이니까요. 그럼 겉으로는 어색하더라도, 마음으로는 따뜻하게 아버지와 지내시길. 그것도 나쁘지 않아요. 피스 - p.175


그나저나, 그럼 우릴 무얼 얻느냐고요? 영국의 비평사 존 러스킨의 말로 답을 대신합니다.

"우리의 노력에 대한 가장 값진 보상은 노력 끝에 얻는 무엇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우리 자신의 모습이다." - p.179


저는 훌륭한 마케터의 요건 중 하나가, 바로 세상과 인간에 대한 관심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라 여깁니다. 만약, 그런 사람이 된다면 화장품 마케터건, 아니 어떠한 직종에 종사하건, 도움이 될 겁니다. 건투를 빕니다. 일찍부터 고민하는 질문자님은 잘해낼 수 있을 겁니다. - p.207


어른이 된다는 건 거창하 게 아닙니다. '자신만의 생각과 태도'를 가지는 것입니다. 어른이 되면 결정해야 할 것 천지입니다. 무엇을 살지, 누구에게 투표를 해야 할지, 누구를 만나야 할지, 누구에게 화를 내고, 누구에게 관용을 베풀어야 할지 끊임없이 결정하고 실행해야 합니다. 그 결정들이 쌓여, 결국 생의 색깔이 정해집니다. 그렇기에 나만의 생각과 태도는 내 생의 뿌리처럼 중요합니다. - p.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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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의 취향 - 카피라이터 김민철의 취향 존중 에세이
김민철 지음 / 북라이프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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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하면서도 확고한 것.


 취향: [명사]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방향. 또는 그런 경향.

(생략)

안개 속에 잠들어 있다가

때가 되면 일어나서

우리를 도와주러 오는 단어가 있다_밀란 쿤데라《커튼》 중  (p.7)


 저자의 이름만 보고 남자인줄 알았다. 책을 펼치고 나서야 그녀가 여자인줄 알았다. 책은 작고 가볍지만, 리듬감있게 읽힌다. 무슨 이야기를 해도 자연스럽게 맛깔나며, 그녀가 콕콕 찍어 인용해 놓은 소설 속 문구나 영화 이야기는 다시금 보고 싶게 만든다. 이전에 본 영화라면 다시 돌려보고 싶고, 읽었던 책이라면 그 문장이 그려진 페이지를 펴서 보고 싶다. 카피라이터인 그녀는 소소한 자신의 취향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취향이라는 것이 사소하면서도 확고한 것이어서 그 누구도 그 사람의 색깔을 낼 수 없다.


살면서 묻어나오는 색채는 저마다 다르지만 그 사람을 나타내는 색깔인 동시에 가장 나다운 모습이기에 취향을 존중해주고, 가꿔나가는 것 같다. 같은 취향의 사람을 만나면 더없이 행복하고, 다른 취향의 친구를 만나면 호기심이 드는 것처럼. 책은 시종일관 각각의 주제로 말을 풀어가는 동시에 수 많은 마음의 방향을 읽어나가고, 그 방향 속에 나를 찾아 나간다.


상우의, 루의 사랑 취향을 가진 나는 어떤 남자와 결혼 했냐고? 언젠가 남편이 내게 말했다.

"사랑은 한 사람을 평생 알아가는 과정이야."

여기, 이 사람의 사랑에 관한 가치관이 모두 들어 있다.' 한 사람을', '평생','알아가는', '과정'. 이 단어들의 의미 하나 하나는 설명하지 않도록 하겠다. 어쨌거나 나는 그 말을 한 사람과 결혼했다. 자랑은 여기까지. - p.87


많은 이야기 중에 가장 인상적인 이야기였던 부분은 한 가게의 사장님들 두분에 관한 이야기였다. 육전을 맛있게 내기 위해 최선을 다하며 '뜨거울 때' 가장 맛있는 음식이기에 정성을 다한 사장님이 있는가 하면, 한 가게의 사장님은 설거지 거리를 만들지 않기 위해 쓰던 그릇을 다시 쓰게 만들었다. 이런 저런 이유로. 나라도 후자의 사장님이 계시는 가게는 가고 싶지 않을 것 같다. 같은 가격의 음식을 만들어도 누군가는 디테일 하나 마저도 신경을 쓰는 이가 있고, 누군가는 이렇게 해도 괜찮다며 안일하게 가게를 운영하는 이들이 있다. 그들의 행동 하나하나가 다 가게의 얼굴인 것을.


그녀의 쉴 새 없는 이야기에 책을 덮고 나서 가볍게 친구와 함께 즐겁게 수다를 떤 느낌이다. 그녀의 전작들이 좋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는데 이번 기회에 <모든 요일의 기록>과 <모든 요일의 여행>을 읽어봐야겠다. 사소하지만 확고한 취향에 대해 가벼우면서도 깊게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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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려라, 달리! -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강아지의 심쿵 라이프
이지은 지음 / 김영사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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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여움을 장착한 사랑스러운 달리의 성장이야기 


애완견 인구가 1000만명을 넘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주변에서 보면 집집마다 개나 고양이를 키우는 집이 많고, 또 그들을 함께 키우는 집도 늘어났다. 산책 겸 운동삼아 공원을 가다보면 많은 사람들이 개와 함께 다니는 경우도 많이 보았다. 작은 강아지에서부터 커다란 몸피를 갖고 있는 대형견까지 데리고 다니시는데, 이전과 달리 안전하게 목줄을 채우고, 비닐봉지와 휴지를 갖고 다니시는 분들도 많이 보았지만 상대적으로 작은 강아지가 주인의 속도를 미처 따라잡지 못하고 목줄에 의해 끌려 다니는 경우도 보았다. 애완견을 넘어 한 가족으로까지 위치가 상대적으로 많이 올라갔지만 반대로 예쁘게 키우던 아이들이 여기저기에 버려진다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다. 사람이 아니라고 무조건적으로 예뻐해주다가 갑자기 버려진다면 사람이나 동물이나 상처를 받는 건 마땅한데 요즘은 키울 수 없는 조건임에도 기분에 따라 강아지를 분양받고, 그렇게 키우다 길거리에 버려진다.


책임감이란 이름의 무게


어제 식탁 밑에서 내내 기웃거리더니 달리 뒤통수에 고추장이 묻어 있었다. 달리는 내가 닦아주지 않으면 언제까지고 초고추장을 묻히고 다니기도 하고, 깨끗이 씻겨 예쁜 침구에 눕혀주면 베개 베고 이불 덮고 아이처럼 잠이 들기도 한다. 내가 뭐라고 내 손길에 따라 한 생명체의 존엄이 결정되고, 그 영혼의 행복과 불행이 결정되는 것이다. 책임감을 갖고 달리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p.82


그들을 오랫동안 키울 자신이 없다면 옆에 데려와서는 안된다는게 평소 생각이기에 강아지나 고양이를 키우는 것에 대해 신중한 편이다. 그럼에도 <달려라, 달리>의 주인공인 달리는 보는 것만으로 참 예쁜 강아지다. 함께 생활해 온 달구를 죽고나서 다시 강아지를 키우고 싶은 마음은 없었으나 당시 남자친구에 의해 달리를 알게 되었고, 그렇게 달숙언니의 품에 오게 되었다. 눈꼬리가 살짝 쳐진 하얀 색깔의 털을 가진 달리는 시무룩과 개의 합성어로 '개무룩'이라며 함께 올려놓은 사진을 시작으로 스타덤에 오른 강아지다. 귀여움을 장착한 사랑스러운 강아지 달리는 처음부터 달숙언니의 사랑만을 받고 자란 강아지 같지만 사실, 한 신혼부부에게 키워졌다 버려졌고, 사고에 의해 한쪽 발이 다쳐 한쪽 발을 잃었다. 오랫동안 유기견이라는 이름표가 붙어있는 강아지였다.


아기 강아지들은 주인을 잘 따르지만, 어느 정도 성장한 강아지는 아기 강아지보다 주인을 잘 따르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이 많은 유기견들을 입양하지 않으려고 한다. 이 책의 저자인 달숙언니, 이지은씨는 그런 달리의 상처받은 마음을 달래고, 품으면서 달리를 사랑스럽게 자신의 가족으로  생각하며 달리와 함께 지낸다. 힘차게 달리라고 지은 '달리'는 가수 십센치의 뮤직비디오 'Pet' 의 주인공으로 데뷔했고, 동물 최초로 인천국제공항의 명예홍보대사로 활약하고 있다. 몸와 마음을 다친 달리가 비로소 달숙 언니를 만나면서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강아지로 성장하기까지의 과정을 주인인 이지은씨는 있는 그대로의 달리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써내려갔다. 소심하고 겁이 많던 강아지, 함께 했던 강아지를 잃어버리고 쓰린 마음에 다시는 누구도 품에 들이지 않겠다는 달숙언니의 마음을 단번에 뚫어버린 달리의 이야기는 찡하면서도 애완견을 어떻게 돌봐야 하는지를 돌아볼 수 있게 하는 책이다.


그저 당장 예쁘다고 손에 쥐기 보다는 가장 예쁘고 사랑스러운 이 생명체를 끝까지 돌볼 수 있는 마음과 혹 예상치 못하게 그들이 병이 들었을 때도 그들을 보살펴 줄 수 있는 여건과 환경이 조성되어 있는지도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달숙언니와 가족들의 애정 담뿍한 사랑이 달리를 더 품을 수 있어서 달리가 더 행복해보인다. 인형처럼 귀여운 달리가 오래도록 행복하기를. 색색깔의 다양한 달리가 입은 옷들과 그 옷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소화해 내는 귀여운 달리의 모습들이 한가득 사진으로 수록되어 있어 보는 내내 입꼬리가 씨익 올라가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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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호실로 가다 - 도리스 레싱 단편선
도리스 레싱 지음, 김승욱 옮김 / 문예출판사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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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일상의 민낯을 생생하게 그려내다


 도리스 레싱의 책은 단편, 장편 할 것 없이 이야기가 잘 짜여져 있다. 그녀가 만들어낸 거미줄 같은 쫀쫀함에 빠져들 준비가 되었다면 언제든지 그녀가 쓴 작품 속 페이지를 열면 된다. 그러나 그녀의 이야기 속에는 정리 정돈된 것 같은 차분한 이야기 속에서도 언제나 뭣도 모르고 오르다가 거미줄에 갖혀 바들바들 떨고 있는 생물이 존재하는 것처럼, 도리스 레싱의 작품 속 인물들은 스스로 선택으로 비상구 없는 미로 속에 갖혀 버린다. 한 남자를 만나기 전까지 그녀들은 무료한 일상이 조금 심심할 뿐 그녀의 인생에서 하나도 거리낌없는 생활을 영위해 나갔다. 스스로의 능력을 펼치고, 사고 싶은 것을 사고, 자신을 꾸미는 것에 그 어떤 터치없이 자유롭게 생활했던 그녀들이 한 남자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결혼을 하면서부터 달라졌다.


사랑에 대한 환상은 잠깐이었고, 현실은 생각 이상보다 잔인했다. 저마다의 환경과 색깔이 달랐을 뿐 여자들의 삶의 일상은 다른 색을 띄면서도 같았고, 그들이 가진 이름들이 희미하게 지워진다. 희미하게 지워져 버린 이름표가 못내 아쉬워도 누군가의 아내, 내 아이들의 엄마로 살아가는 날들이 행복했기에 스스로가 지워버린 행태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것 조차도 손에 쥘 수 없다는 것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모파상의 <여자의 일생>을 읽었을 때도 여자들의 삶들에 대해 깊이 느꼈지만 도리스 레싱의 <풀잎은 노래한다>(2008,민음사)에 이어 <그랜드 마더스>(2016,예담) <19호실로 가다>까지 그녀가 그려낸 여성의 모습은 한 없이 고독하고 우울하다. 자기가 스스로의 짐을 받은 측면도 있지만, 가부장적인 시대에서 여성들이 선택 할 수 있는 권리는 생각보다 적었고 누구나 다 선택하는 길이기에 남아있는 사람들 마저도 함께 발을 맞춰 가야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을 도리스 레싱은 적확하게 그려낸다. <19실로 가다>는 '최종 후보명단에서 하나빼기'를 시작으로 총 11편의 단편들이 수록되어 있다. 그 중에서 표제작인 <19실로 가다>가 도리스 레싱이 부조리한 여성들의 삶을 명확하게 캐치해 내고, 가부장적 공간에서 여성으로서 최소한의 공간만을 필요로 하게 만드는 사회를 비판적으로 그려낸다.


94년에 출간된 작품임에도 도리스 레싱이 그려낸 소설 속 인물들의 여성이 지금의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오래 전부터 계속해서 조금씩 전진해왔다고 하지만 여전히 여자들은 회사 내에서 남자들보다 능력을 발휘하며 살기가 힘이 들고, 능력이 발휘한다고 하더라도 독박육아와 남편의 뒷바라지를 위해 자신의 일을 그만두고 만다. 아이를 어느 정도 키우고, 다시 회사에 나가려고 해도 이미 단절된 경력들이 발목을 부여잡고, 행복한 미래를 꿈꾸며 가정을 일구지만 연차가 쌓인 부부의 일상은 처음 만났을 때처럼 서로를 향해 눈을 돌리지 않는다. 두 사람이 함께 미래를 꿈꾸고, 행복하게 살겠다는 결심이 조금씩 균열이 가고, 서로의 일에 시선을 두면 서서히 두 사람이 생각하지 못한 불안의 싹들이 조금씩 피어 오른다.


외로움, 권태, 불안, 질투, 의심, 일어나지 않는 순간들을 착각하고 이야기를 만들고 마음을 좀먹으면서 서서히 그녀들은 마음의 병을 얻어나간다. 이전에 꿈꾸던 행복한 삶들이 색채가 서서히 세피아 톤으로 바래지고, 자신이 짊어진 것들이 무겁다고 느껴진다. 공감이 되다 못해 그녀들의 삶이 나의 삶이고, 또 나의 언니, 엄마, 할머니의 삶인 것이다. 도리스 레싱의 작품들은 여성의 삶을 천착하면서도 사회의 단면을 너무나 잘라내듯 그려내 읽는 내내 마음이 콕콕 아려왔다. 누군가의 고독한 삶에 벗어나려고 하지만 나 또한 그 길목에 들어서 그 짐을 짊어지고 나가는 길을 이어나가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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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메레르 9 - 용들의 연합 판타 빌리지
나오미 노빅 지음, 공보경 옮김 / 노블마인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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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디오스, 테메레르!

 

 강산이 한 번 변할 정도로의 긴 시간이 지나 드디어 9권을 끝으로 긴 항해가 끝이났다. 늘, 기다리고, 기다리던 시리즈라 완결편으로 돌아온 나오미 노빅의 책이 반가운 마음 보다는 섭섭한 마음이 더 앞선다. 테메레르를 한 권씩, 한 권씩, 독파하던 독자들은 이렇게 오랜 시간을 테메레르와 함께 할 줄 알았을까. 시리즈의 책이 너무 빨리 나와도 따라가기 버겁지만, 천천히 출간되어도 독자 입장에서는 희미해진 기억력을 붙잡거나, 잊어버린 기억력을 붙잡으려 다시금 책을 펼쳐든다. 아마도 그녀의 책 역시 전세계의 독자들이 여러번 책을 덮었다, 펼쳤다를 반복하며 책을 읽고, 또 읽었을 것이다.


마지막 인사가 아쉽지만 용들의 연합이라는 부제로 테메레르는 다시 돌아왔다. 이전에 활기차고 용맹했던 로렌스와 테메레르의 이전의 모습들과 달리 9권에서는 그동안의 일들을 거치고 거쳐 잘 싸웠음에도 그들 역시 너덜너덜 해진채로 추위와 식량에 따라 몸을 옹송거렸다. 그럼에도 찰떡궁합인 로렌스는 추위에 떠는 테메레르를 달래 그의 몸을 일으키고, 다시 발걸음을 향한다. 그들의 발걸음을 따라 걸을 때마다 알을 깨고 나와 로렌스에게 달려간 아기 용 테메레르가 떠오른다. 그들의 만남을 시작으로 군인정신이 투철하고 합리적인 로렌스를 만나 테메레르는 그와 함께 모든 시간을 보낸다. 아기 용이 성장하는 그 시간들을 우리는 오랫동안 마주 한 것이다.

나폴레옹의 시작점괴 그의 최후를 ​알고 있음에도 나오미 노빅이 만들어낸 이야기에 동화되어, 비행사인 로렌스와 테메레르의 떠나는 곳으로 자유롭게 날아다녔다. 비록 그들의 이야기가 지어진 이야기라 할지라도 만나는 인물과 그들을 둘러싼 전쟁 이야기는 한 편의 판타지 영화를 보는 것처럼 장엄하고, 호기심어린 시선으로 그 시간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계속해서 전진해 나가던 나폴레옹의 기세는 한풀 꺾여 이제는 퇴각하게 되고, 로렌스와 테메레르를 비롯해 연합군은 그들을 잡기 위해 추적하게 된다. 그러던 중 로렌스가 총에 맞게 되고, 의식을 잃어버리게 되는 사이 테메레르의 알리 프랑스 측으로 들어갔다는 소식에 테메레르는 갈팡질팡하며 오도가도 못하는 신세로 전작해 버린다. 위험에 닥친 로렌스와 테메레르의 이야기는 어떻게 전개될까.

여전히 그들의 이야기는 언제 읽어도 한 편의 영화처럼 다가온다. 종이 다른 사람과 용의 관계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깊은 우정으로 두 사람을 지배하고, 슬기롭게 위험을 헤쳐나가며 잘 싸워나갔다. 해를 거듭할수록 더 강해서 돌아오는 것 같은 테메레르 시리즈는 오랜 시간 속에서도 눈을 뗄 수 없는 강렬함으로 다가온다. 이미 알고 있는 역사 속 이야기를 비틀어 다른 세계관을 만들어 내고, 그것을 오랫동안 구축하며 만들어낸 나오미 노빅의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질 정도로 그녀의 이야기는 ​깊이 몰입 할 수 있음 가졌고, 평소에도 용에 대한 이미지를 좋아하는터라 테메레르 시리즈를 읽으면서 더 호감도가 높아졌다. 안녕, 이라는 인사를 하고 싶지 않지만 오랫동안 이야기의 즐거움을 안겨준 테메레르! 진짜,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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