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전의 설계자들 - 1945년 스탈린과 트루먼, 그리고 일본의 항복 메디치 WEA 총서 8
하세가와 쓰요시 지음, 한승동 옮김 / 메디치미디어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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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전의 또다른 의미


 하세가와 쓰요시의 <종전의 설계자들>을 읽고 '종전'이라는 단어의 뜻을 찾아봤다. 전쟁이 끝남을 의미하는 단어로 알고 있었는데 혹 다른 의미가 있나 싶어서다. 올해 3·1 운동 100주년 해가 되어 2월부터 3월까지 독립을 열망하는 많은 순국선열들의 이야기를 많이 보며 그들의 뜻을 기리는 시간이 되었다. 작년에 tvN에서 방송한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에서 보면 기존의 드라마와 달리 각국의 정치적 상황을 신랄하게 그리고 있는데 <종전의 설계자들>은 픽션이 아닌 그들의 숨은 이야기를 근거있게 그리고 있다.


그들의 손에 놓은 많은 나라들의 운명을 뒤로하고 자신들의 손에 가득 쥘 영토만이 그들의 목적이라는 듯이 1945년의 시간은 그렇게 기록되었다. 소련과 미국, 일본의 시간표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달리 다른 계산으로 전쟁의 끝을 맺었다. 우리가 그토록 외쳤던 나라의 독립이 우리의 손이 아닌 누군가에 의해 이루어지다 보니 결국 우리는 일제의 잔재들을 청산하지 못하는 폐단을 가지게 되었다. 책은 700페이지가 넘지만 식민지였던 나라를 중신으로 한 이야기가 아니라 당시 그들의 손에 한 나라의 운명이 좌지우지 할 나라들의 땅따먹기 양상의 이야기가 전개되는 이야기다.


이 책은 "일본의 무조건 항복수락"이 실은 정치적 수사에 불과했음을 제대로 보여준다. 그 결과 오늘날 우리는 철저한 반성과 청산을 전제한 '일본 패전' 후의 질서가 아닌, 전쟁범죄 은폐와 담합과 무책임으로 얼룩진 '종전'후의 질서 속에서 살게 되었다. 이 책은 그러한 '종전' 후의 질서를 설계한 사람들이 누구였는지, 그 설계가 어떠한 이상과 신비에 기대고 있으며 그 실체의 실상은 어떠했는지를 충실하게 보여준다. - P.17 (옮긴이의 해제 중에서)


읽으면 읽을수록 놀라운 이야기들이 그 시간 속에 전개되고 있다. 미국에서 나가사키와 히로시마에 원자 폭탁을 터트린 것 때문에 일본이 항복 선언을 한 것이 아니라 소련의 참전 때문이었다니. 교묘한 계산법이 소련과 미국, 일본 사이에서 핑퐁처럼 공을 주고 받으며 손익계산서를 열렬하게 펼쳐내고 있었다.


"우리는 폭탄을 개발했고, 그것을 사용했다. 진주만에서 경고 없이 우리를 공격한 자들에 대해, 미국인 포로를 아사시키고 구타하고 처형한 자들에 대해, 또한 전쟁 수행에 관한 국제법을 준수하려는 시늉조차 포기해 버린자들에 대해 이 폭탄을 사용했다."  - P.623


나가사키에 폭탄을 터트리고 트루먼 대통령이 라디오에서 선언한 말이다. 누군가의 손익 계산서에 의해 원폭은 터졌고, 아시아 지배권을 두고 미국과 소련의 치열한 싸움에 일본은 자신들에게 유리한 계산법으로 종전이라는 이름으로 전쟁의 끝을 맺었다. 이웃국가를 침략한 것에 대한 처절한 반성이 아니라 태평양 전쟁에서의 종결은 곧 항복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전쟁의 잘못된 설계도 때문에 우리는 아직까지도 일본 잔재를 청산하지 못하고 피해를 받고 있다. 아무런 사과없이 떳떳하다는 입장을 내는 일본 또한 1945년에 꺼트리지 않는 불씨로 그들의 야욕이 아직까지 살아있기 때문이다.


이제서야 일본의 야욕이 어디서부터 발화되었고, 아직까지 그 자리를 맴돌고 있는가 하는 의문이 풀린 책이다. 두꺼운 책이지만 읽는 내내 알지 못했던 역사의 단면을 다시금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끝까지 서로의 칼 끝에서 이득이 남은 채로 끝이 났던 전쟁의 설계도는 잘 벼리어진 칼날같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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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현 2019-04-13 14: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좋은 책을 소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하세가와 쓰요시의 책과 관련된 도서인 『8월의 폭풍』의 역자입니다.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75357299

하세가와의 책이 소련의 대일전 참전을 둘러싼 당시의 국제정치적 상황을 심도 있게 고찰하고 있다면, 『8월의 폭풍』은 하세가와 책이 비교적 간략하게 다루고 있는 소련의 대일전 참전에서 소련군이 수행한 군사작전을 상세히 다루고 있습니다.

『8월의 폭풍』을 『종전의 설계자들』과 같이 읽으신다면 더 많은 도움이 되실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