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그럼 무얼 부르지 - 오늘의 작가 총서 34 민음사 오늘의 작가 총서 34
박솔뫼 지음 / 민음사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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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디로 가는 걸까?

요즘은 명확함 보다는 모호하게 흐릿한 선을 따라 가는 것 같다. 정확하게 예측을 할 수도 없고, 하더라도 그것이 수학공식 마냥 딱 떨어지지 않는다. 질병과 재해가 얼마나 우리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는지 실감하고 있는 요즘 흐릿한 눈으로 바라보듯 텅 빈 세계를 그린 작가가 있다. 박솔뫼 작가는 이전에 <도시의 시간>을 통해 처음 그의 작품을 접했다. 장편의 호흡을 통해 그가 그린 회색빛의 세계를 관통하며 무감하고 차가운 색감을 많이 나타낸 작가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럼 무얼 부르지> 역시 같은 색깔을 띄고 있다.


누군가는 눈이 안 좋으면 안경을 써서 명확하게 바라보려 하지만, 누군가는 안경을 쓰지 않고 세상을 흐릿하게 본다고 한다. 많은 것들을 명확하게 보는 것이 너무나 피곤하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라고. 때때로 나 역시도 많은 것들을 선명하게 보려 노력하지만 한 편으로는 흐릿한 세계가 더 편할 때가 있다. 박솔뫼 작가가 그린 인물들은 그 어떤 액션 없이 있는 그대로의 삶에서 수긍하며 살고 있다.


2014년에 출간된 이 단편집은 총 7편의 작품을 엮어 만든 책이다. 이전 보다 훨씬 더 멋집 옷을 입고 나온 이 책은 단편이 주는 색다름을 많이 가지고 있다. 단편의 매력은 뭐니뭐니 해도 지금껏 장편에서 느껴보지 못한 실험적인 소설이나 짧지만 강렬한 이야기로 하여금 독자에게 짜릿함을 안겨준다. 박솔뫼 작가의 단편역시 단편의 장점과 더불어 실패한 세계에 대한 사랑과 더해지지 않는 현실의 이야기를 과감없이 그려낸다. 마치 수학공식을 그려내듯 증명을 해 보이는 작품이 있는가 하면, 순간순간 장막을 들춰보이듯 보이지 않는 이면 속 이야기가 등장한다.


마치 안경을 벗고 흐릿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처럼 그 어느 것 하나 명확하지 않다. 이야기를 읽다보면 파도에 밀려나가듯 그렇게 이야기를 타고 흘러간다. 그리고 생각한다. 박솔뫼 작가가 그리는 의미를 찾는 것이 결코 쉽지는 않겠구나 하고 말이다. 인물의 성격이나 그리고 있는 배경의 면면 까지도 마치 꿈을 꾸고 있는 것 같다. 어딘가로 관통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제자리에 서서 그저 상상만을 하며 멈춰있는 것 같다. 그래서 무엇을 해야 할지도 모르는 얼음 같은 삶이 책 속에 숨어 있다.


요즘 같이 모호하고 모호한 삶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 맞는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한다. 명확한 이야기를 좋아함에도 어딘지 모르고 관통하는 이야기처럼 우리의 삶 역시 이와 같이 명확히 떨어지지 않는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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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나는 모든 게 같다고 생각해. 시간은 천천히 흐르지만 하는 일은 없다. 다른 사람들은 시간이 빠르다고 해. 그리고 그 사람들은 많은 것들을 한다. 언젠가부터 시간은 천천히 흘렀다. 나는 내 시작이 그랬던 것 같다. 시간이 빨리 흐른 적이 없었다. 늘 하루가 길기만 하다. 태어날때부터 지루하고 이미 늙은 사람 같다. 나는 할아버지가 손녀를 보는 것처럼 누나를 보았다. 누나는 사과 같고 오렌지 같고 사슴 같고 토끼 같다. 누나는 내가 보는 것을 평생 보지 못할 것이다. 사장은, 사장도 같아. 이것으로 우리 셋은 똑같다. 우리는 누군가의 삼각형이 되지 못하지만 우리 셋은 같다. 이것으로 우리 셋은 똑같다. -p. 33


해만에서 우리는 문을 열고 인사를 하고 그러다 말이없고 흔들흔들거리고 떠나고 돌아가고 그리고 생각한다. 그처럼 해만에서 내가 보았던 것은 천천히 모든 것이 멀어지고 사라지는 것이었다. 사라지고 나면 무엇이 남나요? 사라진 곳에 대고 묻는다. 결국 텅 비어 버린 자신이 강렬해질 뿡이지. 아, 정말 그렇지? 질문들도 빠져나간 텅 빈 곳에 대고 대답했다. 아, 그렇네 하고. - p.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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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을 지나가다 민음사 오늘의 작가 총서 33
조해진 지음 / 민음사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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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어둠의 공간 속에서


 올해의 봄은 마스크로 시작해서 끝이나지 않았고, 여름은 기나긴 장마와 함께 여름을 지나가고 있다. 시작점은 있으나 끝이 보이지 않고, 계속 무게감에 피로감이 더해간다. 최악의 나날이다 싶을만큼 중간이 없는 시간들이 야속하기만 하다. 뉴스를 보면 새로운 질병 뿐 아니라 기상이변으로 재난이 발생하고, 우리의 삶의 터전이 비로 인해 무너지거나 씻겨 나간다. 생각하지도 못했던 한 사건이 나비효과가 되어 한 사람의 삶에 크나큰 영향을 미친다. 안정적으로 탄탄하게 기틀을 쌓아가고 있다고 생각했던 평온한 일상이 어느 순간 무너져 내린다. 생각하지 못했던 순간의 누수는 내내 삶의 생채기가 되어 버린다. 그것이 누군가에게는 후회가 되고 누군가에게는 미련의 감정이 남는 것처럼.


요즘처럼 일상이 공간이 거리를 두는 시간이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생활의 반경이 좁아졌다. 아마도 많은 상흔의 시간이 지나면 우리의 삶은 또다른 형태로 변하게 될 것이지만. 상황에 맞는 선택들이 이전의 자유로움 보다는 제한적인 선택지로 한해 행동반경이 좁아들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현재 우리의 시간의 빛과 어둠의 공간을 제한하는 것처럼 조해진 작가의 <여름을 지나가다> 또한 빛과 어둠의 공간 속에서 인물들이 떠돌고 있었다.


민은 탄탄하게 회사생활을 하며 종우와 결혼을 앞두고 있었지만 연인인 종우의 선택들이 결국 그들이 함께 할 모든 것들을 끊어냈다. 민은 일을 그만두고 공인중개사 일을 하며 사람들이 살아갈 집을 소개하고 있다. 그들에게 집을 소개하면서 짧은 시간이나마 그들이 살았던 집을 돌아보며 마음의 위안을 얻는다. 그 중 폐업한 가구점에서 머물며 자신의 시간을 위로 받고 있었다. 민이 빠져 나간 그곳에 수호는 가구점에 들른다. 아버지의 공간이었던 그곳에 머물며 지나간 시간들을 떠올린다. 가구점을 운영했던 아버지의 폐업은 곧 가족에게 들이닥칠 큰 위험이었고, 그는 이내 빛더미에 오르내리며 신용불량자가 되어버렸다.


아무리 힘을 내어 일을 해봐도 계속해서 도돌이표가 되어버리는 현실에 좌절을 겪게 되고, 그는 아버지의 가구점에 들어가 힘겨운 삶의 무게에 가구점을 방문하게 된다. 잠시 잠깐이지만 누군가의 손길이 위로가 되는 삶. 각박한 현실 속에서 개인의 슬픔과 아픔이 누군가에게 다시 잊혀지고, 다듬어지면서 다시 삶의 정렬을 해나가는 순간이 아닌가 싶다.


잠시 잠깐 머물면서 만나게 되는 개개인의 이야기들. 그 속에서 이어지는 사람들과의 인연들이 이야기를 만들어간다. 개인의 선택이 아닌 누군가의 삶이 더해질 때 순간적으로 삐그덕대는 순간의 나락과 그로 인한 고독함이 느껴지는 소설이었다. 잠시 잠깐이지만 누군가의 삶을 따라 가면서 위안을 받은 민의 모습에 어쩌면 우리는 사람들과 부딪히며 때때로 환멸을 느끼면서도 결국 사람들로 하여금 잊고 다시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얻는 것 같다.  


2015년에 문예중앙에서 한 차례 출간되었던 작품이었던 <여름을 지나가다>는 오늘의 작가 총서를 통해 새옷을 입고 나왔다. 전혀 접해보지 않았던 작가의 작품이라 더 좋았고, 여름의 습하고 후덥지근한 뭉근함을 잘 나타내주는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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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령 일정 기간 살다가 미련없이 죽고 그 죽음에서 빠져나온 뒤엔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얼굴로 다시 태어나는, 그러니까 일생이란 개념으로는 규정될 수 없는 태어남과 죽음의 끊임없는 반복. 그런 식의 삶은 기차 같은 거라고 민은 생각했다. 수많은 칸들이 연결된 기차처럼 각기 다른 생애들이 길게 이어져 전체 삶을 완성하는 것이다. - p.9


삶이란 결국, 집과 집을 떠도는 과정이 아닐까. - p.44


삶에도 누수의 흔적은 남기 마련이고, 그 흔적은 좀처럼 복원되지 않는다. 아니, 절대로 복원될 수 없는 흔적도 있다. - p.135


아이가 어른이 되고 어른은 노인이 되는 동안 결핍은 보완되고 상처는 치유되는 것, 혹은 삶이란 둥근 테두리 안에서 부드럽게 합쳐지고 공평하게 섞이는 것이므로 아른 것도 없고 억울할 것도 없는 것, 그런 환상이 가능할까. -p.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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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의 노래 민음사 오늘의 작가 총서 31
이승우 지음 / 민음사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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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조의 시작


 이승우 작가의 작품은 기독교의 색채를 많이 띄고 있다. 처음 읽었던 <생의 이면>(2013,문이당)과 <에리직톤의 초상>(2015,예담) 역시 그랬다. 그의 작품에는 웅숭한 깊은 골짜기처럼 드러나지 않는 어둠의 결계들이 존재한다. 소설 속 인물이 밖에서 살든 밖이 아닌 보이지 않는 영역에서 깊이 숨어 살든 그들의 과거 속에서는 깊은 욕망의 덩어리들이 숨어져 있다. 과거의 한 자락이 어딘가 베어져 나오면 어떻할까 싶을 정도로 꽁꽁 묶인 덩어리 속의 실타래를 풀어보면 누군가의 진한 욕망이 숨어져 있다. 드러내지 않았으면 좋았을 욕망과 방종이 훗날 누군가의 삶에 심한 생채기를 낸다.


누가 가해자고, 누가 피해자인가. 누군가에게 손이 닿지 않아 오랫동안 보존해 올 수 있었던 천산 수도원의 벽서는 우연한 경로를 통해 발견되었다고 하지만 결국 이 또한 우연이 아니었다는 이야기다. 이야기는 두 갈래로 이어진다. 후와 사촌인 연희, 박 중위가 관계된 이야기가 있다면 한 갈래의 이야기는 뜻밖에도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한 정치가의 발자국이 찍혀져 있다. 역사의 한 획을 그었고, 공과 과가 분명히 드러난 인물이었다. 그는 장군으로서 그를 옆에서 보필했고, 함께 나아갔다. 가장으로서의 일보다는 밖에서의 일을 더 중시하면서. 독실하게 누군가에게 기도를 하고, 조그마한 목소리로 그가 하는 일에 대한 위험을 말하지만 당시에는 부인이 하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소설에서는 많은 인물이 등장하지만 대표되는 인물이 후와 한정효다. 많은 곁가지들이 있지만 그들은 어떠한 일로 하여금 세상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요새 같은 수도원에 떨어질 수 밖에 없었다. 접점이 없을 것 같은 두 사람의 과거의 행적이 사뭇 다르지만 그들의 욕망이 행동으로 나타나 사람들을 다치게 했다. 그래서 누군가에게는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숨어있을 곳을 찾아 그곳으로 향했고, 누군가는 많은 것을 알고 있기에 그냥 놔둘 수 없어 무력으로 감금한 곳이 천산 수도원이었다. 그 누구도 선택이 아닌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의 입소였다. 천산수도원의 모습은 자발적인 성소였다가 때때로 누군가에 의해 감옥으로 탈바꿈 되기도 한다.


소설은 처음부터 끝까지 성경의 이야기가 진하게 묻어 나온다. 마치 오래 전 사람들이 행했던 많은 일들이 시공간을 뛰어넘어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던 거라고 이야기 하는 것 같다. 관계 속에서 드러낼 수 없어 바라보았던 사랑과 욕망이 더해져 계략적으로 다가왔던 사랑, 보호해야 하지만 자신의 욕심으로 방조하고 방임했던 한 남자의 모습까지도 성경 속에 담겨져 있었다. 그들의 욕망이 더해져 한 여자는 몸과 마음이 평생 고통을 받으며 자신이 자라왔던 곳을 떠나 살아간다.

그들이 한 일에 대해서는 부메랑이 되어 상해를 입거나 상황적인 죽음으로 끝을 맺는다. 박 중위의 탐욕스런 구애가 사촌 누나인 연희와 멀어지게 했다는 사실에 그는 날카로운 칼날을 들게 한다. 결국 위해를 가하고 그는 아버지에 의해 천산수도원에서 수도자와 같은 생활을 한다. 몇 년의 시간을 함께하다보니 그 생활이 눈에 익었다. 시간이 지나 산에 내려온 그는 이제 아무도 없어 무작정 미용사 일을 하는 연희만을 찾아 나선다. 그러다 배우게 된 미용사의 길이 또다른 욕망과 폭력으로 점철된다. 마치 시계바퀴가 돌아가듯 그들이 갖는 욕망과 폭력이 대본에 나와있는 듯 맞물려 들어가 있다. 후는 우여곡절 끝에 사촌누나를 만난다. 그러나 연희는 후를 만남으로서 다시 폭력이 자행되고, 자신이 덫에 걸린 그 순간의 악몽으로 기억을 가져다 놓는다. 순수한 열망을 가졌던 소년은 많은 것을 겪으며 그들과 같은 자리에 머무른다.


연희의 모든 것을 알아 낸 후는 정처없이 순례길을 떠돈다. 마치 세상의 부랑아처럼. 그리고 또다른 한 남자 역시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천산수도원에서의 고행을 하고 순례를 돌며 후와 마주친다. 사이사이 성경의 일화가 그들의 이야기에 파고든다. 거울과 같은 삶이다. 그럴 때마다 그들은 동아줄처럼 성경의 이야기를 찾는다. 모든 것들을 씻겨 내 주듯이. 위에 언급했던 두 작품 보다 훨씬 더 깊게 기독교적 색채가 두드러진다. 종교적인 색채가 뚜렷한 책은 기피하곤 했는데 이승우 작가의 <지상의 노래>는 계속해서 파고 드는 질문의 질문들이 더 깊은 심연 속으로 파고들게 만든다. 그래서 종교적인 것 이상으로 그들이 행하고자 했던 일들이 더 비밀스럽게 묻혀 있는 것 같았고, 비로소 세상에 나왔을 때 거룩하게 느껴졌다. 침잠하고 조용한 요새와 같은 높은 산자락의 수도원이 겪은 비탄하고도 놀라운 고행의 길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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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우연도 우연히 일어나지는 않는다. 운명을 만드는 것은 누군가의 욕망이다. - p.9


아름다움에 대한 추구는 거룩함에 흠집을 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거룩함에 후광을 만든다. 실은 거룩함에 후광을 더하기 위해 아름다움이 필요하다. 거룩한 것들은 아름다움 때문에 더욱 거룩해진다. - p.28


모든 이해가 행동을 수반하는 것이 아닌 것처럼 모든 행동이 이해를 동력으로 요구하는 것도 아니다. - p.98


사랑에 빠지는 것을 주체할 수 없는 것처럼 사랑으로부터 빠져나오는 것도 조절할 수 없다. 걷잡을 수 없다는 것은 이런 사랑의 본질이다. - p.125


되풀이를 통해 습관이 만들어지면 의식이 근육을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근육 스스로 알아서 움직이는 일이 가능해진다. 익숙해진 어떤 움직임은 어떻게든 물론 왜인지도 묻지 않고 저절로 이뤄진다. 알아서 그 길로 가고 자기도 모르게 그 말을 하고 제물로 그 일을 한다.(생략) 평생을 들여서 해야 할 일을 한순간에 해치워 버린 후에 남는 생의 공허를 어쩔 것인가. 평생을 들여서 해치워 버린 후에 남는 생의 공허를 어쩔 것인가. 평생을 들여서 해야 하는 일은 평생에 걸쳐서 해야 한다. 그 일 때문이 아니라 그 삶 때문이다. 일을 위해 삶이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삶을 위해 일이 있어야 한다.-p.2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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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중국편 3 : 실크로드의 오아시스 도시 - 불타는 사막에 피어난 꽃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유홍준 지음 / 창비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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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감이 실려있는 흥망성쇠의 이야기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중국편을 재밌게 읽었다. 다음편의 이야기가 무척 궁금했는데 이번 편 역시 유홍준 교수의 필력은 여전했고, 누란, 투르판, 쿠차, 타클라마칸사막등 그가 보여준 현장감은 실로 대단하게 느껴진다. 한 권의 책이 묶이기 까지 그는 여정을 더하며 에피소드를 풀어 나갔지만 이번 편만은 그렇게 할 수 없어서 아쉬웠다고 한다. 부족한 부분을 메우기 위해 그는 자료조사를 세세히 하며 영상과 책을 찾아 그의 여정길을 풍부하게 만들었다. 다른 편과 달리 이번 편은 더 학술적으로 느껴진다.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중국편은 1,2권에서 다룬 부분이 동부 구간이며, 이번 3권의 오이사시 도시 순례 부분이 실크로드의 중부구간(P.7)을 담았다. 교과서를 통해 몇 차례 무역의 중심지였던 실크로드에 대해 많이 들어봤으나 실감이 나지 않았다. 동서고역이 이루어지던 곳.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시간 속에서 누군가에 길이 열리던 곳이다. 유홍준 교수의 책을 읽을 때마다 보는 것을 넘어서 한 권의 책이 꿰어지기까지 얼마나 많은 품이 드는 가를 알 수 있다.

책상머리에서 막연히 실크로드를 생각할 때면 동서교역을 위해 낙타를 몰고 가는 소그드 카라반, 또는 불경을 구하기 위해 황량한 사막을 건너던 현장법사나 혜초 스님 같은 구법승들, 또는 서역을 차지하기 위해 중국인과 유목민이 벌인 무수한 싸움을 떠올리곤 했다. 그러나 막상 투르판에 와보니 그것은 지나가는 자들의 이야기일 뿐 오아시스 도시에 뿌리내리고 오순도순 살아갔던 서역인들의 숨결과 체취가 살갑게 다가왔다. 그네들이 시련의 역사 속에서 남긴 유적에는 아픔과 슬픔, 그리고 애잔한 소망이 서려 있었다. 그것은 오아시스 도시의 숙명 같은 것이었다. - P.56

색채가 드러나기 보다는 황량한 사막의 길이었다. 나무와 돌, 모래의 바람이 물결치는. 그가 보여주었던 석굴의 벽화들이 생경하게 다가왔다. 때때로 생소하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익살스럽게 느껴지는 그림들과 조각상들이 있어 색채감을 더한다. 항상 화려한 색채감이 있는 풍경들만 보다가 색채감이 드러나지 않는 풍경들은 보다보니 나도 모르게 입안에 모래가 저걱저걱 씹히는 것 같았다. 오랜 시간 속에서 무역의 꽃을 피웠고, 장대한 바람을 꿈꾸던 도시의 길이었다.


 

미국의 색면파 추상화가인 마크 로스코는 대형 캔버스에 검은색 혹은 빨간색을 짙게 칠하고 또 칠하면서 색면의 라인은 번지기 기법으로 어스름하게 지워버렸다. 그렇게 해놓고 로스코는 "관객들이 내 그림을 보면서 울음을 터뜨리길 바라며 그린다"라고 했고 실제로 많은 관객들이 그의 작품을 보고 있으면 감정이 복받친다고 고백한다는데, 이와 그대로 통하는 감상이다. 형체가 남아 있으면 그런 감정은 나오지 않는다. 그것은 분명 추상의 매력이자 힘이다. - P.108

마크 로스코의 그림처럼 추상적인 매력이 돋보이는 곳에서 나 또한 오래 전 살았을 사람들을 떠올려 본다. 선명한 유적이 남았더라면 사람들은 곧잘 탄성을 질렀을 것이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흔적이 사라진 곳에서도 사람들은 그것들을 지나가기 보다는 그 시대때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추측하며 그들을 떠올려본다. 그들이 살았을 시절의 이야기를. 그래서 원형이 있는 것 보다 더 큰 감동을 받고 오곤 한다. 그의 또다른 여정의 길은 문화유산답사기이기도 하지만 학술서 같기도 하다. 여정을 더하면서 더 깊게, 관심사를 꾸려나가기 때문이다.

여행이 중요한 이유는 인간의 경험을 확대시켜주기 때문이다. 해외여행에서 우리는 크게 세 가지를 보고 배운다. 문화유산 답사는 인류의 역사와 인문정신을 가르쳐주고, 도시 여행은 인간 삶의 다양한 면모를 엿보게 하며, 자연 관광은 바라보는 시야를 넓혀준다. 이 중 자연 관광에 해당할 천산산맥은 땅덩어리의 생김새에 대한 나의 상상력을 훨씬 뛰어넘어 경이로우면서도 감동적인 장면으로 남아 있다. -P.186

쿠차에서의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사람의 힘으로는 도저히 만들어 낼 수 없는 장관의 모습이다. 이번 편에서는 그의 필력만큼이나 눈을 사로 잡았던 것은 실크로드의 많은 풍광들 때문이었다. 도저히 누군가가 만들어냈다고는 할 수 없을 정도로 정교하고, 아름다운 모습들이 내내 그의 사진 속에 있었다. 실제 봤다면 더없이 좋았을 모습들이 책 곳곳에 사진으로 실려있다. 보는 것 만으로 좋았다. 단순했던 선들이 그의 손과 입으로 하여금 누군가의 역사가 되고, 시가 되어 흘러간다. 좋았던 호시절의 이야기도 있고, 나락으로 떨어지던 시절의 이야기도 있다. 그리고 그 시절을 넘고 넘어 수세기가 지나 이방인의 발걸음이 더해져 책이 쓰여져 있으니 그저 신기하고 새롭게 느껴졌다.


귀신이 도끼질하고 신이 다듬었다. - P.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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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라는 남자 비채×마스다 미리 컬렉션 4
마스다 미리 지음, 홍은주 옮김 / 비채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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닮아 있는 모습


아빠는 알 것 같으면서도 모르겠다.

가까운 사람일 텐데 몹시 먼 사람 같기도 하다.

딸을 편하게 대하지 못할 때면 좀 안됐다는 생각도 든다.

관심과 애정을 원하는데 자꾸 헛짚는달까. 애정 표현이 때때로

이상해서 오해를 부르기도 한다.

아빠는 알 것 같으면서도 모르겠다.

그리하여 살짝 성가실 때도 있다.


그래도 내 몸의 절반은 아빠한테서 왔다. 생각해보면 참 신기한 일이다.

아빠는 대체 어떤 존재일까? - p.4


 마스다 미리의 글은 좀 독특하다. 음식을 하면서 나물을 무칠 때와 같은 맛이 난다. 나물을 무치다보면 심심한 맛이나 간을 더한다. 간을 보면 이제서야 맛이 삼삼하다. 삼삼하게 무친 나물은 짭조름한 맛이 나 입에 딱 맞았다면, 다음 날 냉장고에서 꺼내 먹어보면 방금 했던 맛이 나지 않는다. 다시 심심하게 느껴진다. 그녀의 글은 심심한 나물 맛 같다. 비교적 글밥도 많지 않고, 그림 또한 단순하게 그려져 있다. 어딘가 모르게 심심하게 느껴지면서도 그 맛에 중독되어 먹는 것처럼 마스다 미리의 글은 그런 여백 속에 톡하고 건드리는 작은 공감이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화려한 데코 없이 과하지 않는 모양이 사람들의 시선을 불러 일으키고, 소소한 이야기들이 시공간을 뛰어넘어 공감하게 만든다. 책을 펼칠 때만 해도 '아빠'와 '남자'라는 테두리 속에서도 국가간의 문화적인 차이가 많이 날 줄 알았다.


그런데 막상 책을 읽어보니 시공간을 뛰어넘어 아빠라는 이름의 폴더는 국경을 뛰어넘어 닮아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같은 동양의 문화권이라서 더 그런 것일지는 모르겠지만 어딘지 서툰 애정의 표현도 그렇고 좋아하는 것들도 닮아있다. 아마도 나이차대로 편차가 있겠지만 마스다 미리의 나이 때의 아빠라면 어딘가 모르게 닮아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성별이 다르고, 유년시절 살았던 시절이 달라서 그런지 그동안 형성해 온 가치관이 때때로 대립이 된다. 서로 닮은 꼴이면서도 다른 마음이 존재하고, 서로의 생각들이 달라 어색한 표현들이 서로에게 닿지 않고 빗겨 나가기도 한다. 어렸을 때는 이보다 조금 더 가까이 친근함을 유지하며 맞닿아 있었을텐데. 어느 순간부터 닮음이, 다름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어 버렸다.


어느 순간 어색해진 공기가 정화되지 않고 흘러가고 있지만 순간순간 내가 아빠의 이런 모습은 닮았구나 하는 자각이 들 때가 많다. 마음의 거리는 조금 멀어졌을지 모르지만 마스다 미리의 글처럼 내 몸의 절반은 아빠에게 있으니 어쩌면 닮은 것은 당연한데 느끼는 순간순간이 생경하기만 하다. 서로 다른 성별을 갖고 있어서 더 이해하기가 어려웠던걸까? 아빠의 소소한 즐거움이 나에게는 소소한 즐거움 보다는 마냥 보는 것 같은 착각이 들게한다. 그래서 어렸을 때 봐왔던 것들이 이어지고, 또 이어지다 보니 어른이 되고 나서는 그 시절에 만난 것들을 벗어나고 싶을 때가 많았다. 마스다 미리 역시 그런 아버지의 소소함을 이해 못하는 대목들이 나온다. 아버지의 성격이 급하지만 취비는 그와 대비된다. 낚시와 독서인 그의 모습들. 애정표현이 달디 달지는 않지만 자신만의 애정모드가 있는 남자. 마스다미리는 그렇게 아버지를 표현했다. 가족이기에 장단점을 모두 알고 있고, 그 안에서 겪는 희노애락의 모습들이 엿보인다.


시간이 지나면서 어느덧 나는 한 남자가 한 여자를 만나 아이를 닿던 시간을 훌쩍 넘는 시간 속에서 살고 있다. 내가 아니라 한 가정을 책임지는 가장으로서의 무게를 느끼며 살아가는 것 또한 많은 인내와 노력이 닿아야 했을텐데. 그것을 내가 많이 느끼고 있지 못하는 건 아닐까. 서로에게 애정은 있지만 표현하는 법을 몰라서 엇갈리는 시간들을 줄여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많은 오해의 시간들이 아니라 조금 더 정겨울 수 있는 시간의 즐거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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