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라는 남자 비채×마스다 미리 컬렉션 4
마스다 미리 지음, 홍은주 옮김 / 비채 / 2020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닮아 있는 모습


아빠는 알 것 같으면서도 모르겠다.

가까운 사람일 텐데 몹시 먼 사람 같기도 하다.

딸을 편하게 대하지 못할 때면 좀 안됐다는 생각도 든다.

관심과 애정을 원하는데 자꾸 헛짚는달까. 애정 표현이 때때로

이상해서 오해를 부르기도 한다.

아빠는 알 것 같으면서도 모르겠다.

그리하여 살짝 성가실 때도 있다.


그래도 내 몸의 절반은 아빠한테서 왔다. 생각해보면 참 신기한 일이다.

아빠는 대체 어떤 존재일까? - p.4


 마스다 미리의 글은 좀 독특하다. 음식을 하면서 나물을 무칠 때와 같은 맛이 난다. 나물을 무치다보면 심심한 맛이나 간을 더한다. 간을 보면 이제서야 맛이 삼삼하다. 삼삼하게 무친 나물은 짭조름한 맛이 나 입에 딱 맞았다면, 다음 날 냉장고에서 꺼내 먹어보면 방금 했던 맛이 나지 않는다. 다시 심심하게 느껴진다. 그녀의 글은 심심한 나물 맛 같다. 비교적 글밥도 많지 않고, 그림 또한 단순하게 그려져 있다. 어딘가 모르게 심심하게 느껴지면서도 그 맛에 중독되어 먹는 것처럼 마스다 미리의 글은 그런 여백 속에 톡하고 건드리는 작은 공감이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화려한 데코 없이 과하지 않는 모양이 사람들의 시선을 불러 일으키고, 소소한 이야기들이 시공간을 뛰어넘어 공감하게 만든다. 책을 펼칠 때만 해도 '아빠'와 '남자'라는 테두리 속에서도 국가간의 문화적인 차이가 많이 날 줄 알았다.


그런데 막상 책을 읽어보니 시공간을 뛰어넘어 아빠라는 이름의 폴더는 국경을 뛰어넘어 닮아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같은 동양의 문화권이라서 더 그런 것일지는 모르겠지만 어딘지 서툰 애정의 표현도 그렇고 좋아하는 것들도 닮아있다. 아마도 나이차대로 편차가 있겠지만 마스다 미리의 나이 때의 아빠라면 어딘가 모르게 닮아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성별이 다르고, 유년시절 살았던 시절이 달라서 그런지 그동안 형성해 온 가치관이 때때로 대립이 된다. 서로 닮은 꼴이면서도 다른 마음이 존재하고, 서로의 생각들이 달라 어색한 표현들이 서로에게 닿지 않고 빗겨 나가기도 한다. 어렸을 때는 이보다 조금 더 가까이 친근함을 유지하며 맞닿아 있었을텐데. 어느 순간부터 닮음이, 다름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어 버렸다.


어느 순간 어색해진 공기가 정화되지 않고 흘러가고 있지만 순간순간 내가 아빠의 이런 모습은 닮았구나 하는 자각이 들 때가 많다. 마음의 거리는 조금 멀어졌을지 모르지만 마스다 미리의 글처럼 내 몸의 절반은 아빠에게 있으니 어쩌면 닮은 것은 당연한데 느끼는 순간순간이 생경하기만 하다. 서로 다른 성별을 갖고 있어서 더 이해하기가 어려웠던걸까? 아빠의 소소한 즐거움이 나에게는 소소한 즐거움 보다는 마냥 보는 것 같은 착각이 들게한다. 그래서 어렸을 때 봐왔던 것들이 이어지고, 또 이어지다 보니 어른이 되고 나서는 그 시절에 만난 것들을 벗어나고 싶을 때가 많았다. 마스다 미리 역시 그런 아버지의 소소함을 이해 못하는 대목들이 나온다. 아버지의 성격이 급하지만 취비는 그와 대비된다. 낚시와 독서인 그의 모습들. 애정표현이 달디 달지는 않지만 자신만의 애정모드가 있는 남자. 마스다미리는 그렇게 아버지를 표현했다. 가족이기에 장단점을 모두 알고 있고, 그 안에서 겪는 희노애락의 모습들이 엿보인다.


시간이 지나면서 어느덧 나는 한 남자가 한 여자를 만나 아이를 닿던 시간을 훌쩍 넘는 시간 속에서 살고 있다. 내가 아니라 한 가정을 책임지는 가장으로서의 무게를 느끼며 살아가는 것 또한 많은 인내와 노력이 닿아야 했을텐데. 그것을 내가 많이 느끼고 있지 못하는 건 아닐까. 서로에게 애정은 있지만 표현하는 법을 몰라서 엇갈리는 시간들을 줄여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많은 오해의 시간들이 아니라 조금 더 정겨울 수 있는 시간의 즐거움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하와이하다
선현경 지음, 이우일 그림 / 비채 / 2019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파도를 타는 삶 


 한동안 일상이 바쁘다 보니 좋아하는 책을 읽는 시간과 함께 쓰는 시간이 확 줄어버렸다. 책을 읽는 것도 습관이 된 것인지 한동안 책을 읽지 못하는 시간이 계속 되면서 금단증상이 일어났다. 그럼에도 집에만 오면 힘들어서 풀썩 쓰러져 자기 바빴으니 몸도 마음도 체력도 고갈되었다. 그러다 다시 만난 한가한 나날들.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맞닥들이다 보니 이제는 널널한 시간이 쥐어졌음에도 책이 잘 읽히지 않았다. 생각한 만큼 책을 읽지 못했고, 휭하며 속도를 내던 차가 엉금엉금 기어갈 정도로 속도를 내며 달리는 것처럼 천천히 글을 읽는 시간이었다. 그러다 마음을 뺏긴 책이 선현경 동화작가의 글과 이우일 만화가의 그림이 더해진 <하와이하다>였다.


평소에는 여행을 가고 싶다는 가고 싶다는 생각이 안들었는데 일상이 빡빡해지니 어디론가 떠나 버리고 싶었다. 시원한 바다내음도 맡고 싶고, 맛있는 회도 먹고 싶다. 그러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을 무렵 <하와이하다>를 읽었다. 읽는 내내 마음이 편안했다. 가고 싶었던 곳을 눈으로 가는 느낌이었다. 시원한 바다내음이 물씬 느껴지고, 파도를 타 보는 생경한 느낌을 갖게 해 준 책이다. 부부의 토닥임도 재밌고, 중간중간 멀리 보내논 딸을 그리워하는 마음도 찡하게 느껴진다. 더불어 그들의 활기찬 생활의 소소함이 더해져 물빛 만큼이나 반짝거렸다.


 

 

 

파도를 타려면 좋은 파도를 기다려야 한다. 긴 기다림이야 말로 좋은 파도를 탈 수 있는 적격의 기회라고 하니 무엇하나 쉬운게 없나보다. 미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는 쉼없이 파도를 탄다. 부부가 햇볕에 그을리는지도 모르고 파도를 타는 모습이 생경하면서도 즐겁게 느껴진다. 파도에 대한 끊없는 열망은 아내보다 남편이 더하다. 컬렉터의 면모를 더하는 것도 남편이다. 다양한 것을 배우고 풀어내는 것이 아내는 선현경 작가라면 이우일 만화가는 애정하는 것에 있어서라면 더 깊이를 더하는 이다. 그래서 아내로 하여금 인내심을 끌어 모으게 하기도 하지만 오랜시간 함께한 이라 그런지 그의 집착같은 모습에 주먹을 불끈 쥐었다가도 스르르 놓으며 그를 이해한다. 수십년간 함께 살았다 하여 모든 것이 맞지 않기에. 그렇게 토닥이고 싸웠다가도 다시 안쓰러워하며 이해하는 모습이란.


처음 만화가 이우일의 작품을 만나게 된 것은 김영하 작가의 <오빠가 돌아왔다> (창비,2004)부터 였다. 제목도 눈에 띄었지만 표지 그림도 만만치 않았기에 눈길을 사로 잡았는데 후에 <김영하 이우일의 영화이야기>(마음산책, 2003)로 도장을 꾹 찍었다. 김영하 작가의 맛깔난 글 만큼이나 그림 또한 좋았기에 그의 이름이 찍힌 책이라면 즐겁게 선택해서 보게 되었다.


소소한 삶의 테두리 속에서, 하와이의 기상천외한 모습, 풍경들이 눈앞에 그려졌다. 요즘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계속해서 가지고 있을 것만 같은 파란 하늘, 마스크 없이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는 자유로움을 빼앗겨 버렸다. 당연하게 언제까지나 우리가 누릴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는데 요즘은 그런 일상이 없어지고, 여행 조차도 쉬이 나설 수 없는 시간들이 더해지다 보니 <하와이 하다>속 일상들이 마냥 부러워진다. 더불어 그 일상을 즐기며 읽어나간 책 속의 명언, 생활 속의 글귀가 마음에 콕하고 박혔다. 더불어 읽었다 덮어 두었던 책들도 책장에서 꺼내왔다. 20년차 부부의 하와이안 라이프를 활기찬 모습으로 즐기는 것처럼 나 또한 지금 이 순간을 즐겨봐야겠다.


----

 

"그래, 힘들고 귀찮지. 근데 왜 살아? 그려려고 사는 거지."

(생략) 얼마 전 우울한 어느 목요일에 요가 수업을 했는데, 수업 후 수다를 떨다 기분이 나아졌다. 내가 치료받은 느낌이었다. 엄마 말대로다. 이러려고 사는 거다. 마음을 다해 시간을 할애할 누군가가 있기에 내가 살아갈 수 있는 거다. -p.52~53 


노래 몇 곡으로 오랬동안 꺼져 있던 마음 한쪽 깊은 방의 스위치가 커졌다. 시간여행을 다녀온 듯 어지러웠다. 매달 마지막 토요일이 나도 기다려지기 시작했다.  내 작은 방의 스위치를 켜고 보니 그의 수집이 조금은 달라 보인다. 우일도 내가 모르는 그만의 어릴 적이 그리워 옛 음반을 들이고 장난감을 사는 걸까? 짐이 또 이렇게 늘기만 한다며 구박했는데 문득 그가 이해되었다. 따져보니 가장 좋아했던 점을 살면서 가장 큰 결점으로 만들고 있었다. 그 결점이 내가 그를 사랑항 이유였는데 말이다.

"이해"는 품이 드는 일이라, 자리에 누울 때 벗는 모자처럼 피곤하면 제일 먼저 집어던지게 있거든." 김애란 단편소설 <가리는 손>을 읽으며 적어둔 말이다. 부부관계란 품이 드는 일이다. 그동안 피곤해서 집어던져버린 이해를 이제야 다시 집어 들고 있다. - p.60~61


"경계에 있을 때는 두렵다. 모호하고 불안하다. 이불안과 모호함을 분명히 하는 것이 아니라 견디고 받아들여라. 너를 가두고 있는 '우리'에서 탈출해 너 자신으로 돌아가라. 그 우리는 널 가두는 우리다." - p.66


"모든 변화에 기쁘게 반응하세요. 결국엔 모든 게 다 괜찮아질 거예요. 그렇지 않다면 아직 때가 아닌 거죠." 영화 <베스트 엑조틱 메리골드 호텔 The Best Exotic Marigold Hotel>에서 나온 대사가 생각난다. - p.94


"우리는 때때로길을 잃어야 한다. 세계를 일어버린 다음에야 비로소 우리 자신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요즘 다시 읽는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Walden》에 나온 말이다. - p.100


영화 <마지막 사중주 A Late Quartet>에서 아직은 때가 아니라며 제2바이올린만 고집하는 필리 세이모어 호프만에게 한 여인이 이야기 한다. "가장 좋은 때란 없어요. 그 말은 언제나 가장 좋은 때란 걸 말하죠." 어쩌면 매일매일이 그 기회, 그때일지도 모른다. 우린 요즘 밥을 먹으면서도 술을 마시면서도, 컴퓨터 앞에 앉아 넷플릭스 Netflix 영화를 고를 때에도 보디보드에 관해 이야기한다. 알면 알수록 큰 파도를 타는 일은 무섭고 어려워 보인다. 일단은 퀸스 해변에서나 잘하자. - p.11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고양이에 대하여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도리스 레싱 지음, 김승욱 옮김 / 비채 / 2020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날 것 그대로의 이야기


 <풀잎을 노래한다>를 통해 도리스 레싱의 작품을 접한 이후부터 꾸준하게 읽고 있는 작가군 중에 하나다. 그녀의 글은 전작주의를 하고 싶을 만큼 매력적이다. 책장 가까이에 두고 여러번 반복해서 읽고 싶은 작가는 아니지만 그녀의 책을 펼쳤다하면 다시 닫기까지 여러번 가슴에 생채기를 낸다. 책의 재미를 떠나서 글의 흡입력이 뛰어나다 보니 나도 모르게 도리스 레싱이 그려낸 이야기 속으로 빠져든다. 언젠가 느꼈을 미묘한 감정들을 끌어내고, 상황과 공간 속에서 갖는 이질감과 날 것들을 편집하지 않고 그대로 드러낸다. 그래서 더 도리스 래싱의 글에 심취하지만 여러번 반복해서 책을 읽고 싶지는 않다. 너무나 많은 감정의 결계들이 남아 잔상처럼 머릿속을 떠돌아 다녔다.


책을 펼치기 전에 황인숙 시인이 책의 소개를 했을 때만 해도 여러 산문집이 그러하듯 '고양이에 대한' 이야기가 시인의 말처럼 포근하고 따듯할 줄 알았다. 그러나 이 책은 도리스 레싱의 산문집이라는 것을 까맣게 잊는 나는 과감하게 책을 펼쳤다. 책의 첫문장을 읽고, 또 읽는 순간 아! 하는 탄성이 나왔다. 도리스 레싱의 책이라는 것을 간과한 죄(?)로 날 것 그대로의 고양이에 대한 이야기가 한 눈에 들어왔다. 내가 상상한 것 이상으로 그녀의 이야기는 고양이들의 희노애락을 넘어 몇 십년전 우리가 생각한 고양이들과의 혈투에 가까운 이야기이기도 했다. 총만 안들었을 뿐이지 '도둑 고양이'로 명칭되었던 길고양이들이 갖는 수모와 핍박, 고양이에 대한 이해가 없던 시절의 이야기는 더 날 것 같았다.


내가 살았던 시절 보다 더 오래 살았던 도리스 레싱의 시골에서의 이야기는 더 깊은 고양이들의 역사가 그려졌고, 사람과 동물의 대립은 결국 사람 손에 의해 생과 사가 좌지우지 되었다. 가족 중 누군가가 나서서 집안을 둘러싸고 있는 길 고양이의 개체수를 줄이기 위해 나쁜 역할을 자청 할 수 밖에 없었다. 대개는 그런 역할이 살림을 맡아서 하는 엄마나 바깥에서 일을 하는 아버지들이 맡아서 했다. 그래야 주변에 길 고양이들이 키우는 가축을 해코지 않지만 그것을 지켜보고, 일을 해야 하는 인간으로서는 참담했을 것 같다. 글 속에서는 도리스 레싱의 어머니가 그 일을 맡았고, 여러해 동안 어쩔 수 없이 길고양이들을 죽여나갔다. 그런 시간 속에서 길고양이, 집고양이의 수난이 계속되었고, 아끼는 고양이가 피해를 본 적도 있었다. 살림살이를 지키기 위한 최후의 방어막이었지만 고양이들 나름의 삶이었으니 글을 읽는 내내 눈을 감고 싶었다.


그러고 보니 책을 읽는 내내 고양이를 좋아하고 사랑하는 것 같지만 몇 십년전만 해도 고양이를 좋아하지 않았다. 어렸을 때만 해도 고양이들에 대한 인식이 너무 나빴고, 야옹~하고 울어대는 고양이 울음소리가 아이의 울음소리와 같다하여 불길하게 생각하기도 했다. 당시에는 고양이보다 강아지를 더 좋아했고, 더 예뻐 했었다. 시간이 지나 이렇게 고양이를 애틋해하고, 좋아하기까지는 시간이 지나야 했고, 사회적인 인식 또한 바뀌는 과정을 거쳐야 했다.


고양이를 죽이고, 잡아야 하는 날 것 그대로의 모습 뿐만 아니라 고양이의 출산과정이나 다정하게 고양이를 예뻐하고, 사랑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고양이가 태어나는 순간이나 함께 몸을 부비며 생활한 적이 없어 더 생경한 모습 마저도 도리스 레싱의 날카로운 필치로 그려져 있다. 산문집 마저도 도리스 레싱 답다는 생각이 들어 책을 읽는 내내 키우는 고양이 마저도 아름답고, 부드러운 필치를 그려내는 것 보다 더 깊은 피의 역사를 그려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양이와 인간, 시골과 도시에서의 모습들 마저 다른 고양이의 이야기들까지. 벽과 벽 사이의 공간 속에서 살아가는 고양이들의 모습을 다채롭게 바라볼 수 있었다. 암흑의 시대를 넘어 충만한 아름다움을 함께 하기를 바라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생강빵과 진저브레드 - 소설과 음식 그리고 번역 이야기
김지현 지음, 최연호 감수 / 비채 / 2020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번역가가 들려주는 문학 속 달콤쌉싸름한 맛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면 늘, 기분이 좋다. 익숙한 맛이 주는 반가움과 언제 먹어도 맛이 변하지 않는 고유맛에 자꾸만 그 음식을 찾게 된다. 새로운 맛을 즐기기 보다는 익숙한 맛에 길들여지곤 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취향이 변하기 시작했다. 먹지 않았던 도라지와 더덕의 쌉싸름한 맛을 느끼게 되고, 물컹하다고 잘 먹지 않았던 가지도 잘 먹는다. 책 읽는 습관 또한 맛있는 음식을 접하는 것과 같아서 늘 같은 루트로 책에 빠져 든다. 책의 굵직굵직한 가지와 숲을 걸어가는 인물들의 발걸음만 쫓다보니 숲에서 느꼈던 향취나 동물들의 발자국은 바라보지 못했던 것 같다.

 

<생강빵과 진저브레드>는 책 속의 세밀화와 같이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인물이 먹고 마시던 것들을 한아름 꺼내와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마치 우아한 레스토랑에 들어온 듯 메뉴에는 빵과 수프, 주 요리, 디저트 외에 그 밖에 부록의 이야기 조차도 이야기 속의 이야기가 탄탄하게 메워져 나간다. 어렸을 때 읽었던 동화 <하이디>와 <소공녀>를 비롯해 미국 문학의 대표적인 <톰 아저씨의 오두막>과 영화 속에서 깊은 인상을 남겼던 스칼렛 오하라의 앙칼졌던 모습이 엿보였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이야기도 나온다. '단추로 끊인 수프'라는 민담과 함께 주 요리로 나오는 거위 구이, 바닷가재 샐러드의 진귀한 만찬도 등장한다. 인물들이 접하거나 먹을 수 있는 음식에서는 그들의 위치와 배경, 한계점이 드러난다.

 

누군가의 매혹적인 데이트의 매개가 되는가 하면 지금 당장 끼니를 때워야만 하는 비정함이 숨어있다. 누군가의 자부심이기도 하고, 지금 이순간만을 위한 음식이기도 하다. 낯선 제목을 가진 작품 보다는 익숙한 제목들이 주는 친근함이 컸던 책이었다. 그럼에도 그들이 먹고 마시던 음식들은 낯설었다. 어딘가에서도 보지 못했던 음식들과 과자들이어서 차근차근 지은이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대충 만드는 음식은 먹는 이로 하여금 알 수 있듯 정성스럽게 고아온 음식 또한 섬세하고 깊은 빠져든다. 이 책 역시 또다른 책을 읽는 것 처럼 섬세하고 세밀한 글 덕분인지 읽었던 책들을 다시 읽는 기분으로 책을 읽었다.

 

 J. 라이언 스트라돌의 소설 <위대한 중서부의 부엌들>(2018, 열린책들)을 펼치면 천재 셰프인 에바가 어린 시절 이도 안났을 때부터 그의 아버지는 이유식을 만드는 장면이 나온다. 자신이 개발한 최상의 맛을 아기에게 맛보이고 싶어서 이유식 조차도 어느 아이와는 다른 레시피로 만들어간다. 아이에 대한 사랑을 듬뿍 담은 아버지의 맛. 책의 초반에 나오는 내용이었음에도 라루스 열정과 사랑이 에바에게 줄곧 전해졌더라면 좋았을텐데 라는 애잔함 때문인지 잊지 못하고 있었는데 <생강빵과 진저브레드>를 읽고 있으니 다시 라루스의 부엌이 떠올랐다. 누군가에게 그토록 맛보이고 싶었던 맛이었을 만큼 진귀한 성찬의 이야기는 다시 문학 속으로 들어와 그 이야기를 읽고 싶게 만든다.

 

그중 가장 읽고 싶고, 먹어보고 싶었던 작품은 해리엇 비처 스토의 <톰 아저씨의 오두막>과 오 헨리의 <아르카디아의 단기 투숙객들>과 J.M 바스콘셀로스의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다. 일러스트를 통해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음식들을 맛 볼 수는 없었지만 대체 할 수 있는 것들을 알려준다. 이것이 상상의 음식인지 아니면 지금도 어느 나라에서는 존재하고 있는 음식에 대한 연유에 대해서. 음식과 더불어 어렸을 때 느꼈던 생각들을 넘어 책을 다시 한 번 읽어보고픈 다음 장면에 대한 이야기 또한 책을 더 펼쳐 보고 싶게 만든다. 너무도 유명해 나 한 명쯤 안 읽었더라도 괜찮다고 생각했을 작품 또한 다시금 쳐다보고 싶을 정도로.

 

생강빵과 진저브레드는 같은 뜻을 가진 단어이지만 어감이 주는 맛이 틀리다. 번역을 하는 이가 아니기에 세밀한 것에 대해 기민하지는 못하지만 번역을 하는 이의 수고로움과 적확하고 새로운 단어에 대한 고충을 알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좋아하는 소설을 한층 더 좋아할 수 있는 내밀한 시간이었기에 더 충만하고 든든한 마음으로 책을 덮었다.

 

옛날 이집트에서는 신의 이름에는 신의 정수가 깃들어 있어서 그 이름이 알려지면 신이 힘을 빼앗긴다고 믿었다. 조선 양반들은 본명에 그 사람의 운명이 들어 있다고 여겨서 웬만하면 부르지 않고 자나 호를 따로 지어서 불렀다. 아끼는 자식이나 애인에게는 자기들끼리만 아는 은밀한 애칭을 사용하기도 한다. 너무 신성해서, 너무 귀해서, 너무 사랑해서, 마치 귀중한 물건을 서랍 안에 고이 감추듯이 단어들을 독점하고 싶을 때가 있다. - p.28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양 사나이의 크리스마스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이우일 그림, 홍은주 옮김 / 비채 / 2019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커다란 구멍 사이로

 ​올해만큼 크리스마스를 고대하며 기다려 본적이 없다. 아마도 기억나지 않는 꼬꼬마 시절에는 손꼽아 기다렸을까. 12월 중순의 빨간 날의 의미는 그저 여느 빨간 날과 같은 의미였다. 해마다 그러하기에 더 설레지도, 더 바쁘지도 않은 하루지만 올해 만큼은 이 날이 어느 한 기점이 되다 보니 이 날이 빨리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스르르 손가락 사이로 흐르는 물처럼 흘러버렸지만 크리스마스의 하루는 누군가 맛있게 먹든 그 사이의 링을 통과하든 누구나 다 지나가 버린다.

오랜만에 읽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양 사나이의 크리스마스>는 하루키 특유의 위트와 이우일 일러스트레이터의 그림으로 컬래버레이션되어 만들어 졌다. 김영하 작가의 책 이후 비채에서 <하와이하다>와 함께 <양 사나이의 크리스마스>로 또다시 이우일 작가의 맛깔스러운 그림을 볼 수 있어서 반가웠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은 종종 다른 작가들과 컬래버레이션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들의 색채에 따라 다르게 느껴진다. 그의 글은 어딘가 모르게 아무렇지도 않은 듯 터덜터널 힘을 주지 않는 발걸음으로 발걸음을 내 딛게 만든다. 그러다 어느 순간 내가 어디를 통과하는지, 어느 길을 가고 있는지 길을 잃게 만든다. 

 "그것 보라고, 자네가 부주의하니까 이런 꼴을 당하는 걸세. 시원찮은 사람이구만. 하지만 도덧도 얻어먹었으니 이건 내가 가르쳐주지." 양 박사가 말했다. "잘 듣게, 12월 24일은 크리스마스 이브인 동시에 성 양 축제일이거든. 요컨대 성 양 어르신이 한밤중에 길을 가다가 구덩이에 떨어져 돌아가신 거룩한 날이란 말이지. 그러니까 그날은 구멍 뚫린 음식을 먹으면 안 된다는 게 옛날 옛적부터 '쭈욱' 내려오는 금기 사항이라고. 마카로니라든가, 지쿠와 라든가, 도넛이라든가, 오징어 튀김이라든가, 양파링, 뭐 그런거." - p.22~23

크리스마스에 한 번쯤 먹었을 뻔한 음식들의 세계에서 무라카미 하루키는 그의 세계를 더 확장시켜 나간다. 한움큼 베어 무는 도넛 속에서 양 사나이의 고노와 그의 세계와 세계 사이를 넘어가는 통로를 도넛으로 비유 하다니. 이제 도넛을 보면 하루키가 그린 양사나이가 떠오를 것만 같다. 마치 어제와 오늘 사이에는 달라진 것이 없는데 마치 도넛의 링을 통과하듯 다른 세계로의 진입은 또 다른 세계의 통로이자 그를 막다른 골목으로 데려가는 원더랜드는 아닌지도 모르겠다. 때때로 그 세계가 다르게 보일지라도 일 년의 하루 쯤은 그 세계에 발을 디뎌보는 것도 좋은 여행은 아닐런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