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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잘 지내고 있어요 - 밤삼킨별의 at corner
밤삼킨별 지음 / MY(흐름출판) / 2018년 11월
평점 :
담백한 감성의 메세지
잘 지내냐는 인사말에 담백한 대답을 내어 놓는다.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의 인사는 짧아진다. 짧은 안부를 물으면 더 이상 물을 것이 없어 긴 침묵이 흐른다. 시간으로도, 거리상으로도 더 이상 건넨 말이 없다는 건 너와 나 사이의 거리가 그만큼 더 멀어졌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겸연쩍은 모습들이 오가며 다음에 만나기로 약속하며 헤어진다. 그러나 친근하게 인사를 나눈 너와 나는 정말 다음에 만날 수 있을까. 친근하게 안부를 물었지만 우리가 함께 지내왔던 친근함이 묻었던 그 시간 속으로는 다시는 돌아갈 수 없겠지. 문득 잘 지내냐는 인사말이 주는 진정성 보다는 지나가는 바람처럼 듣고, 묻고 하는 일상적인 인사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잘 살고 있기에 너는 다시 만나고 있고, 그래서 잘 지내냐는 말이 무색하지만 어떤 안부인사 말을 하기에는 고민스러워서 꺼내든 카드가 아닐까 하는.
당신이라는 2인칭을 쓰는 글은 유독 마음이 와닿지 않았다. 책을 읽고 있는 '나'가 아닌 저 먼 어딘가에 있을 누군가를 지칭하는 말 같아서 그말을 쓰는 글을 볼 때면 나도 모르게 살갗에 소름이 돋아난다. 닭살스런 말 같기도 하고, 나와 어울리지 않는 말 같아서. 1995년에 창간된 잡지 'PAPER'에 글과 사진으로 젊은이들의 감성을 녹였던 밤삼킨별 김효정씨가 'PAPER'에 연재되었던 것을 재구성해 묶고, 그들에게 안부와 편지글이 담긴 책이 <난 잘 지내고 있어요>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이야기가 사진과 함께 담백하고 감성적인 글들이 담겨져 있다.
봄, 여름, 가을의 이야기가 끝이나면, 책을 반대로 돌려 겨울의 이야기를 읽어나간다. 추운 겨울날, 딱 요맘 때의 날씨와 잘 어울리는 책이다. 누군가의 편지를 읽어나가며 혼자 소리내어 읽어본다. 앞 뒤로 책을 뒤집어 읽을 수 있어 읽는 재미가 있었던 책이다. 섬세한 감성을 가진 사람이 아니어서 개인의 고운 감성적인 이야기를 읽고 나면 어딘가 모르게 나와는 동떨어진 이야기라 생각했는데 밤삼킨별의 작가는 이보다 더 고운입자의 이야기가 아닌 어른들의 시간을 이야기 한다. 지나간 시간들에 대한 의미와 무게에 관한 글이 가장 눈에 들어왔다. 가벼우면 잊어버리고, 무거우면 고통스럽다는 이야기. 그 문장에 고개를 끄덕이며 책장을 덮었다. 앞으로 누군가 나에게 안부를 물어온다면 지나가는 바람으로 이야기를 나누기 보다는 뜨거운 포옹으로 대답할 수 있는 시간이 오기를.
글의 감미로움 만큼이나 이 책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사진이다. 글을 읽지 않아도 사진으로 느껴지는 감성들이 있다. 글을 더해내지 않아도 느껴지는 편안함이, 그리움이, 쓸쓸함이 느껴진다. 반대로 이 사진을 보다가 더없이 추워지면 온기를 품은 글들을 읽어낸다. 추운 겨울 날 후~하고 불면 하얀 입김이 사르르 퍼지는 것 같은 안온한 느낌이 책 곳곳에 묻어난다.
누군가 마음이 춥고, 허기가진 날 따스한 카페에 앉아 커피 한 잔을 하면서 책을 넘겨봤으면 좋겠다. 털털한 누군가에게는 지나가는 바람이지만 마음이 허기가 진 누군가는 손을 대고 맞잡아 주지 않을가 하는 생각이 들었던 에세이였다. 에세이란 무릇 너무나 개인적인 것이어서 주파수가 맞지 않다면 아무리 좋은 책이라도 읽기가 힘들다는 생각을 하며. 달콤하고 쌉싸름한 초코릿을 꺼내 먹는 것처럼 그녀의 이야기가 주는 온기를 흠뻑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1월의 공항에 도착할 우리들을 향해
직항
경유
환승
편도
왕복
체류
지연
여행 용어인 듯하지만
일상을 말해주는 말들이기도 하다.
곧
2019년의 여행이 시작될 것이다.
'1월'이라는 공항에 도착할 우리들.
어디로 어떻게 가야 할지
서로 다른 비행기를 타고, 향하는 곳이 다르더라도
그래서 우리 외롭더라도, 외로움이라 하지 말자.
그저 나처럼 다른 이들도 이 한 해를
즐겁게 여행하라고 인사하자. - p.14
행복하지 않은 지금의 이유를 생각하기 시작하면 더 불행해진다.
행복은 지난 시간을 후회하지 않는 마음에서부터 시작된다.
시작은 망설임 없이 바로 지금이다. - p.79
모든 것은 무게를 갖고 있다.
다만 심장 위에 얹혀졌을 때
심장에 달린 저울 바늘이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무게까지 올라갈 수 있느냐에 따라
그것이 내 것이 될 수 있는가, 없는가에 대한 판단이 선다.
짓누르는 건 고통스럽고
가벼운 것은 존재감 없이 잊힌다.
그런 의미에서
사랑은
얹힌 순간, 그 한순간
내 심장 전체를 한 바퀴 휘감고
처음으로 돌아와
마치 운명의 무게처럼 받아들여진다.
진짜 사랑은 잊히지 않는다. - p.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