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번리의 앤 인디고 아름다운 고전 리커버북 시리즈 7
루시 M. 몽고메리 지음, 정지현 옮김, 김지혁 그림 / 인디고(글담)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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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에서 아가씨로.


 언제 어느 순간에 읽어도 친구처럼 다가오는 이야기가 있다. 루시 모드 몽고메리가 쓴 앤의 이야기는 언제 읽어도 늘, 앤이 쉴 새 없이 떠드는 소녀의 이미지로 다가오는 친구다. 오래된 고전 명작은 이미 이야기의 끝을 알고 있어도 재밌다고 말하듯 이미 앤의 모든 이야기를 알고 있어도 다시 새롭게 읽을 수 있는 책 중의 하나 인 것 같다. 누군가의 글에서 태어날 딸아이가 앤을 닮았으면 좋겠다며, 빨간머리 앤을 친구처럼 생각 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램의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나에게도 앤은 진 웹스터의 <키다리 아저씨>의 주디와 함께 사랑하는 캐릭터다. 언제 읽어도 늘 밝은 기운을 주는 이들의 이야기. 생명력이 강한 것은 물론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지 않고 자신의 캐릭터를 구축해 나가는 아이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빨간머리 앤 하면 당장 기차역 안에서 매슈 아저씨를 만나 아저씨의 마차를 타고 조잘조잘 떠드는 소녀가 떠오른다. 마치 귓가에 계속 라디오를 틀어 놓듯이 끊임없이 이야기를 하고, 나무에, 강가에, 모든 사물에 이름을 지어주는 소녀. 때때로 말썽을 부려 마릴라 아주머니의 속을 끓이던 여자애. <빨간머리 앤>의 이야기는 이런 말괄량이 소녀의 이야기를 담았다면, 이번에 읽은 <에이번리의 앤>은 그 소녀가 성장해 아가씨의 이야기가 담겨져 있다. 시끌벅적하고 활기찬 라디오는 어느새 장르를 변경해 클래식한 라디오가 되어 이야기를 끌어간다. 성장하고 성숙해진 앤은 조용한 마을에서 마릴라와 함께 살고 있으며 학생을 가르치는 선생님이 되었다. 한 번도 매를 들지 않고, 아이들에게 사랑을 주는 선생님으로 본분을 다하겠다는 앤.


매슈 아저씨와 마릴라 아주머니의 사랑을 받은 앤은 이전보다 차분한 아가씨로 성장했으나 성정은 변하지 않았는지 해리슨씨의 밭에 가서 말썽을 피우는 소 때문에 여러번 속을 태운다. 귀리 밭에 침입해 밭을 망쳐놓아 해리슨씨가 씩씩거리며 앤을 찾아 앤에게 '빨간머리 애송이'라며 분풀이를 하고, 앤 또한 그에게 맞서 싸운다.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는 약조를 받은 해리슨 씨는 돌아가고  이후 앤은 해리슨씨의 밭에 들어간 소를 보고 기겁한다. 소를 잡아 지나가는 상인에게 팔아버리고 돌아온 앤은 집에 자신의 소가 있음을 알게 된다. 자신이 팔던 소는 해리슨 씨의 소였다! 앤은 앞도 뒤도 보지 않고 소를 팔아버린 것을 자책하고, 케이크를 포장해 해리슨씨의 집을 찾게 된다. 해리슨씨에게 어떻게 말을 해야 할까 고민고민하면서. 다행히 이웃주민인 아저씨는 진솔하게 사건의 경위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앤을 보고 마음을 풀었고 소를 판 돈대신 앤의 손를 받아주기도 했다. 그 이후 해리슨씨와 앤은 친구가 되어 앤의 하소연을 잘 들어주는 이웃 중 한 명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담겨져 있다.


하나의 에피소드이지만 이 이야기를 읽고 한참을 웃었다. 앤이 변하지 않아서 다행이야, 라며 가슴을 쓸어 내리기도 했다. 시간이 지나 사람이 성장한다는 것은 어린시절과의 좋은 추억을 내려놓는다는 뜻도 된다. 자신이 가졌던 환경이나 친구, 풍경, 사람들과 오롯하게 안녕을 고하고 새로운 세상을 밟아가는 여정이 담겨져 있었다. <에이번리의 앤>의 이야기 속에서는 다정했던 모든 것과의 안녕을 고하는 앤의 이야기를 담았는데 그것이 새삼 아릿하게 느껴진다. 이제 다시는 그 어린 소녀를 못 보는 것 같은 기분. 어제 한 예능 프로를 보다가 앤의 이야기와 같은 느낌을 받았다. 나는 변하지 않은 것 같은데 시간은 어느새 쏜쌀같이 지나버렸고, 내가 알고 있던 아이는 성장해 모르는 사람으로 변모해 있고, 그것이 참 어색하고 아쉬움이 많이 남아 허전함으로 다가오는 것. 그것을 느끼고,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어른이라고. 누군가가 해 준 그 이야기가 오랫동안 머릿속에서 계속해서 맴돌았다.


앤의 활기와 말썽을 대신할 자리를 데이비가 맡아 성실히 수행하고 있고, 빨간머리라고 놀리며 앤을 화나게 했던 길버트는 다이애나와 함께 앤의 가장 친한 친구로서 자리를 함께하고 있다. 대학에 진학 하느냐, 마느냐의 사이에서 고민하는 앤은 눈이 나빠진 마를린 아주머니를 위해 만류하지만 앤을 걱정시키지 않기 위해 다른 이들과 함께 살기로 한다. 길버트와 함께 다음 행보를 위해 떠나는 앤. 책의 말미에 길버트는 앤의 모습을 보고 새삼스럽게 앤의 모습을 보고 반하게 되면서 다음 이야기에 대한 기대감을 더 짙게 만든다. 지나온 시간을 넘기고, 누군가는 결혼을 하고 누군가는 평생을 함께 할 사람을 만나 사랑을 하는 시간들. 그 시간 속에서의 앤은 행복과 상실의 감정을 겪는다. 이제는 더 이상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없는 아쉬움을 느끼며 삶의 한페이지를 넘겨야 할 시점을 알게되는 과정을 앤은 몸과 마음으로 겪어내는 이야기이다 보니 절로 감정이입이 되어 버렸다. 그래서 더 아릿하고 슬픈 이야기로 느껴지기도 했다. 어떤 사건이나 이야기가 아닌 감정이 절로 느껴지는 시간의 이야기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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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은 그림자 같아서 우리에 가둬 놓을 수 없지. 춤추듯 움직여서 다루기가 힘드니까. 하지만 계속 노력한다면 비결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몰라. - p.91


앤이 눈을 깜빡거리며 눈물을 떨어뜨렸다.

"아, 너무 아름다워서 그래. 동화 같고 너무도 낭만적이고 슬픈 이야기라서. 완벽하게 아름다운 이야기지만 약간 슬프기도 해." 네번째 샬로타도 인정했다. "물론 누구한테나 결혼은 위험한 일이에요. 하지만요, 아가씨, 살다 보면 남편보다 나쁜 것들도 많아요." - p. 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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펭귄 하이웨이
모리미 토미히코 지음, 서혜영 옮김 / 작가정신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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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시작과 끝


 책을 볼 때 제일 먼저 보게 되는 것이 표지인데 이 책은 단번에 표지 때문에 반했다. 푸르른 하늘에 똘망한 소년 한 명과 펭귄이 서 있는 표지가 어찌나 눈에 사로잡히던지. 한참을 눈에 담고서야 책의 저자가 누구인지 살펴보았다. <밤이 짧아 걸어 아가씨야>(2008, 작가정신)로 유명한 모리미 도미히코의 작품으로 2011년에 작가정신에서 출간되었던 것을 올해 10월 애니메이션이 개봉되면서 책도 애니메이면 표지로 바뀌게 되었다. 개인적으로는 바뀐 표지가 훨씬 더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펭귄 하이웨이>는 초등학교 4학년 소년인 아오야마의 시선으로 그려진다. 당돌하면서도 똘망한 소년의 이야기는 진지한 과학자 같은 면모를 느끼게 하고, 때로는 그 나이의 아이와 같이 아이의 순수함이 느껴지기도 했다. 아기자기한 교외의 한적한 마을에 어느날 갑자기 펭귄의 무리가 어마어마한 떼로 출현하더니 갑작스럽게 사라져 버리는 사건이 발생한다. 아오야마는 치과누나와 함께 친구인 스즈키, 우치다와의 힘겨루기 혹은 치기어린 장난을 하면서도 아버지께 배운 노트정리법에 따라 차근차근 이 거대한 수수께끼를 풀어나간다.


4학년 남자아이의 조숙함인지 아니면 자연적인 현상인지 모르지만 아오야마는 치과 누나의 가슴이 이상하게도 눈에 들어온다. 누나의 모습을 보든 사물을 보든 둥그런 것이 보이면 누나의 가슴을 대입하기도 하고, 펭귄이 만들어지는 순간과 사라지는 순간, 치과 누나가 만들어내는 생물들을 발견하게 된다. 도무지 현실 속에서는 상상 할 수 없는 판타지의 세계가 모리미 도미히코의 소설 속에서 펼쳐지고 있다. 우산에서 망고가 열리기도 하고 흰긴수염고래가 수로에서 헤엄치고, 바다가 작아졌다가, 넓어졌다 하는 사태도 벌어진다.


상상 속에서 일어난 일이 실제로 한 소년의 세계 속에서 일어난다. 아이는 그런 세계 속에서 당돌하게 노트에 모든 것을 기록하고, 살피며 그 세계 속으로 녹아든다. 풋풋한 마음과 호기심의 세계에서 소년은 자연스레 그 세계 속으로 발을 디디고 있고, 현명하게 모르는 세계 속의 이야기를 세밀하게 살피고 있다. 거부감이 없는 묘사와 아이의 시선으로 보여지는 이야기가 만화를 읽듯 상큼하게 느껴진다. 자칫 가볍게 느껴질 수 있는 이야기가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게 하고, 때때로 당돌한 소년의 호기심과 대찬 포부에 싱긋 미소를 짓게 만든다.


모든 세계에서 시작이 있으면 끝도 있는 법. 소년이 사랑하는 치과 누나의 비밀을 알게 되고 소년은 동경과 호기심, 설렘을 동시에 안으면서도 시간이 지나 다시 내어준다. 기발한 상상력과 만화적인 상상력이 주는 쾌감이 느껴지는 작품이었다. 애니메이션은 호불호가 많이 갈린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책은 기대이상으로 재밌게 읽은 작품이다. 동생을 보호하면서도 든든한 오빠의 면모와 4학년 특유의 허세와 침착함, 이성을 보는 설레임 그리고 안녕을 고하는 담백함까지 더해지는 책이었다.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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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은 회전목마처럼
오카자키 다쿠마 지음, 한수진 옮김 / ㈜소미미디어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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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날 수 없는 너와 나의 이야기


 오카자키 다쿠마의 <계절은 회전목마처럼>은 서정적이면서도 어딘가 향수를 불러일으킬만한 이야기가 담겨져 있을 것 같다. 깊어가는 가을에 읽으면 좋은 책이구나 싶어 펼쳐든 책이었으나 읽어보니 회전목마에는 나 혼자 타고 있는 기분이 든다. 좋아하는 감정이 풋풋하게 새겨든다거나 상대방의 등만을 바라보면서도 한없이 애틋한 감정이 느껴지기 보다는 어딘가 '의심'하는 분위기가 싸하게 느껴지는 소설이다. 인간에게 있어서 '의심'은 양가의 감정이지만 좋은 감정이 깃들어 있기 보다는 하나의 의심은 곧 상대방을 바라보며 자꾸만 무엇을 캐내려하고, 재단해서 바라보게 만든다. 그 속에서 사랑의 감정이 솟아난다면, 나는 그것이 100% 사랑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입학식 날 이야기를 나눈 다음부터 나와 후유코는 주로 기묘한 사건들의 계기를 알아내고 절차를 맞게 해명하려고 노력하면서 점점 친해졌다. 그 행위는 우리 둘 사이에서는 어느새 '계절'이란 줄임말로 불리게 되었다. 한자로 표기하자면 계기(契機)와 절차(節次)를 합쳐 '계절(契節)'인데, 이것은 물론 우리 두 사람의 이름에 공통으로 사용된 요소인 '계절(季節)'과도 발음이 똑같았다. 우리는 이 계절이란 단어를 우리 마음대로 쓰기로 했다. 진실을 해명하는 행위를 '계절한다'고 표현하기도 하고, 그 과정에서 우리 둘이 저마다 세우는 가설을 '계절'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야말로 우리끼리 만들어낸 신조어였다. - p.25


책은 연애 미스터리를 표방하고 있지만 미스터리 속 사랑이야기는 내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다른 방향으로 이야기가 흐르고 있다. 계절과 계절의 의미. 의미를 부여한 그들의 관계는 절친에 가깝지만 일정 이상으로 두 사람이 쳐놓은 선을 넘기지 않고 있다. 어쩌면 둘다 비슷한 인물일 수도 있고, 누군가 적극적이지 않아 둘다 평행선을 걷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후유코가 남자친구에 관한 이야기를 하다가 나츠키는 이내 후유코의 남자친구의 행적에 관해 이상한 기분이 든다. 후유코의 이야기를 토대로 이야기의 조각을 맞추다 보니 이내 그가 여자친구인 후유코에게 말하지 않았던 비밀을 알게 된다. 나츠키는 친구에게 이런 이야기를 말하고 이내 두 사람은 헤어진다.

 

살아 있는 한 인간은 무수한 빛을 목격하게 된다. 그중 대부분은 눈을 떼면 기억에조차 남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사진을 찍어 그것을 기억하려고 애쓰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식으로 간신히 사라지지 않고 남은 빛도, 결국 풍경의 아주 작은 일부분에 불과하다. 그런데 반대로 결코 풍경 속에 녹아들지 않고 계속해서 한층 더 밝은 빛을 내뿜는 달과 같은 존재와 마주치는 경우도 있다. 이쪽에서 그렇게 보일 때, 저쪽에서도 똑같이 그렇게 보인다면. 그것은 한낱 소망에 지나지 않는다. 뭘 어떻게 해도 절대로 밝지지 않는 빛이 존재한다는 사실. 그것을 잊었을 때 인간은 미쳐버린다. - p.75


두 사람의 일상 속에서 일어난 일을 그들이 부르는 '계절한다'를 통해 눈치채지 못했던 일들을 밝혀낸다. 진실은 때때로 서로를 기쁘게 해주기도 하지만, 잔혹한 진실을 품고 있다. 후유코는 자신이 있던 곳에서 전근을 가게되고 그렇게 서로의 시간을 흘러 계절을 바꿔 나간다. 그 시간 속에서도 후유코와 나츠키의 관계는 그 누구도 앞장 서서 나아가지 않는다. 그저 멀리서 지켜보던 나츠키의 마음만 짐작 할 뿐이다. 상대방이 뒤를 돌아보지 않으면 절대 알아낸 수 없는 마음으로 나츠키는 그렇게 후유코의 뒷모습만을 바라보고 있다.


연애감정이란 그런 논리적인 것이 아니야. 길을 걷다가 우연히 소나기를 만나는 바람에 흠뻑 젖은 티셔츠가 몸에 달라붙어서 잘 벗겨지지 않는 경우가 있잖아. 그것과 마찬가지야. 어느새 정신을 차려보면 저절로 나에게 달라붙어서 떨어지지 않게 되어 있는 것이 사랑이라고. 이루어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도 사랑을 포기하지 못하는 거야. - p.111


이야기는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다. 책을 읽는 내내 이질적으로 느꼈던 감정선이 여전히 주효했고, 이야기의 중심축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이야기는 두 사람의 관계에서 돌직구로 날아온다. 탐정처럼 파고들던 논리적으로 풀어내던 '계절'을 나츠키가 연신 풀어냈지만 후유코 역시 만만치 않게 그가 말하지 않았던 무언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결국 두 사람 다 회전목마를 타지 않았고, 둘다 탔더라도 그 간격은 좁혀지지 않는 관계였음을 작가는 스산하게 알려준다. 어쩐지 책 속의 이야기는 하나의 달콥쌉싸름한 이야기 보다는 쌉싸름만 맛만 보여주는 이야기였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고장난 회전목마를 바라보고 있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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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손톱과 밤
마치다 나오코 지음, 장선정 옮김 / 비채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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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들의 특별한 밤


"슬슬 때가 된 건지도 몰라."


이야기가 짧아도 한방에 훅 치고 들어오는 이야기가 있는가 하면, 두터운 두께의 페이지를 모두 소진해야만 비로소 느낄 수 있는 책이 있다. 마치다 나오코의 <고양이 손톱과 밤>은 전자의 이야기다.  짧은 이야기임에도 한방에 훅 치고 들어오더니 머릿속에서 나갈지 모른다. 표지 만큼이나 강렬한 이야기가 사로잡고 있으며, 처음부터 끝까지 고양이의 매력에 푹 빠져 어디론가 데려갈 이야기 속으로 속수무책으로 끌려 들어간다.


어딘가 모르게 도도하고, 날큼한 눈과 언제 어퍼컷을 날릴지 모르는 날렵함을 가진 앞발을 혀로 핥고 있다. 늦은 밤 옥탑의 창문을 통해 밤 마실을 나서는 고양이들. 마치 야합이라도 하는 듯, 약속을 정하고 발길을 옮기는 것처럼 삼삼오오 집고양이, 길고양이등 고양이란 고양이는 다 모이는 듯 하다. 무엇이 고양이들을 불러모으는지 궁금해 나도 모르게 그들의 뒤를 뒤쫓아 따라갔다. 수 많은 고양이가 무엇이 나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뭐지? 뭐가 있는거지? 눈을 동그랗게 뜨며, 고양이들을 관찰하지만 고양이는 무엇이 나오기만을 고대하고 있다가 나온 그것을 보며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눈을 크게 벌리고, 앞발을 세우며 마치 그것에 올라타는 듯 쳐다보고 있다.


고양이만의 특성과 밤하늘에 떠 있는 변덕스런 그것이 만나는 조화는 그 어떤 이야기보다 신비롭다. 밤하늘에 떠있는 것은 뭐든지 좋아해 여러번 별과 달을 봤지만 마치다 나오코가 표현한 달의 이야기는 상상 이상이다. 짧은 이야기가 아쉬울 정도로 매력적이어서 자꾸만 책을 쓰다듬으며, 구간반복으로 그들의 이야기를 읽고 있다. 언제부턴가 고양이를 좋아하게 되면서 그들의 눈빛과 몸짓, 그들의 언어를 들으려 노력하고 있다보니 마치다 나오코의 <고양이 손톱과 밤>은 어린 아이들이 보는 동화책 이상으로 고양이와 달에 상상력을 품게 만든다. 아마도 나는 이 짧은 이야기가 좋아 그 이상의 이야기를 덧붙일지도 모르겠다. 이제부터는 늦은 밤, 고양이와 길에서 마주친다면 고양이들이 그토록 기다린 밤을 함께 기다리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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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되었습니다만,
요시타케 신스케 지음, 고향옥 옮김 / 온다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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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육아일기


 요시타케 신스케의 <있으려나 서점>(2018,온다)을 읽고 나서 단번에 반해 초초신간인 <아빠가 되었습니다만,>을 읽게 되었다. 이전의 책만큼이나 그의 육아기에도 발랄하고 신선한 무엇이 있을까, 하는 호기심이 일었다. 결과적으로 천재작가라고 불리는 그도 초보 아빠의 틀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여자이다 보니 주변에서 곁다리로 드는 이야기들 대부분이 엄마의 독박육아였다. 아무리 아빠가 많이 도와준다고 해도 일부분이라 엄마가 겪는 고충이 얼마나 극한으로 힘든지 실감하게 되는 반면 아빠의 변(辯)은 들어본 적이 없어 무엇이든 그림이나 글로 표현하는 작가들의 이야기를 들어볼 수 밖에 없다. 한쪽의 이야기가 맞더라도 '아빠'라는 이름이 낯설게 느껴지는 그들의 이야기는 또 다를 것이다.

처음으로 아빠가 되고 엄마가 되는 부모의 육아일기는 그야말로 전쟁터가 따로 없다. 남녀가 만나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한 후에 아이를 갖게 되지만 두 사람이 느끼는 체감의 온도는 틀리다. 엄마는 10달 동안 아이를 품어 안으면서 엄마로서 자각하게 되는 시간들이 많지만 생물학적으로 남자는 그럴 수 없기에 아빠라는 이름이 어색하기만 하다. 스스로 성찰하지 않으면 제 3자의 입장에서 볼 수 밖에 없다. 엄마와 아이가 한 몸이라면, 아빠는 그저 지켜보고 있을 수 밖에 없어 아이를 품어 낸다는 것을 몸으로 자각할 수 없지만 나의 아이라는 테두리 속에서 초보 아빠는 아이에게 다가가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아이에게도 초보 아빠에게도 처음으로 겪는 일이니 서로 낯설 수 밖에. 두 사람의 공간이 어느새 세 사람(네 사람)의 공감이 되면서 엄마와 아빠는 누구누구의 엄마 아빠로 조금씩 성장한다. 누군가는 이르게 성장하는 이가 있고, 누군가는 원하면서도 아이 때문에 겪는 상황들이 자신을 갉아 먹는다고 생각한다. 확실히 육아에 있어서는 엄마의 차지가 되고 말지만, 요즘에는 육아에 대한 시선 또한 엄마의 독박육아가 아니라 함께 하는 육아로 바뀌고 있다는 사실이 기쁠 뿐이다.

<아빠가 되었습니다만,>은 아빠의 시선으로 엄마와 아이, 아이와 나의 시선으로 바라본다. 엄마와 아이가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지만 그곳에는 아빠가 담겨있지 않았다. 조금 더 시선을 넓혀보면 아빠는 멀뚱멀뚱 두 사람을 지켜볼 뿐이다. 작가는 그런 점에서 아이에게나 아내에게나 중심축이 자신에게 없음을 그림으로 표현하고 있다. 언젠나 우리의 시선은 엄마와 아이에게 쏟아져 있지만 아빠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육아일기는 또다른 이야기를 선사하고 있다. 함께하고 싶지만 함께 할 수 없는 수줍음과 이질적인 느낌. 관심조차 주지 않는 아빠의 일상이 때로 고달프기도 하고 안쓰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럼에도 그의 육아일기는 우리가 보지 못한 부분을 기발하게 그려내지 않아도 아이로 인해 겪는 희노애락이 그려져 있다. 자그마한 온기로 인해 겪는 이야기를 통해 아빠가 되는 과정을 그는 아쉽지만 조금은 쓸쓸하고 소외된 감정을 표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남자에서 아빠로 되는 과정의 이야기를 찬찬히 느낄 수 있었던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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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아기 스승


세상은 생각대로 굴러가지 않지.

그러니 스스로 머리를 써서

어떻게든 즐기지 않으면

괴로운 일뿐이라네.

그걸 나를 돌보면서 배워 보게나.

그런고로,

즉각

응가를 했소.

부탁해요-. - p.92~93


42. 육아에 대한 보수


1. 아이 때문에 진심으로 짜증 나는 일이 많은 매일.

2. 그러나 소파 같은 데서 잠들어 버린 아이를 안으면,

3. 잠결에도 반자동적으로 목을 끌어안는 아이의 팔.

4. 이 보상으로 낮 동안의 노고가 얼마간 상쇄된다.

비지니스 세계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이상한 거래다. -p.94~95


4. 육아에서 가장 무서운 건 돈도 사회 구조적인 문제도 아닌 '고마움'의 결여다. - p.101



1. 육아에서 '아버지'라는 존재는 딱히 설명할 수 없는 보조자, 곁다리 같은 느낌,

2. 왠지 모르게 항상 보상받지 못하는 그 느낌은 뭘까.


52. 곁다리 같은...


3. 아빠가 된다는 건, 아빠가 아니고는 알지 못하는 특유의 '행복해서 더 외로움'을 안고 사는 것인지도 모른다.

4. 더구나 너나없이 수줍음이 많은 아빠들은 서로 그 외로움을 공감해 주는 기술도 터득하지 못하고 있다. - p.116~117

 

55. 아장아장 초보 아빠 


1. '아빠로서의 완성'이란 게 있을까?

2. 생각해보면 앞으로도 계속 처음 당하는 일뿐일 테니, 늘 당혹감과 더불어 살게 될 것이다.

3. 아빠로서는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언제까지나 아장아장 걸음마일 것이다.

4. 아장아장 걸어야만 보이는 것, 그걸 즐기는 게 어른이고 아빠이리라. - p.12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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