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을 걷는 문장들 - 불면의 시간, 불안한 상념으로부터 나를 지켜내기 위하여
한귀은 지음 / 웨일북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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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하고 진득한 시간들 속에서


 베개에 머리가 닿았다 하면 미처 10을 세지 못하고 잠이 들어 '불면'이라는 단어 자체를 모르고 살았을 때가 있었다. 남의 일인줄 알았던 불면의 시간들이 나에게도 찾아왔을 때 고요하고 깊은 밤 나는 생각 대신 상념을 잊어줄 책들을 찾아 읽곤 했다. 깊은 밤 스탠드 불 하나만을 켜고 방에 누워 홀로 책을 읽노라면 그 시간만큼은 불안하고, 길고 긴 이야기의 늪으로 빠지는 것을 건져주는 것 같았다. 언젠가부터는 책 대신 손에 핸드폰을 들고 웹소설을 보는 재미에 빠져 지내지만, 책을 한 장 한 장 넘기며 이야기에 빠져 드는 시간이 더 좋았다.


제목 때문에 책에 눈길이 갔고, 이 근사한 책 속에 어떤 문장들이 숨어 있을까 궁금했다. 동시에 만듦새도 예뻐 책의 대한 기대가 한껏 높았던 책이었다. 시처럼 짧은 문장들이 나, 타인, 사랑, 세상이라는 주제로 나뉘어 이야기를 건넨다. 밤이란 때때로 나의 성향과는 다르게 센치해지는 시간이어서 더 감성이 돋기도 하고, 감정이 오르락 내리락 하며 물결을 그리기도 한다. 느낌표가 많은 글에 대해서는 좋아하지 않지만 한귀은 작가의 <밤을 걷는 문장들>은 뒤척이는 밤, 머릿속에 솟아나는 상념들을 묶어 놓은 일기같다. 한 손에 들어갈 작은 책이기도 한 <밤을 걷는 문장들>은 머릿속에 들이 찼다가 다시 쓸려 버리는 시간 속에서 문장들을 건져내듯 삶의 쓴맛과 단맛이 느껴진다.


이 문장은 삶의 모토가 되었으면 하고 기억 해놔야지 했다가 허공으로 사라지기도 하고, 가벼운 느낌으로 느꼈던 문장이 묵직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요즘은 몸이 피곤한 나날들이어서 그런지 불면의 시간을 넘어 예전으로 돌아간듯 잘 자기 때문인지 그녀의 문장이 선뜻 다가오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 지독한 문장들이 언젠가 불면의 시간으로 돌아가게 된다면 다시 읽어보고 싶은 문장이기도 했다. 불면의 시간은 때때로 좋기도 하고 너무나 지독한 것이기도 해서 때로는 밤과 아침의 기나긴 시간을 버티기가 힘겨울 때도 있었다. 새벽의 시간이 가까스로 조금 나마 있을 때야 비로소 다른 문을 열고 들어갈 수 있었다.

관계는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가


처음 만난 이와의 대화로 '나'를 알게 될 때가 있다.

내가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어떤 사람에게 호감을 느끼는지,

어떤 대화법을 선호하는지,

그래서 어떤 사람을 만나고 싶어 하는지,

그 사람 때문에 알게 된다.


상대에게 맞춰주려고 하지 말고

대화를 주도하려고도 하지 말고

그 상황을 독해하면서,

서두르지 않고 차근차근

내가 할 수 있는 말을 건네다 보면, 어느 순간

그 사람과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해야 할지

환히 보이는 순간에 다다르는 것이다. -p.55


공감이 갔던 글이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는 어렵고, 처음 만난 이와의 대화는 늘 어색하다. 어색하기 위해 먼저 말을 건네지만 이 마저도 잠깐의 바람일 뿐, 깊은 대화를 나누기 어렵다. 대화를 하면 할 수록 내가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 나의 가치관이 어떤 것인지를 알 수 있어서 그 사람과의 시간이 나쁘지 않았다. 나의 인생에서, 당신의 인생에서 결코 더해지지 않는 관계였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런 색깔이 명확히 드러난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되는 시간이었다.


누군가를 지켜주기 위해서는

고정되어 있어서는 안 된다.

한 자리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된다.

상황이 바뀌기 때문이다.

내게 의지했던 그 사람조차도 변화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서는

모든 것이 변한다는 것을 알고

유연해져야 한다.

사랑도, 사람도,

변해야 지킬 수 있다. - p.77


 변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 어린 날의 나는, 지금도 한편으로는 민들레 같은 사람을 좋아한다. 그럼에도 변화에 민감하고, 유연한 사고를 가지고 있는 사람을 사랑하게 되었다. 하나에 얽매이기 보다는 시아를 더 넓게, 높게 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깨닫게 되는 시점들이 있다. 그런 시간들 사이에서 나는 어떤 시간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지를 깊이 생각하게 해주는 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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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렁?가출하시던 날이겠지요, 아가씨."

해원의 눈동자가 커졌다. 심장이 쿵 소리를 내는 것 같았다. 뭐지. 이 묘한 느낌은. 그녀는 그의 미소를 아지랑이처럼 바라보았다. 어쩌면 그는 내가 알고 있던 것보다 더 많이. 내 인생의 어떤 페이지에 등장했는지 몰라렁? 마치 한밤에 푸는 두근거리는 수수께끼 같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 p.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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닿음 Touch
양세은(Zipcy) 지음 / arte(아르테)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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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들의 따스한 온기가 느껴지는 책


연인의 일상을 은밀하게 그려낸 양세은 작가의 <닿음>은 순정만화를 보는 듯한 착각을 느낀 책이다. 어렸을 때 한창 즐겨 읽던 만화처럼 남자와 여자의 사랑스러움과 그들이 서로 살을 맞대고, 함께 온기를 품어가는 과정을 그려냈다. 누군가에게는 보이고 싶지 않는 모습을 보는 것처럼 그들이 서로 온기를 품어내는 과정은 살짝 야하기도 하고, 연인이 아니면 할 수 없는 몸짓의 언어들이 들어가 있었다. 추운 겨울 날 옆구리가 시릴 정도로 그들의 뜨거운 온기와 은밀하게 건네지는 눈빛과 손길들이 자극적으로 느껴지는 책이기도 했다.


글이 많은 책은 아니지만 그림 속에서 보여지는 그들의 눈빛과 자그마한 행동들이 서로의 연애의 온도를 측정해주는 것 같다. 때로는 설레이게, 때로는 뜨겁게, 때로는 작은 손길 하나까지도 위로가 되어준다. 때때로 그것이 잠시 지나가는 바람일 수 있으나 <닿음>에서는 현재 연인이 아니면 할 수 없는 것들이 살포시 오가고 있다. 그래서 더 자극적이었지만 보는 이로 하여금 연애를 하고 싶다는 충동을 느끼게 만든다.


연인들의 표정, 버릇, 애꿎은 장난, 웃음, 위로, 몸의 표현들이 세밀하게 묻어나 있다. 연인이 함께 책을 본다면 함께 해보고 싶은 포즈들과 그들의 마음이 서로 묻어나 있다. 서로를 어루만지는 장면들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그림은 한 사람이 쇼파에 앉고, 한 사람이 기대듯 누워 있는 장면이었다. 한 방향을 바라보면서도 서로의 온기를 느낄 수 있는 장면이라 가장 눈길을 사로 잡았던 그림이었다. 책의 말미에는 양세은 작가가 어떻게 일러스트 작업을 하는지 과정에 대해 수록해 놓아 작품이 어떻게 탄생되었는지를 알 수 있다. 하나하나 그림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신기하게 느껴졌다. 책을 읽기 전 그녀의 인스타그램에서 처음 그녀의 그림을 보았을 때 참 예쁘게 그림을 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 책을 받아들고 보니 컴퓨터에서 본 것 만큼이나 더 인물이 살아있다.


요즘은 웹툰이 발달되다 보니 예전만큼 펜화로 그린 만화를 보기 어려운데 <닿음>에서는 컴퓨터로 작업을 했어도 펜으로 그린 것 같은 느낌이 많이 들어 더 반가웠다. 우리나라 독자 뿐 아니라 미국, 프랑스, 스페인등 해외 언론에서 조명하고 있는 작가라 그런지 그림과 함께 설명된 짧은 문구 뒤에 영어 번역이 함께 되어 있는 것이 이 책의 장점 중 하나다. 누군가의 온기가 필요할 때, 가장 사랑하는 사람의 온기가 가장 따스하다는 것을 책을 통해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색감이나 선 하나하나가 마음에 들었던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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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회화 - 오늘 만나는 우리 옛 그림
윤철규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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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모르는 옛그림의 세계


 명화가 우리의 삶 속에 깊숙하게 들어온 반면 우리는 우리의 그림을 너무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 간송미술관에 다녀온 적이 있었다. 마침 분기별로 문을 활짝 여는 시기이기도 했고, 당시 모 드라마의 영향으로 성북동에는 꽤나 많은 사람들이 줄지어 서서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곤 했다. 나도 그림은 모르지만 자주 문을 개방하는 미술관이 아니기에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살펴보았던 기억이 난다. 친숙하고, 익숙하고, 하려한 색감의 명화가 더 눈에 익지만, 처음 관심을 지속적으로 들인 결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주 유명한 그림이지만, 화가의 이름도 작품명도 몰랐던 시기가 있었기에 이것만큼은 알아보자 싶어 공부한 것이 지금의 시간까지 왔지만 상대적으로 우리의 그림은 처음 명화를 본 것처럼 여전히 낯설고 어렵게 느껴진다.


친숙한 이들의 화가들도 많이 보이지만 그들이 그린 화풍과 의미에 대해서는 아직도 깊은 맛을 느끼며 작품을 감상하기에는 깜냥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자주 보고, 읽고, 느낀다면 우리도 우리의 미술을 좀 더 넓고, 깊게 볼 수 있을까 하는 마음으로 책을 들여다 보기 시작했다. <조선 시대 회화>는 그런 면에서 조선의 역사 만큼이나 조선 시대의 미술을 이해 할 수 있도록 다각도로 틀어보며 시대의 특징적인 회화의 기록들을 구성했다.


강세황, 안견 등 익숙한 이름들과 낯선 화가들의 이야기. 그들의 화풍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멋스러운 전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그 중에서도 가장 마음에 들었던 그림은 목계의 '연사만종도'였다. 연사만종이란 안개에 감싸인 산사에서 종소리가 들려오는 저녁 풍경을 뜻하는데 보일듯 보이지 않는 그림이 신비감을 더해준다. 이 그림은 남송 13세기에 그려진 것으로 일본 하타케이야마기념관에 소장되어 있다고 되어 있다. 서양화에 비해 우리의 그림에는 색감이 많이 드러나지 않지만 세필 붓으로 그린 것 같은 점 하나, 선 하나 하나가 주는 섬세함이 그림 곳곳에 묻어난다. 여백의 미를 가장 잘 드러난 작품들이어서 볼 때마다 담백하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교과서에서도 책에서도 익숙한 안견의 그림도 좋았지만 알려지지 않는 화가의 그림을 보는 것이 더 좋았다. 익숙한 그림 보다는 익숙하지 않는 느낌의 작품을 보는 느낌은 또다른 시대의 이야기만큼이나 짜릿했다. 500년 조선 미술사의 연표를 훑어 나가듯 중요한 선들만 짚어 나가는 이야기가 간결하면서도 시대의 맥을 알아가는 데 있어 꼭 필요한 이야기였다. 그들의 명맥을 이어나가는 뿌리들이 서로 영향을 받기도 하고, 다른 뿌리를 양산하는데 있어 시발점이 되기도 했다. 조선 시대 회화는 중국의 영향을 많이 받다보니 그들의 유교사상이 회화 전반에 큰 영향을 주었다. 조선 시대 회화의 장단점이 두루 느껴지는 책이어서 읽는 내내 이런 관점으로 작품을 들여다보면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던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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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로 보는 단테의 신곡 명화로 보는 시리즈
단테 알리기에리 지음, 이선종 엮음 / 미래타임즈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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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함께 읽는 단테의 신곡


단테의 <신곡>은 너무 유명하지만 읽을 엄두를 내지 못하는 책이었다. 몇 년 전 민음사에서 국립극장과 콜라보로 연극 '단테의 신곡'을 올리면서 관련 강의를 했었다. 지옥편, 연옥편, 천국편 이렇게 총 3회에 걸쳐 교수들의 강연과 배우들의 낭독이 함께 어우러진 자리였다. 엄두가 나지 않는 책이었지만 늦은 밤 함께 들었던 강의 내용은 알차게 준비가 되어 듣고 보는 내내 흥미로웠다. 시간이 지나 꼭 읽어보리라 결심했지만 아직까지도 기독교적 정수가 담긴 이 이야기를 담을 그릇이 안되어 여전히 똑같은 자리에 맴돌고 있다. 그때 단테의 신곡을 전공한 교수들의 많은 강의 내용 중에서 책에서 담고자 하는 내용과 더불어 <신곡>에서 보여주는 그림들을 함께 설명해 주었는데, 이 책은 그때의 시간을 다시 돌이켜 볼 수 있어서 좋았다.


등장하는 인물들, 동물로 매개되는 의미들을 설명해주고 있는 책이다. 그럼에도 쉬운 책은 아니었지만 보지 못했던 명화들을 통해 당시의 신앙과 윤리, 정치적인 상황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소설이라면 아무런 경계없이 읽는 편이지만 유독 종교에 관련 책은 피하는 편이다. 그럼에도 단테의 <신곡>은 꼭 읽어보고 싶은 책이다. 원문의 매력을 알지 못하는 이들에게는 <명화로 보는 단테의 신곡>을 먼저 읽고 지옥편, 연옥편, 천국편의 원문을 읽으면 좋을 것 같다. 열린책들의 <신곡>을 번역한 김운찬 교수가 <신곡>을 하나하나 뜯어보면서 그 매력을 설명해주었을 때 내가 생각했던 <신곡>의 이미지 보다 더 깊은 이야기가 담긴 책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만큼 매력적인 책이긴 한데 워낙 <신곡>이 갖고 있는 세계관과 우주관, 철학, 신학, 신비주의 사랑, 구원등 폭넓은 주제가 장점인 동시에 장벽이 되는 책이었다.


장면 하나하나를 그림에 넣고, 해설을 해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조금 더 편집과 디자인을 섬세하게 해 놓았더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단테의 <신곡>은 많은 이들의 모티브가 되는 책이고, 무엇보다 인간에 대해 더 고찰 할 수 있는 작품이다. 그가 그려놓은 세계의 이야기는 우리가 본질적으로 무엇을 더 깊이 이해해야 하는지 중요한 메세지 중 하나다. 시간이 지나도 변함없이 단테가 그린 <신곡>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우리가 갖는 가치관과 과거와 미래의 이야기를 더 깊이, 견고하게 느끼고자 하는 책이 아닌가 싶다.


<신곡>이 알아야 그 재미와 의미를 더 깊이 이해 할 수 있는 것처럼 <명화로 보는 단테의 신곡>도 기본 지식이 먼저 우선이 되는 책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책 곳곳에 많은 명화들을 바라볼 수 있어 좋았다. 섬세하게 그림과 글이 주는 의미를 모두 다 되새기지는 못했지만 책이 갖고 있는 스펙트럼의 깊이를 다시금 깨달았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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