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주의 트렌드로 읽는 세계사 - 빅뱅부터 2030년까지 스토리와 그래픽으로 만나는 인류의 역사
김민주 지음 / 김영사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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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을 통해 만나보는 다양한 관점의 세계사


 역사와 세계사를 좋아한다. 처음 배웠던 순간들이 좋아 아직도 고등학교 때 배웠던 교과서를 가지고 있다. 국사책은 모르지만 세계사는 선택과목 중 하나였고, 빨간펜으로 깨알같이 필기했던 것이 아까워 책장 한켠에 넣어 두었다. 언젠가 다시 보겠지하며. 지금보면 내가 배웠던 교과서는 평면적이다. 입체적으로 바라보기에는 교과서에 너무나 색이 없었고, 사진이나 도표 역시 섬세하지 못했다. 다시 보겠지, 라고 생각해서 갖고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 교과서 보다 더 사진이 풍부하고, 지난시간 배웠던 역사적 이야기는 점점 다양한 관점의 해석으로 이야기는 바뀌어갔다. 우리나라 역사 뿐만 아니라 세계의 역사도 마찬가지로 우리가 알고 있던 역사적 진실이나 인물은 시간이 지나면서 인물의 뛰어난 업적이나 과소평가되었거나 혹은 과대평가된 인물들을 가리면서 역사의 시간들을 되짚어 보고 있다.


<김민주의 트렌드로 읽는 세계사> 이전에 보지 못했던 빅뱅부터 2030년까지의 이야기를 보다 트렌디하고, 그래픽으로 알기 쉽게 그림을 통해 만나 볼 수 있는 책이다. 다채로운 색채감을 통해 보다 지도와 도표, 그림이 어우러져 있어서 읽는 즐거움과 보는 즐거움을 준다. 책은 총 8개의 파트로 나뉘어져 있고, 선사시대 기원전 3000년 이전을 다루고 있으며 역사시대에서는 기원전 3000~기원전 500년까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고대시대에서는 기원전 500~서기 800년을 다루고 있으며 중세시대에서는 800~1430년의 이야기를 다룬다.  근세시대에서는 1430년~1750년을, 근대시대에서는 1750~1910년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현대시대에서는 1910~1990년의 이야기를 마지막 동시대에서는 1990~2030년의 미래를 그리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을 맺는다.


기존의 세계사 책과 달리 이 책은 책의 장정이 가볍고, 보는 이로 하여금 마치 교과서에 있는 문제를 한참 풀다가 모르는 문제 때문에 참고서를 보다 쉬어가는 페이지로 들어있는 역사의 한 순간을 짤막하게 그려놓은 이야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재밌다는 이야기다. 시종일관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여행을 하는 것처럼 저자는 서문에 우디 앨런이 감동한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를 예로 들며 설명한다. 교과서 같은 형식의 세계사가 아닌 다양한 관점의 세계사를 보는 방식으로 빅뱅부터 미래의 이야기까지 담았다.


역사를 보는 관점은 다양하다. 요즘 유행하는 빅데이터 접근방식과 비슷하게, 인간이 오랜 기간 축적한 지식을 총동원하여 우주 초기의 빅뱅부터 현재까지를 분석하는 빅히스토리 방식이 있다. 이제 역사학자는 서양사, 동양사, 한국사만 공부해서는 안된다. 물리학, 생물학, 지질학, 기후학, 환경학, 공학, 건축학, 해양학, 고고학, 인류학, 문화학, 도시학, 정치학, 사회학, 경제학을 포함하여 폭넓게 공부해야 한다. 폴리매스Polymath, 즉 심도 있으면서 박식한 존재가 되지 않고서는 진정한 역사학자가 될 수 없다. -p.12


세계사 책을 읽는다고 펼쳐들었는데 <김민주의 트렌드로 읽는 세계사>는 서문에 쓰여진 것처럼 다양한 분야의 이야기와 접목한터라 한시도 눈을 뗄 수 없었다. 선사시대에 이르러 빅뱅이론을 이야기 할 때 추리소설가 에드거 엘런 포의 책이 등장하는가 하면, 생명체가 가능한 영역을 따지는 우주 이야기에서 영국 전래동화 <골디락스와 곰 세 마리> 이야기가 소개 되기도 한다. 유럽 전역에 퍼지 동굴벽화를 소개하는가 하면 로마제국이 기독교를 박해하다가 국교로 공인한 사연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기독교 전파에 관해 입체적으로 지도로 표시해 놓아 얼마나 전파가 되었는지 확실하게 눈으로 바라볼 수 있다.


그 밖에도 유럽 왕들에게 붙은 별명이나 이슬람 여성들의 복작인 부르카, 니캅, 차도르, 히잡에 설명과 각 나라의 국부에 대한 이야기가 인상 깊었다. 그 중에서 가장 인상깊게 본 것은 우리가 명화라고 칭했던 많은 서양 미술작품 중에서 창조성 점수를 매기는데 그 중에 어떤 작품이 가장 창조성이 높은가에 대한 이야기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아쉽게도 엘가멀과 살레의 미술작품 창조성 평가에서 동양화와 한국화는 평가 대상에서 포함되지 않았지만 의외로 세잔의 작품은 창조성 점수에서 그리 좋은 점수를 받지 못했다.


세계사에 대해 국한되어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매체와 그림, 사진, 도표, 지도등 다양한 분야와 연계하여 세계사를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 볼 수 있었다. 저자는 이것에 대해 짧게 짧게 설명하는 대신에 이야기의 말미에  THINK로 표기해 하나의 질문을 하나씩 던져준다. 이 이야기에서 더 깊이 생각해보시오, 라며 발제문을 하나씩 던져주다 보니 읽고 보고 느끼는 것 이상으로 우리가 갖지 못하고 생각하지 못했던 문제들을 더 깊이 고민하게 만든다. 이처럼 역사는 지금도 흐르는 것이고, 우리가 어떻게 느끼고 생각하느냐에 따라 보여지는 것, 진실인 것인가를 다시금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무겁고 딱딱했던 세계사를 넘어 가볍고, 이야기가 풍부한 세계사의 이야기를 말랑말랑하게 느끼고 싶다면 당장 이 책을 펴 보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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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st Sit 일단 앉으면
수키 노보그라츠.엘리자베스 노보그라츠 지음, 김훈 옮김 / 김영사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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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일이 있든 간에 일단 앉으세요


​무릎을 접고 편안하게 앉아 두 손을 살며시 무릎위에 놓아 둔다. 마음이 편안하다면 손바닥을 하늘 위를 바라 볼 수 있게 하고, 그날 컨디션이 좋지 않다면 무릎을 감싸 안는다. 그리고 조용히 눈을 감는다. 두 눈을 감고 허리는 곧게 펴고, 들숨과 날숨을 조용히 쉬며 명상의 세계로 빠져든다, 고 하지만 한 번도 운동시간에 내가 바라는 명상의 시간은 되지 못했다. 눈을 감고 조용히 앉아 있으면 나도 모르게 내 머릿속에 차있는 생각들이 들어와 머릿속을 헤메고 있다. 차분하고 경건한 시간에 누군가의 '카톡'소리에 저 만치 보내논 생각들을 깨어 놓는가 하면, 주변에서 들려오는 잔 소음들로 하여금 생각에 집중하지 못하고 있었다. 먼 피안의 세계를 경험할 수 있는 시간들을.

명상은 기분을 좋게 해주고, 맑게 해줍니다. 이제 그만 머릿속 고민들에서 벗어나세요. 긴장을 풀고 자신을 내려놓으세요. 명상은 어머니의 포옹과도 같아서 모나고 날선 것들을 부드럽게 해주고 내면의 온갖 소음을 줄여주며, 중요한 일과 사소한 일들을 가려낼 수 있게 줍니다. 다시 말해 명상은 영혼을 위로해주죠. 당신을 내면의 목소리, 당신의 중심, 생생함, 직관, 이성의 진정한 목소리와 연결시켜줍니다. 바로 지금 자리에 앉아보세요. 이건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제아무리 마음이 불편해도 일단 자리에 앉아 스스로를 알아가는 일이야말로 자신의 삶 속에 존재하고 훨씬 더 나은 삶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의 핵심입니다. - p.54

다시 조용히 앉아 명상의 시간을 가져본다. 그러기를 잠시, 문자 소리와 알람소리, 택배의 알림등 다양한 소리 때문에 명상의 시간이 깨어진다. 아, 이거 쉽지 않은 일이구나 싶기도 하고 그동안 우리가 이렇게 많은 소음에 노출되어 있구나 하는 생각도 든다. 다시 집중을 해 보지만 이제는 조용한 고요 속에서 생각에 생각의 끈들이 멈춰 있다고 생각 할 무렵 무의식적으로 졸음이 몰려든다. 이렇게 또 명상의 시간을 날려버렸다.

그러니 어떤 일이 있든 간에 일단 않으세요. - p.55


어떤 일이 있든 일단 앉아서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는 너무나 많은 소음과 멀티테스킹을 하는 사람들처럼 많은 순간에 많은 일을 하려고 한다. 그러나 책은 한 순간에 많은 일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고, 한다고 해도 한 가지도 제대로 하지 못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명상은 쉬이 할 수 있다고 하지만 무엇이든 빨리, 빨리를 외치는 우리에게는 그것 조차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금방 깨닫게 된다. 명상도 훈련이 필요하다고 느낄무렵 수키 노보그라츠와 엘리자베스 노보그라츠의 책 <Just Sit 일단 앉으면>은 명상에 관해 8주 훈련법을 소개하고 있다. 8주 훈련은 쉽고, 실현가능하다고 한다.


첫째주 - 숨결마다 집중하기. 하루 3분씩

일부러 시간을 내서 하기 보다는 예를 들어 커피를 내리는 동안 3분간 앉아서 하기를 권한다.

명상이 끝난 후에 노트에 날짜와 시간을 적고 자신이 경험했거나 경험하지 못한 내용을 간략히 기록한다.

단, 7일 동안 연속해서 3분씩 않도록 하되, 하루를 걸렀다면 첫 주의 첫날 명상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p.73)


둘째주 -숫자세기. 하루 4분씩

숨을 들이쉴 때 천천히 4를 세고, 숨을 내쉴 때 천천히 4를 센다. 숫자를 셀 때마다 엄지, 검지(1), 중지(2), 약지(3), 그리고 마지막 새끼손가락을 짚는다. 그 과정을 계속 반복한다. 숫자를 빨리 센다는 것을 알아차린다면 천천히 속도를 낮춰야 한다.

단, 4분 명상이 끝난 뒤에 노트에 날짜와 시간을 적고 경험한 것과 경험하지 못한 것을 기록. 첫째주와 마찬가지로 만일 하루를 걸렀다면 둘째 주의 첫날 명상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일주일 내내 같은 명상법을 쭈욱 이어간다는 것을 명심하기. (p.74)


셋째주 - 배에 의지하기. 하루 5분씩

두 손을 배에 대고 숨을 들이 쉴 때 배가 부풀어 올랐다가, 내쉴 때 수축하는 것을 느껴보자. 이런 훈련이 불편하다면 작은 베개를 배에다 놓고 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명상을 하고 나면 노트에 기록은 필수. 하루를 걸렀다면 역시 셋째 주의 명상법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p.75)


넷째주 - 가슴의 빛을 밝히기. 하루 6분씩

편안히 앉아 둥근 빛이 자신의 심장에 자리 잡고 있는 공간을 에워싸고 있는 광경을 떠올려본다. 일종의 이미지 메이킹을 통해 떠올려 보는 것이 중요. 숨을 들이쉴 때마다 그 빛이 아주 조금씩 더 밝아지고, 내 쉴 때마다 나의 태양 에너지 판이 되는 양 그 빛이 아주 커져 간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혹, 그것이 잘 안되더라도 그저 들이쉬고, 내쉬고 호흡을 하고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p.76)


점점 더 명상에 대해 단계가 높아가고, 시간도 집중할 수 있는 능력도 향상된다. 약 한 달간의 시간을 요약했지만 명상이 이처럼 잘되어 간다면 다섯째 주의 명상부터는 책을 통해 확인하시길. 이렇게 다양하고, 다채로운 명상법이 있는지 몰랐다. 꾸준히 하지 않았지만, 운동을 할 때마다 경험했던 명상법은 초보 수준도 못미쳐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무엇이든 꾸준히 해야 효과도 크다. 책은 글로서 명상을 대하기 보다는 어떻게 하면 자신이 있는 공간에서 효율적으로, 쉽게 다가갈 수 있는지를 표현한 책이다. 픽토그램으로 설명이 쉽고, 재밌게 되어 있어서 언제, 어디서든지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 책이다.


처음 명상을 시작하는 이에게는 거부감과 두려움을 없애고 어느 정도 훈련과 명상법을 익힌 이들에게는 전통명상과 명상에 필요한 소품을 소개하고 있기도 하고 다양한 명상자세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결가부좌, 반가부좌, 초보자에게는 책상다리로 앉는 것을 권하기도 한다. 명상을 할 때 찾아드는 통증에 관해서도 손동작에 관해서도 나와 있어 보는 내내 일단 좀 앉아있어볼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평소 경어체를 쓰는 책은 마치 당신으로 표현되는 어감만큼이나 멀게 느껴져서 좋아하지 않았는데 계속 책을 읽고 있으니 요가 선생님이 앉아서 조곤조곤 이야기를 해주는 것 같이 편안하게 느껴졌다. 나를 위한 명상시간. 왜 이것이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필요한지를 머리가 아닌 몸으로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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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의 기분
김종완 지음 / 김영사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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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전략디자이너 종킴의 포트폴리오


 ​세상에는 수 많은 직업이 많다지만 '공간전략디자이너'라는 직업에 대해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김종완이라는 이름 앞에 우리에게는 다소 낯선 수식어가 붙기까지 그는 오랜시간을 걸쳐 공부해왔다. 열여섯 이른 나이에 프랑스 유학을 갔고, 그가 유학을 가기 전에도 많은 분야의 운동과 예술분야를 배움으로서 조금씩 뼈대를 지니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 아닌가 싶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인테리어 디자이너'와 달리 그의 말에 의하면 공간전략디자이너는 '공간의 시작부터 끝 그리고 그 속에 담기는 사람들의 마음과 철학까지 책임진다는 점'이라고 그는 말하고 있다.


<공간의 기분>은 지금까지 봐왔던 많은 인테리어 디자인과 달리 그가 10년 동안 경험한 것들을 의뢰인의 필요와 생각들을 모아 공간을 만들어낸다. 기존에 많이 보았던 공간과 달리 은은한 색감과 모던하고, 때때로 미래 세계에 있을법한 질감으로 공간을 표현하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공간이자 우리가 알고 있는 브랜드의 공간을 주요 일터로 잡다보니 그의 이야기 보다는 그가 세운 회사인 '종킴디자인스튜디오'의 포트폴리오 같았다. 공간의 기분은 어렴풋이 알겠지만 이 책을 엮는 공간전략디자이너 김종완의 기분은 슬며시 사라져 있다. 대체로 그가 조우한 작업들은 이름이 익힌 브랜드의 곳이기도 하고, 개인의 공간을 작업하다 보니 그곳에 내가 갈 수 있을까? 싶은 곳들이 많았다. 그럼에도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신세계의 공간을 스케치로 명확하게 볼 수 있다보니 완성된 공간을 사진으로 보는 것 이상으로 재밌게 느껴졌다.


공간 속에 사람의 철학이 녹아들고, 그것을 구현해 내는 작업은 어려우면서도 재미난 작업인 것 같다. 은은한 조명을 써서 더 기품있게 공간을 표현해 내기도 하고, 때론 한국적인 아름다움을 찾아 자수 장인을 찾아 나서기도 한다. 지금까지 표현되지 않았던 유리조명을 찾아 유리장인을 찾아 함께 공간을 만들어가는 모습이 신선하게 느껴진다. 브랜드를 대표하는 공간, 요리수업을 할 수 있는 공간, 누군가의 개인 작업실, 한 브랜드를 돋보일 수 있는 쇼케이스, 셰프가 만들어낸 음식을 더욱더 돋보이게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레스토랑등 다양한 공간을 소개하고 작업했던 일화를 이야기하고 있다. 프라이빗한 공간과 럭셔리한 공간, 비지니스 적으로 표현될 수 있는 공간, 전시회로 잠깐 동안의 공간을 표현하다가 사라지는 공간의 이야기가 다채롭게 담겨져 있었다.


배움을 넘어 협업하는 시간 속에서 그는 기업의 가치를 담고, 개인의 가치를 담아낸다. 상업적인 가치를 표현해 내는 일에 있어서는 고객이 그 공간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나가는 순간까지 편의를 생각해 그들의 동선과 생각까지도 잡아내고자 한다. 알고 있지만 그것을 자그마한 공간 안에서 그들이 필요로 한 것들을 주면서 그들이 그렇게 생각하도록 유도하는 일까지 한다. 순간의 생각 뿐만 아니라 사람의 생각을 한 치, 두 치를 먼저 내다보면서 공간을 만들고 디테일한 선들을 다잡아야만 할 수 있는 작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어항속을 들어가듯 조용하고 안락한 공간들의 이야기는 그 어떤 이야기보다 격조높게 보인다. 경험하지 못한 것이라 더 깊게 바라보는 측면도 있다. 그가 만들어낸 공간에 발을 디디고 싶고, 만져보고 싶다. 상업디자인이다 보니 책이 마치 PPL같이 느껴졌지만 그가 쓴 한 권의 책만으로 그가 구현해 낸 세상을 조금이나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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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의 기억은 그 자신의 철학이 되고, 그것이 결국 공간의 철학이 된다. - p.90


여러 장소성과 문화가 공존하는,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제3의 공간이다. - p.202


가장 먼저 떠오른 아이디어는 '베트남의 식민지 시절'이었다. 식민지 건축물은 부정적인 단어이지만 다르게 생각한다면 동남아도 유럽도 아닌 '제3의 공간 The third space'으로 해석할 수 있었다. 역사적으로는 아픈 공간이지만 그 아픔에서 빚어진 건축과 장소는 그 시간이 남기고 간 중요한 역사적 흔적과 이야기가 있는 공간으로 평가받는다. 예컨대 영국의 지배를 받았던 홍콩은 동양 문화를 기반으로 자라난 영국식 문화와 건축물이 어떤 하나의 이미지로 규정할 수 없는 독특하고 오묘한 분위기를 풍기며 여행객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한때 영국의 경찰청으로 쓰였던 건물은 미술관으로 운영해 수감장이 전시장이 된다든가 하는 이벤트는 설명하기 힘든 감정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그런 불가해함, 긍정과 부정이 혼재하는 경계 속에서 그 어느 것에도 치우치지 않고 담담히 새로운 현재를 살아가는 모습이 식민지 건축의 매력인 것 같다. - p.203


"자아와 타인, 그 끝없는 질문들" -p.222


집으로 초대한다는 건 내 사소한 것까지 함께 공유할 준비가 되어있다는 것. 공간이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 p.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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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 1~2 세트 - 전2권
케빈 콴 지음, 이윤진 옮김 / 열린책들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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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만의 세상

 ​요즘 소설을 볼 때 챙겨읽는 키워드 중 하나가 영화 원작 소설을 찾아 읽기다. 영화관에 가면 큰 스크린으로 보는 화면도 좋지만 때때로 방해받는 요소들이 많다보니 집중하기가 힘이든다. 앞에서, 옆에서, 뒤에서 흔들고 나면 내가 영화를 보고 온 것인지, 그저 화면이 나온 곳에 앉아 있었는지 헷갈릴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영화를 보기 전 원작소설을 읽던 것이 버릇이 되어 이제는 영화보다 원작소설의 매력에 푸욱 빠져 버렸다. 원작소설의 묘미는 뭐니뭐니 해도 영화에 구현되지 않는 심리묘사인데 케빈 콴의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은 그런 점에 있어서는 깊이 캐치하지 못하고 있다. 마치 시트콤을 보듯 가볍게 싱가포르게 살고 있는 상위 0.01%의 사람들의 이야기다. 모든 일상이 돈과 관련되어 있고, 마치 우리가 시장에서 물건을 사듯 호텔을 사고 팔고, 전 세계에 집들을 몇 채씩 갖고 있다. 그야말로 우리가 논할 수 없는 부자들의 이야기다.

예전에는 돈이 많은 이들을 부르는 칭호가 '백만장자'였지만 이제는 그보다 더 뛰어넘는 돈으로 상위 계층의 물질을 표현하고 있다. 미친 부자의 이야기라니.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은 우리나라에 10월 25일에 개봉한 영화이지만 이미 할리우드에서 많은 이들의 입소문이 탄 영화다. 케빈 콴이 그려낸 이 데뷔 소설은 이미 미국에서 큰 인기를 끌었지만 부유하다는 것 빼고는 이야기가 신선하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다. 뉴욕대학교에서 경제학과 부교수로 일하고 있는 레이철 추가 남자친구인 닉과 함께 친구의 결혼식에 가기로 한다. 마침 결혼식을 참석하는 김에 그의 부모님을 만나보기로 했지만, 그는 한 번도 그녀에게 자신의 환경에 대해 말하지 않은 것은 물론 자신의 부모에게도 레이철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그와 함께 오랜시간을 보냈지만 알 수 없었던 레이철은 여행을 가기 위해 발길을 돌리는 순간 딴세상의 일이 자신에게 일어난다. 비행기 안이 마치 자신의 침실처럼 편안하게 이용할 수 있는 퍼스트 클래스를 이용하는 것부터 사람들의 관심이 오롯하게 자신에게 쏟아진다. 닉의 어머니는 그녀가 어떤 사람인가 보기 보다는 어떤 출신의 사람이며, 부모는 무엇을 하고, 재산을 얼마나 있는지에 관심이 컸기에 닉이 데려온 레이철을 못마땅해 한다. 더욱이 그가 살고 있는 그들만의 세상에서 레이철은 도무지 적응 할 수 없을 정도로 싱가포르의 최고급인 음식과 그들이 걸친 옷이며 궁전처럼 커다란 집은 그야말로 영화나 드라마에서 볼 법한 것들이 끊임없이 등장한다.

레이철과 닉의 이야기가 한 축이라면 닉의 사촌인 아스트리드 렁과 그녀의 남편 마이클 테오의 이야기가 또다른 이야기의 축이다. 개인적으로 주인공들의 이야기 보다는 아스트리드의 이야기가 더 공감된다. 미모와 각 나라에 부동산을 두 손 넘치도록 갖고 있지만 결국 자신의 눈에 들어온 마이클과 결혼해 아들 캐시언과 함게 살고 있다. 마이클은 평범한 사람이기에 집을 구할 때도 자신의 능력에 한해서 집을 구하고 싶다고 말해 집을 구했고, 생활비도 일체 그녀의 돈을 쓰지 않았다. 사랑해서 한 결혼이지만 서로 다른 환경에서 살았던 그들의 이야기는 마이클의 핸드폰에 날아든 문자 하나로 인해 균열의 조짐이 엿보인다.

그들이 사랑하고, 시기하고, 먹고 마시고, 즐기는 이야기는 화려한 성찬을 맞이하듯 휘황찬란하게 반짝인다. 레이철이 열심히 노력해 쌓아온 커리어임에도 닉의 엄마는 못마땅하고, 그녀를 떼놓으려 하는 가운데 닉과 예전에 만났던 전 여자친구까지 등장하니 그야말로 점입가경이다. 지지고 볶고 시기하는 것은 돈이 많든, 적든 인간의 공통의 일과인 것인지 그들의 리그와 맞물려 일상의 톱니바퀴가 돌아간다. 영화로 보면 더 색다르게 다가올까? 800페이지가 넘는 두꺼운 두께를 넘기를 속도는 빨랐지만 케빈 콴이 그려낸 이야기가 그리 와닿지는 않았다. 그저 그들이 사는 세상을 조금 맛 보았을 뿐이다. 이 시리즈가 이야기 끝인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3부작의 이야기라고 한다. 진부하지만 싱가포르 상류층의 사는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한 번쯤 읽어볼만한 작품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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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귤
김혜나 지음 / 은행나무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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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의 늪.


 멀리서 바라보는 불빛은 동경의 대상이다. 집집마다 환하게 켜져 있고, 멀리서 바라보는 눈빛에는 그 안에 살고 있는 모두가 행복한 삶을 살고 있을 것 같다. 그러나 한 집, 한 집 자세히 현미경을 들여다 보면 많은 불빛을 비추고 있는 집 가운데 정말 행복한 집은 얼마나 될까? 찬바람이 불어도 훈풍이 불어와도 늘 변하지 않는 아파트 불빛을 오랫동안 바라보면서 그들의 삶을 떠올렸지만 아마도 내가 살고 있는 색깔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멀리서 보면 풍경같은 집들을 현미경을 바라보듯 깊숙히 들여다보면 그들의 삶이 행복만을 추구하고 있지 않다. 오히려 행복과 거리가 먼 개인의 삶이 폭력으로 얼룩져있다.


일상의 평온함을 누리지 못하고, 개인이 누릴 수 있는 온전한 상태의 고요와 정적을 느낄새도 없이 나와 관계되었다는 이유만으로 끊임없이 침입해 온다. 온전하게 함께 할 수 없었던 가족간의 이야기들이 시간이 지나 만나게 되면 이웃 보다 더 멀어진 상태에서 그들과 조우하게 된다. 낯선 공간 속에서 낯선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 기분. 그럼에도 한쪽의 연결고리로 인해 서먹서먹함을 이기고 친해지려 하지만 나와 가장 가까운 이는 나를 보호하지 않고 화가 난다는 이유만으로 손과 발이 올라간다. 난데없는 폭력은 고통 뿐 아니라 마음이 부서진다. 연약한 여자를 때리고, 가족간의 이질적인 감정을 고조시킨다.


총 다섯편의 소설은 단편과 중편소설로 엮어져 있다. 연작인 느낌도 나지만 소설 속 주인공 모두 폭력의 늪에 묶여져 있는 이들이 주인공이다. 단편 '로레나'는 삼촌이 데려온 외국인 부인인 로레나의 이야기 그렸고, '이야기의 이야기는' 태어날 때부터 겪지 않아야 할 순간 부모의 안일한 선택으로 인해 병이 걸리게 되고, 그것이 훗날 자신의 트라우마로 작용한다. '오샤와'와 '차문디 언덕을 오르며'와 '그랑주떼'의 이야기 모두 각각의 상처와 폭력의 늪으로 빠져든 이들이 기꺼이 상처를 이겨내고자 하는 이야기다. 때로는 상처의 늪을 벗어나고자 노력해도 결국 그 자리에 머무는 이가 있는가 하면, 기꺼이 상처를 딛고 일어서는 이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청량감있는 이야기를 기대했던 나는 이 이야기가 깊은 늪 속으로 빠져드는 통로 같았다. 일상에서 버젓이 일어나는 일처럼 아무렇지도 않는 시간 속에서 그들은 욕설과 폭행과 자신이 선택하지 않아도 원죄처럼 짊어질 수 밖에 없는 생채기를 지니며 살아가고 있었다. 그렇게 상흔의 흔적을 지니고 자생해서 살아가는 식물처럼 그렇게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공허한 울림이 계속해서 퍼지다 보니 작은 위안 보다는 매일 오르내리는 헤드라인 기사 속에서 시간이 지나 누구의 기억 속에서 기억되지 않는 이들의 이야기 같았다. 무엇이 그들을 잔혹하게 만들었으며, 왜 그와 관련된 이들은 한없이 고통을 받아야 하는가에 대한 이야기는 시간이 지나고, 또 지나도 어김없이 흘러 나오는 돌림노래 같다. 그래서 더 지치고 지치는 이야기들. 그녀의 글은 때때로 반짝이기도 했지만 삶의 위안을 얻기에는 너무나 많은 이야기들이 여기저기서 울리다보니 이런 이야기들이 더이상 나에게는 그 어떤 희망의 시그널 조차 느껴지지 않았던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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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 당신을 너무 지루하게 만들고 있지 않나요? 이렇게 먼 과거의 시간부터 시작해 그 흐름에 다른 연대기적 순서로 이야기하는 것은 듣는 사람을 아주 지루하게 만든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잇어요. 예를 들어 1로 시작해 10으로 끝나는 이야기가 있다고 치면, 그것을 1-2-3-4-5-6-7-8-9-10의 순서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6이나 7의 순서에 해당하는 이야기를 먼저 꺼내어놓는 것이 좋다고요. 조금 난데없다 싶을 정도로 독특한 이야기를 먼저 툭 던져놓은 뒤 왜 이러한 이야기를 꺼내는 것인지 하나하나 추적해보는 방식이 훨씬 더 효과적이라고요. 그러니까 이게, 이야기하는 나에게 좋다기보다는 이야기를 듣는 당신에게 더 좋다는 거예요. 이때 초보 이야기꾼들은 6과 7에 등장할 이야기를 제일 먼저 꺼내어놓은 다음 바로 이어서 1-2-3-4-5를 이야기하고 8-9-10으로 마무리 짓는대요. 좀 더 능숙한 이야기꾼이라면 5-6을 먼저 이야기한 다음에 3-4를 꺼내어놓기도 하고요. 그 다음 7-8을 이야기하다가 다시 1-2를 이야기하고 9-10으로 마무리 지으면 최고라고 들었어요. - p.41~42


"사람들은 여름에도 귤이 난다면서 신기해하고 그것을 먹어보려고 하지. 그런데 이걸 막상 나무에서 따서 손으로 가져와 보면 예쁘지도 않고 맛있지도 않다. 이건 그냥 쓰고, 시고, 딱닥하기만 해. 진짜로 먹을 수는 없어." - p.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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