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랑 - 김충선과 히데요시
이주호 지음 / 틀을깨는생각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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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어서는 안될 이름, 김충선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 했을 때 떠오르는 인물을 적어보라고 한다면 이순신 장군, 서애 류성룡 선생, 선조대왕이 떠오른다. 선조 시대때 일어난 전쟁이었고, 아무런 준비가 없이 무방비하게 왜의 습격을 당해 어이없이 함락된 전쟁이었다. 이순신 장군은 <난중일기>로 그때의 일을 일기로 기록했으며, 서애 류성룡 선생은 어이없이 참담하게 벌어진 일을 수습하며, 후대에는 절대 이런 이런 일을 반복하지 않게 하고자 쓴 남겨 놓은 책이 <징비록>이었다. 개인적으로 조선시대의 왕 중 가장 무력하고, 안이했던 왕 중 하나였다고 생각한다. 누군가에게는 이 기록이 가장 치욕스러웠고, 또 누군가는 안의 소란스러운 내분의 조짐을 잠재우고자 밖의 동태를 살피며 야욕으로 일으킨 전쟁이었다.


오랫동안 조선에서는 전쟁이 없었고, 평온한 시대를 살았기에 무방비했다. 그런 우리의 헛점을 알아내듯 일본의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오다 노부다가의 수족으로 있다 그가 혼노시의 변으로 죽자 그가 일임을 하며 권력을 손에 쥐게 된다. 중국의 춘추전국시대처럼 어디에 권력의 공이 오갈지 모르는 시대의 상황이 영웅을 만들어 내고 그 시대 속에 조선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살게된 한 소년의 이야기가 아릿하면서도 강단있게 그들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어떠한 사연으로 일본으로 건너 온 소년의 이야기는 이방인처럼 아이들의 놀림감이 되고, 목표물이 되고, 누군가의 동네북처럼 따돌림과 주먹이 오간다. 몸이 약해 함께 훈련을 받을 수 없던 소년은 몸으로 하는 훈련 대신 지략으로 그들의 머리보다 한발짝 더 앞서 나간다.


안정되지 않는 무자비한 시대에서는 누군가보다 앞서서도 뒷걸음질 쳐도 늘, 목숨이 위협을 받는 시대였다. 총명한 그 아이는 남들보다 더 앞섰기에 주군의 총애를 받았고, 누군가에게 도장을 찍뜻 청년의 이름을 명확히 세겼지만, 누군가에게는 그의 총명함을 그의 손아귀에 넣고자 했다. 그렇게 소용돌이치는 시대에 소년은 세찬 물길을 헤쳐 나간다. 그러면서 그가 조선인인지, 일본인인지 뿌리에 대해 갈구하며 질문에 질문을 더해간다.


소년의 질문과 청년의 질문, 내가 지켜야 하는 것들에 대한 집념이 그 시대의 사람들을 떠올리며 잊어버린 것과 잃어버린 것들을 떠올렸다. 내가 기억하는 시대와 사람들의 이야기가 다가 아니라는 것을 이주호 작가는 <김충선과 히데요시>를 통해 선명하게 보여준다. 그가 아니었으면 나라 전체가 넘어갔을 위험한 전쟁에서 죽기 살기로 지략과 전략을 더해 왜의 침략을 막아낸 이순신. 그 시대 속 어딘가에 실존 인물이었던 소년의 자리가 그 시간 속에 있다. 글을 읽으면서 정말 이 책이 지어진 이야기가 아니라 실존인물을 바탕으로 한 이야기라는 것이 놀라웠다.


무자비한 시대 속에서도 결코 자신의 고집을 꺾지 않았던 그 사내가 어떻게 다시 조선으로 귀화하며 '김충선'이라는 이름을 임금에게 하사 받을 수 있었는지 그 곡진한 이야기를 책은 실제와 허구 속에서 작가의 필치를 통해 메워진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읽으면서 오다 노부나가의 호쾌한 모습과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야욕과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인내를 보았다. 책 속에서 이들의 이야기는 한 소년의 운명의 궤를 같이 하고 있어서 흥미로웠다. 뿌리를 알지 못한 채 조용하게 있는 듯 없는 듯 하면서도 총명했던 소년의 재주와 집념, 소신의 이야기가 시대의 맞물려 한 사람의 이름이 여러 이름으로 불리면서도 끝까지 고통과 인내를 하며 그의 재주를 남다르게 펼쳤던 장군 김충선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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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공간 - 평행우주, 시간왜곡, 10차원 세계로 떠나는 과학 오디세이
미치오 가쿠 지음, 박병철 옮김 / 김영사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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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한 공간 속으로


 미치오 카쿠의 <초공간>은 97년에 출간되었다가 절판된 후 20년 만에 재출간 되었다. 그의 책을 읽다보니 오래 전에 읽었던 오드리 니페네거의 <시간 여행자의 아내> (2009,살림)가 떠올랐다. 소설을 좋아하다 보니 감성근육이 발달한 것에 비해 과학에 관해서는 문외한이다 보니 쓸 수 있는 근육이 하나도 없음에도 공간과 공간을 이동하며 시간여행을 하는 이야기는 좋아했다. 현실 속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고 하면서도 오래 전에 방영했던 드라마 속 주인공인 '도민준(별에서 온 그대의 주인공 이름)'이 시간여행을 하며 웜홀 속으로 들어가는 광경을 지켜보았다. 드라마를 방영 할 당시 말도 안된다, 된다 하며 말들이 많았는데 그의 책을 읽으니 그의 모습들이 허상만은 아니었나보다.


현실 속 사건 사고들이 소설 보다 더 잔인하고, 때로는 드라마틱하게 이루어지는 것처럼 과학 속 공간 속에서도 우리가 공상과학소설이라 부르며 읽었던 소설 속 주인공들의 공간이 소설가의 머릿속에서 설계된 공간만을 아니었다는 것을 미치오 카쿠의 <초공간>을 통해 느끼게 되었다. 그의 책은 그 어렵다던 고차원 물리학에 관한 이론을 설명한 책이지만, 일반인이 쉽게 평행우주와 시간왜곡, 10차원의 세계로 떠날 수 있는 과학의 오디세이다. 그가 서문에서 <초공간>을 어떻게 담을 것인지 친절하게 서문으로 설명을 해 놓았듯 우리가 바라보지 못했던 영역을 넘어 마치 먼 곳에서 넓은 우주를 바라보듯 보이지 않는 초공간의 세계를 일반독자들의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의미를 깊게 풀어놓았다.


초공간이란 4차원 시공간보다 차원이 높은 공간을 통칭하는 용어로서, 요즘 노벨상 수상자를 비롯한 세계적 석학들은 우리의 우주가 더 높은 차원에 존재한다는 가설을 신중하게 검토하고 있다. 만일 이 가설이 옳다면 우주에 대한 과학 및 철학적 개념은 가히 혁명적인 변화를 겪게 될 것이다. - p.9


물리학자들은 초공간의 이론을 '칼루자-클라인 이론'이나 '초중력', '초끈이론'이라고 부르고 있다. 3차원 공간(가로, 세로, 깊이)를 가진 공간을 넘어 6개의 공간차원이 추가로 존재하고 있다고 하니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보이지 않는 세계들이 어딘가에 살아 숨쉬고 있나보다.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이런 과학적 이론들을 알았을지 모르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시간을 이동하고, 우리가 살고 있는 공간 너머 다른 공간이 있음을 눈으로 볼 수 있도록 그림을 그려준다. 허황된 이야기라 할지라도 머릿속의 상상이, 공상이 눈앞에 그려지는 세계라 사람들은 그 이상한 공간 세계를 지켜보며 다른 세계를 꿈꾼다. 그것이 과학적인 이론이 기반이 되었는지, 안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더불어 깊이 들어가지 않고 흥미로만 그저 내비치며 짧게 끝을 낼 수 있지만 우리에게는 과학적인 지식을 그렇게나마 간접적으로 접할 수 있었다.


 흥미로운 주제지만 그것에 관해 자세히 설명해주고, 그런 과학적 이론을 설명해주는 책은 접해보지 못했다. 과학에 대해 관심이 없어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눈높이를 낮추는 교양과학서적은 없었던 것 같다. 그가 설명한 이론을 하나하나 이해하기는 어려웠지만 그는 최대한 일반인의 시각을 맞추어 그의 이론을 설명하고 있다. 그의 설명은 때때로 문학과 역사,수학과 과학을 넘어 다층적으로 그의 이야기를 접한다. 수학과 과학을 더한 이야기는 어렵지만 문학과 역사에 얽힌 이야기는 재미있고, 이해하기가 쉽다. 과학책은 무조건 어렵다는 생각에 책을 펼쳐들 생각조차 하지 못했는데 미치오 카쿠의 <초공간>은 한층 더 우리에게 가깝게 다가온다.


차원을 높이면 모든 것이 단순해진다. - p.37


차원을 높이는 이야기를 하면서 그는 고대 로마인의 전쟁을 예로 들었다. 당시 전쟁은 동시다발적으로 국지전의 형태를 띠었고, 평면적으로 전쟁을 치루다보니 상황이 어떻게 전개되는지 알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런 그들의 전략은 전쟁이 일어나면 고지를 점령하는 것이 제 1전략이었다. 가장 먼저 높은 곳에 올라서서 고지를 점령해야 그들이 이기고 있는지 수세에 몰리는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시대를 떠나 전쟁이 발발되면 항상 군대에서 고지를 점령하라는 이유도 이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렇게 고대 로마인의 전술은 다른 나라의 전술보다 뛰어났고, 로마제국이 승승장구 했던 것도 이런 전술들이 용이했을 것이다.


시간여행, 블랙홀, 웜홀, 양자역학, 평행우주, 우주의 미래까지 그는 이런 어렵고, 평소에는 접하지 않았던 나와 무관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우리가 그동안 쌓아 올렸던 역사와 문화, 종교와 철학을 오가는 많은 이야기들을 묶어 현대물리학에 도달하기까지 미치오 카쿠는 시각과 생각들을 확장시켜준다. 전기와 자기, 빛등 다양한 형재로 나타나는 전기력과 뜨겁게 타오르는 별에 에너지를 공급하는 강한 핵력과 모든 종류의 방사성 붕괴에 관여하는 약한 핵력과 지구를 비롯한 행성들이 궤도를 벗어나지 않게 유지하는 힘을 가진 중력을 더해 한가지 힘으로 통합시킬 수 있을지가 이론 물리학의 최대 과제라고 한다.


상상했던 모든 것들이 몇 년 후 우리의 삶 속에 스며들었던 것처럼 이론 물리학계의 세계적인 석학인 그가 말하는 초끈 이론이 과연 이루어질 수 있을까. 영화에서나 보았던 상상이 실제 과학자들의 손끝에서 조금씩 실타래를 풀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한발짝 그 세계에 발을 디디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절대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고. 이처럼 미치오 카쿠의 이야기는 흥미롭고, 재밌게 그 공간 안에 우리를 자연스레 발을 내딛게 만든다. 그 어떤 과학책보다 더 재밌게 읽었던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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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러 인문학 - 색깔에 숨겨진 인류 문화의 수수께끼
개빈 에번스 지음, 강미경 옮김 / 김영사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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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을 매개로 한 다채로운 이야기


 뉴스를 보다가 손석희 아나운서가 뉴스룸을 통해 앵커브리핑을 하는데 그때 이 책이 등장했다. 레드벨벳의 빨간 맛에 관한 이야기가 여기저기 오르내렸고, 색에 관한 오해가 있었기 때문이다. '빨간색'에 대한 오해가 없는 세대이지만 몇 십년전만 해도 우리나라는 '빨간색'에 대한 오해가 많았다. 이념에 관해 나눌 때는 더없이 그들을 지칭하여 이야기 했고, 그것이 생과사를 오가는 길목이기도 했다. 어렸을 때는 색에 관해 특별히 편견은 없었으나 일상적으로 남자는 파랑, 여자는 분홍색을 지칭하여 아이였을 때부터 구분지으며 살았으나 어느 때부터는 사회에서 그런 인식이 너무나 편향되었음을 알고는 남자도 분홍색을 비롯하여 붉으스름한 옷들을 즐겨입고, 여자들 또한 파랑색을 비롯하여 경계없이 즐겨입게 되었다.


뉴스룸을 즐겨보지만 특히 재미있게 보는 코너가 손석희 아나운서의 '앵커브리핑'이다. 이따금씩 그의 브리핑은 그날의 사건을 빗대어 말하기도 하고, 사람들이 지나치는 것들에 대해 경종을 울리기도 하는데 그것이 하나의 책 혹은 영화나 음악을 통해 이야기를 해 주기 때문이다. 문장으로 마주한 우리의 이야기는 그 어떤 이야기보다 귓가에 쏙쏙 들어온다. 어느 날에 보았던 뉴스룸의 앵커브리핑 역시 즐겨보다가 문화학자인 개빈 에번스의 <컬러 인문학>을 알게 되었고, 그 덕분에 책을 읽게 되었는데 그의 책은 마치 색을 매개로 한 알쓸신잡 같았다. '알아두면 쓸데는 신비한 잡학사전'처럼 빨강, 주황, 갈색, 노랑, 초록, 파랑, 보라, 분홍, 흰색, 검정, 금색까지의 이야기를 다양한 주제로 풀어낸다. 


색에 관한 색의 이야기이긴 한데 주제가 두서없고, 어디로 튈지 모르는 고무공 같아 그가 설명하는 의미를 곰곰히 생각하며 천천히 읽어가지만 결론을 도출해 내기 어렵다. 각국의 현상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세계의 많은 나라를 색에 관해 다 특징을 잡아낼 수 없을 뿐더러 유럽과 중국, 일본의 이야기가 대표적으로 많이 쓰여져 있다. 색에 관해서는 우리나라도 뺄 수 없을 정도로 조선시대의 복식이 화려한데 개빈 에번스는 우리나라의 문화 보다는 일본의 문화나 중국, 인도의 문화에 대한 예로 많이 들고 있다.


많은 색을 이야기 하고 있지만 그중에서 가장 인상깊게 읽었던 부분은 노랑색과 보라색에 관한 이야기였다. 특히 동서양의 차이를 많이 보이는 색이 노랑색이었다. 가장 많은 색을 차지 하면서도 동서양의 의미가 많이 달랐는데 동양에서의 노랑은 왕이나 업적이 높은 이들이 마주 할 수 있는 색이었다면, 서양의 노랑은 겁쟁이이거나, 죄를 많이 지은 이들에게 주어진 색깔이었다. 서양에서는 나쁜 의미로 쓰이는 욕들이 '노란색'을 띠고 있는 것도 흥미롭다. 라색은 오직 왕과 귀족만 입을 수 있는 색깔이었다. 시간이 지나 한 계층이 선호했던 색깔은 의미가 옅어지고, 의미가 바래졌지만 색을 통해 그들의 말이나 어원의 의미가 같으면서도 때때로 다른 의미를 나타내는 것이 흥미로웠다.


 


역사의 의미 속에서 흰색에 관한 이야기를 읽다가 결혼식을 상징하는 '흰색 드레스'의 의미를 알고 나서는 기분이 그리 유쾌하지 않았다. 역사적으로 여성이 투표권을 갖고 자기의사를 결정하며 살 수 있었던 역사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지만 흰색 웨딩드레스는 여자의 순결을 의미하는 녀성을 상징한다는 이야기가 불쾌하게 느껴졌다. 결혼의 예복을 맞추는 것은 남녀 모두 마찬가지인데 옛날부터 많은 나라가 신부는 꼭 순결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스스로의 생각이 아닌 사회에서 그렇게 하기를 강요하는 것 같았다. 여성에게 색깔의 옷을 입는 것 조차도 사회에서는 억압으로 민낯을 만나는 순간이었다.


미술, 책, 언어, 복식, 권위, 염료, 사회, 문화, 종교, 동화등 인류의 문화 속에서 끼쳤던 수 많은 수수께끼를 개빈 에번스는 짤막하게 이야기에 담아 다채롭게 인간이 걸어 나간 길을 한 권의 책으로 묶었다. 색을 풀어내는 일이 쉽지 않았음에도 색깔을 가지고 사람에 대해 시공간을 넘어 다채로운 이야기를 150컷의 이미지를 통해 만들어 냈다. 글을 읽다가 깔갈거리기도 하고, 눈을 반짝이며 살펴보기도 하다가, 때로는 얼굴이 울긋불긋하며 분통을 터트리기도 했다. 색채를 표현하는 것이 이렇게 다채로우면서도 사람을 다양하게 표현할 수 있구나 싶은 인류의 문화사적 이야기라 오랫동안 눈과 귀를 기울이며 읽었다. 언급된 책이나 사회적인 현상, 색의 의미를 다시 되새기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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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렌지는 4,500년 전쯤 중국에서 처음 재배된 이후로 실크로드를 거쳐 서서히 서쪽으로 이동했다. '오렌지'라는 말은 '향긋하다'를 뜻하는 인도 남부의 고대 드라비다어에서 유래했다. 그곳에서 이 말을 산스크리트어에 병합되었고 이후 오렌지 나무를 가리키는 산스크리트어 'narangah'는 오렌지를 심고 판매하는 지역을 이동하면서 수많은 언어로 번역되기에 이르렀다. 그래서 언어권은 달라도 발음은 비슷하다. 즉 인도어로는 'naranga', 페르시아어로는 'narang', 아랍어로는 'naranj', 스페인어로는 'naranja'이다. 영어에서 주황orange이라는 단어는 산스크리트어의 변형이다. 사람들은 'a naranga'를 'an aranga'로 오인했고, 그 결과 'an orange'가 되었다. 독사의 일종인 살무사adder의 이름에도 이와 똑같은 일이 발생해 중세 영어 'a naddre'는 결국 'an adder'로 굳어졌다. 문제의 과일이 들어오기 전 '주황을 가리키는 영어 단어는 '황적색yellow-red'을 뜻하는 'geoluread'밖에 없었다. 오렌지라는 단어가 널리 보급되기 시작하면서 이를 색 이름으로 채택하기 된 것은 16세기에 들어와서이다. 그 과일은 누가봐도 주황빛을 띠었기 때문이다.-p.45~46


시계태엽 오렌지란?

폭력적이고 디스토피아적인 묘사로 화제를 불러온 앤소니 버제스의 1962년 소설은 속으로는 이상하지만 겉으로는 정상처럼 보이는 뭔가를 가리키는 런던 토박이말에서 제목을 빌려왔다. 버제스는 선 아니면 악만 행할 수 있는 사람을 지칭할 목적으로 이 말을 사용했는데, 1988년 편집판 서문에서 그는 이 말을 '겉보기에는 색과 즙이 풍부한 사랑스러운 유기체 같지만 실은 신 또는 악마, 또는 (그 둘을 아우르는) 전지전능한 존재의 조종을 받는 시계태엽 장난감일 뿐인 누군가'를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다시 말해 이는 작가가 목격한 부패한 사회를 표현한 것이다. - p.52


색 이름에서 온 가장 흔한 성은 무엇일까?

영어권 국가에서는 단연 브라운이다. 브라운은 미국,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에서는 네 번째, 캐나다와 영국에서는 다섯 번째로 흔한 성이다. 다채로운 성씨 목록에서 브라운 다음으로는 화이트, 그린, 그레이, 블랙, 스칼릿, 블루가 온다. 레이드Reid, 리드Read, 리드Reed, 리드Reade라는 성은 모두 옛날 영어 'Red'에서 유래했다. 이를 하나로 합치면 색과 관계있는 성씨 목록에서 4위를 차지하게 된다. - p.66


노랑은 색 전체를 통틀어 가장 쓰임새가 많다. 빨강은 열, 위험, 피와 한 쌍을 이루고, 파랑이 차가운 느낌, 진정 효과와 관계가 깊다면 이 세 번째 일차색으로는 뭐든 만들어낼 수 있다. 서구 문화권에서는 노랑이 보통 겁쟁이의 색으로 알려져 있지만 동양에서 노랑은 영웅주의와 모든 종류의 행복한 일을 암시한다. 14세기 일본 무사들은 전투에 나갈 때 노란 국화꽃을 달았다. 서구에서 노랑은 평판이 좋지 않은 언론의 색이기도 하며, 경멸스러운 사람을 가리켜 '망나니yel-low-dog'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독일과 프랑스에서는 사람들이 '질투심에 못 이겨 노래지며yellow with envy', 흠씬 두들겨 맞아 생기는 멍을 독일어로는 '시커멓고 새파란black and blue' 멍자국이 아니라 '푸르딩딩하고 누리끼리green and yellow'하다고 말한다. 프랑스에서는 마누라가 딴 사내와 눈이 맞아 도망가면 그 남편을 가리켜'jaune cocu',즉 노랗게 속았다yellow deceived'고 말한다. 힌디어로 여성이 결혼하면 '손이 노래진다get her hands yellow'라고 말한다. 그래서인지 결혼은 앞둔 신랑 신부의 건강하고 윤택한 삶을 기원하는 의미하는 의미로 예비부부와 그들에게 주는 선물은 강황으로 노랗게 물들인다. 같은 맥락에서 많은 인도인들이 질병과 불행을 막아 달라는 의미로 노란 부적을 지니고 다닌다. - p.70


한때 보라는 왕족의 색이었다. 많은 경우 왕족이 아닌 사람은 착용이 금지되었고, 이를 어기면 때로 죽음의 고통이 따르기도 했다. 이는 천연 재료로 생산하려면 값이 무척 비쌌기 때문이다며, 그래서 보라 하면 굉장한 부자를 떠올리게 되었다. 로마 시대부터 1856년 합성염료가 발명되기까지 보라는 그런 상태로 남아 있었다. 그러다 19세기 후반 들어 보라가 유행하면서 중산층도 처음으로 이 색을 향유할 수 있게 되었다.

1960년대 들어 보라는 한 번 더 인기를 구가하게 되는데, 이번에는 반문화의 색으로 반항과 사이키델릭 아트, 양성애와 연관되었다. 21세기에 와서 보라는 제2의 여성 색으로 또다시 인기를 누리고 있다. 보라는 또 남성 동성애자와도 연관성을 갖게 되었는데, 동성애자 영화감독이자 화가인 데릭 저먼 Derek Jarman은 이렇게 말했다. "남성의 파란색과 여성의 빨간색을 합치면 기묘한 보라색이 나온다." 그 과정에서 보라는 장례식 색으로 선택되었다. 그 이유는 참회와 애도를 상징한다고 알려졌기 때문인데, 이런 관습은 오늘날의 타이에서도 계속 이어져 그곳 미망인들은 종종 보라색 옷을 입니다. 일본과 라틴 아메리카 일부 지역에서 보라는 죽음과도 연관된다. 이러한 전통은 남편 앨버트 공을 잃은 빅토리아 여왕에 의해 영국에서 생겨난 뒤 1950년대까지 지속되었다. 예를 들어 현 여왕의 아버지 조지 6세가 1952년 사망하자 웨스트엔드 가게 유리창마다 엷은 보라색 속옷이 진열되었다. - p.136


순백의 드레스를 입고 결혼한다면 그대는 옳은 선택을 한 것이다.

회색을 입고 결혼하면 먼 곳으로 떠나서 살 것이요,

검은색을 입으면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을 것이고,

빨간색을 입으면 차라리 죽었으면 하고 바랄 것이며,

청색을 입고 결혼하면 진실되게 살 것이고,

진주색을 입으면 혼란 속에서 살아갈 것이며,

초록색을 입으면 남 앞에 서기가 부끄러울 것이다.

노란색을 입으면 그대의 배우자가 부끄러워할 것이고,

갈색을 입으면 마을에서 나가 살게 될 것이며,

분홍색을 입고 결혼한다면 기운이 모두 떨어질 것이다. - p.173~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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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 2
공지영 지음 / 해냄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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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죄는 반복하고 변주한다


 그들의 울타리는 견고하다. 신을 매개로 한 주교와 신도의 사이에서의 믿음은 굳건하다. 그들이 세상에서 제일 강하다고 생각하는 신을 믿는 만큼이나 그들의 말을 이야기 해주는 신부의 입은 곧 법이다. 그 무엇으로도 뚫을 수 없는 물줄기를 그들은 자신의 야욕으로 자신의 배를 채우고, 급기야 그들을 집어 삼킨다. 아무도 모르게 교묘하게. 그렇게 계속해서 벌인 일들이 누군가에 의해 꼬리가 밟히면 그 사람에게 해코지를 한다. 그들이 이룬 모든 것들을 빼앗고, 몸과 마음 마저도 황폐하게 만든다. 다시는 그들이 설립한 왕국에 발도 들이지 못하게 하고, 그들에게 주홍글씨를 새겨 다른 이들에게 사나운 눈빛과, 종교를 왜곡하고 박해한다며 그들을 꾸짖는다. 목소리 조차 내지 못하게. 몸도 마음도, 재산도 잃어버린 그 이들은 여기저기 목소리를 내지만 이내 다른 신도들에게 입이 막혀 버린다.

 

그렇게 먹이사슬은 돌고, 돌며 그들의 모든 죄는 반복하고 변주하며 더 견고하게 그들을 집어 삼킨다. 실제 천주교의 비리와 부정에 대해 공지영 작가는 그들의 이야기를 그녀만의 필치로 녹여냈다. 이야기의 공간을 바꿔내고, 어느 사건이 떠올려지지만 우리는 소설 속에 등장하는 천주교 비리와 장애우를 현혹해 그들을 꿰어낸 한 여자의 사악한 모습을 보며 경악을 금치 못한다. 그럼에도 그들은 누군가로 하여금 보호를 받고 그와 동시에 그들을 탄압하는 무리에게 SNS를 통해 다층적으로 그들의 억울함을 호소한다. 마치 자신들이 그런 일이 없는 것처럼 말끔하게 포장하는 동시에 자신의 헌신적이면서도 종교에 몸을 담고 있는 신실한 천주교의 신부라는 직함을 내세우면서

 

 

 

누군가 그들의 이야기를 누가 믿겠나 싶지만, 요즘은 각종 SNS의 채널을 통해 이야기 할 수 있기에 그들은 그것들은 이용하여 최대한 진솔하게, 진실하게 글을 쓴다. 요즘에 개발된 또 하나의 보자기다. 얼굴과 이름, 자신의 직함을 내세우면서 말하는 그들의 목소리는 그들을 믿는 세력의 목소리가 되고, 메세지는 널리 널리 퍼진다. 그렇게 진실 아닌 진실을 누군가는 믿게 되고, 사건은 그렇게 은폐 되려고 한다. 새로운 먹이사슬이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정교한 현대 사회의 병폐라고 해야할지. 요즘은 다양한 시선으로 바라 볼 수 있는 매체들이 많다지만 각기 서로가 보고 싶어하는 것만 보고 생각한다.

올해 휴가를 다녀오다가 앞 좌석에 앉은 아주머니가 친구분과 대화를 막 나누더니 나중에서는 귀에 이어폰도 끼지 않고 친구가 전송해 준 동영상을 보는 것을 보았다. 좌우의 이야기가 아닌 한쪽의 시선으로만 이어진 영상을 오롯하게 보았고, 그것을 본 일행과 한 이야기는 좀 뜨악하다고 볼 수 밖에 없는 이야기였다. 없는 이야기도 지을 수 있는 공간이 우리의 손안에 있다.

 

 

공지영 작가의 책을 읽는 내내 쌉싸름한 초코렛을 입에 넣은 것처럼 씁쓸함이 입안에 계속 맴돌았다. 우리는 과연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 있을까. 책이나 영화, 아니 현실 속에서 지금도 일어난 일들에 대해 귀를 닫고, 침묵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일어난 일들에 대해서는 뉴스를 통해 알고 있지만 그들이 처한 상황에 대해서의 소식은 들을 수가 없고, 몇 년 후에 듣는 소식들은 선한 편이 아닌 그들의 편에선 결과만이 우리에게 전해져 올 뿐이다. 5년 만에 신작을 낸 공지영 작가 역시 시간이 지나도 <도가니> 때와 마찬가지로 선의의 손길을 보여야 할 그들의 모습들이 너무나 자주 빈번하게 혹은 그들을 목도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취재하고 글로 써서 많은 이들에게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많은 목소리 중에서도 그녀가 하는 소설 속 이야기는 그 어떤 세계보다 몰입의 경지가 높고, 읽다보면 그들의 이야기가 눈앞에 그려지기 때문에.

 

 

하나의 사건 속에서 백진우 신부와 해리의 부정은 하나의 목소리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여러 목소리가 전해져 나중에서는 정치적으로도 분열된다. 백진우 신부의 먹이사슬에서 해리 또한 그들의 먹이일 뿐이지만 이나를 통해 그간 해리가 왜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는지를 공지영 작가는 이나를 통해 이나와 대척점에 있는 해리에 대해 극한의 악인으로 그려낸다. 그녀가 왜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는지를 이해하지만 빠져나올 수 없는 늪으로 걸어간 여자, 해리. 그들에게 선한 손길을 내어줘도 모자른 그곳에 그녀는 오직 '돈'만이 보였고, 그들을 이용하여 돈을 뜯어냈다. 그 어떤 윤리에 대한 의식 없이 무자비하게.

일련의 사건들이 하나 둘 터질 때 마다 우리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지만, 다시 죄는 변주되고, 변주되어 우리에게 돌아온다. 무엇이 그들을 그토록 만들었으며, 우리는 왜 진실을 마주하고서도 그들의 입을, 그들의 손을 붙들지 못하는 것일까. 돈과 권력을 갖고 있는 자는 그 어떤 행동을 해도 다 용서되는 것일까. 책의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수 많은 물음들이 계속해서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들을 수사를 통해 붙잡는다고 해서 다시는 천주교에서 벌어진 이 무시무시한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고는 할 수 없는 이 고약한 상황을 우리는 언제는 마주하고 있다. 시공간이 바뀌어도 변함없이.

"인간은 변하지 않아요. 만일 변한 친구가 있다면 우리가 어려서 그를 잘못 본 거예요." - p.92​

 

출판서로부터 도서를 무료로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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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팬 인디고 아름다운 고전 리커버북 시리즈 6
제임스 매튜 배리 지음, 정지현 옮김, 김민지 그림 / 인디고(글담)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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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히 늙지 않는 아이의 이야기.


​ 유년시절 큼지막한 동화책으로 피터 팬을 만나본 것 같은데 머릿속에 지우개라도 달린 듯 그의 존재를 잊고 살았다. 어린시절 작은 꼬마 아이의 당돌함과 순수함에 빠져 그가 손을 내밀면 내미는 대로 따라 웬디처럼 그의 손을 잡고 그가 살고 있는 세계 속으로 빠져 들었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피터 팬의 손을 내려 놓고, 항상 피터 팬의 주위를 맴돌던 앙증맞은 요정 팅커 벨도 잊어버린채 시간은 아이의 시선이 아닌 어른의 눈으로 바뀌어 버렸고, 그렇게 그를 잊어 버렸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라고 생각될 정도로 나는 웬디와 같은 길을 걸었고, <피터 팬>의 첫 페이지, 첫 문장 속에 그려진 문장이야 말로 그를 압축해 말하고 있다. '아이들은 모두 자라 어른이 된다. 딱 한 명만 빼고 말이다.(p.12)



"팬, 넌 누구이고 무엇이냐?"

후크가 쉰 목소리로 외쳤다.

"난 젊음이고 기쁨이다. 난 알에서 깨어난 작은 새지." - p.285


인디고에서 나온 아름다운 고전 시리즈는 어린시절 읽었던 동화를 다시 접할 수 있는 동시에 아름다운 일러스트를 통해 다시 동심의 세계로 물들인다. 김지혁 작가의 일러스트를 굉장히 좋아하는데 <피터 팬>을 읽으면서 김민지 일러스트레이터의 그림에 푹 빠져 버렸다. 피터 팬과 팅커 벨, 후크 선장, 인디언등 그동안 잊고 있었던 추억의 인물들이 책 속에 등장한다. 맞아, 맞아. '피터 팬'이 이런 이야기였지, 하면서 책을 읽었다. 마치 감쪽같이 잊어버렸던 네버랜드 세계의 이야기들이 마치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것처럼 모든 기억들이 소환되고, 무시무시한 카리스마를 자랑하던 후크 선장을 들입다 만났을 때에는 기억과 달리 멋져 보이기도 했다.


어렸을 때는 피터 팬이 굉장히 멋진 주인공의 모습으로 그의 주위를 맴도는 팅커 벨과 함께 멋있게만 보였다. 그래서 그런지 다시 만난 두 아이는 순수하지만 변덕스럽고, 귀엽고 앙증맞지만, 어디로 튈지 모르는 고무공같은 성격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더 안심이 안되는 아이의 모습들이 숨어있다. 반면, 어른인 후크 선장은 변함없이 한결같다. 피터 팬으로 하여금 자신의 손이 갈고리로 대신 할 수 밖에 없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에 분노하고, 자신와 팔과 시계를 꿀꺽한 악어에 대한 두려움이 늘, 존재한다. 다시 만난다면 혼꾸녕을 내주겠다 단단히 벼르고 있는 후크 선장을 김민지 일러스트레이터는 그를 악인의 모습으로 무섭게 그리기 보다는 중후한 멋이 나도록 그려놓았다.


웬디와 피터가 다시 만났을 때, 웬디는 이미 결혼한 여인이 되어 있었다. 이제 웬디에게 피터는 어린 시절의 장난감을 넣어 두는 상자 속의 작은 먼지와도 같은 존재가 되어 버렸다. 웬디는 어른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웬디를 안타까워할 필요는 없다. 웬디는 원래 어른이 되고 싶어했고, 자신의 의지로 다른 소녀들보다 한 발 앞서 어른이 되었다.


이제 소년들도 모두 자라서 어른이 되어 있었다. 소년들의 이야기는 더는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쌍둥이와 닙스와 컬리는 매일 작은 가방과 우산을 들고 회사에 출근했고, 마이클은 기관사가 되었다. 슬라이틀리는 높은 가문의 여자와 결혼해서 귀족이 되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들려줄 옛날이야기 하나 알지 못하는, 저 수염 난 남자가 존이다. - p.318~319


그래서 그런지 아이였였을 때와 달리 피터 팬 보다는 후크 선장에 마음이 가고 웬디와 마이클의 환상과 호기심 보다는 달링씨와 달링부인의 이야기에 마음이 간다. 어린 시절 웬디 보다는 피터 팬과 함께 한 후 소녀가 아닌 한 남편의 부인으로서 아이의 엄마로서 성장한 웬디의 이야기의 공감하게 된다. 이미 피터 팬과 함께 하늘을 날아 그의 세계속으로 가기에는 수 많은 시간이 지났고, 나 또한 그들과 같이 어른이 되었기에 더이상은 그의 세계 속으로 진입이 되지 않나보다. 어쩌면 이제는 갈 수 없는 조건들로 하여금 더 이상 피터 팬의 손을 잡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는지도 모르겠다.


아무것도 모르는 시절, 순수한 호기심과 천연덕한 마음만이 움직일 수 있는 시간 속에서만 존재하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우리는 아이에서 어른으로 성장했고, 그를 상자의 먼지만큼이나 작게 느끼기도 했지만 여전히 피터 팬을 만나면 즐겁고 행복하다. 마치 유년시절의 앨범을 보는 것 같은 추억의 친구가 다가오는 것처럼. 나에게는 반짝거리는 너와의 만남이 기대되는 마음이 사그러졌지만, 아직도 많은 아이들은 너와의 만남을 기다리고 있어, 피터. 영원히 어른이 되지 않는 너의 모습이 너무나 반가웠고, 앞으로도 영원히 아이들의 친구가 되길 바래.


<피터 팬>을 읽다보면 그의 이야기 속에서 아이와 어른의 모습이 선명하게 갈리지면서도 동시에 인형극을 바라보듯 이 작품을 쓰는 저자의 목소리가 전해기도 한다.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겠어! 하고 말하듯 그의 목소리를 책 중간중간 들을 때마다 누군가 옆에서 옛날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1막 1장이 휘리릭 지나가는 느낌을 받았다. 이전에 느낄 수 없었던 느낌을 시간이 지나 아름다운 고전시리즈로, 리커버북으로 다시 만날 수 있어서 좋았다.


"왜 어린이 되면 나는 법을 잊어버려요?"

"어른들은 더는 명랑하고 순수하고 제멋대로이지도 않기 때문이야. 명랑하고 제멋대로인 사람만 날 수 있단다." - p.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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