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 2
공지영 지음 / 해냄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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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죄는 반복하고 변주한다


 그들의 울타리는 견고하다. 신을 매개로 한 주교와 신도의 사이에서의 믿음은 굳건하다. 그들이 세상에서 제일 강하다고 생각하는 신을 믿는 만큼이나 그들의 말을 이야기 해주는 신부의 입은 곧 법이다. 그 무엇으로도 뚫을 수 없는 물줄기를 그들은 자신의 야욕으로 자신의 배를 채우고, 급기야 그들을 집어 삼킨다. 아무도 모르게 교묘하게. 그렇게 계속해서 벌인 일들이 누군가에 의해 꼬리가 밟히면 그 사람에게 해코지를 한다. 그들이 이룬 모든 것들을 빼앗고, 몸과 마음 마저도 황폐하게 만든다. 다시는 그들이 설립한 왕국에 발도 들이지 못하게 하고, 그들에게 주홍글씨를 새겨 다른 이들에게 사나운 눈빛과, 종교를 왜곡하고 박해한다며 그들을 꾸짖는다. 목소리 조차 내지 못하게. 몸도 마음도, 재산도 잃어버린 그 이들은 여기저기 목소리를 내지만 이내 다른 신도들에게 입이 막혀 버린다.

 

그렇게 먹이사슬은 돌고, 돌며 그들의 모든 죄는 반복하고 변주하며 더 견고하게 그들을 집어 삼킨다. 실제 천주교의 비리와 부정에 대해 공지영 작가는 그들의 이야기를 그녀만의 필치로 녹여냈다. 이야기의 공간을 바꿔내고, 어느 사건이 떠올려지지만 우리는 소설 속에 등장하는 천주교 비리와 장애우를 현혹해 그들을 꿰어낸 한 여자의 사악한 모습을 보며 경악을 금치 못한다. 그럼에도 그들은 누군가로 하여금 보호를 받고 그와 동시에 그들을 탄압하는 무리에게 SNS를 통해 다층적으로 그들의 억울함을 호소한다. 마치 자신들이 그런 일이 없는 것처럼 말끔하게 포장하는 동시에 자신의 헌신적이면서도 종교에 몸을 담고 있는 신실한 천주교의 신부라는 직함을 내세우면서

 

 

 

누군가 그들의 이야기를 누가 믿겠나 싶지만, 요즘은 각종 SNS의 채널을 통해 이야기 할 수 있기에 그들은 그것들은 이용하여 최대한 진솔하게, 진실하게 글을 쓴다. 요즘에 개발된 또 하나의 보자기다. 얼굴과 이름, 자신의 직함을 내세우면서 말하는 그들의 목소리는 그들을 믿는 세력의 목소리가 되고, 메세지는 널리 널리 퍼진다. 그렇게 진실 아닌 진실을 누군가는 믿게 되고, 사건은 그렇게 은폐 되려고 한다. 새로운 먹이사슬이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정교한 현대 사회의 병폐라고 해야할지. 요즘은 다양한 시선으로 바라 볼 수 있는 매체들이 많다지만 각기 서로가 보고 싶어하는 것만 보고 생각한다.

올해 휴가를 다녀오다가 앞 좌석에 앉은 아주머니가 친구분과 대화를 막 나누더니 나중에서는 귀에 이어폰도 끼지 않고 친구가 전송해 준 동영상을 보는 것을 보았다. 좌우의 이야기가 아닌 한쪽의 시선으로만 이어진 영상을 오롯하게 보았고, 그것을 본 일행과 한 이야기는 좀 뜨악하다고 볼 수 밖에 없는 이야기였다. 없는 이야기도 지을 수 있는 공간이 우리의 손안에 있다.

 

 

공지영 작가의 책을 읽는 내내 쌉싸름한 초코렛을 입에 넣은 것처럼 씁쓸함이 입안에 계속 맴돌았다. 우리는 과연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 있을까. 책이나 영화, 아니 현실 속에서 지금도 일어난 일들에 대해 귀를 닫고, 침묵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일어난 일들에 대해서는 뉴스를 통해 알고 있지만 그들이 처한 상황에 대해서의 소식은 들을 수가 없고, 몇 년 후에 듣는 소식들은 선한 편이 아닌 그들의 편에선 결과만이 우리에게 전해져 올 뿐이다. 5년 만에 신작을 낸 공지영 작가 역시 시간이 지나도 <도가니> 때와 마찬가지로 선의의 손길을 보여야 할 그들의 모습들이 너무나 자주 빈번하게 혹은 그들을 목도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취재하고 글로 써서 많은 이들에게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많은 목소리 중에서도 그녀가 하는 소설 속 이야기는 그 어떤 세계보다 몰입의 경지가 높고, 읽다보면 그들의 이야기가 눈앞에 그려지기 때문에.

 

 

하나의 사건 속에서 백진우 신부와 해리의 부정은 하나의 목소리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여러 목소리가 전해져 나중에서는 정치적으로도 분열된다. 백진우 신부의 먹이사슬에서 해리 또한 그들의 먹이일 뿐이지만 이나를 통해 그간 해리가 왜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는지를 공지영 작가는 이나를 통해 이나와 대척점에 있는 해리에 대해 극한의 악인으로 그려낸다. 그녀가 왜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는지를 이해하지만 빠져나올 수 없는 늪으로 걸어간 여자, 해리. 그들에게 선한 손길을 내어줘도 모자른 그곳에 그녀는 오직 '돈'만이 보였고, 그들을 이용하여 돈을 뜯어냈다. 그 어떤 윤리에 대한 의식 없이 무자비하게.

일련의 사건들이 하나 둘 터질 때 마다 우리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지만, 다시 죄는 변주되고, 변주되어 우리에게 돌아온다. 무엇이 그들을 그토록 만들었으며, 우리는 왜 진실을 마주하고서도 그들의 입을, 그들의 손을 붙들지 못하는 것일까. 돈과 권력을 갖고 있는 자는 그 어떤 행동을 해도 다 용서되는 것일까. 책의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수 많은 물음들이 계속해서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들을 수사를 통해 붙잡는다고 해서 다시는 천주교에서 벌어진 이 무시무시한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고는 할 수 없는 이 고약한 상황을 우리는 언제는 마주하고 있다. 시공간이 바뀌어도 변함없이.

"인간은 변하지 않아요. 만일 변한 친구가 있다면 우리가 어려서 그를 잘못 본 거예요." - p.92​

 

출판서로부터 도서를 무료로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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