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사의 마지막 편지, 나를 닮고 싶은 너에게 - 삶.사람.사물을 대하는 김정희의 지혜
설흔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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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소설이다. 인문교양을 담고 있지만 형식은 픽션이기에 말이다. 그리고 서간문이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조근조근, 때로는 추상 같이 들려주는 삶의 자세에 대한 지침서이다.

 

글씨체뿐 아니라 조선 후기 한국사상사 차원에서도 우뚝한 일가를 이룬, 추사 김정희.

그의 문명은 멀리 중국 연경에까지 닿아 국경을 넘은 대학자들의 교유가 이루어지곤 했다.

그런 추사가 자신의 모든 것을 빼닮으려는 아들에게 스스로의 일가를 이루라고 일갈하고 있는 것이다.

 

나를 닮고 싶다던 네 문장이 떠오른다. 나를 닮지 말라던 내 문장이 떠오른다. 나를 닮고 싶다는 너의 요청에 끝내 나를 닮지 말라고 쓴 내 심정을 너는 족히 이해할 것이다. 나는 네가 닮아야 하되, 닮지 말아야 할 사람이다. 내가 부끄러워서가 아니다. 적어도 나는 부끄러운 삶을 살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이유는 명확하다. 내 늙은 고양이는 너에게서는 젊은 고양이로 바뀌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나의 벗 권돈인은 언젠가 내게 보내는 글에서 이렇게 썼다.

"봄은 무르익어 이슬이 무겁다. 땅이 따뜻해서 풀이 돋아난다. 산은 깊고 해는 길다. 인적은 없는데 향기는 사무친다."

나는 네가 그런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204-205쪽)

 

보통 아들은 아버지를 두려워하면서도 따르고 싶은 마음을 더불어 지니고 있다. 경외심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아들이 더 크게 뻗어나가기를 바라는 아버지라면 아들이 자신의 틀에 얽매어 있기를 바라지 않을 것이다. 알을 깨고 나아가기를 자극하고 고무할 것이다. 추사의 편지엔 온통 그런 아비의 심경이 절절하게 배어 있다. 아들을 아끼기에 때론 냉정하게, 어쩜 가혹하게 훈계의 질책을 가하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대목에 가서 드디어 벼르고 별렀던 말을 내뱉는다.

 

너의 세한도를 남겨라(199쪽)

 

이 한 마디에 모든 것이 함축되어 있다 하겠다. 천하의 세한도를 능가하려면 자신의 세계를 독자적으로 구축해야 한다는 강력한 메시지인 것이다. 그렇기에 추사의 마지막 편지는 일견 냉혹하게 여겨지지만 실은 따뜻한 부성을 듬뿍 담고 있다. 아비의 모방에 급급하지 말고 자신만의 개성을 찾아 스스로 일가를 이루라는 살가운 조언이기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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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노사이드
다카노 가즈아키 지음, 김수영 옮김 / 황금가지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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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는 구제불능인가?

더 이상 가망이 없는가?

종의 특성 상 결국은 멸망하고 말 사악하고 무기력한 존재인가?

 

[제노사이드]의 진단은 암울한 톤 일색이다. 대다수 현생인류의 지적 능력이나 도덕적 감수성으로 미뤄볼 때 여지가 없어 보인다고 경고하고 있다. 특히 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세력의 저급하고 무모한 측면을 까발리고 있는 대목에선 비관적인 쪽으로 동조할 수밖에 없게끔 만든다. 인류를 단번에 절멸시킬 핵단추를 충동적으로 눌러버릴 정도로 자제력 없고 도덕의식이 낮은 이가 미합중국 대통령직을 맡고 있는 모습에선 섬뜩하기까지 했다. 카우보이처럼 들떠서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하게 공격명령을 내리곤 하던 그는 결국 음부티족 캉가 밴드에서 태어난 피그미족 아키리를 제거하기 위해 네메시스 작전 개시를 명령한다. 더구나 참가한 대원들까지 모두 작전 종료 즉시 독약캡슐을 삼키고 죽도록 세팅되어 있음을 알면서도 태연자약하다. [제노사이드]에서 그리고 있는 일반인들의 모습도 그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 자기와 직접 이해관계가 없는 일에는 무관심하여 사태가 악화되는 것도 모르고 방관하며, 설령 알았다 하더라도 사태를 돌이킬 수 있는 역량을 갖고 있지 못하니 속수무책일 뿐이다. [제노사이드]에선 이처럼 현생인류의 치명적 약점인 지적 능력의 저급과 도덕의식의 결여를 냉정하게 곱씹어 보게 이끈다. 앞날이 어찌 될지도 모르면서 미쳐 날뛰고 있는 기괴한 몰골이 바로 우리들의 자화상임을.

 

모든 생물 중에서 인간만 같은 종끼리 제노사이드를 행하는 유일한 동물이기 때문이네. 이것이 사람이라는 생물의 정의야. 인간성이란 잔학성이란 말일세. 일찍이 지구 상에 있던 다른 종류의 인류, 원인이나 네안데르탈인도 현생인류에 의해 멸망되었다고 나는 보고 있네.(472)

 

반면 누스, 진화한 인류인 아키리는 슈퍼컴퓨터보다 뛰어난 지력에다 무한히 발달한 도덕의식을 보유하고 있는데 그런 의식의 소유자는 인간 중에 없기에 그를 이해하려면 신의 모습을 그려보면 될 것이다.

 

현생인류에서 진화한 다음 세대의 인간은 대뇌 신피질이 보다 크고 우리를 훨씬 능가하는 압도적인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 지적 능력을 올리비에는 이렇게 상상했다. ‘제4차원의 이해, 전체의 복잡한 상황을 단번에 파악할 수 있는 점, 제6감의 획득, 무한히 발달한 도덕의식 보유, 특히 우리의 지적 능력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정신적 특질의 소유’(247)

 

그렇다면 네메시스, 곧 천벌은 누구에게 내려지는 게 마땅하겠는가? 그 불길은 과대망상에 빠진 카우보이 같은 현생인류를 향하는 게 맞지 않을까?

 

그런데 이렇게 저급하고 부도덕한 인류가 그간 버텨올 수 있었던, 그리고 앞으로도 한동안 지속가능한 삶을 영위할 수 있을 것 같은 까닭은 무엇일까? 그건 아마 요소요소에 산재해 있는 a few goodman, 선의를 지닌 양심적인 이들의 자발적 헌신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런 소수마저 없었다면 소돔과 고모라처럼 불벼락을 맞아도 진즉에 맞았을 것이다. [제노사이드]에 등장하는 a few goodman, 그 빛나는 이름들을 불러본다.

 

#1 : 아서 루벤스와 몇몇 과학자들

 

슈나이더 연구소 분석관을 거쳐 네메시스 작전 책임자로 진두지휘하고 있는 아서 루벤스, 그는 임무 수행을 주도하면서도 어떻게 하면 희생을 줄일 수 있을까 늘 고민하는 흔들리는 갈대였다. 루벤스가 주목한 것은 인류를 위기로 몰아넣는 제1의 공적은 국가나 군산복합체 같은 추상적 존재가 아니라 현실에 존재하는 실존적 개인이었다. 국가의 인격이란 의사결정권자의 인격 바로 그 자체일 것이므로. 그리고 그 개인이 실은 얼마나 미욱한 존재인지 빤히 알고 있었다. 이런 위험성을 파악한 루벤스는 자신이 지니고 있는 유일한 무기인 보통 이상의 지력을 사용하여 그 개인의 잘못된 결정, 권한 남용을 막고자 지혜를 짠다. 그의 판단 여하에 따라 40여 명 피그미족의 목숨이 왔다 갔다 한다는 것을 뼈저리게 기억하며.

 

멜빈 가드너 박사나 하이즈먼 박사 같은 깨인 과학자들도 하나님의 천벌을 막아준 방패였다. 그들은 과학적 지성과 더불어 인간에 대한 성찰력도 지니고 있었다. 이들이 있었기에 무모한 작전에 대한 합리적이고 전문적인 대처가 가능했다. 가드너 박사는 파괴적인 과학보다 현생인류의 정신세계 자체가 위기로 치닫게 하는 결정적 요인임을 지적하였다.

 

무서운 것은 지력이 아니고, 하물며 무력도 아닙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그것을 사용하는 이의 인격입니다.(415)

 

#2 : 예거

 

내가 꼽는 [제노사이드]의 베스트 캐릭터는 조너선 예거이다. 예거의 용병 합류 계기는 리스본에 남아 있는 아들, 저스틴을 구하기 위해서였다. 막대한 치료비를 마련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네메시스 작전에 참여한 그는 기괴하게 보이는 아키리의 모습에서도 부성을 느낀다. 아들이 오버랩되었기 때문이다. 아키리가 비록 인간과는 다른 종족일지라도 그 여리디 여린 것을 연민의 눈으로 바라보며 사람다운 사람으로 키우고 싶다고 생각한다.

 

아키리는 인간과는 다른 종족인지 모르지만 지성과 인격을 가지고 태어난 이상, 강하고 올곧은 정신의 소유자가 되었으면 좋겠다. 만약 예거도 마음속으로 가지고 있는 유치하고 호전적인 일면에 사로잡히게 된다면 그야말로 믹이 말하는 위험한 존재가 될 터였다.(368)

 

심지어 예거는 동료인 믹이 소년병 게릴라들을 무차별 살상하는 것을 막기 위해 이를 제지하는 과정에서 그를 죽이는 불상사까지 저지르고 만다. 무고한 아이들의 희생을 막고자 생사고락을 같이 했던 동료에게 총탄을 안긴 것이다. 기지 넘치고 인간미까지 지닌 예거의 눈부신 활약으로 결국은 ......(스포일러 회피용...)

 

#3 : 사카이 유리

 

에마의 엄마, 사카이 유리는 겐토가 이 일에 끼어들어 신변에 위협을 느끼게 될까봐 통신용 (...색)컴퓨터를 회수하려 한다. 그런 마음 씀씀이도 모르고 겐토는 한때 아버지와의 불륜을 의심하며 그녀를 미워했다. 베일에 가려 있던 사카이 유리는 에마를 자기 호적에 입적시키고 누스를 구하려 일본과 미국, 그리고 아프리카 대륙을 연결하는 포스트 역할......(스포일러 회피용...)

 

#4 : 겐토와 정훈

 

우리의 히어로, 겐토와 정훈. 두 콤비의 모습은 여러 모로 상징적이다. 자연스런 인간애의 발로인 듯, 스스럼없이 가시밭길로 뛰어든 두 젊은이의 모습은 인류의 가능성에 기대를 걸게 만든다. 또 물과 기름처럼 어울리지 않는 한국과 일본의 정신적 분계선을 말끔히 지워버리려는 듯 아름다운 협력의 모습도 보여준다. 이들의 헌신과 몸을 아끼지 않는 노력으로 결국엔......(스포일러 회피용...)

 

이런 몇몇 a few good man들 때문에 인류는 건재할 수 있었을 것이다. 같은 인류에게, 또 대자연에게 극악무도한 패악을 끼쳐왔음에도 불구하고 겨우겨우 버텨올 수 있었던 것은 이들의 대가를 바라지 않는 헌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말이다. 그리고 이런 지력과 심성을 가진 이들이 아직 우리 주변에 있기에 앞으로도 당분간 종으로서의 현생인류는 절멸되지 않을 것이라 확신한다. 예거가, 겐토가, 정훈이 모습을 바꾸어 우리 곁에 있기에 말이다. 그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만약 나라면, 내가 사태를 돌이킬 수 있는 자리에 있었다면 그들과 같이 과감한 결단을 내릴 수 있었을까? 생각해보니 자신이 없다. 그러니 정말 대단하다고 인정할밖에. 그들의 고뇌에 찬 결단에, 명예와 이익을 탐하지 않는 순수한 헌신에 머리 숙인다. 하여 [제노사이드]의 결말은 대반전이라 하겠다. 암울한 가운데 한 줄기 서광이 가느다랗게 비치고 있음을, 그 얇디얇은 빛줄기에 많은 이들의 구원이 달려 있음을, 그리고 먹장구름 너머엔 아직 무지개가 드리워져 있음을 알려주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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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림 떨림 울림 - 이영광의 시가 있는 아침 나남시선 83
이영광 엮음 / 나남출판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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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선집이 약간 낯설게 느껴진다. 대개 이런 부류의 책은 텍스트가 주가 되고 여기에 약간의 코멘트를 곁들여 가볍게 소개하기 십상인데 [홀림 떨림 울림]은 선정자의 의도가 더 두드러지게 다가오는 듯해서다. 짧지만 시의 선정 및 배열, 거기에 깃들인 의미까지 포착한 시인의 해설은 울림이 깊고 오래 간다.

 

시인은 인간이 시에 반응을 보이는 과정을 홀림, 떨림, 울림의 세 단계로 분류한다. 우선 이것저것 연유를 따질 필요도 없이 우리 마음을 홀딱 빼앗아가는 홀림의 순간을 거쳐 서서히 본질을 알아차리고 지적, 의지적 반응과 결단을 보이는 순으로 이어진다고 본다.

 

좋은 시는 우선, 그저 좋다. 왜 좋은가는 그 다음이다. 좋은 시는 먼저 읽는 이에게서 생각이란 걸 빼앗아갔다가는, 천천히 되돌려주는 것 같다. 잃었던 정신을 차리고 느낌과 뜻을 골똘히 되짚어 수습하도록 만드는 그 짜릿짜릿한 수용 과정을 ‘홀림-떨림-울림’으로 요약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보았다. (4쪽)

 

그러면서 시인의 마음을 빼앗은 시 몇 편을 소개한다. 김종삼 시인의 ‘물통’이나 이면우 시인의 ‘동물왕국 중독증’ 같은 시 앞에 아연해진 모습을 고백한다. 시인을 홀린 시이니 과연 대단하다 하겠다. 또 떨림을 넘어 깊은 울림을 일으키는 시 앞에 먹먹해진 모습을 고스란히 드러내 보이기도 한다. 김광규 시인의 ‘묘비명’을 읽으며 부와 권력에 붓을 빌려주지 않겠다고 단언하는 모습에선 결기가 느껴진다.

 

천한 것이 언제나 더 세게 욕망한다. 역사는 아무 것이나 다 기록하지 않는다. 시인에게는 무덤이 필요 없다. (133쪽)

 

송경동 시인의 시에 대해서 그는 벼린 단칼로 양단해버리듯 섬뜩하게 선을 긋는다.

 

싸움을 사랑과 평화라 굳게 믿는 그는 감옥을 나와 또 ‘현장’에 있다. 목발을 짚고 걷는다고 한다. 이런 말들이 들려올 때, 나는 내가 성한 다리로 절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그는 과격하지 않다. 과격한 것ㄴ 저 투명한 ‘관계’다. 저것은 관계가 아니다. (152쪽)

 

마지막 대목에서 시인은 앞으로 어떻게 시를 써야 할지 단호히 밝힌다. 두보의 시를 빌어 자신의 시론을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시가 사람을 놀라게 하지 못하면 죽어서도 멈출 수 없다며 결코 말의 감옥에서 벗어나지 못할 운명과 사명을 얘기하고 있다.

 

하여 만만히 보고 덤볐다 자못 심각해져 시란 무엇인지, 시인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숙고하게 되었다 할까. 울림이 밑바닥까지 닿아 길게 이어지는 떨림에 한동안 정신 못 차리고 흠뻑 빠지게 만든 시선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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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는 어떻게 이동하는가 - 토플러가 말하는 제3 물결 정치학
앨빈 토플러 & 하이디 토플러 지음, 김원호 옮김 / 청림출판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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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결론 부분에 해당하는 9장은 앨빈과 하이디가 쓴 가상의 편지로 시작한다. 1787년 필라델피아에 모여 헌법 제정을 논의하던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을 수신자로 한 편지글에서 우리 역시 준엄한 선택의 기로에 서있음을 결연하게 선언하고 있다. 18세기 선각자들의 고뇌에 찬 결단, 위험을 감수하고 내린 과감한 선택이 오늘의 우리를 있게 했다고 밝히는 대목은 자못 비장하기까지 하다.

 

먼 미래로부터 들려오는 소리를 들었던 당신들은 하나의 문명이 죽어가고 새로운 문명이 탄생하고 있음을 감지했습니다. 그리고 당신들은 오늘날의 우리에게 현재가 되어 있는 미래를 만들어냈습니다. (178쪽)

 

그러면서 놀라운 발견이 이루어지고 환경이 변화하여 사람들의 태도와 견해가 달라진다면 법과 제도도 시대 변화에 걸맞게 달라져야 한다고 주장한 제퍼슨의 견해에 고무되며 이제 우리도 새로운 지평을 열어나가야 한다는 다짐도 곁들이고 있다.

 

지금까지 우리 사회를 존속시키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법과 제도의 제정 과정에 참여했던 제퍼슨 씨이지만, 그 무엇보다 이와 같은 지혜를 남겨주신 것에 대해 감사드리고자 합니다. 그리고 이제는 당신들이 남겨준 법과 제도가 다른 것으로 대체되어야 할 때가 되었다는 말씀도 드리고자 합니다.(181쪽)

 

토플러가 밝힌 새로운 법과 제도란 제3의 물결 문명을 정착시키기 위한 사회적 체제를 말한다. 이 책은 일관되게 제3의 물결 문명에 대해 얘기하고 있는데 앨빈과 하이디는 이런 문명을 누가, 어떤 방식의 질서로 구축해야 하는가에 대한 담론을 펴나가고 있는 것이다. 토플러는 우선 제3의 물결 문명이 순조롭게 정착되기 어렵다는 점을 환기시킨다. 기존 질서의 수혜자인 산업화와 대량화 체제 주도세력들이 제2의 물결 문명체제를 유지하려고 전방위적으로 저항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들의 기득권 수호에 맞서려면 새로운 세력이 의제를 선점하고 역량을 결집하여 제3의 물결 문명을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과거의 낡은 제도들과의 충돌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불확실성, 불안정성 및 혼란을 유발될 것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것은 더 이상 양보할 수 없는 시대의 지향으로 굳어졌다고 역설한다.

 

이런 변화의 물결을 선도하기 위한 정치적 원리 세 가지를 토플러는 제시하고 있다. 소수자들의 권력, 반직접민주주의, 의사결정의 분배가 그것이다. 개별화된 다양한 소수자들이 의사결정권을 갖고 타협에 의해 의사결정을 하자는 것과, 제2의 물결 방식 정치의 대명사인 대의제를 보완하기 위해 첨단 기법을 이용한 반직접민주주의가 도입되어야 하며, 또 의사결정의 부하를 분산하기 위해 다양한 단계에서 의사결정이 이루어지도록 하자는 제안이다. 이런 원리를 토대로 한 제3의 물결 정치를 신속하게 구축하기 위해서는 콘퍼런스, TV토론, 콘테스트, 시뮬레이션, 모의 제헌의회 등 다양한 방식으로 시민 참여를 유도해야 하며, 여기서 채택된 제안은 지방자치 차원 등 기초단위에서 시험을 거쳐 수정 보완한 후에 도입 범위를 확대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또 이런 과정을 이끌 주도세력을 길러내기 위해 사회적 학습을 도입하자는 안도 비중있게 다루고 있다. 결론적으로 토플러는 이런 모든 변화의 과정은 기본적으로 우리 자신에게 책임이 있다고 하면서 우리는 새로운 문명창조의 숙명을 안고 태어났다고 엄숙하게 선언하고 있다.

 

하여 이 책은 단순히 정치과정의 역동성에 대해 얘기하고 있는 것이 아니고 제3의 물결 문명 전반에 대한 담론을 제안하고 있는 문명론이라 하겠다. 그리고 이 담론이 현실화하려면 혁명적인 변화가 이루어져야 하는데 이는 기존세력의 저항을 감안하여 주도면밀하게 기획, 준비되고 공감대를 모으기 위한 과정을 다단계로 거쳐 돌이킬 수 없게끔 법과 제도로 정착시켜야 함을 증명해보였다. 그래서 이 책의 취지에 공감하는 이라면 우리도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처럼 결단해야 할 시점에 직면했다고 인식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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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가게 - 제13회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수상작 보름달문고 53
이나영 지음, 윤정주 그림 / 문학동네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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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뇌아 양성 컨베이어 시스템

 

[시간 가게]는 판타지다. 아니 르포르타주라 하는 게 맞겠다. 싱크로율 100%랄 정도로 우리 아이들의 모습을 고스란히 재현하고 있으니 말이다. 하긴 굳이 에두를 것 없이 있는 그대로의 모습만으로도 판타지도 그런 판타지가 없을 지경이니.

 

우리 사회 모든 문제를 초강력 흡인하고 있는 교육이라는 블랙홀, 그 중심에는 극단적인 탐욕이 똬리를 틀고 있다. 엄마들이 사교육 플랜을 밀어붙이며 겉으론 자아실현이니 봉사기회 부여니 하며 고상한 가치로 포장을 하지만 실은 이윤추구 동기가 꿈틀대고 있는 것이다. 교육을 통해 높은 학벌이라는 사회적 자본을 보유해야 경제적 이윤이 뒤따른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그들이니. 경제적 이윤을 독점하고 있는 극소수는 피라미드 저변을 이루고 있는 대다수가 상층부로 진입하는 것을 교묘하게 차단하려한다. 이를 시스템화하여 계층구조가 재생산되도록 고안된 장치가 학벌인 것이다. 이것을 일단 얻기만 하면 부와 권력과 명예는 자동으로 따라오게 되어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진입장벽이 너무 공고하여 웬만해서는 오를 수 없다는 데 있다. 그럼 당연히 뇌리에서 접어버리고 딴 길을 모색해야 할 텐데 오늘 여기 우리의 엄마들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가능성이 희박하여 한 치 앞이 보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오직 한 길, SKY로 상징되는 학벌 획득만이 피라미드의 정점에 오를 수 있는 배타적 노선이라 확신하며 무조건 올인하고 있는 것이다.

 

윤아 엄마도 이런 논리의 극단적 신봉자다. 윤아 엄마가 동원한 비책은 분초 단위의 시간관리 기법이다. 엄마가 수립한 계획에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따라주면 계층구조 재생산 장벽을 뚫고 상류사회로 진입할 수 있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는 것이다. 이를 위해 자아 성찰이나 학업에 대한 회의 따위는 철저히 금기시한다. 목표 달성에 장애가 되는 군더더기 짓으로 여기는 것이다. 그야말로 아무런 독자적 의식도 지니지 않은 무뇌아를 원하는 셈이다. 이런 무뇌아 양성 컨베이어 벨트에 윤아가 올려진 것이다.

 

시스템 스펙

 

시간 가게 할아버지가 있는 방, 나선형으로 이어진 벨트 중간에 작은 상자가 군데군데 놓여 있다. 파블로프의 개, 무뇌아 양성 시스템에 협조적인 아이들에게 내리는 상찬이다. 파블로프의 개는 먹이를 얻으려면 종소리에 집중해야 한다. 윤아도 인정과 칭찬을 받으려면 엄마가 짜둔 다음의 시스템 스펙에 충실하게 따라야 한다.

<무뇌아 양성 컨베이어 시스템 세부 설명서>

이 시스템은 [신분상승을 통한 이윤 획득 프로그램(SKY 버전)]이다. 이 시스템은 엄마와 사교육 기관에 의해 요람에서 무덤까지, 아니 SKY 합격 순간까지 가동되며 이후 부, 권력, 명예를 일생동안 무한 리필로 제공해준다. 핵심 가치는 시간 관리. 분초까지 엄밀하게 나누어 통제하는데 이는 시간의 값어치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초록시계를 거꾸로 돌려 시간을 10분만 더 얻으려 해도 과거의 소중했던 기억 하나를 송두리째 포기해야 할 정도로 큰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이 시스템에서 권장하는 미덕은 경쟁심과 독점적 지배욕이다. 오로지 피라미드 정점을 지향하는 데만 몰입해야 한다. 그러기에 분별력 따위는 필요 없고 무의식적으로 주어진 역할에 충실하기만을 바란다. 도덕적 판단, 자아 성찰, 공부 외의 요소에 대한 투자는 패널티! 가차 없이 옐로카드가 주어진다. 그런데 시스템에 업로드 되면 교환이나 환불은 절대로 불가능! 불량품은 재활용 불가, 그냥 폐기처분된다.

 

이런 시스템에 길들여진 윤아는 너무 쉽게 일탈행동을 한다.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초록 시계를 돌려 커닝을 하고 단짝인 수영과 미라 사이를 이간질하였으며 실과시간 준비물인 감자를 훔친다. 엄마의 패널티를 받지 않으려, 엄마의 계획에 충실하게 따르고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이처럼 사적인 차원의 이해와 배려만 미덕이 될 뿐 사회적 공공선에 대한 의식은 오늘 여기 한국 사회에서 결코 권장되지 않는다. 정의니 공정이니 하는 번거로운 것은 뇌리에서 아예 딜리트시켜 버린 것이다. 윤아는 스스럼없이 무뇌아 양성 시스템을 통해 학습한대로 실행한다. 그 결과 친구들의 눈에 윤아는 매력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아이로 비치게 된다. 소중한 것을 하나 둘 의미 없게 만들어버렸으니. 그저 공부만 조금 잘 하는 존재감 없는 아이일 뿐인 것이다.

 

시스템 부적응아의 자각

 

이 시스템에서 가끔씩 불량품이 나오기도 한다. 부적응아도 때론 있는 것이다. 하긴 윤아 엄마처럼 엄친아만 바라보는 이들은 전교 1등 수영이를 제외한 전원을 불량품으로 분류하기도 하였으니 없을 순 없다 하겠다. 빼어난 성적을 거둔 윤아 조차 하자있는 한심한 아이로 낙인찍는 모습이라니. 그러나 대부분은 그저 그런 정도로 이 시스템의 작동 원리에 순응하며 따라간다. 어느 곳을 향하는지 그게 자신에게 맞는지 성찰해볼 겨를, 아니 필요도 없이 자동 실행되는 프로그램에 따라 나아가는 것이다. 그러니 눈에 띄는 불량품은 거의 없는 셈이다. 그런데 윤아와 영훈은 시스템 작동원리에서 벗어난, 아니 사실은 시스템 작동원리에 충실하기 위한 의도로 자행된, 일탈행동을 한다. 그게 발각되지 않았기에 사회적 지탄으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본인들의 고뇌는 엄청났을 것이다. 그러면서 시스템 작동 원리 자체에 대한 의문을 품게 된다. 왜 이러고 사냐고, 소중한 기억 다 잃어버리고 그깟 1등을 하면 뭣하냐고 자문하기에 이른 것이다.

 

흐릿하게 얼비치는 희망의 무지개

 

시스템 부적응아, 일탈행동으로 궁지에 몰린 윤아는 새로운 세계를 경험한다. 이런 아찔한 상황에서도 아이들은 성장하는 법이다. 아빠와의 기억, 다현이와의 약속, 할머니의 따스한 감촉 같은 것이 얼마나 소중하고 행복한 것인지, 그동안 자신을 버텨오게 한 게 무엇인지 절감한 것이다. 그 순간 암울한 분위기 일색에서 가느다랗게 희망의 무지개가 얼비치는 듯했다.

 

머리로 만들어 낸 행복이 아니라, 몸과 마음이 기억을 하고 있는 것이어야지. 행복을 억지로 만들 수 있는 게 아니란다. (99쪽)

 

다행히 내게는 할머니, 아빠, 엄마, 여전히 베프인 다현이가 있다. 그리고 내 마음을 잘 읽는 영훈이가 있다. 어쩌면 수영이와 미라와도 조금 더 가깝게 지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 사람들을 통해 내 기억들을 찾고, 새로운 기억을 만들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자 앞으로의 이윤아의 모습이 궁금해지기까지 했다. (196쪽)

 

그리고 이제 나름의 방식으로 저항의 목소리를 낸다. 우선 시간 가게부터 방문하여 시계를 부숴버린다. 그것은 일대변혁이었다.

 

나는 있는 힘껏 발로 시계를 내리밟았다. 시계가 산산조각이 났다. “무슨 짓이야! 안 돼!” 할아버지가 내게 달려오고 있었다. ‘쩍......찌이익’ 온몸에 소름이 돋을 정로도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벽의 유리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쿠와아아아앙! 이번에는 둔중한 소리와 함께 커다란 컨베이어 벨트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위에 있던 상자들이 비처럼 후두둑 아래로 떨어지고 있었다. ‘째깍 째깍 째깍......’ 시계들이 내는 소리까지 더해져 아수라장이 따로 없었다. 천장과 벽의 금이 굵어지기 시작했다. 곧 무너질 것 같았다. 나는 머리를 감싸고 황급히 가게에서 빠져나왔다. 눈을 뜨기가 힘들게 강풍이 불고 있었다. 사람이 낼 수 있는 속도일까 싶게 빠르게 지나가는 사람들, 반대로 꼼짝 않고 돌처럼 멈춰 있는 사람들도 사이사이에 섞여 있었다. 휙휙 거친 소리를 내며 정신없이 흔들리는 나무들, 그에 반해 이파리 하나 움직이지 않고 얌전히 서 있는 나무들, 그 사이에 회오리가 몰아치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모든 것을 삼켜 버릴 것 같았다. 세상이 뒤집힐 것 같았다. (194-195쪽)

 

그리고 당당하게 달려가는 윤아. 윤아에겐 엄마의 잔소리도, 사회의 거대한 시스템도 이제 더 이상 장벽이 아니다. 시계를 밟아버린 용기와 결단으로 충분히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니.

 

윤아를 위해, 아니 우리 사회를 위해 이제 무엇을 할 것인가?

 

윤아의 행동이 사회에서 상찬 받고 보람 있는 결실로 이어지려면 어른들이 나서야 한다. 개인의 건전한 선택이 자기희생에 그쳐서는 안 될 것이니 말이다. 시간 가게를 혁파해야 한다. 아니 시간 가게가 아예 필요 없게 만들어야 한다. 교육 광풍이 불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그런 일이 과연 가능할까? 물론 단번에 이룰 수는 없겠지만 가능성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다. 우선 지역사회 차원에서 제기되고 있는 대안적 교육운동이 그 작은 물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교육 광풍에서 스스로 벗어나 나름의 방식으로 배우고 익히는 아이들을 불량품으로 취급하지 않고 소중하게 갈무리하여 앞길을 개척해나가도록 돕고 있는 이들에게서 희망의 싹을 발견한다. 또 특성화고, 마이스터고 등 대학 진학위주의 교육을 탈피한 기관의 부상도 바람직한 신호라 하겠다. 이런 제도적 노력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의식, 우리의 내심으로부터 학벌에 대한 숭배의식을 배제해야 하는 것이다. 다양한 방식의 교육과 여러 갈래 삶의 길이 존재하고 이들은 나름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잡힐 테니 말이다. 그리하여 시간보다 더 소중한 것이 있음을,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은 학벌만이 아님을 만인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일깨우고 또 여건을 조성해 나가야 할 것이다.

 

[시간 가게]는 발랄한 상상력으로 우리 아이들의 행복과 미래에 대해 성찰하게 만든 판타지이다. 아니 구조적 모순에 대한 자각과 단호한 결단의 메시지를 담고 있는 르포르타주였다. 아이들이 처한 실상을 또렷이 그려내어 우리는 과연 어디로 가고 있는지, 그러니 이제 어떻게 턴해야 할지 방향을 일러주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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