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민주화가 희망이다 - 손석춘 묻고 경제학자 유종일이 답하다 이슈북 6
유종일.손석춘 지음 / 알마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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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다시 시작이다

 

개표가 시작된 지 두세 시간만인 12월 19일 밤 9시경, 벌써 결과를 지레짐작한 듯 당선 예측 자막이 뜨기 시작했다. 아! 결국 이렇게 허망하게 끝나버리고 마는가, 이러다 혹 경제민주화 같은 개혁적 담론이 실종되는 건 아닌가 하는 탄식이 절로 나왔다.

 

이번 대선 기간 동안 경제민주화에 대해 어느 정도 얼개라도 잡았으면 하고 내심 기대했다. 그런데 논의가 지지부진 별 진전이 없더니 급기야 경제민주화에 소극적인 스탠스를 듯 취했던 후보가 덜컥 당선되어버린 것이다. 그러니 우려가 클밖에. 그런데 마음결 추스르려 애쓰며 곰곰 짚어보니 완전히 낙심할 것만은 아니라는 데 생각이 미쳤다. 어떤 일이건 처음부터 본궤도에 오르기는 어려운 법, 갖은 반발과 시행착오를 거친 연후에 비로소 자리를 잡아가는 것이 대부분이기에 말이다. 더구나 빈약하긴 하지만 당선자 측에서 공약한 것도 있으니 이를 제대로 실천하는지 검증하는 매니페스토 운동을 펼치며 지속적으로 압력을 행사하다보면 어느 정도 성과도 거둘 수 있지 않겠나 싶었다. 경제민주화 담론은 한번 반짝하다 사라질 의제가 아니다. 대선 같은 일합의 대회전을 통해 얻고 잃고 할 성질이 아니라 오랜 기간 담론을 축적하고 방향을 설정한 다음 정책을 개발, 추진해나가야 할 그랜드 플랜인 것이다. 그러니 너무 일희일비할 필요 없겠다고 다독였다.

 

대선 캠페인이 진행되는 동안 가장 의외였던 게 박근혜 후보 측에서 경제민주화 의제를 선점한 것이었다. 그것도 핵심공약 중 넘버원으로 말이다. 이게 웬일인가 하여 조목조목 따져보니 정치 공학적 꼼수가 또렷이 읽혔다. 그래도 얼마 전까지 이런 얘기를 입만 뻥긋해도 빨갱이라고 서슬 퍼렇게 질타하던 그들이었는데 무리했다 싶었다. 더 의외였던 것은 후보자 본인은 정작 어떤 성격의 담론인지 실체를 제대로 파악조차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신자유주의 캐치프레이즈인 줄푸세를 주장하면서 그와 양립할 수 없는 개념인 경제민주화를 부르짖고 있었으니. 경제민주화를 재벌 개혁, 그것도 기존의 지배구조는 그대로 두고 행태만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정도의 정책적 배려로 알고 있는 수준이니 순진한 건지, 무지한 것인지 요해가 되지 않았다. 그러니 선거 승리를 위한 일회성 깜짝 이벤트, 포퓰리즘적 구호로밖에 여겨지지 않았다. 그러니 심란했달 밖에.

 

후보자간 토론이 한참 진행되는 동안 이런 복잡한 심경을 명료하게 정리하고 캠페인의 진정성을 꿰뚫어보려면 경제민주화 담론에 대해 제대로 알 필요가 있겠다 싶어 유종일의 [경제민주화가 희망이다]를 잡게 되었다. 그는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시절 경제정책 구상의 일익을 담당했고 이제는 야인으로 경제민주화 담론의 불씨를 지피고 있는 이 분야의 대가였다. 그는 먼저 세 후보의 무개념, 탈개념, 비개념을 통렬하게 나무란다. 개념이 아예 없거나 아니면 논점에서 일탈했으며 또 개념이 아닌 것을 움켜잡고 경제민주화라고 강변하고 있다고 개탄한다. 하여 유종일은 우선 경제민주화의 개념부터 선명하게 규정하였는데 그가 꼽는 경제민주화란 공정경쟁, 참여경제, 분배정의 실현을 통한 민주적 시장경제 구축이라고 정리할 수 있다.

 

먼저 불공정 경쟁, 약육강식이 횡행하고 있는 한국의 정글 자본주의를 지적하고 있다. 이런 구조적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선 중소기업과 골목 상권을 보호하고 하청기업에 대한 하도급 거래의 공정성을 확보하며 상호출자, 순환출자 등의 편법을 통한 경영권 지배 행태를 보이고 있는 재벌구조를 개혁하여 공정 경쟁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또 경제민주화는 소수 주도로는 이루기 어렵고 만인의 참여로 더불어 함께하는 경제 과정이어야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유종일은 이와 관련하여 노동민주화에 방점을 굵게 찍고 있다. 노동권이 신장되고 노동자들이 경제활동의 주역으로 인정받으며 시장에 참여하는 것 말이다. 이를 위한 구체적 대안으로 산별교섭체계로 단체교섭 형태를 바꾸어야 하며 교섭 과정에서 합의된 내용은 교섭 비참여 부분까지 효력이 확대 적용되어야 한다고 제안한다. 시대의 핫 이슈인 비정규직문제는 가급적 줄여 나가는 방향이 바람직한데 부득이한 경우 고액의 고용안정수당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실효성 있는 정책적 제안을 하고 있다. 노동시간을 줄여 저녁이 있는 삶을 보장하거나 협동조합, 시민참여공기업, 사회적 기업, 커뮤니티 비즈니스 등 비자본주의적 사회 경제부분을 늘려나가야 한다는 제안도 의미심장한 대목이다.

 

노동민주화는 사회 복지 실현의 전제가 되기도 하다. 또 노동에서 소외된 이들을 위한 최소한의 사회안전망을 구축하고 소득재분배 정책 등을 시행하여 점진적으로 보편적 복지를 지향해나가는 분배 정의 실현도 경제민주화의 한 축으로 제시하고 있다.

 

유종일은 이런 그랜드 플랜을 일관되게 기획, 추진하기 위해 옛날 경제기획원 같은 기구인 경제민주화원의 신설을 제안한다. 정부조직을 개편하여 돌이킬 수 없게 대목을 박는 제도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인간적 선의에 호소하는 것으로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인적구성이 바뀌었을 때 개혁이 좌초될 위험에 처하는 것은 역사가 말해주는 교훈이기 때문이다. 경제민주화를 총괄 기획할 이 기관에 예산 및 기획의 전권을 부여하고 힘을 실어준다면 경제민주화가 더 빨리, 체계적으로 실현될 수 있을 것이다.

 

유종일은 이런 모든 경제민주화 노력을 통해 궁극적으로 민주적 시장경제체제를 수립하자고 주장한다. 이는 시장의 공정성을 확보하고 노동자와 서민의 복리후생을 증진시키며 고용 안정을 이루는 경제적 차원을 넘어 환경보호와 지역사회 기여 등까지 아우르는 개념으로 외연이 확장된 것이다. 유종일은 이런 시스템이 경제 살리기에도 도움이 된다고 본다. 대기업과 소수 특권층만을 위한 경제 운영이 아니라 해고노동자, 비정규직, 농민, 도시빈민 및 2030세대의 경제활동 참여를 통해 경제 전반의 활력을 회복하는데도 유효하게 작용하리라 믿고 있는 것이다.

 

불씨를 살려야 한다

 

이런 그의 간곡한 제안이 아무런 울림 없이 증발해버려서는 안 될 것이다. 다시 한 번 뜨거운 담론의 중심으로 공론의 무대에 부상해야만 한다. 대선이 끝났다고 싹 거둬들일 성질이 아니기 때문이다. 피할 수 없는 이슈, 그 어떤 세력도 결코 외면할 수 없는 우리 시대의 절박한 화두인 것이다. 이를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나 보수 언론에서 명심했으면 한다. 자칫 가볍게 여겨 지나쳐버린다면 상상할 수 없는 거센 후폭풍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공약 실천 여부를 지켜보고 있는 많은 시선, 그 따가운 눈총을 피할 길이 없을 것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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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를 위한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 1 어린이를 위한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 1
한비야 지음, 김무연 그림 / 푸른숲주니어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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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이 책 원전을 처음 접하고서 무릎을 쳤던 기억이 난다. 이건 정말 대단한 얘기다. 인생의 새로운 단계로의 전환 과정을 이처럼 극적으로 실감나게 기록할 수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알다시피 한비야 님은 [바람의 딸]시리즈로 유명한 분이다. 자칭 오지여행가로서 널리 각인되어 있다. 그런데 그 책을 통해 자신은 더 이상 오지여행가가 아니고 긴급구호활동가로 변신하였음을 알린다. 그리고 과거 자신의 사고의 편협함에 대한 반성도 곁들이고 있고. 그러면서 절절하게 이야기를 풀어나가는데 정말 쏙 빨려들 밖에. 하여 그의 변신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축복하며 대단하다고 인정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나에게도 적용해보고 부끄러워졌던 기억에 아직도 화끈거리는 것 같다.

 

그런데 그 때 생각이 났던 게 이런 얘기를 의식이 굳어진 사람들에게 하면 머리로는 이해가 되는 데 가슴으로 손으로 이어지지 않을 것 같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세상을 바꿔나가는 데 직접적으로 기여하기 어렵지 않을까 염려되었다. 그런 고민을 하던 중에 이번에 어린이를 위한 개정판이 나왔다기에 정말 반가웠다. 내 염려를 한순간에 해소한 듯 해서다. 이런 얘기는 어릴 때 내면에 각인될수록 효과가 큰 법이니 말이다.

 

이 책은 원전과 달리 어린이를 위한 배려로 가득하다. 우선 내용을 쉽게 풀어쓴 것은 물론이고 사진과 삽화가 많이 실려 있어 친근하게 다가온다. 더구나 어떤 곳에선 사진 위에 삽화를 덧씌워 애니메이션 효과도 내고 있다. 아이들 눈높이에 딱 맞을 듯했다.

 

한비야 님은 월드비전 긴급구호팀장을 그만두고 유학길에 올라 긴급구호활동의 이론적 배경을 쌓고 있다 들었다. 곧 돌아와 더 성숙한 모습으로 긴급구호현장을 누비리라 믿는다. 그의 이런 모습이 미래의 비전을 설계하고 있는 어린이들에게 많이 알려지고 공감의 폭이 넓어졌으면 한다. 판검사와 의사를 꿈꾸기만 하는 한심한 한국의 어린이들이 인류를 위해, 지구를 위해 즐거이, 기꺼이 나아갈 수 있는 꿈을 꾸는 데 이 책은 크게 기여할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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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책읽기 - 김현의 일기 1986~1989
김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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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김현의 [행복한 책읽기]를 다시 꺼내 본다. 늘 마음에 새기기 위해 책상머리 눈에 잘 띄는 책꽂이에 모셔두었는데 너무 오래 외면한 탓인지 종이가 바래고 먼지도 수북하다. 몇 장 들추다 갈피를 접어둔 부분이 눈에 들어왔는데 오늘 다시 읽어도 아릿해진다. 이런 게 글이구나 싶다. 일기 형식으로 기록한 독후감은 요즘은 장정일이다, 누구다 하여 널리 성행하는 방식의 글쓰기이지만 원조는 아무래도 김현 님이지 싶다.(내가 과문해서인지 모르지만) 짧게 일기 형식으로 쓴 글인데 어찌 이렇게 많은 생각거리를 함축하고 있는지 아득해진다. 1988년 7월 12일과 17일 일기를 짧게 소개한다.

 

7.12

'폭력에서의 도피'라는 제목으로 쓰고 싶은 글 : 아주 심한 폭력은 육체의 자기 방어 본능 때문에, 그 폭력과 관계된 상황에 대한 기억상실증을 유발하기도 한다. 예 : 김국태의 어떤 소설(육이오 때 강간당한 어머니에 대한 아이들의 기억상실증. 그 제목이 뭐더라?), 임철우의 [사산하는 여름] 최윤의 데뷔작. 조금 더 작품을 모아볼 것.

 

7.17

타자의 철학 : 공포는 동일자가 갑자기 타자가 되는 데서 생겨난다. 타자가 동일자가 될 때 사랑이 싹튼다. 타자의 변모는 경이이며 공포다. 타자가 언제나 타자일 때, 그것은 돌이나 풀과 같다.

 

책 여백에 휘갈긴 메모가 '탁견'으로 되어있다. 다시 읽어도 정말 무릎을 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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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 - 제10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천명관 지음 / 문학동네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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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작품, 특히 소설에 관한 한 작가나 독자 모두 호흡이 짧은 시대가 되었다. 19세기말에서 20세기 초까지 유행했던 대하장편 같은 장르는 대중들의 지적 구조나 심정적 성향에 더 이상 맞지 않는다. 이를 반영하듯 요즘 소설은 대개 서사나 구성에 있어서 한 주제를 좁고 깊게 천착하여 개인의 의식 등 미시적 측면에 초점을 맞춘 작품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하겠다. [고래]는 이런 트랜드가 지배하고 있는 상황에서 보기 드문 매우 예외적인 작품이라 하겠다. 비록 한 권에 담긴 얘기지만 소재, 서사 진행, 구성 등 모든 면에서 긴 호흡을 요하는 그야말로 장편이라 이름 붙이기에 적합한 작품인 것이다. 그것도 어느 한 대목 긴장감이 떨어지는 부분 없이 한결같이 흡인력을 유지하고 있다. 간만에 제대로 만난 기분이다.

 

요즘 흔히들 소설 쓰지 마라! 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내뱉곤 한다. 터무니없는 거짓말 하지 말란 얘기다. 우리의 소설이 근거 없이 꾸며대는 허황된 얘기로 전락해버린 것이다. 저속한 이들의 거두절미 단정이라고 폄하할 수도 있겠지만 작가들이 얼마나 대중들에게 공감 가는 얘기를 리얼하게 들려주지 못했으면 이런 매도까지 당할까 하고 성찰해봐야 할 대목이기도 하다. 감동적인 한 편을 후련하게 읽었다면 이런 게 과연 소설이구나! 하고 절감하며 함부로 비하하지 못했을 것이니 말이다. 그런데 이렇게 소설을 깔보는 이들도 [고래]를 읽고 나면 생각이 달라지지 않을까 지레짐작해본다. 영양가 없는 엉터리만은 아니구나 하고 단번에 느끼게 될 것이니. 그만큼 소설다운 소설이라 하겠다.

 

구성이나 서사 면에서 복잡다단하기 이를 데 없는 [고래]를 한마디로 규정하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나름의 분류를 하자면 환타지를 가미한 영상소설로 읽힌다. [고래]에는 시점을 자유자재로 이동하거나 죽은 자들이 수시로 등장하여 산 자와 소통하고, 코끼리 같은 동물과 교감하는 등, 현실과 환상이 교차하는 환타지적 요소가 다분하다. 또 다양한 공간에 대한 세밀한 묘사, 사건의 리얼한 구성, 생생하고 극적인 서사 전개와 대화 및 장면 전환 등은 드라마나 영화 같은 영상을 떠올리게 한다. 더구나 작가의 시나리오 창작 경험에서 비롯된 듯 영화적인 소재나 기법 자체를 많이 차용하고 있다. 금복이 사랑했던 칼자국이 영화관 기도(경비용역)이었고 벽돌공장에서 부를 축적한 금복이 평대에 고래 모양의 극장을 지었다거나, [포레스트 검프]의 깃털 날리는 아이디어를 차용한 듯 수시로 이야기 연결 고리로 등장하는 바람결이라든지, 춘희가 코끼리 점보의 등을 타고 하늘을 나는 장면은 스티븐 스필버그의 [ET}를 떠올리게 한다.

 

[고래]는 영웅들의 장려한 기록을 담은 설화이다. 그 영웅은 천하장사 걱정, 희대의 건달 칼자국, 페로몬 향으로 범벅이 된 금복, 붉은 벽돌의 여왕 춘희 뿐 아니라 이름을 들 수 없을 정도로 허다한 이들로 등장한다. 그들이 펼치는 활극 같은 시원시원한 얘기들이 끝도 없이 펼쳐진다. 그런데 이런 영웅들의 얘기가 뜬금없고 허황하게 들리지 않는다. 왠지 살갑고 우리 주변에서 흔히 마주칠 것 같은 정겨움까지 느껴진다. 그것은 우리네 삶의 축소판을 리얼하게 포착하여 치밀하게 재현한 작가의 역량 때문일 것이다. 작가는 영웅 설화에 살을 입히고 피가 돌게 만든다. 하여 이 허구의 얘기를 감동적이리만치 순정하고 치열한 진실로 받아들이게 하고 있는 것이다.

 

[고래]를 완독하고 나면 그동안 좀처럼 누리지 못했던 특이한 만족감에 뿌듯해질 것이다. 책읽기의 즐거움이 어떤 것인지 새삼 느끼게 될 것이다. 그러면서 함부로 말해왔던 소설의 위상에 대해 다시 생각하며 이제 신중해질 것이다. 이런 묘미가 있구나! 하는 경탄이 나올 것이다. 하여 [고래]는 소설의 권위를 다시금 깨닫게 한 기념비적 작품이라 하겠다.

 

 

무모한 열정과 정념, 어리석은 미혹과 무지, 믿기지 않는 행운과 오해, 끔찍한 살인과 유랑, 비천한 욕망과 증오, 기이한 변신과 모순, 숨 가쁘게 굴곡졌던 영욕과 성쇠는 스크린이 불에 타 없어지는 순간,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함과 아이러니로 가득 찬, 그 혹은 그녀의 거대한 삶과 함께 비눗방울처럼 삽시간에 사라지고 말았다.(30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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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바위 - 꿈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이순원 지음 / 북극곰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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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글 물결에 실어 보낸 고향 마을 뒷산 고래바위가 긴 여정 끝에 내 마음의 바다에 닿아 이제 막 깃들려합니다. 처음엔 큰 야심을 품고 바다에 이르러 대왕고래를 만나봐야겠다는 맘이었지만 어느 순간 벼락같이 다가온 시간의 물결에 휩쓸려 낮아지고 작아진 끝에 그예 명개, 작은 티끌만한 크기로 바다에 닿은 얘기가 남의 일 같지 않기 때문입니다. 작가는, 아니 고래바위에서 떨어져 나온 머릿돌은 내게 말합니다. 작아져야 한다, 둥글게 바뀌어야 한다, 결국 먼지가 되어 이름 없이 미약한 것이 되어야 비로소 처음 뜻을 이룰 수 있다고 속삭입니다.

 

하여 이 동시처럼 술술 읽히는 얇은 책이 말하고 있는 얘기의 무게는 그리 가볍지 않습니다. 우리네 삶, 아니 내 맘을 그대로 투영한 듯 다가왔던 것입니다. 읽는 내내 그럼 나는 어떤 돌 쯤 될까 하고 헤아려보곤 했습니다. 고래바위 몸통, 분명 아닐 것입니다. 모든 돌들이 선망하는 그런 그릇하곤 거리가 있을 테니까요. 떨어져 나와 산 중턱에 자리 잡았던 너럭바위 같은 넉넉함도 없으니 그도 아닐 듯하고, 결국은 강이 막 시작되는 초입까지 굴러 떨어져 조그마해진, 그러면서도 아직 뾰족한 게 날카로운 습성을 지니고 있는 돌이 딱 제 모습이라는 데 생각이 미쳤습니다. 세상 물정 모르고 여전히 결기나 뿜고, 스스로를 늘 과대평가하기만 하는 제가 오버랩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 내게 작가는, 아니 고래바위 파편은 이렇게 충고하고 있습니다.

 

이 강엔 자기처럼

바다를 꿈꾸는 징검돌도 있고,

이른 봄 강둑에 피어난 꽃들의 향기를 따라

바다로 나가는 어린 고기들도 있고,

가을이면 가깝고 먼 바다에서

다시 자기가 태어난 곳으로

알을 낳으러 목숨을 걸고 올라오는

어미 고기들도 있었다.

새로운 삶과 희생이

강과 함께 있었다.(113쪽)

 

산맥 꼭대기 고래바위 시절의 욕심도,

너럭바위와 뾰족바위 시절의 욕심도,

징검돌과 빨랫돌 시절의 욕심도,

주먹돌과 조약돌, 공깃돌 시절까지도

고래보다 더 크게 자리하고 있던 욕심을

강물에 다 씻어버리며

여기까지 온 것 같아.(153쪽)

 

결국은 비우고 낮추고 버리라는 얘기이지요. 늘 작은 탐욕에 눈이 어두워 큰일을 그르치곤 하던, 내 것이라면 움켜지고 목매달아 하던, 그 소아병에서 놓여나 자신을 던지라고 일깨웁니다. 딱 나를 향해 말하고 있지요. 그런데 걱정인 것은 지금은 전적으로 공감하고 맞다, 꼭 뇌리에 새겨야지 하고 마음먹지만 또 어떻게 바뀔지 알 수 없다는 데 있습니다. 아직 뾰족한 돌이니 어떻게 튈지 통제 불능이니까요. 하지만 고래바위가 전해 준 말의 여운은 남아 있겠지요. 언젠가 다시 욕심이 일어나고 나를 던져야 하는 상황에서 망설일 때 그때 고래바위가 생각났으면 좋겠습니다. 바다에 닿으려면 희생하고 낮아지고 작아져야만 한다는 전언이 벼락같이 날 일깨우기만 한다면 나도 명개가 되어 그예 바다에 이르고야 말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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