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구리 민음사 모던 클래식 58
모옌 지음, 심규호.유소영 옮김 / 민음사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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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책을 잡으면서 약간 경원시하는 마음이랄까, 하여간 비판적 태도부터 앞섰다고 고백해야겠다. 고은 시인이나 [1Q84]를 쓴 무라카미 하루키를 밀어내고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의 작품이니 말이다. 과연 노벨상 감인지 궁금해 하며 나름의 잣대로 노벨상 위원회의 안목을 평가해보려는 무모한 생각 때문에 솔직히 마음결이 곱게 정리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그런 거리낌은 곧 사라졌다. ‘과연’이 ‘역시’로 바뀌는데 얼마 걸리지 않았다. 소재의 장대함과 내용의 깊이, 다양한 실험 등이 녹아있는 그야말로 걸작이라 평하기에 손색이 없는 작품이었던 것이다. 영화 [붉은 수수밭]의 원작자에서 [개구리]의 작가로 강렬하게 각인시켰다 하겠다. 많은 미덕을 지니고 있는 이 작품에서 특히 두드러지게 내게 다가온 점은 융합의 미학으로 민중들의 삶을 리얼하게 그려내었다는 것이다. 내용상에 있어서는 신화와 현실이, 형식 측면에서는 서간문, 소설 및 희곡 장르를 아우르고 있었다.

 

신화와 현실의 융합

 

[개구리]는 거의 자전소설로 봐도 무방하리만치 작가의 고향인 가오미 둥베이 향에서 수십 년 동안 벌어진 민중들의 삶이 치밀하게 그려져 있다. 특히 작가의 고모와 얽힌 계획생육, 즉 가족계획사업 정책과 관련한 많은 에피소드가 이어진다. 그런데 이런 리얼리즘적 묘사와 더불어 가끔씩 신화의 영역을 차용하여 흥미를 더하고 몰입하게 만든다. 이를테면 고모가 퇴직하던 날 술에 취한 상태에서 고모가 경험한 일들처럼 말이다. 아니 꿈을 꿨을 수도 있겠다. 개구리들 틈바구니에서 간신히 도망쳐 나온 얘기는 신화와 현실의 경계를 넘나든다. 이는 고모의 무의식에 잠재되어 있는 계획 생육 정책 수행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따른 희생, 이를 주도한 장본인으로서의 미안함 그리고 그 과정에서 고모가 입은 트라우마들이 빚어낸 마음 한구석의 움직임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또 점토 인형 공예가 두 명의 작품에 투영된 무속적 요소도 환상의 세계를 열어 보인다. 고모는 결국 그 중 한 명과 결혼하여 업무 추진 과정에서 본의 아니게 목숨을 앗아간 아이들에 대한 속죄의 마음을 담기도 하였다. 이처럼 꼼꼼하게 현실을 그리되 현실을 넘어선 환상의 세계를 곁들여 작중 인물들의 속마음을 표현하고 독자들의 시선을 흡인하고 있다.

 

소설, 서간문 및 희곡의 융합

 

[개구리]가 소설적 완성도 측면에서도 높이 평가받을 수 있는 것은 장르적 실험을 담아냈다는 점이다. 앞부분에서는 일본 작가, 아마 오에 겐자부로이지 싶은, 와 교환한 서간 형식을 빌어 자신과 고모의 삶과 중국 민중들의 역사를 그리고 있다. 소설 중반부부터는 정통 소설 형식으로 스토리를 풀어나가다 말미에 이르러서는 희곡 대본을 통해 환상과 현실을 오가며 중국 민중들의 무의식을 드러내고 있다. 마지막에 이르러 고모가 무대 위에서 목을 매는 장면까지 보여주어 고모의 잠재의식에 드리워 있는 죄의식에 대한 자기 징벌 및 사면의 속죄의식을 잘 나타내고 있다. 소설식 서술로 풀어나갔다면 극적이지 않고 작위적이었을 대목을 희곡 형식으로 실감나게, 자연스럽게 연출한 것이다.

 

이처럼 [개구리]는 내용이나 형식 측면에서 다양한 요소와 장르가 융합되어 복잡다기한 인간의 삶을 심층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하여 작가의 역량을 한껏 드러낸 대표작이라 해도 무방하리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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랩으로 인문학 하기 - 랩과 힙합 속 인문 정신을 만나다
박하재홍 지음 / 탐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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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쩜 우린 선입견으로 세팅되어 있는 자동기계가 아닐까 싶다. 뇌리에 붙박여 있는 관념들에 얽매어 사고의 유연성을 스스로 차단하곤 하니까 말이다. 랩(Rap)에 대한 생각도 예외가 아닐 터. 랩뮤직이라 하면 으레 파괴와 반항, 청소년기의 데카당스부터 떠올린다. 그러니 자연 백안시할 밖에. 하긴 갱스터랩, 디스(dis)랩 같은 장르도 있으니 그럴 법도 하다. 그런데 박하재홍의 [랩으로 인문학 하기]는 이런 통념을 일거에 깨뜨리고 있다. 혼란스럽다. 랩이 성찰과 존중을 담고 있다니.


하지만 랩을 문학에, 래퍼를 작가에 비유하며 풀어나가는 얘기를 얼마쯤 듣고 있으려니 절로 무릎을 치고 고개를 끄덕이며, 쿠웅 ~ 딱의 리듬으로, 따라 읽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는 래퍼들 간 다툼으로 두 명의 생명을 잃은 다음 반성과 성찰의 움직임이 일어나면서 디스(dis)보다 피스(peace)를 외치는 쪽으로 랩의 트렌드가 선회하였음을 얘기한다. 그러면서 랩이 원래 약자들의 평화로운 항변을 담은 온건한 담론에서 비롯된 것이기에 공격적, 마초적이지 않고 존중과 성찰의 가치, 긍정의 미학을 노래하고 있다고 밝힌다.


필자를 통해 눈뜨게 된 사실은 래퍼들이 정말 다채로운 이야기와 음악을 통해 인문정신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 흥겨우면서도 진지하게 펼치는 랩 속에는 철학, 문학, 역사, 예술 등 온갖 인문학의 정수들이 담겨 있다. 랩으로 하는 인문학. 잘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조합이 이처럼 절묘하게 어울릴 줄이야. 환경캠페인에 참여하여 테마에 맞는 힙합 공연을 하고, 전쟁 반대 시민운동가들의 거리 퍼포먼스에 참여하여 관심을 고조하기도 하였으며, 인문학 책방 전국 순회공연으로 동네 책방 활성화를 기하기도 하다가 공정 여행으로 팔레스타인 추수 캠프에 참석하여 랩으로 평화를 노래하기까지 했으니.


이 책의 압권은 크게 두 부분. 하나는 국내 래퍼들의 글을 소개하고 인문정신으로 해석한 대목이고 다른 하나는 랩의 형식에 근접한 포이트리 슬램(poetry slam)이라는 장르를 청소년들에게 적용하는 방식을 소개하고 또 실제 창작된 작품을 보여준 것이다. 국내 래퍼들의 작품은 재기발랄하고 의미심장한 것 투성이였고 그 속에 잠재된 인문학적 의미를 밝힌 필자의 혜안 또한 경탄할 정도였다.


MC sniper의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에서 전태일을 떠올리며 역사성을 일깨우고, 개인의  방황, 도전, 불만, 열등감, 순수, 포용, 관찰 등 깊은 내면을 탐색한 랩의 의미도 읽어내고 있으며 사회와 환경을 노래한 작품도 언급하였으니. 필자가 쓴 <순이 베러 블루스>에 붙인 글에 담겨있는 포용심, 정의와 인권에 대한 인식과 감성 앞에선 아득했다.


21세기의 정의는 동물의 권리까지 포용할 것이다. 정의는 여성을 포용하지 않으려는 남성과, 흑인을 포용하지 않으려는 백인을 설득했다. 이제는 동물을 포용하지 않는 인간을 설득할 차례다. 이미 준비는 되었다.(147쪽)


사회적 이슈에 대한 주장을 랩으로 펼치면 이슈의 쟁점도 또렷해지고 논쟁의 강도나 성격도 감정적 비난으로 흐르지 않을 것이다. 여기 논술 수업에 적용하면 딱 안성맞춤일 대목이 있다.


랩으로 한판 뜨는 건 이럴 때 하는 거다. ‘MC 부르카’와 ‘MC 안티부르카’의 프리스타일 대결! 누구의 불만이 더 정의로운지 관중이 평가한다. ‘MC 부르카’는 ‘종교의 자유’에 대해 늘어놓을 테고, ‘MC 안티부르카’는 인간의 ‘신체의 자유’에 대해 내뱉을 것이다. 정반대의 주장을 펼치지만 둘 다 ‘자유’를 써먹는다. 정의를 논할 때 ‘자유의 가치’를 빼놓을 수 없기 때문이다. 본인부터 자유로운 사람이 되어야 정의를 논할 수 있다.(131)


포이트리 슬램은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당장 사용해도 될 법한 장르라 하겠다. 세미 랩이랄까? 작법 강좌도 흥미롭다. 아이들의 단순하고 성의 없는 토막글에서 랩에 버금갈 정도로 정선된 글이 탄생하는 과정을 단계별로 보여주고 있다. 이를테면 ‘학교 책상에 앉으면 졸린다.’는 푸념을 살짝 손을 보았더니 어느새 ‘네모난 학교 책상에 털썩 앉으면 나도 모르게 남태평양 나무늘보처럼 잠이 쏟아져.’라는 생동감 있고 공감 가는 글로 탈바꿈. 여기에 운율과 장단을 넣고 라임(압운)을 덧붙이면 화룡점정, 랩으로 발전할 수도 있을 터.


하여 이 책은 랩이 파괴와 반항 일색의 저질 음악 장르가 아니라 삶의 결과 생각의 깊이를 담아 인문 정신을 일깨우는 수단이 되기도 함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덧붙여 학교나 도서관 등, 청소년 대상 기관에서 어떤 강좌를 열어야 재미와 의미를 동시에 충족시킬 수 있을지에 대해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하였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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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 섬 티오 - 제41회 소학관 문학상 수상작 미래인 청소년 걸작선 26
이케자와 나츠키 지음, 김혜정 옮김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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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오를 읽고 있으니 섬의 모든 것에 취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던 두 사람, 톰과 도모코 씨의 심경이 고스란히 읽혀졌습니다. 생존에 필요한 모든 것들이 구비되어 있고 친근하게 다가오는 인정 많은 사람들이 늘 살갑게, 그러면서도 부담스럽지 않을 정도로 챙겨주는 곳이니 굳이 번잡하고 야박한 곳으로 돌아오고 싶겠습니까?

 

주위에 먹을 수 있는 것들이 널려 있었다. 큰 물고기를 구워놓았고, 바나나도 넘치게 있었고, 누구에게 받았는지 타로고구마도 있었다. 야자열매는 며칠 전에 내가 열 개쯤 가져다줬는데 세 개 남아 있었다. 아침에 지은 밥도 있었다. 내가 있어서 그랬는지 도모코 씨는 참치 통조림까지 하나 열었다. "날마다 즐거워 죽겠어."(141쪽)

 

그러면서 톰 씨는 덧붙이기를

 

"그런 곳이 있어. 난생처음 왔지만 계속 그곳에 오기 위해 살아온 것 같은 기분이 드는 땅. 드디어 한 인간으로서 자신과 만나는 땅. 톰한텐 여기가 그런 곳이야. 남쪽 바다, 그 넓은 바다 한가운데 떠 있는 조용하고 밝은 섬. 아름다운 바다와 야자나무와 느긋한 사람들, 그리고 그 섬의 친절한 남자아이."(143쪽)

 

인간 본연의 정서가 오롯이 간직되어 있는, 서로를 해치기보다 돌보기 위해 존재하는 듯한 이웃들, 그런 곳이니 어찌 떠나고 싶었겠습니까?

 

그런데 이런 유토피아를 떠나려 한 이도 있기는 했지요. 바로 쿠쿠루이리쿠섬에서 피난 왔던 에밀리오입니다. 티오네 섬보다 더 자연친화적인 삶을 누리던 에밀리오는 태풍에 모든 것을 잃고 친척들과 함께 티오네 섬으로 건너와 3년을 살게 되죠. 그러나 늘 맘 속엔 한결 같이 고향으로 돌아가겠다는 일념뿐이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정부 지원에 의지하여 게으르게, 마냥 즐기며 살아가고 있을 따름인데 에밀리오는 이런 나약하고 의미 없는 삶보다 쿠쿠루이리쿠에서의 생동감 넘치는 삶이 더 그리웠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통나무로 카누를 만들고 20여 일 항해에 필요한 물품들을 티오와 함께 준비했던 것이지요. 이렇게 건강하고 모험적이며 시원에 대한 그리움을 간직한 모습, 그게 바로 우리 유전자에 각인되어 있는 본연의 정서와 의지가 아닐까요. 그러니 티오와 의기 투합하게 되었고요. 사람을 알아보는 눈이 있는 거죠.

 

나는 티오와 에밀리오의 이별 장면이 이 책의 하이라이트라 생각합니다. 에밀리오가 고마운 마음을 담아 마법의 소리를 보여준(들려준) 대목 말입니다. 환타지도 이런 환타지가 없습니다.

 

휘휘 하는 바람소리가 내 마음을 시리고 투명하게 닦아냈다. 눈을 감고 있어도 온 세상이 뚜렷하게 보이는 기분이었다. 그것은 눈으로 보는 게 아니라 귀를 통해, 모든 형태와 색과 무게와 움직임이 소리가 되어 귓가에 들려오고, 세계의 진짜 모습을 가르쳐주는 것이었다. (중략) 도대체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르겠다. 몇 날 며칠이고 풀밭에 누워 소리를 들었던 것도 같고, 그저 한순간 모든 것이 무섣보록 응축된 것도 같았다. 소리의 세계는 아름다웠고, 나는 이제 그만 현실의 세계로 돌아와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마냥 누워 있고만 싶었다.(221-223쪽)

 

마냥 누워 세계의 신비한 소리에 귀 기울이고 있고싶던 티오의 심경이 티오의 섬에 취해 다시는 일본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던 톰과 도모코 씨의 그것 아니었을까요. 만약 내가 그곳에 있었더래도 같은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마음의 어떤 상처도 말끔하게 치유될, 다른 이들을 도무지 미워할 일이 없을 것 같은 그곳에 영원히 머물러 있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런 따스함과 아름다움과 꿈과 신비를 간직한 멋진 글을 읽고 잠시 아련하게 생각에 잠겨 봅니다.

 

그러니 이 책을 어찌 한번 통독했다고 덮어만 두겠습니까? 책상머리에 두고 마음결 심란하게 꼬일 때마다 끌어 당겨 한 편씩 아끼며 읽겠습니다. 잠시 공간 이동을 하는 셈이지요. 그러다 어쩜 평생을 함께 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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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는 쉽다! 3 : 모두 우리나라야! - 거꾸로 읽는 한국사 이야기 사회는 쉽다! 3
이흔 지음, 김준영 그림 / 비룡소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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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는 쉽다] 시리즈 3권은 한국사 편이다.

 

흔히들 역사라 하면 기전체로 서술되어 있는 통사부터 떠올린다. 기성세대들은 거의 그런 스테레오타입에 젖어 있어 역사 얘기는 의레 왕조순으로 각 시대별 정치체제와 국왕의 행적 중심으로 엮여 있을 거라 지레짐작한다. 그러니 역사는 시대순으로 무조건 외워야만 하는 꽉 막힌 과목으로 치부할 밖에. 아이들도 예외는 아니어서 역사에 관심을 보이면 뇌구조가 이상한(?) 애 취급받기 십상이다. 일반화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내 아이와 주변 친구들을 보면 한결 같이 거부 반응 일색이니 말이다.

 

[사회는 쉽다]는 이런 고정관념과 거리감을 깨려고 애쓴 흔적이 역력하다. 우선 시퀀스를 역순으로 배열한 게 인상적이다. 시대 흐름을 거슬러 현재에서 과거의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또 하나는 왕조 중심의 정치사는 최소한으로 줄이고 각 시대별 사회상과 의식의 경향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미시사적으로 접근하고 있는 대목은 아이들의 눈길을 흡인할 수 있으리라 보인다. 역사를 보는 관점도 국수주의적 시각에서 벗어나 비교적 중립적, 객관적 관점을 유지하려 노력하고 있는 것이 느껴져 마음이 놓였다.

 

시대 배열을 역순으로 가져간 것은 무척 의미 있는 시도로 보인다. 아이들의 지적, 정서적 단계에서 비춰볼 때 아무 연관도 없는 먼 과거의 이야기부터 늘어놓는다면 피부에 와 닿지 않는 의미 없는 관념으로만 여기게 된다. 하여 거리감을 느낄 밖에. 이 책은 현재의 이야기에서 출발하여 오늘의 상황을 낳은 직전 역사를 인과관계에 입각하여 보여주고 그러면서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고 있다. 그러니 역사가 공허한 게 아니라 오늘날의 상황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는 것이라는 감각을 절로 가지게 만든다. 그리고 이런 과정을 아버지-할아버지-증조할아버지로 이어지는 가문의 계통과 대비, 연관시켜 설명하고 있어 머리에 쏙 들어오게 이끈다.

 

미시사에 주목한 점도 인상적이다. 이 책에서는 각 시대별 사회상을 대표하고 있는 특정 항목에 핀 포인트를 맞춰 정밀하게 살핀 다음 이를 토대로 전반적인 시대상을 짐작하게 만드는 확대 투사법을 쓰고 있다. 조선시대의 신분제도를 설명하는 삽화나 고려시대의 고려자기와 팔만대장경을 만드는 방법을 단계별로 정밀하게 소개하는 대목, 또 손변의 재판을 통해 고려시대의 가족관계와 상속제도를 파악하는 모습 등이 대표적인 예다. 어쩜 지엽적으로 보이는 이런 사실을 통해 조선시대의 사회경제적 관계를 파악할 수 있게 인도하고, 고려자기의 판매과정에서 아라비아 상인들이 고려를 코리아라 부르게 된 배경을 알 수 있게 하며, 현명한 재판관을 통해 남녀평등의 사회적 질서와 부모 자식 간 의식의 교류에 대해 이해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이런 방법은 실제 역사 수업에 바로 도입해도 좋을 것이다. 아이들이 참여하여 역사적 자료를 해석하고 이를 토대로 그 시대 사람들의 의식과 사회의 전반적인 성격을 파악하게 만드는 식으로 수업을 진행하면 역사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 것은 물론, 결론을 도출하는 과정에서 역사적 방법론에 대해 깨우칠 수도 있을 것이니 말이다.

 

또 하나 눈여겨 볼 것은 관점이 국수주의로 흐르지 않는다는 점이다. 삼국시대 백제와 일본의 문물교류를 소개하며 우리도 중국의 것을 받아들였으니 너무 으쓱해 할 것까지는 없다고 얘기한다거나, 책의 결론 부분에서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가 우리 조상들이 훌륭했다는 것을 말하려는 게 아니라 선조들의 생각과 마음을 읽어서 오늘 우리가 있게된 배경을 이해하고 뿌리 깊은 나무처럼 흔들림 없이 나가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힌 대목 등은 정말 바람직한 역사 인식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하겠다.

 

하여 이번 3권은 한국사의 흐름을 시대 역순으로 거꾸로 읽어가며, 분류사 특히 미시사 중심으로 시대별 사회상을 도출하는 방법을 사용하면서 균형 잡힌 관점으로 역사를 바라보도록 이끌고 있어 역사책이 갖춰야 할 미덕을 두루 갖추고 있다 하겠다. 역사를 무미건조하게 여겨 외면하는 아이들에게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손변의 재판 사례를 보여주면 어떨까? 아마 역사에 대한 마음의 벽을 허물고 친근하게 다가가게 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거꾸로 읽는 한국사 이야기'는 여러 모로 의미 있는 시도를 한 새로운 방식의 역사책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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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는 쉽다! 2 : 처음 세상이 생겨났을 때 - 건국 신화에 숨은 우리 역사와 문화 사회는 쉽다! 2
유다정 지음, 민은정 그림 / 비룡소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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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는 쉽다 시리즈 두 번째 편인 [처음 세상이 생겨났을 때]는 사회에 대해 진입장벽을 느끼는 아이들을 배려한 장치를 군데군데 깔아두어 쉬 접근하여 재미있게 의미 있는 내용을 습득할 수 있도록 이끌고 있다. 특히나 지적인 면에 치우치지 않고 상상력과 바람직한 가치관까지 더불어 얻을 수 있도록 하여 금상첨화라 하겠다. 이 책이 지니고 있는 많은 미덕들 가운데 몇 가지를 꼽자면,

 

1. 삽화, 눈길을 확 끌면서 내용을 적절하게 함축하고 있는 예술성 있는 그림들

 

이 책에서는 창세신화와 건국신화들을 사회적 상황과 결부시켜 소개하고 있다. 그러니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없고 실제 경험하기 어려운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대목이 많을 밖에. 이것들은 대개 현실과 유리된 것이어서 관념적 이해력이 떨어지는 아이들이 소화하는 데 어려움이 따른다. [사회는 쉽다 2]는 이를 감안하여 만화나 삽화 같은 시각적 자료를 유용하게 활용하고 있다. 각 장별 도입부에 만화로 전체의 맥락을 잡은 다음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림이 어쩜 이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효과적인 내용 전달은 물론 예술성까지 지니고 있다. 특히 창세신화를 다루고 있는 "하늘이 솟고 땅이 열린 날" 편의 만화 첫 부분에 나오는 '하늘과 땅을 떼어 낸 미륵님'을 그린 대목은 압권 중의 압권이었다. 천지창조를 나타낸 그림에는 혼돈의 카오스를 상징하듯 검고 붉으면서 무질서한 흐름들이 엇갈리는 가운데 인간의 존재가 떨어져나오는 모습을 드라마틱하게 표현하여 창세 때의 상황을 짐작하게 한다. 가계도를 나타낸 그림도 적절하게 배치하여 내용을 이해하기 쉽게 이끈다. 주몽과 본부인 사이 자식인 유리와, 소서노에게서 난 비류, 온조를 그림으로 나타내어 고구려와 백제가 한 뿌리에서 갈라져 나온 상황을 잘 정리하고 있다. 전반적으로 만화나 삽화 그림들 하나하나가 완성도 있는 미술작품이라 해도 무방할만큼 정선되어 있어 보는 재미와 즐거움을 쏠쏠하게 맛보게 한다.

 

2. 다양한 방식의 형성평가 문제

 

지식을 담고 있는 책은 대체로 고저장단의 기복이 없는 편이어서 지루하기 십상이다. 그래서 주제별로 매듭을 짓고 상황을 정리한 다음 뜸을 들여 다음 주제로 전개하는 것이 탄력성이 있을 것이다. 이 책은 각 장별로 마지막 부분에 형성평가를 두어 지적 호기심을 고조시키며 읽기에 몰입하게 만든다. 그런데 특기할 것은 형성평가의 방식이 매번 달라서 이색적이라는 점이다. 그냥 주관식으로 적는 경우도 있고, 어떨 땐 초성을 주고 답을 유추하게 하기도 하며 관련 있는 부분 선으로 잇게 하거나 가로 세로 퍼즐식으로 힌트를 주기도 한다. 여러 유형의 문제를 풀며 답을 맞히는 재미가 여간 신선한 게 아니다. 정답이 문제와 같은 쪽에 바로 나와 있어 약간 싱겁긴 하지만.(물론 거꾸로 씌어 있다.)

 

3. 도전적인 질문들

 

이 책은 누구든 목차를 한번만 훑어보고 나면 읽고 싶은 마음이 뭉클뭉클 솟게 만드는 힘을 갖고 있다. 이를테면 가야 건국신화를 다룬 장에 나오는 '왜 하필 거북노래를 불렀을까?' 나 '알이 여섯 개, 뭐가 이리 많아?' 같은 소제목들처럼 발산적 상상력을 자극하는 주제들이 즐비하다. 그러니 이건 뭐람? 하며 궁금해서 빨리 읽고싶어지게 만든다.

 

4. 신화의 의미를 밝히는 친절한 설명

 

가야 건국신화에 나오는 구지가를 풀이한 대목은 이렇다. 거북머리는 나라의 우두머리인 왕을 뜻하고, 노래는 빨리 그런 왕을 세우지 않으면 화풀이를 하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는 것이다. 이로 미루어 가야인들이 얼마나 왕 같은 강력한 통치자가 나타나길 바랐는지 알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김수로왕의 시신이 하늘에서 다섯 도막으로 나뉘어 떨어졌다는 것은 씨앗을 흩뿌리는 영농법을 나타내고 있다는 것. 이렇게 상징적인 신화 속에 담긴 실제적인 의미를 잘 풀이하여 그 시대 상황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5. 민족의 뿌리를 찾아가는 비밀통로, 신화

 

신화는 단순한 얘기거리가 아니라 우리 민족의 정체성과 뿌리를 나타내고 있는 공동체의 정신적 구심점과 같은 것이다. 이 책은 그런 의미를 여러 사례를 가지고 설명하고 있다. 이를 통해 우리의 우리다움을 확인하고 정체성을 지켜나가야 하겠다는 의식이 자연스레 형성되도록 이끌기도 한다.

 

하여 이 책은 아이들을 배려하는 여러 장치를 통해 신화를 보고 읽는 재미와 더불어 그 속에 담긴 의미까지 자연스레 파악할 수 있도록 우리를 끌어당기고 있다 하겠다. 그 시대의 역사적, 자연적 상황과 결부시켜 말이다. 사회를 싫어하고 진입장벽을 강하게 느끼는, 혹은 사회에 관심이 있어 더욱 깊게 파고드려는 아이들에게, 그리고 그 부모들에게 매우 유용한 안내서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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