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가게 - 제13회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수상작 보름달문고 53
이나영 지음, 윤정주 그림 / 문학동네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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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뇌아 양성 컨베이어 시스템

 

[시간 가게]는 판타지다. 아니 르포르타주라 하는 게 맞겠다. 싱크로율 100%랄 정도로 우리 아이들의 모습을 고스란히 재현하고 있으니 말이다. 하긴 굳이 에두를 것 없이 있는 그대로의 모습만으로도 판타지도 그런 판타지가 없을 지경이니.

 

우리 사회 모든 문제를 초강력 흡인하고 있는 교육이라는 블랙홀, 그 중심에는 극단적인 탐욕이 똬리를 틀고 있다. 엄마들이 사교육 플랜을 밀어붙이며 겉으론 자아실현이니 봉사기회 부여니 하며 고상한 가치로 포장을 하지만 실은 이윤추구 동기가 꿈틀대고 있는 것이다. 교육을 통해 높은 학벌이라는 사회적 자본을 보유해야 경제적 이윤이 뒤따른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그들이니. 경제적 이윤을 독점하고 있는 극소수는 피라미드 저변을 이루고 있는 대다수가 상층부로 진입하는 것을 교묘하게 차단하려한다. 이를 시스템화하여 계층구조가 재생산되도록 고안된 장치가 학벌인 것이다. 이것을 일단 얻기만 하면 부와 권력과 명예는 자동으로 따라오게 되어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진입장벽이 너무 공고하여 웬만해서는 오를 수 없다는 데 있다. 그럼 당연히 뇌리에서 접어버리고 딴 길을 모색해야 할 텐데 오늘 여기 우리의 엄마들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가능성이 희박하여 한 치 앞이 보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오직 한 길, SKY로 상징되는 학벌 획득만이 피라미드의 정점에 오를 수 있는 배타적 노선이라 확신하며 무조건 올인하고 있는 것이다.

 

윤아 엄마도 이런 논리의 극단적 신봉자다. 윤아 엄마가 동원한 비책은 분초 단위의 시간관리 기법이다. 엄마가 수립한 계획에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따라주면 계층구조 재생산 장벽을 뚫고 상류사회로 진입할 수 있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는 것이다. 이를 위해 자아 성찰이나 학업에 대한 회의 따위는 철저히 금기시한다. 목표 달성에 장애가 되는 군더더기 짓으로 여기는 것이다. 그야말로 아무런 독자적 의식도 지니지 않은 무뇌아를 원하는 셈이다. 이런 무뇌아 양성 컨베이어 벨트에 윤아가 올려진 것이다.

 

시스템 스펙

 

시간 가게 할아버지가 있는 방, 나선형으로 이어진 벨트 중간에 작은 상자가 군데군데 놓여 있다. 파블로프의 개, 무뇌아 양성 시스템에 협조적인 아이들에게 내리는 상찬이다. 파블로프의 개는 먹이를 얻으려면 종소리에 집중해야 한다. 윤아도 인정과 칭찬을 받으려면 엄마가 짜둔 다음의 시스템 스펙에 충실하게 따라야 한다.

<무뇌아 양성 컨베이어 시스템 세부 설명서>

이 시스템은 [신분상승을 통한 이윤 획득 프로그램(SKY 버전)]이다. 이 시스템은 엄마와 사교육 기관에 의해 요람에서 무덤까지, 아니 SKY 합격 순간까지 가동되며 이후 부, 권력, 명예를 일생동안 무한 리필로 제공해준다. 핵심 가치는 시간 관리. 분초까지 엄밀하게 나누어 통제하는데 이는 시간의 값어치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초록시계를 거꾸로 돌려 시간을 10분만 더 얻으려 해도 과거의 소중했던 기억 하나를 송두리째 포기해야 할 정도로 큰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이 시스템에서 권장하는 미덕은 경쟁심과 독점적 지배욕이다. 오로지 피라미드 정점을 지향하는 데만 몰입해야 한다. 그러기에 분별력 따위는 필요 없고 무의식적으로 주어진 역할에 충실하기만을 바란다. 도덕적 판단, 자아 성찰, 공부 외의 요소에 대한 투자는 패널티! 가차 없이 옐로카드가 주어진다. 그런데 시스템에 업로드 되면 교환이나 환불은 절대로 불가능! 불량품은 재활용 불가, 그냥 폐기처분된다.

 

이런 시스템에 길들여진 윤아는 너무 쉽게 일탈행동을 한다.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초록 시계를 돌려 커닝을 하고 단짝인 수영과 미라 사이를 이간질하였으며 실과시간 준비물인 감자를 훔친다. 엄마의 패널티를 받지 않으려, 엄마의 계획에 충실하게 따르고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이처럼 사적인 차원의 이해와 배려만 미덕이 될 뿐 사회적 공공선에 대한 의식은 오늘 여기 한국 사회에서 결코 권장되지 않는다. 정의니 공정이니 하는 번거로운 것은 뇌리에서 아예 딜리트시켜 버린 것이다. 윤아는 스스럼없이 무뇌아 양성 시스템을 통해 학습한대로 실행한다. 그 결과 친구들의 눈에 윤아는 매력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아이로 비치게 된다. 소중한 것을 하나 둘 의미 없게 만들어버렸으니. 그저 공부만 조금 잘 하는 존재감 없는 아이일 뿐인 것이다.

 

시스템 부적응아의 자각

 

이 시스템에서 가끔씩 불량품이 나오기도 한다. 부적응아도 때론 있는 것이다. 하긴 윤아 엄마처럼 엄친아만 바라보는 이들은 전교 1등 수영이를 제외한 전원을 불량품으로 분류하기도 하였으니 없을 순 없다 하겠다. 빼어난 성적을 거둔 윤아 조차 하자있는 한심한 아이로 낙인찍는 모습이라니. 그러나 대부분은 그저 그런 정도로 이 시스템의 작동 원리에 순응하며 따라간다. 어느 곳을 향하는지 그게 자신에게 맞는지 성찰해볼 겨를, 아니 필요도 없이 자동 실행되는 프로그램에 따라 나아가는 것이다. 그러니 눈에 띄는 불량품은 거의 없는 셈이다. 그런데 윤아와 영훈은 시스템 작동원리에서 벗어난, 아니 사실은 시스템 작동원리에 충실하기 위한 의도로 자행된, 일탈행동을 한다. 그게 발각되지 않았기에 사회적 지탄으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본인들의 고뇌는 엄청났을 것이다. 그러면서 시스템 작동 원리 자체에 대한 의문을 품게 된다. 왜 이러고 사냐고, 소중한 기억 다 잃어버리고 그깟 1등을 하면 뭣하냐고 자문하기에 이른 것이다.

 

흐릿하게 얼비치는 희망의 무지개

 

시스템 부적응아, 일탈행동으로 궁지에 몰린 윤아는 새로운 세계를 경험한다. 이런 아찔한 상황에서도 아이들은 성장하는 법이다. 아빠와의 기억, 다현이와의 약속, 할머니의 따스한 감촉 같은 것이 얼마나 소중하고 행복한 것인지, 그동안 자신을 버텨오게 한 게 무엇인지 절감한 것이다. 그 순간 암울한 분위기 일색에서 가느다랗게 희망의 무지개가 얼비치는 듯했다.

 

머리로 만들어 낸 행복이 아니라, 몸과 마음이 기억을 하고 있는 것이어야지. 행복을 억지로 만들 수 있는 게 아니란다. (99쪽)

 

다행히 내게는 할머니, 아빠, 엄마, 여전히 베프인 다현이가 있다. 그리고 내 마음을 잘 읽는 영훈이가 있다. 어쩌면 수영이와 미라와도 조금 더 가깝게 지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 사람들을 통해 내 기억들을 찾고, 새로운 기억을 만들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자 앞으로의 이윤아의 모습이 궁금해지기까지 했다. (196쪽)

 

그리고 이제 나름의 방식으로 저항의 목소리를 낸다. 우선 시간 가게부터 방문하여 시계를 부숴버린다. 그것은 일대변혁이었다.

 

나는 있는 힘껏 발로 시계를 내리밟았다. 시계가 산산조각이 났다. “무슨 짓이야! 안 돼!” 할아버지가 내게 달려오고 있었다. ‘쩍......찌이익’ 온몸에 소름이 돋을 정로도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벽의 유리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쿠와아아아앙! 이번에는 둔중한 소리와 함께 커다란 컨베이어 벨트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위에 있던 상자들이 비처럼 후두둑 아래로 떨어지고 있었다. ‘째깍 째깍 째깍......’ 시계들이 내는 소리까지 더해져 아수라장이 따로 없었다. 천장과 벽의 금이 굵어지기 시작했다. 곧 무너질 것 같았다. 나는 머리를 감싸고 황급히 가게에서 빠져나왔다. 눈을 뜨기가 힘들게 강풍이 불고 있었다. 사람이 낼 수 있는 속도일까 싶게 빠르게 지나가는 사람들, 반대로 꼼짝 않고 돌처럼 멈춰 있는 사람들도 사이사이에 섞여 있었다. 휙휙 거친 소리를 내며 정신없이 흔들리는 나무들, 그에 반해 이파리 하나 움직이지 않고 얌전히 서 있는 나무들, 그 사이에 회오리가 몰아치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모든 것을 삼켜 버릴 것 같았다. 세상이 뒤집힐 것 같았다. (194-195쪽)

 

그리고 당당하게 달려가는 윤아. 윤아에겐 엄마의 잔소리도, 사회의 거대한 시스템도 이제 더 이상 장벽이 아니다. 시계를 밟아버린 용기와 결단으로 충분히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니.

 

윤아를 위해, 아니 우리 사회를 위해 이제 무엇을 할 것인가?

 

윤아의 행동이 사회에서 상찬 받고 보람 있는 결실로 이어지려면 어른들이 나서야 한다. 개인의 건전한 선택이 자기희생에 그쳐서는 안 될 것이니 말이다. 시간 가게를 혁파해야 한다. 아니 시간 가게가 아예 필요 없게 만들어야 한다. 교육 광풍이 불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그런 일이 과연 가능할까? 물론 단번에 이룰 수는 없겠지만 가능성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다. 우선 지역사회 차원에서 제기되고 있는 대안적 교육운동이 그 작은 물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교육 광풍에서 스스로 벗어나 나름의 방식으로 배우고 익히는 아이들을 불량품으로 취급하지 않고 소중하게 갈무리하여 앞길을 개척해나가도록 돕고 있는 이들에게서 희망의 싹을 발견한다. 또 특성화고, 마이스터고 등 대학 진학위주의 교육을 탈피한 기관의 부상도 바람직한 신호라 하겠다. 이런 제도적 노력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의식, 우리의 내심으로부터 학벌에 대한 숭배의식을 배제해야 하는 것이다. 다양한 방식의 교육과 여러 갈래 삶의 길이 존재하고 이들은 나름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잡힐 테니 말이다. 그리하여 시간보다 더 소중한 것이 있음을,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은 학벌만이 아님을 만인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일깨우고 또 여건을 조성해 나가야 할 것이다.

 

[시간 가게]는 발랄한 상상력으로 우리 아이들의 행복과 미래에 대해 성찰하게 만든 판타지이다. 아니 구조적 모순에 대한 자각과 단호한 결단의 메시지를 담고 있는 르포르타주였다. 아이들이 처한 실상을 또렷이 그려내어 우리는 과연 어디로 가고 있는지, 그러니 이제 어떻게 턴해야 할지 방향을 일러주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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