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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는 어떻게 이동하는가 - 토플러가 말하는 제3 물결 정치학
앨빈 토플러 & 하이디 토플러 지음, 김원호 옮김 / 청림출판 / 2013년 1월
평점 :
절판
이 책의 결론 부분에 해당하는 9장은 앨빈과 하이디가 쓴 가상의 편지로 시작한다. 1787년 필라델피아에 모여 헌법 제정을 논의하던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을 수신자로 한 편지글에서 우리 역시 준엄한 선택의 기로에 서있음을 결연하게 선언하고 있다. 18세기 선각자들의 고뇌에 찬 결단, 위험을 감수하고 내린 과감한 선택이 오늘의 우리를 있게 했다고 밝히는 대목은 자못 비장하기까지 하다.
먼 미래로부터 들려오는 소리를 들었던 당신들은 하나의 문명이 죽어가고 새로운 문명이 탄생하고 있음을 감지했습니다. 그리고 당신들은 오늘날의 우리에게 현재가 되어 있는 미래를 만들어냈습니다. (178쪽)
그러면서 놀라운 발견이 이루어지고 환경이 변화하여 사람들의 태도와 견해가 달라진다면 법과 제도도 시대 변화에 걸맞게 달라져야 한다고 주장한 제퍼슨의 견해에 고무되며 이제 우리도 새로운 지평을 열어나가야 한다는 다짐도 곁들이고 있다.
지금까지 우리 사회를 존속시키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법과 제도의 제정 과정에 참여했던 제퍼슨 씨이지만, 그 무엇보다 이와 같은 지혜를 남겨주신 것에 대해 감사드리고자 합니다. 그리고 이제는 당신들이 남겨준 법과 제도가 다른 것으로 대체되어야 할 때가 되었다는 말씀도 드리고자 합니다.(181쪽)
토플러가 밝힌 새로운 법과 제도란 제3의 물결 문명을 정착시키기 위한 사회적 체제를 말한다. 이 책은 일관되게 제3의 물결 문명에 대해 얘기하고 있는데 앨빈과 하이디는 이런 문명을 누가, 어떤 방식의 질서로 구축해야 하는가에 대한 담론을 펴나가고 있는 것이다. 토플러는 우선 제3의 물결 문명이 순조롭게 정착되기 어렵다는 점을 환기시킨다. 기존 질서의 수혜자인 산업화와 대량화 체제 주도세력들이 제2의 물결 문명체제를 유지하려고 전방위적으로 저항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들의 기득권 수호에 맞서려면 새로운 세력이 의제를 선점하고 역량을 결집하여 제3의 물결 문명을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과거의 낡은 제도들과의 충돌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불확실성, 불안정성 및 혼란을 유발될 것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것은 더 이상 양보할 수 없는 시대의 지향으로 굳어졌다고 역설한다.
이런 변화의 물결을 선도하기 위한 정치적 원리 세 가지를 토플러는 제시하고 있다. 소수자들의 권력, 반직접민주주의, 의사결정의 분배가 그것이다. 개별화된 다양한 소수자들이 의사결정권을 갖고 타협에 의해 의사결정을 하자는 것과, 제2의 물결 방식 정치의 대명사인 대의제를 보완하기 위해 첨단 기법을 이용한 반직접민주주의가 도입되어야 하며, 또 의사결정의 부하를 분산하기 위해 다양한 단계에서 의사결정이 이루어지도록 하자는 제안이다. 이런 원리를 토대로 한 제3의 물결 정치를 신속하게 구축하기 위해서는 콘퍼런스, TV토론, 콘테스트, 시뮬레이션, 모의 제헌의회 등 다양한 방식으로 시민 참여를 유도해야 하며, 여기서 채택된 제안은 지방자치 차원 등 기초단위에서 시험을 거쳐 수정 보완한 후에 도입 범위를 확대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또 이런 과정을 이끌 주도세력을 길러내기 위해 사회적 학습을 도입하자는 안도 비중있게 다루고 있다. 결론적으로 토플러는 이런 모든 변화의 과정은 기본적으로 우리 자신에게 책임이 있다고 하면서 우리는 새로운 문명창조의 숙명을 안고 태어났다고 엄숙하게 선언하고 있다.
하여 이 책은 단순히 정치과정의 역동성에 대해 얘기하고 있는 것이 아니고 제3의 물결 문명 전반에 대한 담론을 제안하고 있는 문명론이라 하겠다. 그리고 이 담론이 현실화하려면 혁명적인 변화가 이루어져야 하는데 이는 기존세력의 저항을 감안하여 주도면밀하게 기획, 준비되고 공감대를 모으기 위한 과정을 다단계로 거쳐 돌이킬 수 없게끔 법과 제도로 정착시켜야 함을 증명해보였다. 그래서 이 책의 취지에 공감하는 이라면 우리도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처럼 결단해야 할 시점에 직면했다고 인식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