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괴의 천사
키스 도나휴 지음, 임옥희 옮김 / 레드박스 / 2010년 11월
평점 :
절판


             "사라져버린 모든 것에 대한 한 줌의 보상이자, 
              옆에 있어줄 누군가를 간절히 원하던 자신의 기도에 대한 약간의 보상인지도 몰랐다. " -37
 

어느 겨울에 찾아 온 노라, 그 아이는 분명 마거릿에게 그런 보상이었다. 딸은 집을 나갔고 남편은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났다. 마거릿이 가질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외로움이었다. 노라는 어쩌면, 그녀가 불러낸 천사일지 모른다. 노라는 알 수 없는 행동과 말로 천사처럼 보이게 하는, 이 글이 판타지가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들게 만든다. 왜곡의 수준은 아니지만, 살짝 빗나간다. 노라라는 아이의 존재적 확실성 여부와 그 아이를 뒤따르는 이상 야릇한, 악마의 그림자는  색깔이다. 마거릿이 그려놓은 환상과 바램의 밑바탕을 채우고 있는 색깔에 불과하다. 그녀가 그렇듯, 내가 생각하는 무엇은, 때로 검은 색으로 칠해지기도 하고, 때론 환한 무지개빛으로 물들기도 하거니와 맑고 투명한 채로 존재하기도 한다. 다른 말로 해서, 우울한가  행복한가에 대한 감정들은, 결국 같은 모양이지 않을까.


마거릿의 기억은 딸, 에리카의 성장 시간들과 나란히 흐른다. 사춘기를 기점으로 대개의 아이들은 부모님의 말이 진실에서 한참 멀리 떨어진것처럼 느끼곤한다.  자신이 꿈꾸는 시간과 세상은 분명 존재할거란 확신을 굽히지 않게되고, 부모의 반대가 커질수록 고집은 단단해진다. 그리고는 보여주고 싶어한다. 자신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거기까지였어야 했는데, 에리카는 결국 집을 나가게 된다. 집 나가면 개고생이다. 라는, 말씀을 몸소 실천하고 곧 후회하게 되는 에리카를 보면서, 
부모님의 눈에 보였던 나, 부모의 눈으로 보게 된 나,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자식을 낳아봐야 부모 심정을 안다고 하셨다. 부모님은. 이제야 알겠다. 그 심정을. 내 인생은 나의 것, 이라며 외치던 철부지 시절의 내가, 기억속을 잔망스럽게 날뛴다. 
간단히 말하면, 다 아는 것처럼 나대던 어느 순간들이 후회스럽다는 것.   

  
방황과 갈등으로 보낸 에리카의 시간들은, 부모에 대한 이해로 이어진다. ’나가사키의 천사’로 되돌아 온 아버지, 긴 세월동안 그런 아버지를 바라보던 어머니에 대한 이해를 위해, 그녀는 긴 시간을 지나온 것이 아닐까.
부모님이거나 혹은 누군가의 도움과 기도로 우리가 살 수 있었던 건 아니었을까, 싶다. 단지 우리가 기억하거나 느끼지 못했을 뿐.  이런 노래 가사가 생각난다. "기도하는 사람의 그 정성 알지 못하면 그 사람의 축복을 받을 수 없답니다." 
나는 누군가의 기도와 축복을 받을 자격이 있는가, 생각해본다. 그럼에도 기대해본다. 내 영혼이 잃어버린 사랑, 우정, 행복의 편린들이 돌아오기를...숀이, 천사의 귀환을 기대하듯. 



        "모든 종류의 천사, 우리의 영혼이 잃어버린 것은 우리가 절실히 원하면 재창조될 거야. 너의 노라처럼." -515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녀고양이 2011-01-26 18: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 구매할까 말까 고민 중인 책인데,
별 다섯 주셨네요... 아아, 리뷰를 읽는데, 반드시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ㅠㅠ

이거... 또다른 지름신 서재를 발견한게 아닐까 약간 걱정이 된다눈. 좋은 날 되셔여~

모름지기 2011-01-28 00:30   좋아요 0 | URL
저는 별점에 그닥 큰 의미를 주지않는데..결론적으로 이 작품이 별다섯개가 될지는 깊게 생각 않했어요. 리뷰를 읽고 책을 구매하실지도 모를 분들을 위해 별점에 신경을 써야겠네요.ㅠㅠ
요점을 새겨 들으셨으리라 믿으며..^^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조세희 지음 / 이성과힘 / 2000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내부와 외부를 경계지을수 없는 뫼비우스의 띠에 숨겨진 진리는 무엇인가.
앉은뱅이와 곱추가 승용차에 불을 지른다. 그들에겐 하잘것없지만 더이상 물러설곳이 없는 마지막 보금자리를 쇠망치로 부수고 강탈하듯 가져간 권리에 대한 댓가를 찾기위해..
재개발..누구를 위한 것인지, 무엇을 위한 것인지에 대한 대답을 서슴없이 할 수 있는 사람은 몇 안된다. 그리고 더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버려진 사람들에게 그것을 설명해줄 만한 사람은 더 적다. 어느 것이 진실인지 뫼비우스의 띠처럼 찾을 수 없다. 거짓과 진실이 맞물리는 끝없는 공방이다.

난장이...
金不伊라는 이름이 있지만, 사람들은 그저 난장이라고 부른다. 난장이의 가족이 몇 인지, 그의 나이가 몇 살인지, 그가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는 117cm작은키..난장이라는 이름뒤에 숨어있다. ’나’와 어머니,영호,영희에게만이 난장이가 아닌 아버지이다. 7-80년대 공장으로 쏟아져 들어갔던 ’나’와 영호, 그리고 영희에게는 사는것...그것만이 유일하다. 

그들은 다른 모습의 난장이였다. 새벽부터 한 밤중까지 노동력을 착취당하면서도 한 마디 항변도 할 수 없었던 사람들이 있었다. 우리의 형과 누나였다. 항변을 위해 목소리를 높이던 사람들조차 형과 누나에게는 허공의 메아리와 같은 것이었다. 살기위해 내몰리는, 끝없이 밀려 다니던 아픈 시절이 우리에게도 있었다. 그들에게 불황을 말하며 참기를 강요하던 사람들은 진짜 ’불황’속에 있지도 않았다. 단 한번도...지친 노동력은 더 없이 쇠잔해졌다. 더이상 날지 못하는 도도새가 되어 버렸다.

새벽종이 울리고 새 아침이 밝았다는 노래로 사람들을 옭아매던 시절도 있었다. 그들은 언젠가 새 아침을 맞을수 있으리란 기대로 숨가쁘게 달렸다. ’착취’라는 채찍 대신 ’근면’이라는 당근으로 현혹했다. 물론 그 달콤한 당근을 맛 본 사람들도 있었다. 어려웠던 시기는 어느 나라고 있었다. 그리고 고통받았던 사람들도 함께 존재했다. 그들이 감래했으므로 우리가 이만큼 성장했고, 누리고 사는지도 모른다.  그들이..내 아버지와 할아버지, 형과 누나들이 값을 치른것이다. 아주 비싼 값으로...


1970년대는 갔다. 
굴뚝으로 검게 뿜어지던 연기는 사라지고, 키보다 작고 열악했던 공장은 말끔한 현대식 건물로 바뀌고, 공단이라 불리던 그곳도 디지털밸리라는 모호한 이름으로 개명했다. 겉보기엔 구색이 갖춰졌다. 지금은 난장이가 꿈꾸던 달나라와 같은 세상이다. 그러나 난장이가 쏘아올린 공은 달나라 어디에도 이르지 못했다. 수많은 노조가 생기고, 노동자의 권리를 대변한다고 떠들고 있지만 그들은 또다른 이름으로 노동자들을 유린하고 있다. 노.사가 함께 공생하자는 기업의지에 발을 맞추는 협력자로서의 역할에만 충실하고 있다.  노동자들은 여전히 그들의 세계 밖에 있다. 인권변호단체나 노동자보호단체 및 외국인근로자의 보호와 권익을 위해 소리없이 팔을 걷어부친 사람들이 더욱 소중해지는 하나의 이유이다. 


해가 있는 곳에는 언제나 그림자가 있기 마련이다. 시대가 흐르고 세상이 변했지만, 여전히 우리 주위에는 그림자가 있다. 해를 등지고 선다고 해서 그림자가 사라질것도 아니고, 손으로 해를 가린다고 가려질것도 아니다. 그림자와 더불어 가야하는 것이다. 사회의 어두운 그늘과 현실을 외면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근거없는 반대 보다  비판없는 동조는  더더욱 위험하다.  의식있는 정당한 제시와 요구만이 진정한 협상의 길이며, 진전과 발전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한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거짓과 진실이 맞물리는 끝없는 공방이다. 우리의 지난 치부를, 아름다운 수식어로 포장하고 감추기 보다는 발가 벗기우고 진실을 직시 해야만 다시 시작할 수 있을것이다. 첫 인쇄로 부터 30여년의 세월이 지났어도 조세희 작가의 이 책을 내려 놓을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순오기 2011-01-26 0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식채널 e , 부끄러운 기록 -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200쇄 돌파
이 방송을 보고 얼얼했는데 지금은 몇 쇄나 찍었을까요?
중학교 3학년 국어에 영희 이야기가 나오던데~ 아드님을 위한 독서일까....

2011-01-28 00: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모름지기 2011-01-28 00:47   좋아요 0 | URL
아..중학교 3학년 국어책에 나오는군요.
아직 읽지 않고 있더니만..방학중에 쉬엄쉬엄 읽어두라고 해야겠어요.

순오기 2011-01-28 20:37   좋아요 0 | URL
영희네 집에 철거 계고장이 나오는 장면이 교과서에 나오니까 중3이면 읽어야되겠죠.

저는 해인님과 반대로 옮겨갔어요~ ㅋㅋ
 
치팅컬처 - 거짓과 편법을 부추기는 문화
데이비드 캘러헌 지음, 강미경 옮김 / 서돌 / 2008년 12월
평점 :
절판


인류가 진화하면서 파생시킨 다양한 문화속에 속임수는, 부인할 수 없는 뿌리를 내리고 있다. 정작은 그것을 인식하느냐, 하지 못 하느냐에 달렸을 뿐이다. 익숙해진, 혹은 미처 도덕적 기준에 접목시킬 여지도 없이 저질러지는,  속고 속이는 현상이 사고와 감정까지 좀먹고 있다. 이면에는 ’나 만 그러는게 아니야’ 라는, 자기변명이 깊숙히 자리잡고 있다. 이러한 도덕적 안도감을 유발시키는 ’나’ 와 ’우리’ 가 별개의 기준으로, 괴리감을 더함으로써 <치팅컬처>는 자생과 번이를 거듭하고 있는 것이다.


서문에 소개된, 좀 도둑질과 탈세에 관한 대중의 판단으로 비추어볼 때, ’속이는 것’에 대한 도덕적 개념과 현실적 이해는 전혀 다르게 진행됨을 알 수 있다. 도둑질은 나쁘다. 정의다. 세금을 적게 낼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그렇게 해도 괜찮다.  도덕적으로는 꺼림직하지만 할 수 있다면 해야지, 가 현실의 이해다. 탈세, 음원의 불법 다운로드, 지적 소유권의 무분별한 복제와 사용등은 이미 일반화된 치팅컬처의 대표적 사례들이다. 우리는 이미 이러한 문제점들에 대한  인식을 개선시키고 확산을 방지하려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지만, 동조만큼의 가시적 결과는 얻지 못하고 있다.  


법으로도 규제되지 않는 문화는 있다. 하지만 법이, 방치를 거듭할 때 이러한 변이적 문화는 더욱 강력하고 뚜렷하게 드러난다. 원론적으로는 방치가 아닌, 묵인에 의한 것인데, 데이비드 사이먼이 ’엘리트의 일탈’이라고 명명한 일련의 행동은, 속임수에 능하지 못한 다수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갖게한다. 더 큰 속임수를 저지르고도 별 탈 없는 그들과 비교했을 때, 음원을 내려받는 행위 정도는 수 백, 수 천평의 수박밭에서 수박 하나 서리하는 정도에 지나지 않게 인식되는 것이다.    


팽배해진 속임수 문화에 대한 진단으로 저자가 내놓은, 2장의 ’속임수를 조장하는 자유시장’ 은,  근본적인 원인을 짚고 있다. 가게에 들어가 직접 물건을 훔치는 행위와, 훨씬 안전하고 합리적으로 보이는 속임수는 모두 압력에 기인한다. 당장 먹을 게 없어서 먹을 것을 훔쳐서라도 입에 넣어야 한다는 배고픔 해결의 일차원적 압력이 전자에 있다면, 더 많은 보상과 치열한 경쟁 구도에서 살아남거나 우위를 점하도록, 자유시장에 만연한 압력은 후자의 범주다. 원래부터 공존했던, 대두되는 이 두 가지 현상의 다른점이 있다면 전자는 줄어드는, 후자는 날로 늘어나는 추세라는 것이다. 근로자들은 직장에서의 안녕을 위해, 자영업을 하는 사람들은 더 많은 이익을 창출하기 위해 속임수와 편법을 넘나든다. 겨울이다. 보일러 한 대 놔 드렸으면, 해서 놔 드린 부모님의 보일러는 연료보다 돈을 더 많이 먹어댄다. 최근 시사프로에서도 드러난 실체에서 알 수 있듯, 전문적 지식이 없는 제품의 수리와 보수, 교체에 관한 거짓과 편법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저자가 제시한 ’속임수 문화에서 빠져 나오기’ 는 가시적이며 구체적이며 모법적인 대안이다. 그러나 실효성에는 강한 의문이 제기된다.  인식의 전환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공염불에 그칠 소지가 다분하다. ’남이 하니까’ 에서 ’나 부터 하지 말자’ 는 자발적인 의지와 세상은 공평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신념이 선행되어질 때, 우리는 <치팅컬처>로부터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다는 게 나의 소견이다. 물건값을 지불하고 거스름돈을 받았다. 그 자리에서는 확인을 못했는데 집에 돌아와서 보니 거스름돈을 더 받아온게 확실하다. 어떻게 할 것인가?  제시한 답이 <치팅컬처>의 귀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야릇한 친절 - 캐나다 총독 문학상, 의회 예술상 수상작
미리암 토우스 지음, 황소연 옮김 / 눈과마음(스쿨타운) / 2009년 6월
평점 :
품절


 

"이 마을은 정말 혹독하다. 그리고 고요하다. 이 침묵이 나를 미치게 만든다. 
 침묵 때문에 죽을 수도 있을까? "



어느 작가의 글이 생각난다. 천국이 비도 내리지 않고 바람도 불지 않는 그런 곳이라면 단 사흘도 살 수 없을것 같다는..인간에게는 적당한 고난적 자극이 필요하다는 말인듯 하다. 무료함과 침묵이 주는 고통은 인간의 생기를 흡입한다. 노미 니켈은 "웃기는 나라의, 웃기는 지방의, 웃기는 마을에" 사는 열 여섯 소녀이다. 노미의 마을은 메노파 종교집단의 폐쇄적이며 은둔적 형태를 지니고 있다. <야릇한 친절>은 사춘기 소녀 노미의 사춘기적 방황과 가족 회복에 대한 갈망을 그리고 있다.  
 
 

노미의 친절하고 달콤한 상상에도 불구하고. 엄마의 자유로움을 쫓아 가볍게 떠날수만은 없는 작은 소녀의 불안과 두려움이 갈등을 증폭시킨다. 노미는, 학교를 졸업하고 마을의 다른 아이들이 그런것처럼 닭머리를 치는 일을 해야만 한다.  마을에서 집단 운영하는 닭도살장에서 결코 일하고 싶지 않다. 그런 이유와 함께 강요된 일련의 삶에서 인형처럼 묶여있지 않기 위해 노미는 떠나야만 한다.  그러나 열 여섯 소녀에게 그것은 두려운 결정이다. 노미는 판타지에 나오는 주인공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저 평범한 열 여섯 소녀인 것이다. 매노파 종교의 집단적 간섭은, 노미가 현실에서 벗어나 자신의 삶을 당당하게 개척해 나가는 것에 대한 극대적 효과를 던진다. 그것은 단지 이 사회 어느곳에나 존재하는 고정관념과 암묵적 강요의 일부분일 뿐이다. 그래서 매노파 종교를 소재로 그려낸 소설이지만, 종교적 갈등이 아닌 사춘기 소녀의 방황과 고민, 자아의 발견이라고 여겨진다.  

 

엄마의 부재를 안부처럼 각인시키는 이웃들의 불필요한 친절은 노미의 아픔을 콕콕 찌른다. 제목 <야릇한 친절>, 겉으로는 관심을 기울이는듯 보이지만 인간내면의 갈등을 무관심하게..무덤덤하게 건너뛰는 군중속 고립감을 드러내고 있다. 끝까지 아니었으면 했던 분명한 결말때문에  지독한 종교적 굴레가 거슬렸다. 한 가족 모두가 벗어나고 싶어하던 그 굴레를 함께 하지 못하고 끝내는 뿔뿔히 흩어져야만 하는... 가족의 해체까지 이르게 한 변명으로는 부족하다. 대화가 없는 가족, 함께 있어도 외롭게 만드는 서로에 대한 방관이 가득한 현대 사회에 대한 일침이 숨겨있다. 아주 조금의 불편한 소재에도 불구하고, 노미의 사춘기적 갈등과 방황이 거침없고 유쾌한 도발을 품고 있는 것과 추억과 이별에 대한 정돈된 작가의 필치에서..작위적이지 않은 독백과 깊은 슬픔을 읽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하도 오래전에 본 영화라 로빈 윌리엄스만 기억에 뚜렸하고, 그 잘 생긴 에단 호크마저도 가물가물하다. 부분적 기억회로의 이상이 아니고서는 이럴 수 없는 나의 기억상태에도 불구하고, 쓰레기통에 책을 부우~욱 뜯어서 마구 던지는 장면과 ’오 선장님, 나의 선장님!’ 을 외치며 책상위로 올라가 키팅 선생님을 열호하던 학생들의, 감동적인 엔딩은 잊을 수가 없다.   


그 감동을 오늘에 되살려 <죽은 시인의 사회>, 책으로 만나고 있는 중이다. "현재를 즐겨라, 인생을 독특하게 살아라" 오직 인생의 목표를 아이비리그에 두고 있는 아이들에게 키팅 선생님은, 끊임없이 아이들의 자아를 일깨워주려고 무진 애를 쓴다.
’호~ 그래서 책을 부~욱 찢었던거구만’ 이라는 상황 파악에서 조금 더 진전된 현재 상태에서 먼저 파고드는 생각, 

’여기나 저기나 입시전쟁, 맹렬부모, 고뇌하는 청춘이 있구나’ 


그저 좋은 대학이 인생의 목표인양 내몰리는 청소년들, 남의 일 같지가 않다. 자신이 진정 무엇을 하고싶은지, 어떻게 하는지도 모른 채, 앞만 보고 달려가는 모습이 안타깝다. 우리에게도 키팅 선생님이 필요하다. 하지만...선생님중 누군가가 수업 시간에 공부를 가르치지 않고, 시를 읊고 ’죽은 시인의 사회’같은 모임을 권유하고...그런다면 어떨까? 난, 모르겠다. 그런 선생님의 의도와 뜻을 제대로, 순수하게 알아볼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는 말, 나는 얼마만큼 믿고 있는걸까. 혹시, 남의 아이에게는 그렇게, 내 아이에게는 아닌, 이중의 잣대를 가지고 있는건 아니길....책값 무서운줄 모르고 먹어치우는 아들래미, 문득 이뽀~~  


   

양 손에 떡 쥔듯, 책을 읽는 나는   
우연히도, 공교롭게도 맞아 떨어진다고 생각되는 <치팅컬처> 를 읽고 있다.  


 

거짓말과 편법을 부추기는 문화, 에 대한 실랄한 비판과 현상을 짚어내는 이 책, 7장에서는 ’출발선의 속임수’에서 일류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아이들이 속임수에 얼마나 능숙하게 대처하고 터득해나가는지를 꼬집고 있다. "성적을 올리는데 필요하다면 무슨 짓을 해도 상관없다는 성과주의 정서가 있는데, 그 중에서 더러 속임수도 포함된다."(p.291)  
시험에서 컨닝을 하는 것, 과제를 대행시키거나 사서 제출하고, 남의 논문을 짜깁기해서 자신의 것으로 둔갑시키는, 이런 행태들이 이젠 예사롭다. 속이고 훔치는 것에 아무런 도덕적 견제를 받지 못하고 있다. ’남들도 다 하니까,’ 그들과 같아지기 위해 나도 그들처럼?..  


도무지 남의 일같지 않은 일련의 이런 현상을, 허버트 스펜서의 ’적자생존’의 법칙으로도 명확한 해석이 불가능하다. 도덕적으로 무뎌지는 문화, <정의란 무엇인가> , <왜 도덕인가>가, 주목받는 이유와 무관하지 않는 것같다.   

 

 

  

 

               

 

 

 

 

 

 오, 선장님, 나의 선장님!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양철나무꾼 2011-01-21 0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값 무서운 줄 모르고 먹어 치우는 아들내미라면, 저라도 이쁘겠는걸요~^^

인성교육이나 전인교육...멸종 위기 아닌가요?

모름지기 2011-01-22 01:09   좋아요 0 | URL
주머니는 울고 어미는 웃고..그런거죠.^^
사회마저 회피하는 인성교육 전인교육까지 감당해야하는 부모의 시름이 깊어만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