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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는 죽었는가? - 새로운 논쟁을 위하여
다니엘 벤사이드 외 지음, 김상운 외 옮김 / 난장 / 2010년 4월
평점 :
새로운 논쟁이라는 부제에 걸맞게 이 저작물은 논쟁으로 일관한다. 탁상에서 빚어지는 공론보다 더 무의미하며 소모적이다. 민주주의의 현상태를 가늠하며, 회의적이며 비판적 시각으로 민주주의에 접근한다. 다니엘 벤 사이드는 <영원한 스캔들>에서 "나는 머리로는 민주주의 제도를 좋아하지만 본능적으로는 귀족주의자다. 다시 말해 나는 군중을 업신여기며 두려워한다. 나는 자유, 권리 준수를 진심으로 좋아하지만 민주주의는 좋아하지 않는다."라고 일축했고, 아르튀르 랭보는 이런 맥락으로 민주주의를 개발도상국에 떠넘기려는 先민주주의를 꼬집는다. "오늘날 민주주의는 무의미의 전형적인 사례가 됐다. 한 마디로 민주주의는 정치, 윤리, 법, 권리, 문명 모든 것을 뜻하지만 아무것도 뜻하지 않는다."고 결론 짓는 장 뤽 낭시의 말은, 우리가 혹시 민주주의의 망령에 붙들려 사는건 아닌지 의심하게 만든다. 고기도 먹어 본 놈이 맛을 안다고, 민주주의에 흠뻑 취해나 봤어야 그 맛을 알지.
이 책의 논쟁을 바탕해서 내 방식대로 재구성하자면,
순이는 이제 막 신혼살림을 차렸다. 지하 셋방이나마 보금자리를 마련하고 이불 한 채, 그리고 약간의 살림살이를 장만했다. 혼자에서 둘이 되고, 뱃속의 아이가 세상에 나오면 그야말로 가족으로 새 인생을 꾸려가게 될 참이다. 그런데 미국에 계신 먼 친척께옵서 근사한 마호가니 옷장을 결혼 선물로 보내셨다. 단칸방에 떡하니 자리잡은 옷장은 겉모습의 근사함과는 달리 애물단지가 되고 말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옷장은 점점 더 공간을 침범하며 단칸방을 비좁게 만들었다. 그렇다고 냉큼 내다 버릴 수도 없다. 좀 더 넓은 집으로 가게되면 분명 그 값어치를 할 거라는 기대를 떨칠 수가 없다. 어느 날 옆집에서 영희가 놀러왔다. 방에 으리으리하게 버티고 있는 옷장을 연신 신기하게 바라보며, 미국에 친척을 둔 순이를 마냥 부러워했다. 잘만하면 영희에게 이 애물단지를 떠넘길 수 있겠다고 순이는 은근히 기대하고 있다.
우리가 민주주의를 받아들이고 새로운 국가 건설의 도약을 꿈꾸기 시작한게 불과 몇 십년이다.
아직 민주주의가 탄탄히 뿌리 내렸다고 단정짓기 어렵고, 민주주의의 지평을 논하기엔 시기 상조임을 절감한다.
민주주의를 위해 피 흘렸던 많은 우리 선배들의 영전에, 부끄럽게도
아직은 민주주의가 정확히 무엇인지 왜 민주주의여야만 하는지를 대답할 수 없다.
로자 룩셈부르크의 대답을 빌자면,
"독재란 민주주의의 철폐가 아니라 민주주의를 사용하는 방식이다" 인데
열어서는 안될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다는 걱정이 앞선다.
그것도 다른 사람에게 맡겨진 판도라의 상자를.
내게는 너무 이르고 버거운 책이었다. 두통약을 준비하고 읽어야 할 책이다.
통증은 가라앉았지만, 골칫거리는 여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