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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 물고기 (무선)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5
J.M.G. 르 클레지오 지음, 최수철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평점 :
프랑스 소설은 영화만큼이나 난해한 지루함이 있다.
이 작품이 비교적 쉽게 읽힘에도 불구하고 결론은 마찬가지다.
어릴 적 유괴당해 팔려가고 이리저리 쫓기며 험난한 인생을 살아가는 한 여자의 이야기다.
라일라이면서 이름없는 한 여자.
"나는 그 동안 너무 오래 갇혀 살아온데다가, 자유에 취해 있었다.
나는 누군가가 나를 붙잡아두려 하면 달아날 준비가 되어 있었다. " (p.37)
그녀는 끊임없이 달아날 준비를 하고, 달아난다.
그녀를 알게 된 사람들은 하나같이 자신들의 방법으로 그녀를 가둬두려한다. 그녀를 동생처럼 아껴주는 후리야도 자신의 외로움과 두려움을 보둠어 줄 사람으로 라일라를 필요로했다. 이런 구속으로부터 그녀는 한없이 자유롭고 싶어하지만 언제나 상황에, 사람들에 휘둘린다. 그러나 또 언제나 역류하는 그녀이기도 하다.
분명한 삶의 목적을 가지고 있진 않아도 자신이 태어난 태초의 자유로움과 평안함으로의 회귀를 멈추지 않는 그녀는,
난해한 지루함속에서도 결코 이 책을 내려놓지 못하게 한다. 마치 아프리카 초원에서 들려오는 주술사의 노래에 취한 것처럼.
정형화된 규율에 맞춰 살아가는 방식이 일반적인 사람들의 순응으로 보자면, 그녀는 정반대의 사람이다. 어떠한 규율로부터도 불복하며 자신만의 성향, 자신의 욕망, 의지를 따르는 사람이다. 매번 쓰러지고 다치고 쫓기지만 언제나 자신을 버리는 적이 없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강인한 삶의 애착이라기보다는 초연함에 가깝다. 사람의 눈빛을 읽을 줄 아는 것에서 나는 그녀의 정체성을 확인한다. 자신의 역류를 붙드는 사람들에게서조차 실낱같은 무언가를 찾으려는, 포기하지 않으려는 불확실성의 탐닉에 나는 약간의 현기증을 느낀다.
이방인에 대한, 그것도 피부색이 검은 아랍계 여인을 향한 지독하고 모진 편견은 호롯이 라일라의 몫이었다. 그런데도 그녀는 어떻게 인간에 대한 깊은 배신감에도 불구하고 지속적 관계와 가능성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는지... 라일라에게 늘 불행만 따라다닌 것은 아니다. 그녀에게 각별하고도 순수한 도움을 주려 한 사람들도 있다. 그들은 그녀에 대해 자발적 호의를 베풀었는데, "내가 누구에게든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신이 증인이 되어줄 것"이라고 말하는 부분을 통해, 나는 분명한 그녀의 목소리를 들었다. 그녀가 받았던 냉대와 구타, 구속 또한 결코 그녀가 원한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는 목소리를 말이다.
인간은 여행자이며 표류자이다. 한편으로는 어떤면에서 건, 어디에서든 한 군데 씩은 이방인으로 살아간다. 그렇지만 태초부터 무리가운데 있었던 것처럼 자연스럽고 자유롭고 편안하게 유영하는 것처럼 보인다. 각자의 두려움따윈 잘 드러나지는 않는다. 어쩌면 자신을 너무나 잘 감춰놓고 있기 때문은 아닐런지. 비늘이 떨어져 나길 때마다 느껴지는 고통보다 그 떨어진 비늘 자리에 드러난 속살을 더 두려워한다고 생각되는 때문에 그렇다. 우리의 속살을 감추고 다른 나를 드러내며 살려고 하지만, 라일라는 결코 한 번도 자신을 자신 이상으로 포장하거나 자기 자신을 속이지 않는다. 인간이 자신을 감추는 거짓 허영을 본능적으로 따를 때, 누군가는 불복하며 자신을 자신만으로 살았다는 것,
모진 역경을 이겨낸 승리의 여신으로서의 라일라가 아니라 진정한 인간 내면 구축자로서의 그녀가,
난해한 지루함으로 표류하는 나를 구했다. 건조함이 흥건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