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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조세희 지음 / 이성과힘 / 2000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내부와 외부를 경계지을수 없는 뫼비우스의 띠에 숨겨진 진리는 무엇인가.
앉은뱅이와 곱추가 승용차에 불을 지른다. 그들에겐 하잘것없지만 더이상 물러설곳이 없는 마지막 보금자리를 쇠망치로 부수고 강탈하듯 가져간 권리에 대한 댓가를 찾기위해..
재개발..누구를 위한 것인지, 무엇을 위한 것인지에 대한 대답을 서슴없이 할 수 있는 사람은 몇 안된다. 그리고 더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버려진 사람들에게 그것을 설명해줄 만한 사람은 더 적다. 어느 것이 진실인지 뫼비우스의 띠처럼 찾을 수 없다. 거짓과 진실이 맞물리는 끝없는 공방이다.
난장이...
金不伊라는 이름이 있지만, 사람들은 그저 난장이라고 부른다. 난장이의 가족이 몇 인지, 그의 나이가 몇 살인지, 그가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는 117cm작은키..난장이라는 이름뒤에 숨어있다. ’나’와 어머니,영호,영희에게만이 난장이가 아닌 아버지이다. 7-80년대 공장으로 쏟아져 들어갔던 ’나’와 영호, 그리고 영희에게는 사는것...그것만이 유일하다.
그들은 다른 모습의 난장이였다. 새벽부터 한 밤중까지 노동력을 착취당하면서도 한 마디 항변도 할 수 없었던 사람들이 있었다. 우리의 형과 누나였다. 항변을 위해 목소리를 높이던 사람들조차 형과 누나에게는 허공의 메아리와 같은 것이었다. 살기위해 내몰리는, 끝없이 밀려 다니던 아픈 시절이 우리에게도 있었다. 그들에게 불황을 말하며 참기를 강요하던 사람들은 진짜 ’불황’속에 있지도 않았다. 단 한번도...지친 노동력은 더 없이 쇠잔해졌다. 더이상 날지 못하는 도도새가 되어 버렸다.
새벽종이 울리고 새 아침이 밝았다는 노래로 사람들을 옭아매던 시절도 있었다. 그들은 언젠가 새 아침을 맞을수 있으리란 기대로 숨가쁘게 달렸다. ’착취’라는 채찍 대신 ’근면’이라는 당근으로 현혹했다. 물론 그 달콤한 당근을 맛 본 사람들도 있었다. 어려웠던 시기는 어느 나라고 있었다. 그리고 고통받았던 사람들도 함께 존재했다. 그들이 감래했으므로 우리가 이만큼 성장했고, 누리고 사는지도 모른다. 그들이..내 아버지와 할아버지, 형과 누나들이 값을 치른것이다. 아주 비싼 값으로...
1970년대는 갔다.
굴뚝으로 검게 뿜어지던 연기는 사라지고, 키보다 작고 열악했던 공장은 말끔한 현대식 건물로 바뀌고, 공단이라 불리던 그곳도 디지털밸리라는 모호한 이름으로 개명했다. 겉보기엔 구색이 갖춰졌다. 지금은 난장이가 꿈꾸던 달나라와 같은 세상이다. 그러나 난장이가 쏘아올린 공은 달나라 어디에도 이르지 못했다. 수많은 노조가 생기고, 노동자의 권리를 대변한다고 떠들고 있지만 그들은 또다른 이름으로 노동자들을 유린하고 있다. 노.사가 함께 공생하자는 기업의지에 발을 맞추는 협력자로서의 역할에만 충실하고 있다. 노동자들은 여전히 그들의 세계 밖에 있다. 인권변호단체나 노동자보호단체 및 외국인근로자의 보호와 권익을 위해 소리없이 팔을 걷어부친 사람들이 더욱 소중해지는 하나의 이유이다.
해가 있는 곳에는 언제나 그림자가 있기 마련이다. 시대가 흐르고 세상이 변했지만, 여전히 우리 주위에는 그림자가 있다. 해를 등지고 선다고 해서 그림자가 사라질것도 아니고, 손으로 해를 가린다고 가려질것도 아니다. 그림자와 더불어 가야하는 것이다. 사회의 어두운 그늘과 현실을 외면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근거없는 반대 보다 비판없는 동조는 더더욱 위험하다. 의식있는 정당한 제시와 요구만이 진정한 협상의 길이며, 진전과 발전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한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거짓과 진실이 맞물리는 끝없는 공방이다. 우리의 지난 치부를, 아름다운 수식어로 포장하고 감추기 보다는 발가 벗기우고 진실을 직시 해야만 다시 시작할 수 있을것이다. 첫 인쇄로 부터 30여년의 세월이 지났어도 조세희 작가의 이 책을 내려 놓을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