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란 무엇인가
마이클 샌델 지음, 이창신 옮김 / 김영사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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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에는 도리, 즉 사람이 마땅히 행하여야 할 바른 길이,  영어에선 공정,공평이  ’정의’의 사전적 용어로 풀이되어 있는 것으로 미루어,  마이클 샌델이 연속적으로 던지는 질문에 대하여 개인이 아닌, 사회 소속원으로서 다른 관점의 대답이 나올 수 있는 이유와 근거를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다. 더군다나 정의를 규정하는 사전적 의미와는 별도로 개개인이 가진 무수한 ’정의’의 판단은 행복, 자유, 미덕에 관한 서로 다른 입장의 다양하고 폭넓은 충돌을 내포하고 있다.  그래서 같은 문제를 가지고도 첨예한 대립이 맞설수 밖에 없는 것이 아닐까? 구제금융을 둘러싼 미국인의 분노에 대해서 드러나는 공감은 공평성과 공정성에 가장 근접하는 것으로 개인적 도덕 기준에 견주어도 딱히 반박의 소지가 개연하지 않는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일부 시행하면서 찬반 논란이 가중되고 있는 ’무상급식’ 과 관련해서 ’정의’에 대한 접근을 시도해본다.  "사회가 정의로운지 묻는 것은,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것들, 이를테면 소득과 부, 의무와 권리, 권력과 기회, 공직과 영광 등을 어떻게 분배하는지 묻는 것" 이라면, 무상급식은 어느 부분의 정의를 따르고 있는 것인가? 이 문제에선 ’정의’의 개입 여지가 없는 걸까? 이 논쟁에서 행복의 극대화하고 자유를 존중하며 미덕을 기르는 행위의 의미중 어떤 충돌의 이유가 대두되고 있는가? 눈칫밥을 먹지 않아도 되는 일부 계층의 자괴감을 보상해주는 일과 충분히 급식비를 감당할 수 있는 더 많은 계층에게까지 무상급식의 혜택을 줌으로써 공적인 돈이 지출되고 이것이 결국 모든 국민의 세금 부담을 가중시키는 결과를 초래하는 일이 충돌하고 있다. 그래서 "정의와 부정, 평등과 불평등, 개인의 권리와 공동선에 관해 다양한 주장이 난무하는 영역을 어떻게 이성적으로 통과할 수 있는지에 대해" 이 책의 대답을 들을 필요가 있다. 혹자는 이러한 문제들은 정의와 상관없는 포퓰리즘에 입각한 일부의 선거용 유세일 뿐이라고 일축하기도 하겠지만, 그럴수록 우리는 ’정의’를 진단해야 옳지 않을까싶다. 

개인의 ’정의’가 국가, 자유시장 철학과 어떻게 융합될 수 있는지를 간접적으로나마  <3장 우리는 우리 자신을 소유하는가? - 자유지상주의>를 통해 엿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최소국가를 지향하는 자유지상주의는 벤담의 공리주의가 "사적 판단을 배제하고 도덕적 가치를 심판하지 않는 것"과 동일하게 온정주의와 도덕법에 반대 입장을 드러냄으로써, 다시 한번 도덕적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특이한 경우로 "존엄이나 연민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지상주의 논리 자체만을 평가할 수 있다"는 마이클 샌델의 단서에도 불구하고, 나는 ’안락사’ 문제는 ’정의’의 총체적 고민을 안고 있다고 생각한다. 행복, 자유, 도덕은 개인의 선택이며 국가와 사회는 이러한 문제에 개입해 총체적 고민을 완화시키느냐 가중시키느냐를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고 여겨진다.   

쉴새없이 마이클 샌델의 퍼붓는 질문에 답하고 생각하고 반론하고를 반복하면서 내가 왜 ’정의’에 집중하고 있는지를 생각해 본다. ’정의’가 밥 먹여주나? 아니다.  궁극적으로 좋은 삶을 영위하기 위한 근거를 찾기위한 것이다. "정의로운 사회는 단순히 공리를 극대화하거나 선택의 자유를 확보하는 것만으로는 만들 수 없다. 좋은 삶의 의미를 함께 고민하고, 으레 생기게 마련인 이견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문화를 가꾸어야" 함에 동의한다. 이 책이 대중적 인기를 끌며 베스트 셀러 자리를 확고히 지키고 있는 것으로, 내가 한 술 더 뜨지 않아도 명강의를 담은 훌륭한 책이다. 유수한 사례들은 결코 만만하거나 명료한 결론을 내리기 힘들게 만들었지만 그동안 베스트셀러 자리에서 유혹한 뒤 혹독한 지루함이나 난해함으로 나를 괴롭힌 책들에 비한다면 더욱 그렇다. 학자적 독단에 사로잡히지도 않고 설득력에도 남다른 마이클 샌델, 하지만 ’정의’의 파문을 일으킨 그가 가진 최고의 매력은  그가 이끌어내는 결론의 유연함과 유보성이며, 인문학에서 보기 드문 미덕이다. 그래서 ’정의’에 대해서는 유보적이면서도 이 책 읽기를 더이상 유보하지 않았음에 만족한다.   

맺음.정의가 무엇이든 어떤 관점으로 해석하든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도구로 사용될 때 그 가치가 살아날 것이다.
부뚜막의 소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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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행이 답이다 - 생각을 성과로 이끄는 성공 원동력 20
이민규 지음 / 더난출판사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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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의 평범한 인간인 나는, 1%의 사람들이 가진 것이 무엇인가 늘 궁금하다. 1%의 천재들은, 천재성보다는 노력이 더 큰 원동력이라고 말한다. 아니, 천재성에 노력까지 그렇게 해대니 나같이 평범한 사람이 발벗고 뛰어봤자 벼룩이지, 란 생각을 했다. 솔직히 그들과 나는 공정한 시합을 할 수 없다. 왜냐면 그들은 태어날 때 모터를 달고 나오셨고 나는 맨발의 청춘이니까.  그렇다면 나랑 똑같은 출발선에서 두 다리만으로 달리기를 시작하는 사람들과 시합해서 뒤쳐지는 이유는 뭘까? 비교하는 것에서 인간의 불행이 시작된다고는 하지만, 비교를 통해 코 빠뜨리고 있는 건 몰라도 분석을 통해 정진의 방향을 모색한다면 ’비교’ 자체는 손가락질 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목표를 이루려면 어떻게 해야하나?  <실행이 답이다>, 답이 나와버렸네?
작심삼일의 늪에서 허우적거리기를 수도 없이 하면서 나의 의지박약증은 이제 지병 수준이다. 지병을 치료하기 위한 이 책은 진즉에 알고있던 답에 이르게 하는 과정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실천 지침서이자 의지박약 치료제라고 할 수 있다.  자, 작심(作心)부터 시작해볼까? 마음을 굳게 먹는다. 삼일은 간다. 여기까지는 평범한 사람들이 거치는 과정이다. 그렇다면 나머지 1%가 되기 위한 과정은 무엇인가.  그것은 ’유지’ 다. 저자는 생각을 성과로 이끄는 3단계를 결심- 실천- 유지로 제시하고 있다.  

결심
결정적 ’유지’단계에 이르기 전부터 ’결심’은 안전한가? 첫 단추부터가 역시 다르다. 결심을 함에 있어서 ’접근 방식의 구체화’가 필요한 것이다. 이 부분에서 저자의 ’낙관’과 ’비관’의 관점을 주의깊게 볼 필요가 있다.  일반적으로 지닌 이 두 단어의 대립의미를 저자는 다르게 해석하고 있다. 낙관은 ’안이함’이며 비관은 ’문제 대비’를 위한 관점이란 것이다. 결심을 하면서 "잘 될거야"라는 긍정적 마인드는 상당히 호의적인 것으로 생각했는데 바로 그 ’낙관’이 작심삼일의 늪으로 가는 지름길이었던 것이다. 결심을 구체화하는 것과 더불어 ’비관’에 입각한 문제 대비에 밑줄 쫘~악 긋고. 목마른 놈이 우물 판다고, 절박한 이유가 있어야 우물 파는 삽질이 빨라진다. 목표 달성의 간절한 이유를 파악하는 것도 ’결심’의 중요한 관건이다.  

실천
미룸신과 동행하는 삶에 익숙하다보니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인데도 "내일까지 할께요" 라고 불쑥 튀어나올 때가 있다. 스스로에게 ’조금 있다가 하지. 시간이 좀 먹냐?’ 는 늑장을 부릴 때는 더 많고.  시간이 좀 먹지 않겠지만 잘못하다 죽는 수가 있겠다. 벼락치기를 해봤으면 알겠지만 상당히 능률적이다.  "성과가 오르지 않는다면 시간이 너무 많기 때문"이라는 저자의 말도 그런 뜻이겠다.  신속하게 반응하는 것이 실천의 포인트다.

유지
아메라카 인디언의 제사장 레인메이커 일화를 읽으면서 웃지 않을 수 없다. 이 제사장이 기우제를 올리면 백발백중 비가 내린단다. 오죽하면 이름이 레인 메이커겠냐고. 그런데 이 제사장의 신통력은 알고보면 별것 아니다. 그는 기우제를 올리기 시작하면 비가 내릴 때까지 한단다. 그걸 누가 못해?,라고 할랬더니 내가 못하고 있다. 비가 내릴 때까지 계속 기우제 드려봤어? 안 드려봤으면 말을 하지 말고. 그러니 난 할 말이 없고 대신 저자는 끈기와 유지력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결심하고 실천을 시작했으면 끝장을 볼 때까지. 어쩌면 미련스럽게까지 보일 수 있는 이것이 핵심이다. 그러나 또 다른 미련은 경계해야 한다. 그것은 ’yes’ . 거절하지 못해서 쌓이는 yes의 무수한 잡동사니로부터 홀가분하게 벗어나야,  실행은 정돈된 궤도를 달릴 수 있다. 다른 계발서에서도 누누히 강조하는 것이지만 여전히 상큼한 거절이란 쉽지 않다. 거절 당한 마음에 붙인 반창고도 부지기수다.  때와 장소를 가려 착하게 거절하는 방법을 책으로  내면 대박 나겠다. 


책 제목 때문에 마치 실행이 근본적인 해결이라고 착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실행은 근시적이며 당장의 해답이며, 원시遠示적으로는 실행을 유지하는 게 중요함을 강조하는 책이다. 

  

자다가도 줄줄 외는 거북이와 토끼의 달리기에서 얻는 교훈은 딱 하나다. 조금씩이라도 꾸준히 달리는 놈을, 빠른 것 하나 믿고 게으름 피우는 놈이 이길 수 없다는 것이다. 나는 놈 밑에 뛰는 놈, 뛰는 놈 밑에 게으른 놈이 있다고 생각했더니만 이 책을 읽고나니 의지박약이 제일 아래다. 결국 게으름과 의지박약은 동일어인 셈이다. 이 책에 견준 토끼와 거북이 경주의 교훈, 왜 이 달리기에서 이겨야 하는지를 명심하고 천천히라도 꾸준하게 달려야한다. 거북이처럼. 레인 메이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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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지게 한말씀
조관일 지음 / 쌤앤파커스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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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이나 티비 프로 진행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한결같은 생각에 빠져든다. 어쩌면 말을 저렇게 잘 할까? 전생에 나라를 구했는지 참 복도 많다고 생각했다. 일전에 유명 아나운서였던 분의 강연을 들을 적이 있다. 강연의 내용도 훌륭했지만, 강연에 대한 그의 진지하고 성의있는 모습에 감탄했었다. 그는 강연을 준비하기 위해 몇 날에 걸쳐 준비 자료를 정리하고 외우고, 연습을 거듭한다고 했다. 또한 아나운서로 활동할 때, 한 사람과의 인터뷰를 위해 상대방의 신상은 물론이고 그와 관련한 저술서, 참고할 책을 수 권씩 읽는다고 했다. 원활하고 매끄러운 진행을 위해서라지만 그의 노력은, 타고난 복이려니 했던 나의 편견을 일축했다. 한 두시간의 강연에서 보여지는 멋진 한말씀은  "지독하다 하리만치 정성을 쏟은" 것에서 비로소 빛을 발하는 것이었던거다.


대중앞에서 멋진 연설을 위해 저자가 말하는 것들중,
3의 법칙은 깨나 설득력 있어 보인다. 물론 이것도 그가 충분히 연설과 관련한 자료들을 찾아내고 스스로 연설을 통해 얻어진 반응의 결과를 토대로 하고 있으니 그럴 수밖에 없다. 이 방법은 스티브 잡스나 케네디, 오바마 대통령 등 스피치의 구재들이 즐겨 사용하는 방식이라니 더 솔깃하다. 말하고자 하는 요지를 3~4개로 간추려 한 문장에 담거나 구술방법의 구성을 3가지로 전달하는 방식이다. 그리고 대다수 연설자들이 대중을 흡입하는 도구로 강력 추천하는 ’유머’에 대한 참고에도 공감한다. 그래서 유머집을 가끔 읽기는 하는데, 그 유머를 활용할 타이밍을 잘 짚어내지 못한다는 게 문제다.  대화 역시 강연처럼 연습이 필요한 듯하다.   

        
그런데 나는 대중은 고사하고 몇 명과 대화를 나누는 것조차마음속에 하고 싶은 말을 충분히 표현 못하고, 혹은 의사전달을 제대로 못할 때가 있다. 그러니 대중앞에서 멋지게 한말씀하라는 저자의 이러저러한 권유중에서 대화에도 필요한 직접적이고 요긴한 포인트를 찾아냈다. 간혹 가다가 대화가 뻘쭘하게 중단되거나 별로 친분이 없는 사람과 마주할 때의 어색한 분위기에서 벗어나기란 쉽지 않다. 그럴 때 "주여! 신식의사가 천생연분이오~" 라는 저자가 개발한 화젯거리를 떠올려보는 것이 딱이겠다. (주)택, 부동산 (여)행, (신)문 기삿거리, (식)생활...등등이 일반인들의 공통 관심사이기에 자연스런 화젯거리로 무난하다. 오늘 날씨가 참 좋네요.......침묵, 이라면 나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신문은 읽지 않고 인터넷 가십기사들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닌지, 경제 돌아가는 것에 너무 무심한 건 아닌지, 생활 정보에 취약한 건 아닌지 말이다.   


"화술(話術)보다 심술(心術)"   
     
대중이 되었든 개인과의 대화가 되었든간에 이 한 문장은 꼭 기억해 둘만하다.
어눌한 말주변을 바로 잡아줄 참고서를 찾아 읽는다고 읽었지만, 역시 참고서일 뿐이다. 저자가 강조하듯, 영어 공부를 하는 것만큼의 정성과 노력으로 우리 말에 관심을 가지고 연습해야하는 것은 자신의 몫이다. 지나는 말이라도 허튼소리를 실없이 뱉는 사람에 대해서는 신뢰를 가지기 힘들다. 달변이 되고자 하는 큰 욕심은 없다하더라도 자꾸 같이 있고싶고, 얘기 나누고 싶은 그런 사람이고는 싶다.  말 잘하기 위해 이것저것 참고도 하고 연습도 해야겠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역시 마음을 정직하게 표현하는 것이 아닐까. 심술(心術)을 부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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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사라지고 있을까 - 타인과 함께 하는 가장 이기적인 생존 전략, 포용
정현천 지음 / 리더스북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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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으로만 비추어 자기 정체성에 관한 글이 아닐까 생각했다. 나, 란 존재의 필요성과 이유를 말해줄 거라는 생각과는 달리 포용에 관한 일반적이고도 구체적인, 생산적인 저작물이다. 우선 포용에 관한 다변적 시각을 담고 있는 이 책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품성으로서의 관용’이 아닌 ’행위로서의 포용’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포용(包容)을  가장 유연하면서도 적극적인 관계 맺음으로 설명하며 시작하는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반대적 개념, 고립과 단독은 ’나’를 사라지게 하는 요소다. 생태학적, 문화적으로 고립을 자초하고 폐쇄적인 집단이 어떻게 사라져갔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는 직접적인 포용의 필요성을 시사하고 있다. 그러나 2장부터는 포용의 구체적 이유와 방법으로 포용의 절대성에 대해 기술하고 있다. 소수와 마이너리티를 포용해야하는 이유와 그 사례들을 통해 ’세상을 향해 열려있는 광의의 포용이 담겨있다. ’패자조차도 자기들에게 동화시키는’ 로마인,  편견과 사회적 고정관념을 깨고 실리적 인재등용에 탁월했던 세종대왕, 반대론자들에게 타협의 시간의 여건을 내어주는 링컨등이 진정한 ’행위의 포용’ ’광의의 포용’을 보여준 사람들이다.     

이런 직접적이고도 일반화된 포용의 사례들은 익히 알고 있다. 포용이 가지고 있는 힘이 거의 무한대인것처럼 해석해 놓은 초반부의 설명은 공감은 되면서도 정작 나와의 개연성에서 힘을 잃었다. 왜냐면? 나는 그저 평범한 샐러리맨이며 나의 포용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목을 빼고 기다리는 상황도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품성으로서의 관용’이 내게 더 필요한 상황이 아닌가도 생각했다. 

3장에서 경영자의 생존 덕목이 감수성과 포용이란 키워드로 시작할 때, 나는 진짜 삐딱해질 뻔했다.   하지만 여기서 강조되는 것은 ’변화의 중요성’과 변화를 받아들이는 자세였으며, 뜬금없긴해도 김광석의 노래 <변해가네> 나타남으로써 변화와 포용에 대한 수용이 훨씬 수월하게 다가왔다.  생활속에서의 불편을 덜어내고자 노력했던 발명가들 중에는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을 배려하는 마음이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재봉틀이나 접히는 빨대를 발명하게 된 이유와 과정이 가장 비근한 예이다. 이 책에서는 캘로그의 콘프레이크를, 사람을 향한 관심과 배려가 가져온 시각의 변화와 성공을 예로 들고 있다.  


"모든 사람이 세상을 바꾸겠다고 생각하지만 
 누구도 자기 자신을 바꿀 생각을 하지 않는다." -톨스토이
 


틀린 것을 고쳐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다름’을 끌어안는 게 포용의 참된 의미란 저자의 말과 톨스토이의 강력한 한마디는, 변화해야하는 것이 세상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어야함을 깨닫게한다. 변화를 거부감없이 받아들이고 발전의 계기로 삼는 것이야말로 이 저작물이 장황하게 설명하고 있는 모든 포용들의 귀결이다. 기존의 고정관념과 정형화된 틀에서 벗어나 변화를 향해 주저하지 않는 사람들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가 되는 것이다. 변하지 않는 것들이 좋은 경우도 물론 있다. "그 사람, 참 변함이 없어."라는 말에는 칭찬의 의미가 담겨있음도 안다. 하지만 칭찬받은 고래들이 춤만 추고 있기에는,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  변화를 포용하는 자세로, 이제 고래도 변해야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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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카프카의 고백 - KAFKA's Dialogue
카프카 글, 이우일 그림 / 웅진지식하우스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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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맹랑한 고양이를 봤나.
이 책의 저자가 카프카와 이우일 공동작이라고 할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는데.
나는 강아지를 키운다. 가끔 멀뚱히 앉아 창밖으로 시선을 향하고 있는 녀석을 보면, 무슨 생각을 할까? 궁금해진다. 정말 사람만 생각을 하는 걸까? 뭐 그런. 그러면서 또 가끔 녀석의 입장에서 나를 돌아보곤 한다. 이 년여의 시간동안 함께하면서 녀석은 이제 정말 가족처럼 느껴진다. 비록 한 솥밥을 먹지는 않아도 반려동물, 그 이상의 의미로 생활한다.

카프카가 딱 그렇다. 이씨네 일가를 마치 자기가 돌보는 반려가족인양 푸념하고 챙기고, 나름대로 잔소리를 한다. 생긴건 귀족적인데 하는 짓은 앙큼하고 귀엽기 짝이 없는 생활력 강한 고양이, 그 자체다. 내가 궁금해하던 강아지의 생각을 카프카가 죄다 털어놓는다. 순간순간 엉뚱한 생각이 든다. 밤이면 몰래 이우일 저자에게 귓속말로 원고를 불러주지는 않았을까, 하는 우스운 생각. 그렇지 않고서야 어쩜 이렇게 고양이다운 생각을 앙칼지게 털어 놓을 수 있느냔 말이지. 아마도 이씨 가족과 카프카는 쥔님과 반려동물 이상의 유대로 묶여 있는 듯하다. 

지금 같아서는 당장 고양이 한 마리 데려와야 할 것 같다. 
어디 고양이 없는 사람 서러워 살겠나.
리뷰를 쓰고 있는 내 무릎에 앉아 조용히 올려다 보는 강아지.
’그럼 못 써요!’ 라고 말 하는 듯. ^^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은 사람이나 동물이나 소중하고 행복한 느낌일 것이다. 애정을 독차지하고 싶은 마음이야  우리 집 강아지만 할까. 나이 어린 조카가 와서 이쁘다고 안아주면 시큰둥해진 강아지는 슬그머니 바닥에 납작 엎드려 있다가 내가 딴 일을 하는 사이 조카의 바지 가랑이를 물고 늘어진다. 샘이 많다. 고양이는 좀 다른 줄 알았다. 왜냐면 그앤 시크한, 차가운 도시 고양이니까. 한데 별반 다르지 않다. 자신의 영역에서 밥 먹고, 용변 보고, 장난감 가지고 노는 꼴(?)을 못 보는 걸 보니 말이다. 

카프카, 네가 고백을 하니 나도 한 말씀.
"너의 반려가족이 너를 힘들게 할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마. 반려가족 돌보는 일이 그리 쉽겠어?" 
싸우기도 하고 서로 안아주기도 하고, 웃기도 울기도 하면서 사는 게 가족이라면, 카프카는 가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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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1-03-12 15: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카프카 글의 그 카프카가 제가 생각하는 그 카프카가 아니군요.
제 선입견을 떨치느라, 페이퍼를 다시 한번 읽었습니다.
고양이 키우고 싶은데, 저 털 알러지 있어요. ㅠㅠ
그리고 반려가족은 일종의 책임인데,, 제가 좀 책임감이 떨어져서리. 이긍.

모름지기 2011-03-25 00:47   좋아요 0 | URL
예..그 카프카는 아니예요^^
저희 애들도 털 때문에 개을 키우며 한동안 고생했는데
어느 순간..괜찮아지더라구요. 저는 아직도 컥컥거리지만요.ㅎㅎ

애들하고 개키우기로 합의하면서 책임감에 대해 단단히 다짐을 받았는데...
결국엔 제 일만 늘어났답니다. 그래도 녀석이 주는 행복감을 생각한다면 그럭저럭 봐줄만해요.^^

양철나무꾼 2011-03-19 0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말이죠, 애완동물에겐 쫌 무심한 편이에요.
강아진 그래도 덜한데, 고양이는 완전 무서워해요.
네, 무서워요.
울남편이 심지어 '걔(=고양이)가 널 잡아먹는다던?'하고 혀를 끌끌 찰 정도로 말이죠~ㅠ.ㅠ

가족이라는데, 넘 번지수가 어긋난 댓글인가요?^^

모름지기 2011-03-25 00:49   좋아요 0 | URL
저도 고양이는 엄청 무서워했어요. 저녁에 쓰레기 버리러 갈때마다 고양이와 마주칠까봐
늘 가슴이 조마조마했었죠. 뭐...지금도 별 다르지는 않은데,
애완 고양이는 이쁜 모습만 봐서 그런지 '한번 키워봐?'라는 생각이
꿈틀댄답니다.
아직..개에게 덜 데었나봐요.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