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개의 찬란한 태양
할레드 호세이니 지음, 왕은철 옮김 / 현대문학 / 2007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전쟁인가.

 

까맣게 어둠이 내려앉은 도시 위를 여러개의 포탄들이 엄청난 소리와 함께 섬광처럼 가르고 지나갔다. 그리고 이어 "쾅"하는 소리가 연이어 들리고 그 굉음이 울릴 때마다 천지가 뒤흔들렸다. 내가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목격한 전쟁. 미국 방송채널인 CNN화면을 통해 본 전쟁은 이미 전쟁이라기 보다는 하나의 이미지로, 과격한 한 편의 쇼처럼 변해버렸다. 과연 전쟁은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 일어나는 것일까?

 

누군가 이런말을 했다고 한다. 전쟁을 일으키는 것은 남성이지만, 전쟁의 가장 큰 피해자는 어린이와 여성이라고. 너무나 명확한 답이라서 진부하기까지 한 그 말은 지금 이 순간에도 실현이 되고 있다. 

 

아프가니스탄. 아시아 서쪽 끝 어딘가에 있을 그 조그만 나라의 이름을 처음으로 알게 된 것은 9.11 테러가 일어난 그 쯤이었다. 비행기 두대가 세계무역빌딩으로 날아들고 건물과 비행기 모두가 산산조각이 나던 그 때, 나는 자연히 전쟁을 떠올렸다. 무고한 인명을 숨지게 하고, 그들의 많은 가족들을 평생동안 온전한 행복을 경험할 수 없게 한 오사마 빈 라덴.  미국에서 일어난 큰 사건은 중동으로 번져나갔다. 그리고 사람들은 중동인들을 악마로, 혹은 피도 눈물도 없는 악인으로 보기 시작했다. 그들이 그저 그 테러범들과 같은 종교를 믿는 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말이다.

 

아프가니스탄의 아픔을 바라보다

 

할레드 호세이니는 미국인들이 그토록이나 증오하는 아프가니스탄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이 그토록이나 두려워하고 증오하는 미국의 언어로 소설을 썼다. 아프가니스탄과 미국, 절대 적일것만 같은 두 국가 사이에 양발을 걸치고 선 작가 할레드 호세이니. 그는 자신이 태어난 아프가니스탄의 현실, 테러범들의 국가라는 이미지 뒤에 숨어있는 스르로 잔인한 현실을 자신의 작품을 통해 세계에 알리고 있다.

 

어떻게 일어난 전쟁인지도 모르고  전쟁에 휘말려 목숨을 잃어야 했던 아이들과 여성, 이들이 바로 할레드 호세이니가 다루고자 한 인물이다.  처녀작인 [연을 쫓는 아이]를 통해 전쟁이 어린아이의 인생에 얼마나 크고 질긴 암흑을 드리우고 대를 이었는지를 보여주었다면, 이번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은 여성들의 고통을 섬세하게 보여준다.

 

전쟁과 폭력으로 희망을 잃어버린 여인들

 

[천개의 찬란한 태양]의 두 주인공, 마리암과 라일라. 이 둘은 너무나도 닮은 인생을 살아간다.  부잣집에서 가정부로 일을하다 그 집의 주인의 애를 가진 어머니에게서 난 마리암. 그녀는 비록 타인들에게서는 인정받지 못하는, 아버지 가족에 누가되는 존재로 태어났지만 한시도 아버지의 자신에 대한 사랑을 의심하지 않았다. 하지만 어머니가 목을 매어 자살하고 믿었던 아버지마저 그녀를 외면한다. 그리고 쫓기듯 고향을 떠나 카불에서  늙은 구두장이 라시드와 꾸린 가정. 그 곳에서 그녀는 꿈꾸었던 가족의 따뜻한 정도, 남편의 따뜻한 사랑도 얻지 못한다.  강간과도 같은 남편과의 관계, 아이를 잃고 매일같이 온몸으로 떨어지던 남편의 폭력. 그녀는 그렇게 자아를 잃어간다.

 

그렇게 마리암이 남편의 모진 매를 견디며 스스로를 잃어가고 있던 그때, 마리암의 이웃에서 라일라가 태어난다.  두 오빠가 전장으로 떠나고 아버지가 직장을 잃고, 어머니는 방에 스스로를 가두어버렸다. 하지만 라일라는 따뜻한 아버지와 타리크가 있기에 그녀는 행복했다. 하지만 전쟁은 라일라에게서 그 모두를 빼어갔다. 그리고 타리크는 가족을 따라 카불을 떠났다.두 오빠의 죽음과 집 위로 날아든 포탄은 그녀를 이 세상에 혼자 남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절망의 끝에서 라일라는 라시드의 후처가 되었다.

남편을 뺏긴 여자와 남편을 뺏은 여자. 마리암과 라일라는 처음엔 서로에게 다가가기 힘들었다. 비록 자신을 때리고 학대하는 남편이지만 자신의 가족을 빼앗겼다는 생각에 마리암은 라일라를 적대시했다. 하지만 라일라가 아지자를 낳고 두 여자는 마치 모녀처럼 가까워진다.

 

절망의 끝에서 빛을 보다

 

두 여자가 한 집에서 한 남자의 아내로 살아가면서 많은 것이 바뀌었다. 라일라는 라시드가 그렇게 원하던 아들을 낳았다. 하지만 남편의 학대는 수그러들줄 몰랐다. 남편의 학대가 심해지는 것 만큼이나 카불의 상황도 좋아지지 않았다. 날이 갈수록 먹을 것을 구하기 힘들어졌고, 마리암네는 집안의 모든 물건을 내다팔고, 나중엔 아지자마저 고아원에 맡겨야했다. 

 

세상은 바뀌었다. 여자들은 남성보호자 없이는 길거리에 나설 수 없었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신체 전부를 무르카로 꽁꽁 숨켜야했다. 전쟁은 모두에게 가혹했으나 여성들에게 더욱 가혹했다. 마리암과 라일라는 도망을 꿰하기도 했지만, 경찰들은 그녀들이 남편에게 죽도록 맞을 것이란 걸 알면서도 남편에게 데려다 주었다. 하지만 남편의 모진매와 궁핍한 생활보다 더 라일라를 참을 수 없게 했던 것은 라시드의 추악한 거짓말이었다. 라일라를 후처로 들이기 위해 사람을 사서 거짓말을 한 라시드. 라일라는 그 사실을 알고 라시드에게 대들었고, 라시드는 곧 라일라를 죽일듯 보였다. 그래서 마리암은 라시드를 죽인다.

 

남편의 폭력에 맞섰던 마리암이 처형당하는 덕분에 라일라는 정인과 함께 도망칠 수 있었다. 그리고 어린시절 꿈꾸었던 그런 행복을 찾았다. 그리고 라일라는 마리암의 흔적을 찾아 마리암의 고향으로 간다. 그곳에서 라일라는 마리암의 오랜 고통을 해소해 줄 그것과 마주친다.

 

전쟁이라는 파괴적인 행위는 많은 사람들의 인생을 망가트렸다. 최소한의 자유마저 억압당했던 아프가니스탄의 여성들. 그녀들이 세상에서 찾을 수 있었던 것은 억압과 폭력뿐이었다. 하지만 전쟁이 지나가고, 그렇게 학대받던 여린 영혼들이 자아를 가지고 행동하게 되었다. 마리암이 폭력을 행사하는 남편에게 적극적으로 반항하고, 라일라는 자신의 딸이 잠기 맡겨졌던 고아원에 기부를 한다.  라일라는 자신을 위해 마리암이 희생했음을, 자신의 발밑에는 마리암의 사랑과 희생이 있었음을 알고 있다. 때문에 그녀는 쓰러지지 않고 앞으로 나갈것을 다짐한다.

 

전쟁의 화마가 사그라드는 아프가니스탄의 많은 여성들이 라일라처럼 살아갈 것이다.  다시 휜가운을 입고 환자를 치료하고, 학교에 나가 공부를 하고... 할레드 호세이니는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을 통해 전쟁이 휩쓸고 간 아프가니스탄의 살아남은 희망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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