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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할 수 없는 ㅣ 메타포 11
크리스 린치 지음, 황윤영 옮김 / 메타포 / 2008년 12월
평점 :
절판
책을 읽고 이렇게 오래도록 생각해 보는 거 참 오랜만이다.
착한 녀석도 데이트를 핑계로 여자를 강간할 수 있다.
그리고 데이트 강간을 했어도 착한 녀석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착한 녀석임을 강조하면서 여자의 동의도 얻지 않고 마약을 복용한 뒤 여자와 관계를 맺었다면 그것은 강간이다. ‘키어’ 네가 아무리 착한 녀석이라고 우겨도 강간까지 착한 일은 아닌 것이고, 그것은 결코 사랑이 아니다.
나에겐 고1, 중2의 두 아들 녀석이 있다.
한창 이성에 호기심이 왕성할 때이다.
얼마 전 고1 아들 녀석이 여자 친구가 그립다고 말하던 게 생각난다.
초등학교 졸업 후에 중학교 3년, 고 1년 동안 여자 친구 하고는 함께 놀아 본 경험이 없으니 오죽하겠는가,,, 이 녀석 남녀공학 다니는 친구, 여자 친구 있는 애들, 학원에서 여자애들이랑 자연스럽게 이야기 하는 친구를 보면서 어찌나 부러워하는지,,,
아들 녀석은 여자애 앞에만 서면 말이 안 나온단다.
학원이라고는 다녀 본 적도 없고, 여자 친구라고는 없어서 말이다.
나름 우등생에 모범생이라는 고1 아들 녀석을 보고 있으니 그저 그 나이 또래라 ‘키어’가 겹친다.
이성에 서툰 녀석,,,
자기의 생각에만 모든 것을 짜 맞추려는 이기적이고, 나약한 녀석,,,
‘지지’에게 자신이 저지른 일이 왜 자기졸업식에 오지 않은 누나들 탓인가?
그 외로움을 위로받기 위해 잠든 지지를 안은 게 어떻게 사랑이 되나?
그것도 정당하지 않은 마약을 먹고 그런 행동을 했다는 것은 엄연히 실수도 아니고,
충동적인 행동도 아니고 바로 범죄, 강간인 것이다.
한창 이성에 대한 환상과 호기심을 안고 자라고 있는 두 아들 녀석 때문에 나는 아주 마음 불편하게 이 책을 읽을 수 밖에 없었다.
요즘 우리나라에서도 청소년 대상으로 하는 이성과의 성에 관한 소설들이 나오고 있지만 많이 부족하다. 아이들에게 피부에 와 닿는 좀 더 솔직하고, 현실적인 청소년소설들이 나와 주었으면 한다. 자신이 경험하지 않고도 공감할 수 있고 고민해 볼 수 있는 그런 소설 말이다.
이 책에서 키어가 더 못마땅하고 사랑받지 못하는 이유는 이 녀석은 자기합리화에 빠져 있다. 뭐든 자기가 최우선이고, 어떤 일이 있어도 자신의 잘못은 일단 배제하고 본다.
난 정당했다, 경기 도중 충돌로 상대편 선수가 다리를 절게 되었어도 키어는 규칙대로 부딪혔을 뿐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졸업파티에서 도서관 창문을 깨뜨리고, 동상을 부수는 일 등을 하고는 단지 키어와 친구들은 ‘사랑스러운 악당’이 되고 싶었을 뿐이라고 한다.
세상에 서툴고, 모든 관계에 서툰 녀석이 그저 그런대로 착하게 살아 왔다는 이유로 모든 잘못을 덮어버리려고 하는 것이다.
이 책이 조금 더 개성 있게 다가오는 점은 자기변명에 빠져 있으면서 짝사랑 하던 여자 친구 지지를 강간하고도 그것을 사랑이라고 말하는 키어가 이야기를 끌고 나간다.
그러니까 성폭행을 당했다는 지지의 변론은 거의 없이 키어 이 녀석의 자기합리화식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것이다. 그런데 책을 읽다보면 키어가 그렇게나 떠들어대도 자꾸만 지지가 떠오르고 ‘지지라면 어떨까? 지지는 어떻게 생각할까? 어떤 기분이었을까?’ 생각해 보게 한다. 바로 이런 점이 이 책을 읽어내는데 재미와 그리고 인간관계의 의미를 전해주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진실과 거짓말 그리고 책임을 져야하는 일들을 무수히 만날 것이다.
작든 크든 그 진실을 볼 수 있어야하고, 그것이 책임을 져야하는 일이라면 반드시 그래야 할 것이다.
하지만 딸을 가진 부모가 이 책을 읽으면 많이 속상할 것 같다.
아직도 우리나라는 이런 문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로 남자에게는 관대하고, 여자에게는 무모하리만치 과한 비난을 한다. 엄연한 성폭행도 결국 처신을 잘못한 여자애와 혈기왕성한 남자애의 성관계로 본다는 점이 더 억울한 마음을 들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착하다고 네가 말했던 거 기억해? 네가 말했잖아, 바로 어젯밤,
프랜 누나에게. 내가 착한 아이라고. 바로 나였잖아. 아직도 난 그대로야.
넌 그 사실을 잊고 있어.”
“지지, 넌 아예 노력도 않는구나. 적어도 나는 뭔가를 하려고 애쓰고 있어.
적어도 그 점만큼은 인정해.”
“하지만 네가 나한테 착한 애라고 말했던 것 기억하지? 기억해야만 해.”
“착한 아이는 강간하지 않아.”
지지가 단호하게 말했다.
“맞아.”
“그게 바로 내가 지지 너에게 설명하려고 했던 거야.
그건 그냥, 그래, 그건 그냥 서투른 결합......”
“넌 강간을 했어”
“난 널 강간하지 않았어, 지지.”
마약을 복용하고 환각상태에서 잠들어 있는 지지를 성폭행 하고는 지지도 원했던 사랑의
행위라고 말하는 키어에게는 지지의 그 어떤 이야기도 제대로 들리지 않는다.
그럼 이제 우리 아이들에게 어떻게 설명을 할까?
여전히 어렵고 명확한 답변을 줄 수 없어서 답답하다.
먼저 이 책 <용서할 수 없는>을 슬며시 건네주고, 읽고 나서 이야기를 들어봐야겠지...
* * * 아이가 중학교 2학년 이상이라면 한 번 읽기를 권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