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테 『신곡』 강의 교유서가 어제의책
이마미치 도모노부 지음, 이영미 옮김 / 교유서가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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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테신곡강의 #이마미치도모노부 #이영미 옮김 #교유서가

단테의 신곡 세트를 사놓고, 읽어야 하는데 읽어야 하는데 하며 미루고 있다가, 교유서가 출판사에서 ‘단테신곡강의‘가 나와서 옳다구나 하고 구매했다.

이 책은 엔젤재단이 문화사업 중 하나로 개최한 ‘단테포럼‘의 일환으로, 이마미치 도모노부의 ‘단테신곡강의‘ 15회 연속 강의를 바탕으로 해서 만든 것이다. 1997년 3월부터 (매월 마지막 토요일) 1998년 7월까지, 한달에 한 번, 강의가 진행되었다고 한다. 

저자는 이탈리아어 원전을 기본으로, 주석서와 여러 일본어 번역서를 참고해가면서 강의를 진행했고, 매 시간마다 이탈리아어 원전을 읽어가며, 단테가 쓴 서사시의 묘미를 느끼도록 했다고 한다. 그래서 이 책도, 이탈리아어 원전이 많이 실려있고, 책의 서두에 단테가 쓴 시행의 음감을 살려서 읽는 방법, 각운의 묘미 등을 지적하고 있다. 더불어 일본어 번역서의 차이도 기술되어 있다. 나로서는 TMI, 너무 많은 정보였다만, 읽다보니 이탈리아어를 배우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오페라를 들을 때 많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기도. 또한 ‘신곡‘을 읽기 위해서 필요한 배경지식으로 그리스 로마 신화 및 역사, 그리스도교를 간략하게 공부하게 한다. 이는, 단테의 신곡이 종교서만이 아니라는 것을 강력하게 보여준다.

책의 구성은 매회 실행한 강의 내용을 요약하고, 이어서 질의 응답도 실었다. 내가 책을 읽다가 생긴 의문점을 질의 응답 시간에 누군가가 지적하는 경우도 있어서 참 재미있었다.

이 책을 신곡을 먼저 읽고 나중에 읽을까. 이 책을 먼저 읽고 신곡을 읽을까 잠시 고민했었는데, 나는 이 책을 먼저 읽었다. 그래서 신곡을 읽는 방향성에 저자의 주관이 들어갔을 수도 있는데, 그래도 이렇게 함으로써 신곡을 보다 쉽게 읽어낼 수 있었다. 신곡에 대해 어렵게 생각하는 분들께 추천.
이 책 읽고, 신곡 읽으면서 주석도 함께 참고하면 한결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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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곡_천국편 #단테알리기에리 #단테알리기에리의코메디아 #박상진 옮김 #윌리엄블레이크 그림 #민음사 #단테신곡강의 #이마미치도모노부  #이영미 옮김 #교유서가


드디어 단테의 신곡을 완독했다고 기록함. 얼마 만큼 이해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눈으로 머리로 일단 끝까지 읽고, 단테가 어떤 말을 하고 싶었는지, 어떤 내용이 담겨있는지 조금은 알게 되었다는 의미.

이마미치 도모노부의 강의록을 먼저 읽어서, 어쩌면 그가 말했던 주제, 방향이 주입되었다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강의록을 먼저 읽어서 한결 쉽게 ‘단테 알리기에리의 코메디아‘를 받아들일 수 있었다.‘신곡‘이라는 제목은 일본에서 번역하면서 붙인 것이라고.

지옥편, 연옥편에서 단테의 가이드 역할을 했던 베르길리우스는 사라지고, 베아트리체가 천국을 안내한다. 천국편도 33곡으로 이루어져있고, 천국은 여러 하늘로 나뉘어있다. 멀리 갈수록 하느님의 빛이 더 빛나고, 신앙심이 높은 사람들이 위치한다.  당시 천문학이 반영되어, 월천-수성천-금성천-태양천-화성천-목성천-토성천-항성천-원동천 으로 전개된다. (지구의 북반구는 현실, 남반구는 지옥, 지옥에서 나와 산으로 올라가면 연옥, 연옥 위의 하늘이 천국이라는 구조.)

단테의 여정 앞에 베드로-야고보-요한이 차례로 나타나, 그의 믿음, 소망, 사랑(은총)에 대한 질문을 하고, 아담과 이브도 천국에 있다. 단테가 볼 수 있었던 최고봉은 성모 마리아였고, 예수 그리스도와 하느님은 표현할 수 없는 빛으로만 보인다.

단테가 만났던 많은 사람들은, 그리스 로마 역사로부터, 그리고 이탈리아 역사에 등장했던 사람들이다. 단테의 조상도 나온다. (이미 그때부터 예정되어 있었다고..나는 이런 예정론이 별로인데..하느님이 이 모든 것을 예정하시고 계시다는 표현이..참.) 지옥편에서 가장 큰 죄악을 배신으로 삼았던 것은 단테가 피렌체에서 정치적인 배신을 겪은 것이 가장 큰 이유가 아니었나 싶고, 천국편에서는 신앙이 주제라 교황 보니파키우스8세를 비롯한 교회의 부패를 가장 큰 죄악으로 기술한다.

신앙인이 아니라, 단테가 하고자 했던 말을 마음으로 이해할 수는 없다. 다만, 단테가 얼마나 박학다식했는지, 인생의 반을 타의에 의해 유랑하면서 얼마나 많은 공부와 깊은 사고를 했는지 알 수 있었다. 죽기 직전, 피렌체에서 죄를 인정하고 사과하면 돌아올 수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고, 이미 유명한 ‘이탈리아인‘이 된 단테는 거절했고 사후에도 20년 동안이나 피렌체의 공적이었다. 50년이 지나서야 그의 명예가 회복된다.

읽는 내내, 옮긴이의 주가 큰 도움이 되었다. 없었다면 제대로 이해도 못했을 것이다. (역시 전문가가 번역을 해서!) 윌리엄 블레이크의 그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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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서평이라고 태그를 달긴 하는데, 엄밀히 말하면 서평은 아니고 그냥 읽었다는 기록이다. 서평이라는 태그를 빼고 싶지만, 검색하기 편해서 계속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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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치 가문 이야기 - 르네상스의 주역 현대지성 클래식 14
G.F. 영 지음, 이길상 옮김 / 현대지성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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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치가문이야기  (2) #GF영  #현대지성
#이길상 옮김

4장. 국부 코시모
조반니 디 비치의 두 아들 코시모와 로렌초.
장자인 코시모가  잇는다.
코시모 가계는 17세대를 이어가고, 이어 로렌초 가계가 이어진다.

코시모는 아버지의 장점을 그대로 이어받았다.
(잘 될 때는 역시!)

이 시기는, 2명의 교황으로 갈라진 대분열을 봉합하고자 몇 번의 공의회가 열린 시기였다. 피사 공의회, 콘스탄스 공의회를 통해 개혁은 실패했으나 분열은 봉합되었다. 1431년 바젤 공의회가 다시 열려 교회 개혁을 위한 세번째 시도가 이루어졌는데 이또한 완전히 실패한다.

코시모가 아버지의 뒤를 이었을 때 메디치 가는 유럽 16개 수도에 은행을 가지고 있었다. 코시모는 1433년, 알비치 파에 의한 일반 시민 위에 군림하려고  음모를 꾸민 혐의로 추방 되었다가 1년 뒤 귀환한다.  곤팔로니에레에 선출됨. 정치. 학문 발전, 예술 장려, 구호소 지원을 위한 다양한 일을 처리한다.이후 몇 년 간 점진적으로 실질적이며 영구적인 권력을 가지게 되고, 1439년  교황 유네기우스를  설득하여 바젤 공의회 장소를 피렌체로 옮기게 한다. 그는 이에 관련된 내방객들의 접대비를 자비로 맡는다.

피렌체 공의회로 인해 피렌체는 이른바 ‘새 지식‘에 의한 자극을 받는다. 코시모는 플라톤 아카데미를 설립할 생각을 굳혔고,  예술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피렌체 공의회는 1440년 이렇다할 개혁 없이 산회한다....(결국 종교개혁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네요. 사람들은 일방적인 설교에 만족하지 못하고 지행일치를 하지 못하는 성직자에게 실망하고, 인쇄술이 발명, 발달하면서 성경을 재해석하게 되고..)

이 무렵 이탈리아는 도시 간의 전쟁이 잇달았다. 1446년에 대대적인 전쟁이 발생했다. 밀라노 공작 필리포 비스콘티가 주도하는 밀라노,교황,나폴리vs 피렌체, 베네치아, 제노바, 볼로나.  이 전쟁에서 코시모의 외교력에 힘입어 피렌체는 승리를 거두었고, 코시모의 외교력으로  (밀라노의 새권력자 프란체스코 스포르차를 후원) 마침내 밀라노와 피렌체는 동맹국이 된다. (베네치아는 동맹국에서 적대국으로. 밀라노만큼 강력하지 않았다.)

--- 책을 읽다보면 어질어질 하다. 세계사를 공부할 때 통일 이탈리아를 원하던 국민들의 간절한 염원을 막연하게 여겼었는데, 이 책을 읽으니, 각 도시가 군대를 이끌고 싸우고,,그 도시 안에서도 권력 투쟁이 끊이지 않고. 끊임없는 전란 속에 일반 서민들은 얼마나 살기가 팍팍했을까.

1453년 콘스탄티노플이 함락되었다. 여러차례 도움을 요청했으나, 서방 국가들이 서로 반목을 일삼느라 예방하지 못했다. 콘스탄티노플 함락은 베네치아의 급격한 몰락을 가져왔고, 피렌체에게는 이득이 되었다. 콘스탄티노플의 오랫동안 간직해 온 고대 학문의 축적물이 피렌체에 안착한다.

코시모를 경제적인 면에서 살펴보면, 그는 막대한 지출( 사비로 국가 경비 충당, 방문한 저명인사들에 대한 접대비, 학문과 예술 진흥을 위해 후원한 경비, 자선 )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유산을 배나 증식시켰다. 그의 사업의 특징은 은행가& 국가 수장으로서 자신의 막대한 은행 거래를 무기 삼아 다른 나라들을 (은밀히 ) 압박한 것이다.

기베르티, 브루넬레스키, 마사초, 도나텔로가 예술의 르네상스를 이끌었는데, 이 중 ‘도나텔로‘ 가 가장 깊은 영향력을 발휘했다. 조각가로서, 예술 세계를 예술의 참목표로 이끈 인도자.

중세에는 부조로 표현되었던 것을 도나텔로가 조각으로, 조토가 회화에 도입한 것 같은 혁명을 조각에 도입했다. 1432년 코시모를 위한 청동 다윗상이 대표( 중세 이후 최초의 고립된 나체상!). 청동 기마상. 얕은 부조 작품도 대단히 뛰어남 (스티아치아토 기법).

예술은 사실상 언어여야 한다. 내면의 표현인 외면, 정신으로 활력을 얻은 육체,  화육하는 영혼.
고전 예술은 완벽한 형상을 묘사하는 것이 최대 목표였는데, 도나텔로는 플러스  정신에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에 목표를 둔다.

도나텔로의 후계자 미켈란젤로가 워낙 뛰어나지만, 도나텔로는 조각에 혁명을 일으키고, 뒤에 온 모든 사람들에게 예술의 참된 목표가 무엇인지 가르친 지도자이다.



산 마르코 수도원에는 당대의 가장 위대한 화가로 인정받던 프라 안젤리코도 있었다.그의 후기 작품들은 마사초의 작품을 면밀히 공부했음을 보여준다.
그의 그림들에는 최초로 사람들이 저마다의 개성을 가지고 등장한다. 자기 그림에 친구들의 초상을 도입하기 시작한 최초의 화가였으며 초상화라는 예술의 또다른 노선을 개척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피렌체 아카데미에 소장된 ‘예수를 십자가에서 내림‘이란 그림에서 친구 미켈로초를 그려넣었다. (사다리 세번째 계단의 인물) 그는 피렌체에서 9년간 활동했다.
1446년 교황 유니게우스 4세가 그를 로마로 초빙했고, 후임 교황 니콜라스5세가  예술 분야에 노력을 기울여 프라 안젤리코는 바티칸 성당 벽을 프레스코로 그린다. 이 프레스코는 바티칸의 모든 프레스코들 중 최초의 작품이고, 프라 안젤리코의 마지막 작품이다.

니콜라스 5세는 피렌체 메디치 도서관을 모방하여 바티칸에 도서관을 짓기 지작하고, 1457년, 비로소 바티칸 도서간이 존재하기 시작했다.

1458년 기베르티는 마침내 세례당에 부착할 두 번째 청동문 한 쌍을 완성했다. 백 년 뒤 미켈란젤로가 ‘낙원의 문에 적합하다‘고 경탄한 이 문들은 기베르티의 걸작으로 간주된다. 이 두 번째 문을 만드는데 28년이 걸렸다. 첫 두 문짝을 스물세살에, 두 번째 문짝들은 일흔세살에 완성했다.

이 기이한 청동에 온 생애가 들어갔구나. (알렉상드르 뒤마)

1441년 마사초의 제자였던 필리포 리피는 ‘성모의 대관식‘이란 그림을 완성했다. 그는 도축업자의 아들로 태어나, 일찍이 고아가 되고 친척아주머니가 근처 수도원에 수사로 보냈는데, 거기서 마사초를 만난다. 마사초는 그림에 재능이 있는 리피에게 그림을 가르쳤는데, 그의 그림은 세속적 성격이 짙게 뭍어난다. (품행이 나빠서 받아들이는 수도원이 없었다고.)그럼에도 그의 성모상에는 따스함과 진지함, 어린이들의 표정에는 장난기가 가득하다. 

바사라는 그를 ‘마사초의 정신이 리피의 몸에 들어간 것처럼 보일 정도로‘ 마사초의 방법에 충실했다고 평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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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시모는 1464년 75세의 나이로 죽었다.그가 바라던 대로 장례식은 허세없이 치러졌고 처음에는 산 로렌초 성당 구 성구실에 묻혔다.그러나 피렌체 시민들은 그에게 특별한 명예를 부여하고 싶었고. 그에게 ‘국부‘라는 칭호를 부여한다. 그리고 산 로렌츠 성당의 대제단 정면에 묻었다. 성당 본당 회중석 바닥에 그의 묘비가 서있다. (유일하다고 함) 그에 대한 비판이 많지만 (개인적인 야심에서 비롯한 행위들이라는) 코시모는 ‘전세계에서 가장 유능하고 유명한 사람‘이며, ‘지칠 줄 모르는 관대한 사려깊은 사람‘으로 평가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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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치가문이야기 #gf영 #현대지성 #이길상 옮김

3월1일부터 #1일1쪽현대지성 밴드 활동으로 매일 조금씩 읽는다.

지금도 메디치가 주요인물 몇 명의 역사를 다룬 저서는 여러 권 있지만, 가문 전체를 다룬 저서는 영어권뿐 아니라 이탈리아권을 통틀어도 ˝메디치 가문 이야기˝가 유일하다.

코시모 1세 초상화(표지) 및 기마상(사진)


예술과 문학 분야에서 파괴를 면한 모든 것이 점차 콘스탄티노플로 피신했고, 그곳에서 사방으로 창궐한 홍수에 고립 된 채 남아 있게 되었다. ...13세기에 이르러 니콜로 피사노와 14세기에 단테, 조토, 페트라르가가 등장하여 미와 문화에 대한 의식을 다시 일깨워 주었다....그 네 사람 중 셋을 배출한 도시에서 문학과 예술에 대한 뜨거운 사랑과 그것을 뒷받침할 만한 재력을 겸비한 가문이 일어나...그 도시를 서방의 아테네로 만들었다.

1장, 피렌체

피렌체와 경쟁도시 베네치아를 비교하며 왜 피렌체인가에 대해 말한다. 베네치아의 기록들에는 도시 자체가 전부이며 개인은 아무것도 아니다. ...그들은 돈을 지나치게 밝혔다. 피렌체도 돈을 사랑했지만, 그것이 주된 관심사가 아니었다. 피렌체가 큰 매력을 지니고 있는 이유는 인간에 대한 풍부한 관심 때문이다.

2장, 메디치가

메디치가의 역사는 약 350년간 이어지는데, 그중 15세기와 16세기는 역사와 예술 분야에서 가장 흥미로운 시기였다. 학문과 예술에 대한 후원은 인류의 다른 어떤 군주도 메디치가를 필적하지 못했고, 16세기를 뒤흔든 종교개혁 당시 2명의 교황 레오 10와 클레멘스 7세가 메디치 가 출신이었다. 이 가문은 시민들 위에 군림한 독재자였고, 수많은 악행을 저질렀다고 비판 받으나 다른 가문들과 비교해서 더하지는 않다.

3장. 조반니 디 비치

메디치 가문 등장 이전의
피렌체 역사 복잡하네. 투쟁의 역사.

메디치가가 큰 역할을 할 수 있게 되기 전, 유럽의 일반적인 상황도 그야말로 혼란스럽다.
이탈리아 내에서는 밀라노가 가장 컸고, 이 무렵 피렌체에 의해 유일하게 저지를 받았고
이 시기의 교황청은 1378년의 아비뇽의 유수로 교황들간의 대 분열이 일어났다. 프랑스 교황 측과 이탈리아 교황측의 대립. 진짜 교황측에 서야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들..분명한 것은 유럽의 절반은 구원을 얻을 수 없었다..ㅋ

강력했던 교권이 무너지고, 암흑의 시대가 끝나고 (신에의 갈구가 어느때보다 강력하고 절실했는데 왜 암흑의시대일까요??ㅎㅎ) 상공업을 중심으로 한 시민들의 힘이 커지는 순간, 메디치가가 지도자 역할을 하기 시작하고, 르네상스 시대가 오고, 이는 근대로 나아가는 디딤돌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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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치 가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당시 피렌체 상황 및 유럽 상황이 같이 서술되어야 해서 복잡하다.
그래서 읽는 진도도 느릴 수 밖에 없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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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반니 디 비치가 언급되기 시작한 것은 1401년. 흑사병이 다시 창궐하고, 시에서는 산 조반니 바티스타 성당에 두 짝의 청동문을 제작하여 봉헌하기로 한다. 조반니 디 비치를 계약 결정권자의 일원으로 임명. 그는 17년 동안 조용히 착실하게 공무를 수행했다고.

메디치가문의 기반을 견고히 닦은 인물,
평민을 향한 도량, 관대, 친절, 관심의 원칙을 아들들에게 가르쳤고, 그 원칙이 향후 3세대를 걸쳐 이 가문의 불문률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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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리게 나이 드는 습관 - 노년내과 의사가 알려주는 감속노화 실천법
정희원 지음 / 한빛라이프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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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제공 #느리게나이드는습관 #정희원  #한빛라이프 

자연 속의 한 존재로서 인간은 어느 누구도 생로병사에 초연할 수 없다. 그런데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할 그 과정을 조금이라도 늦춰볼려고 발버둥치곤 한다. 누구나 노인이 되고 싶어하지 않는다. 마치 거부하면 되지 않을 수 있는 것처럼.

‘노인‘이란 어느 나이를 말하는 것일까. 우리나라는 만65세가 되면 나라가 인정하는 노인이 되어 지하철 무료 승차를 비롯한 여러가지 혜택을 받는다. 그런데 정작 만65세가 되어도 정말 젊고 건강하다. 그리고 동년배의 사람도 어떤 이는 정말 건강하고, 어떤 이는 여기저기가 아프다. 겉으로 보여지는 것도 그렇다. 더구나  평균 수명이 80세를 향해 가는 장수사회이지만 마지막 10여년은 건강할 삶이 아닌 투병하는 삶이라고 한다.

아산병원 노년내과의 정희원 교수의 신간 ‘느리게 나이드는 습관‘은 젊었을 때 무엇을 먹고 어떤 생활 습관을 가졌느냐에 따라 노년의 삶이 달라진다는 것을 강조한다. 영원히 살 수는 없지만, 살아 있는 동안 건강하게, 투병하는 시간을 가능한 짧게 가질 수 있는 방법은 치료, 약 등이 아니라 지금 할 수 있는 생활 습관을 바꾸는 일이라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정희원 교수는 그야말로 머리 속부터 발 끝까지, 우리가 실천할 수 있는 여러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그 방법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우리가 하려고하는 의지만 있다면.

효율적으로 먹기 (제대로 먹어라), 제대로 움직이기(걷기는 기본이고 근육을 키워라), 뇌 건강 지키기 (독서 등 정적인 활동부터 악기 배우기 등 동적인 활동 및 사회 참여를 하라)가 그 포인트.

이 책을 읽으며 그동안 건강한 삶을 위한 (항상 걷고 몸을 움직이려했던) 나의 실천 방향이 나쁘지 않았구나 하는 안도와 함께, 알면서도 제대로 실천하지 않은 것에 대한 반성을 동시에 한다. 제대로 먹기가 쉽지 않지만 다행이 채소를 듬뿍 섭취하는 우리 한식이 건강한 식단이라는 것을 새삼 느꼈고, 커피홀릭으로 커피를 줄여야하나 갈등하는 중이었는데 커피는 괜찮다고 하는 말에 행복해하면서 커피와 함께 먹는 디저트류는 이제부터라도 끊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사실 뭐, 누구보다도 오래 살고 싶은 생각은 없다. 다만 사는 동안은 재미있게,  건강하게 살고 싶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여러가지 실천 요법을 탑재한, 아주 필요한 책이다.


#교보보라 의 2월 #보라독서단 에 선정되어 선물 받은 책. 감사합니다. 아주 유용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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