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배의 신호
프랑수아즈 사강 지음, 장소미 옮김 / 녹색광선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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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광선에서 연말에 펴낸 프랑수아즈 사강의 소설 “패배의 신호”.
표지의 강렬한 오렌지 컬러와 까트린느 드뉘브 사진이 한번 닿은 시선을 절대로 돌릴 수 없게 하는 마성을 가졌다.
내용 또한 그러하다. ‘슬픔이여 안녕’으로 18세때 천재작가로 데뷔한 프랑수아즈 사강이, 서른 살 때 (그러고보니 소설 속 주인공 루실도 서른 살), 그동안 경험하고 느껴왔던 사랑과 고독에 대한 감정을 오롯이 담아낸 소설이다. 데뷔작에서는 막 어른이 된 소녀의 걷잡을 수 없는 충동을 담아내었다면, 이 소설은 흐른 세월만큼 깊숙하고, 묘사된 감정선이 탁월하다.

서른 살인 루실은 20년 연상인 샤를과 동거하며, 모든 경제적 후원을 받고있다. 샤를과 같이 있으면 편하고 행복하지만 사랑하진 않는다. 샤를도 이를 알고 있지만, 루실이 곁에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그는 행복하다. 어느날 파티에서, 루실은 출판사에 근무하는 동년배의 앙투안을 만나는데, 앙투안은 연상의 부호 디안과 동거중이다. 어떤 순간 그들은 강하게 끌리고 함께 하기 위해 각자의 연인을 떠난다. 그러나..

사람은, 사랑은, 참 여러 모습이구나 싶다. 미래를 꿈꾸지 않으며 현재의 감정에 충실한 두 남녀 루실과 앙투안. 사회의 여러 기준에서 볼 때, 어쩌면 지탄 받을 삶의 자세를 가지고 있지만 그래도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고 솔직한 루실(“행복은 그녀의 도덕이었고 p154”). 그런 현재를 사는 루실을 아낌없이 베푸는 나무처럼 “이거 하나만 기억해요, 내가 당신을 기다린다는 거. 언제든, 어떤 이유에서든, 당신이 내가 필요하다고만 하면 내가 있을 거요.(p180)” 라고 말하며 놓아주고 기다리는 샤를. (이런 사랑이 가능할까 싶지만..있을 수 있겠지..) 젊은 애인을 존중해주고 질투하고 고통받지만 우아한 자세를 견지하는 디안.
그리고 사랑은 영원하지 않다.

이 소설을 읽으며, 오드리 헵번이 주연을 맡은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이 계속 떠올랐다. 그 영화의 끝은 루실과 비슷한 성향의 홀리(오드리 헵번)가 앙투완과 비슷한 처지의 폴(죠지 페퍼드)와 사랑에 빠져 새출발하자고 하는 것으로 끝나는데, 영화를 떠올릴 때마다 그들은 어찌 되었을까 라고 궁금했다. 그들은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는 결코 아닐거라는 생각도. 아마도, 내 생각엔, 그 소설의 끝은 바로 이 소설처럼이 아닐까 싶다. 다 그렇지는 않지만, 생활 방식(에는 여러가지가 포함된다)을 바꾸는 것은 결코 쉽지 않으므로.
이 소설도 영화화 되었는데, 무려 루실 역을 까트린느 드뉘브가 맡았다. ( 1968년작, La Chamade, 영어 제목 Heartbeat. 알랭 까발리에 감독) 한국에서는 개봉이 안 된 것 같다.
어찌보면 대책없는 루실을 이해하지 못하다가도, 까트린느 드뉘브를 떠올리면, 그냥 수긍하게 된다. 누가 그녀를 거부할 수 있는가. 존재 자체가 사랑인데!

그리고 사랑에 대해 너그러운, 그야말로 감정 묘사에 충실한 소설이지만, ‘슬픔이여 안녕’때와는 달리 루실이 동년배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장면이 묘사된 것이 인상깊다. 마음을 털어놓는 동성 친구가 없는 아픔도.

코로나로 움추러든 우울한 일상. 게다가 강력한 한파가 몰아친 2021년 연말. 강렬하게 불타오르다 사그라지는 사랑이야기에 깊숙히 빠져들었다. 역시 추운 겨울엔 로맨스가 최고다. 소설이든 영화든.
소설 속에 프루스트가 계속 인용된다.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그것도 1권을 읽다 말았는데, 이 겨울이 가기 전에 무조건 다시 시작해야겠다.
그 전에,,,’티파니에서 아침을’을 먼저 읽고..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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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21-12-26 2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표지 여인이 까뜨린느 드뇌브군요.
무척 낯익은 얼굴이다 싶었어요.
색감도 너무 이뻐서 녹색광선 책은 소장욕구 불러요.

튜울립 2021-12-26 20:31   좋아요 1 | URL
그러게요..내년에 나머지 책 지르려구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