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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박
이은조 지음 / 작가정신 / 2014년 3월
평점 :
원문 http://cafe.naver.com/jakkapub/1096
관계를 맺자마자 끊고 싶어지는 사이가 있다. 아마 부모자식간에도 그런 경우가 있을 것이다. 속세에 살아가면서 사람과 부딪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그런 방법을 시행하고 있다면 그사람 몸에서 '사리'가 나올지도 모르겠다. 좋은 이야기도 두세번이면 지친다. 하물며 가슴이 터져버릴 것 같은 이야기는 한번으로도 차고 넘친다.
어린시절의 친구와의 관계에서 '단절감'을 느꼈다. 그건 아마도 피하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조금씩 친해지면서 결속을 다지듯 서로의 아픔까지 털어놓고 마는, 타인이 보기엔 아무것도 아닌것일지라도 피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그때부터였는지 모르겠다. 점점 사오정끼를 발휘하고 만것이. 떠드는 것을 좋아했듯이, 친구의 이야기는 잘 듣지 않았다. 은연중에 눈치 더듬이가 발동해서 친구가 말하고 싶지 않은 것까지 알아버릴까 살짝 두려웠던 적도 있었다.
책속에는 여러편의 단편이 담겨져 있다. 어쩌면 이보다 더 끈끈하고 질겨서 자르려고 시도하다가 다른 덫에 걸려서 끙끙거리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점점 빠져들수록 수렁이다. 첫번째 '전원주택'에서는 영화못지 않은 급파른 전개가 진행된다. 이럴수가 첫편에서 사람이 죽었다. 그게 무슨 대수라고, 그나저나 살아가는 내내 강씨 부인의 질겅질겅 나물 씹는 소리가 귓가에 맴돌텐데. 착한 부부가 참아낼 수 있을까. 전원주택의 부푼 꿈을 안고 대출을 끼고 장만한 집인데 시도때도 없이 들이닥치는 침입자들로 인해 조용할 날이 없었다. 부부가 꿈꾸던 하루는 이런게 아니였을 터이다. 다만 이래저래 빚을 졌다는 것은, 어떻게 해서든지 갚아내어야 한다. 죽을때가지 갚아야 하는 빚이였다. 큰집이라는 이유로 수시로 들이닥친 친척들과 잘 알지 못했던 할머니 친구분들로 인해 역시나 'ㅋ'자만 들어도 울컥했던 시간들이 있었다. 그 칩입자들은 늘상 뻔뻔하다. 두번째 이야기에서도 세번째 이야기에서도 가슴이 철렁했다. 사람들이 가슴속에 돌덩이 하나씩 끌어 안고서 살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래서인지 발걸음이 무겁다. 마냥 가볍다가도 가슴속에 돌이 말한다. '너 나를 잊은거니?' 하면서 종종 상기시켜 준다.
'효녀홀릭'에서는 대단한 반전때문에 속도를 내면서 읽었다. 어째 삶이 추리소설보다 더 스펙타클 한거냐고 묻고 싶어졌다. 이세상에 공짜는 절대 없다는 것을 주인공 여자에게 말해주고 싶은 심정이랄까? 부모가 무조건적으로 자녀를 사랑하는 건 아니다. 그러한 연유로 엄마는 형제들로부터 외면당하고 막내딸만이 남겨졌다. 그녀는 엄마를 시집보내면 자연스레 문제가 해결될꺼라고 생각했다. 자만이였다. 그것도 결혼으로 엄마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다니, 그녀의 순수함에 잠시 놀랐다. 하지만 그럴수도 있다고 생각되었다. 사람의 가장 큰 장점이자 단점은 '잘될꺼야'라고 생각하는 거랄까. 기대했던 것처럼 마지막 반전에 서글프다기 보다는 한방 먹었구나 싶은게 웃음이 났다.
'가족사진'은 자동차보다 못하게 되어버린 가장으로써의 아버지가 좀 안쓰럽긴 했지만 나이듦은 점점 그런 시간을 지내는가 싶다. 다행히도 가족들은 유쾌해 보였고 유머도 있었다. 그정도라면 앞으로도 아버지보다 자동차를 더 걱정하겠지만 그것은 말 뿐이라는 것을 언젠가 알게 될 것이다. 살아가는것이 원래 순조로운것이 아닌가 보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상처받고 지치지만 다시 눈앞에 판도라의 상자가 있다면 열어보게 될 것이다. 호기심때문이라고 할 수도 있고 그것이 사람의 숙명일지도 모른다. 타인과 함께 하여도 힘이 들고 혼자여도 힘이 든다. 그렇다면 교과서적으로다가 현명하고 지혜롭게 재치를 발휘해야 한다. 그러다가 탈모도 생기고 죽을지도 모르고 하여튼 힘들겠지만. 그러다 괜찮아지겠지.
<2014 작가단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