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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토리 자매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14년 3월
평점 :
품절
차마 누군가에게 하지 못할 말이나 사연을 편지로 받는 곳이 생겼다. 도토리 자매는 인터넷상에 귀여운 홈페이지를 꾸렸다. 처음엔 나미야 잡화점을 떠올렸다. 그안에서의 사연은 추억에 잠길만한 사연들이었고 귀여운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도토리 자매의 귀여운 홈페이지와 다르게 그안의 사연은 제법 무겁고 무섭웠던 것 같다. 자세한 이야기는 해주지 않았지만 동생 구리코가 밤에 장을 볼때면 미친듯이 뛰었다는 이야기를 듣고서는 그 사연을 조금은 짐작할 수 있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지 얼마되지 않아 두 사람은 누군가를 위해서 좋은일을 하고 싶은 마음으로 문을 열었다.
자매의 이야기는 부모님이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그때로 돌아가 있었다. 생선트럭에 치여서 부모님은 갑작스럽게 돌아가시고 8살 구리코와 10살 돈코는 남겨졌다. 두 자매는 아버지쪽 삼촌집으로 가게 되었다. 두분 다 좋은 분이셨고 자매는 시골에서 몸은 좀 힘들었지만 자유롭게 살 수 있었다. 정신이 힘들때는 육체를 힘들게 하는게 좋은 것 같다. 머리가 생각할 틈을 주지 않는게 최선이다. 두사람이 그렇게 어른이 될때까지 삼촌내외랑 함께였다면 좋았을 텐데. 삼촌이 돌아가시고 자매는 엄마와 친하지 않는 이모쪽으로 가게 된다. 이모네도 아이는 없었다. 물질적으로 풍요로웠지만 마음은 한없이 힘들어지는 시기였다. 두 사람이 어른이 되기까지 시간이 한참이나 남은 것 같다.
'하루가 일년처럼 길구나' 라는 가사처럼 하루하루가 힘들었던 나날처럼 느껴진다. 이모네는 가식적인 사람들이였다. 두 사람을 양녀로 들여서 번듯한 사위를 맞을 속셈이였다. 그런 이야기가 오고 간 후에는 자매는 더 불편해졌다. 아직 성인이 되지 못한 언니는 동생에게 '꼭 데리러 올께' 라고 약속하며 집을 나간다. 아무런 말을 하진 못했지만 막막했을 것이다.
언니를 떠나 보낸 동생은 하루가 다르게 말라갔다. 내안에 내가 죽는 다는게 이런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시간이 조금씩 동생을 야금야금 뜯어 먹고 있었다. 언니가 조금만 늦었더라면 동생은 간신히 사람의 형상을 한 체 희미해져 버렸을지도 모른다. 다행히 언니가 돌아왔다. 동생의 손을 꼭 잡고 집을 나왔고 할아버지 집으로 갔다. 할아버지는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아무도 보지 않고 살아오신 괴팍한 영감이였다고 한다. 다행히 그렇게 괴팍하지도 인정이 없는 분도 아니셨다. 거동이 불편해지셔서 자매는 할아버지를 돌보며 십년이라는 시간이 흐른다. 쉽지는 않았지만 할아버지를 돌보며 지낸 시간이 어쩌면 부모님을 급작스럽게 떠나보내고 조금은 겨울잠을 잘 수 있었던 시기이지 않았을까~ 몸은 많이 힘들었지만 정신적으로는 그나마 안정을 찾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너무나 큰 공허함이 밀려왔던 것 같다. 할아버지는 꽤나 멋진 분이셨던 것 같다. 말은 거의 없으셨지만 책을 좋아하시고 고상하시고 멋진 분이였다.
자매는 이제 누군가의 간섭을 받을 필요도 없어졌다. 돈에 의해서 이리저리 휘둘리지 않아도 되었다. 이제는 남은 삶을 즐기며 살면 되었다. 언니는 바깥생활을 하면서 조금씩 자신을 놓아줄 수도 있었지만 동생은 자신안에 여전히 갇혀있었다. 사람이 홀로 생활한다는 것은 조금씩 삶의 균형이 틀어지기도 한다. 스스로는 느끼지 못하지만 사람을 만나서 이야기하다 보면 조금씩 위화감을 느끼기도 한다. 순간 이상한 사람이 될수도 있다. 그럴때면 조금씩 균형을 맞춰주어야 한다. 다행히도 언니는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게 된 것 같다. 정착할 수 없는 새처럼 헤매이던 언니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동생은 조금씩 스스로를 풀어주고 있다. 많은 글과 말보다도 어쩌면 묵묵함 속에 씌여진 글속에서 자매의 상처가 묻어난 던 것 같다. 두사람이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민음사에서 제공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