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향전.숙영낭자전 문학동네 한국고전문학전집 5
이상구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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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을 읽을때면 느끼는 거지만 주인공이 동물의 목숨을 구해준다. 그럼 동물이 은혜를 갚는다. 어떻게 목숨이나 재물로써. <흥부와 놀부>에서는 제비 다리를 고쳐주고 그래서 나도 떨어진 제비 새끼를 집으로 올려주었건만 "제비야 나를 보았느냐?"라고 묻고 싶었지만 제비한테 좋은 소리는 듣지 못할 것만 같다.  아마도 "이 사람아 책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는가?"라며 나무라지 않을까. 숙향전은 꽤나 구비구비 기나긴 인생이 담겨져 있음에도 '아이고'하는 소리가 절로 나오지 않았다. 숙향은 죽을 고비를 15살 되기전에 5번씩이나 겪는다고 했지만 구경하는 이로써는 신기하기만 했다.

 

죽을 고비때마다 도와주는 이가 '짠'하고 나타나서 천리길을 한걸음에 가게 도와주고 선녀였는데 잘못을 저질러 지상으로 내려갔음을 각인시켜주면서 '이슬차나 한잔' 하면서 선녀때 기억을 살려주고 다시 지상으로 돌아온다. '이것이 한 낮 꿈이였단 말인가?' 라는 명언도 남긴다. 어쩌면 지금 살고 있는 세상이 꿈이라면 나는 무슨 차를 마셔야 할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그리 생각하고 살면 '나중에는 잘되겠지, 혹은 꿈에서 깨어나면 괜찮아질꺼야.'라고 생각하는 것은 현실도피일지. 아니면 낙천적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천상의 이야기가 흥미롭게 펼쳐지는 것도 이 책의 재미를 더해 주었다. 숙향이 선녀일때 한 잘못으로 인해서 지상에서 그런 고생을 한다는게 '신들의 쪼잔함'이 조금은 느껴지기도 했다. 신이라면 너그럽고 기타등등의 자질을 갖춰야 하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잘못은 크게 벌을 내린다는 면에서 공명정대한지도 모르겠다.

 

천상과 지상을 정신없이 오고 가며 숙향의 이야기는 이어진다. 왠지 귓가에서 판소리의 구성진 목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얼쑤' 이제 낭군님 이생을 만나러 가야 할때이다. 이생은 제대로 멋진 남자였고 숙향도 물가에 있는 붕어가 차마 물위로 올라오지 못할 정도의 미모라고 하니 이를 어찌할꼬. 천상의 상제가 되고 싶다. 나라면 두 사람을 영원히 떼어 놓으리라.

 

온갖 고초를 다 겪고 이제는 행복해질 시간만 남겨둔 숙향에게 낭군님이 금방 나타날리는 만무했다. 할미는 이생의 사람됨됨이를 시험해 보고자 숙향이 눈도 멀고 다리는 절고 상당히 문제가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생은 흔들리지 않는다. 내가 이생이였다면 아마도 마음이 심하게 흔들려서 바로 다리를 '절뚝' 거려가면서 손가락도 제대로 못 피고  '오늘은 몸이 좋지않아서'하고 도망갈 것 같다. 옛 성인의 말씀이 떠올랐다. 성인은 '남의 탓, 하늘 탓을 하지 않는다 .' 하였다.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지만 맘처럼 싶지 않다. '세상이 잘못됐어.' 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사람의 인연은 알 수 없다고 했으니 숙향의 인연 역시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이 함께여도 또 넘어야 할 산이 있었다. 인생이 험난한 만리창파라고 해도 살아볼 만 한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숙향전은 희극적으로 끝나서 다행이였지만 숙영낭자전은 비극으로 치닫아서 지독히도 그때 시대상을 말해주는 것 같아서 마음이 짠했다.

 

그러나 꿈속에서 본 낭자의 얼굴은 하늘을 날던 기러기가 부끄러워 땅에 떨어질 만큼 아름다웠으며, 조각달을 수놓은 듯한 자태는 천상의 밝은 달이 구름 속에서 막 솟아나는 듯했다. (217쪽) 숙영낭자는 그렇게 아름다웠다. 나도 하늘을 날던 기러기와 눈만 마주칠 수 있다면 그 즉시 떨어 뜨릴 수 있다. 숙영낭자와 다소 다른 느낌의 이유로.

 

숙영낭자전에서는 아랫사람의 음모로 인해서 시아버지에게 간통의 누명을 쓰고 고문을 받다가 억울하고 원통하여 자진한다는 내용이였다. 숙영 역시 천상의 선녀였고 잘못으로 인해 지상으로 내려온 것이다. 낭군님은 그때 과거를 보러 갔었다. (숙영의 낭군님은 숙영과 사이가 좋아서 부부사이가 무지 좋았는데 언제 공부를 해서 장원급제 했는지 영 속을 알 수 없다. 절로 존경스럽다. 나에게도 살짝 비법을 가르쳐 주었으면.)

 

그 짧은 시간에 그런 비극적인 일이 일어나고 만 것이였다. 두 사람의 사이가 너무 좋은 것이 하늘의 시샘을 산건지도 모르겠지만 조선시대때 쓴 글이라고 하니 이런일이 꽤나 있지 않았을까 싶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자진할때 숙영의 절절하고 처절한 마음이 느껴졌다.

어찌 남의 말만 듣고 시아버지라는 사람이 며느리에게 모진 고문을 할 수 있는 것일까? 귀가 그리 가벼워서리. 내 시아버지의 귀와 눈을 멀게 하리라. 나에게 힘을.

 

고전이 매력적인 이유는 권선징악적인 구조가 뚜렷하고 우울하고 처절할 수 있는 시대상을 해학적으로 풀어내준다는 점이다. 세상에는 선과 악이 확실하지 않다. 고전을 통해서 현실을 투영해서 바라볼 수 있는 점, 비극적이더라도 할아버지나 할머니가 들려주는 이야기같은 느낌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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