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녀 프레임 - 마녀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이택광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3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중세시대의 산물이라고만 생각했던 극단적인 '마녀 사냥' 은 집단의 광기로 느껴졌다. 현재에도 우리는 '마녀' 사냥에 집중하고 있다. 마녀를 잡아다가 나무에 꽁꽁 묶어서 화형 시키지는 않는다. 다만 현대가 무서운 것은 알뜻 모를뜻 하다는 것이다. 직접적으로 나서지는 않지만 사회적인 분위기가 묘하게 흐른다. 인터넷으로 개인의 잘못을 심판하기도 하고 유명 연예인에 대한 악성 글을 끈덕지게 남기고 위기를 대신해줄만한 희생양을 찾아 나서고 있는 것 같다. 알게 모르게 세상의 불신과 공포가 전염병처럼 나돌아 다녀 세상을 살아가는게 무섭게 느껴진다. 그 불안이 어디에서 오는지, 의심은 끊임없이 늘어가고 CCTV가 우리를 지켜준다고 생각해서 설치하지만 정작 범인들은 유유히 사각지대를 늘상 고민하는지 달아놓은 CCTV를 무색하게 만든다. 소수의 사람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감시 당해야 한다.

 

중세 유토피아주의가 몰락한 곳에서 마녀사냥은 공동체가 닥친 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방책으로 제시되었다. 마녀들을 제거하면 공동체는 다시 과거처럼 평온을 되찾을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53쪽) 봉건체제가 무너져 내리는 위기에 역병이 돌면 사람들 역시 돌아버린다. 이럴때 사람들은 광기에 휩싸인다. 누군가의 탓을 하고 싶고 희생양을 찾게 된다. 

 

공동체가 처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가시적 희생양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마녀사냥은 가톨릭교회의 권위에 닥친 도전을 해결하기 위한 문화적 상징 행위에 가까웠다. (53-54쪽)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사람들의 광기는 무섭고 미쳤고 제정신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럼 현재에 우리는 어떠한가? 어떨땐 지금의 사회 현상에는 많은 모순점을 갖고 있다. 실시간으로 소통을 하고 있는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역시 좋은점 못지 않게 단점을 갖고 있다. 유명인의 말 한마디에 좌우되는 경우도 많고 말한마디 잘못 썼다가 크게 얻어터지는 경우도 많다. 개인의 잘못이 그 장소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실시간의 인터넷 공간상에 오르락 내리락 하면서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로부터 구타를 당한다. 잘못은 잘못이지만 우리의 방법은 괜찮은 걸까? 앞뒤 상황도 없이 어떤 장면만 보면, 어떤 글만 보면 사람 이상하게 되는 것은 한순간일 것이다. 잘못을 저질렀다고 해도 개인의 사생활이 보호되지 않는다면,  정작 우리도 어느 순간에 '마녀'로 몰릴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누구라도 '친북 인사'나 '빨갱이'가 될 수 있다는 것은 우파들이 벌이는 행태가 현대판 마녀사냥이라고 말할 수 있게 한다. (147쪽) 공산주의 체제인 북한이 없었다면 미드에서 쓸만한 소재가 없지 않았을까 싶어서 내가 다 안타까울 정도다. 아마도 다른 나라들은 북한이 공산주의 체제를 오래도록 유지하길 바랄지도 모른다. 툭하면 북한 탓, 우리도 그러고 있기 때문이다. 공공의 적이 있다는 것은 참 좋은 거니까.

 

역사적인 범주에서 마녀에 대한 믿음은 사라졌지만 마녀라는 기표가 깃들었던 그 지점은 사라지지 않았다. 마녀 프레임은 계속 작동하고 있다. (147쪽) '날것의 생명'을 만들어 낸다는 말이 가슴에 파고든다. 인간은 강하지 않다. 나약하다. 과학적으로 현실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에 두려움을 느낀다. 언제든지 주변에서 칼이 날아오지 않을까 두렵기도 하다. 언제 자연재해로 무엇이 날아갈지 모르고 슈퍼 박테리아가 언제 목숨을 노릴지도 모른다. 위태롭고 외롭고 힘들다. 그럴때일수록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 대해서 따뜻한 관심이 필요한 것 같다. 누군가를 몰아내고 미워하고 죽일듯한 관심말고 괜찮은가 하고 살펴주고 걱정해주고 안타까워하는 마음이 필요하다.

 

누구나 마녀가 될 수 있기 때문에 마녀는 다시 사유되어야 한다. 그 사유를 통해 비로소 우리는 현재를 벗어날 수 있는 출구를 내면에서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166쪽)

 

 

<이 책은 자음과 모음에서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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