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토
조정래 지음 / 해냄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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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서라는 말만 들어도 가슴이 철렁 내려 앉던 그녀는 통보식 전화 한통을 받고 어찌할 바를 몰랐다. 셋째 아들의 조난 사고란다. 일절 다른말도 없이 띵띵 경찰서 입니다 그리고 찰카닥 끊기는 전화다. 몇마디 더하면 문제 생기나 달랑 몇마디 던지고 끊어 버린다. 수화기 너머의 상대방은 어쩌라고 고렇게 전화를 냅다 끊어 버리는가. 경찰의 이상한 눈빛이 왜 인지 알게 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녀의 셋째 아들은 파란눈이였다. 첫째 아들, 둘째 딸, 셋째 아들 다 아비가 달랐다. 점례였던 그녀의 어떤 순간에 무엇이 문제 였는지, 그 시절은 난리통이였다. 난리통이여서 이리저리 섞이고 뒤집히고 미쳐서 날뛰어도 뭐하나 이상할 것도 없는 그런 시절이였다. 점례 아버지는 과수원 주인 일본사람을 팼다는 이유로 주재소에 끌려갔다. 주인 일본인이 맞을 짓을 충분히 했음에도(다시는 햇빛을 못보게 해줘야 돼) 그녀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끌려가서 고문을 당해야 했다. 18살 꽃다운 그녀의 인생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때부터 그녀의 인생은 굽이굽이 편한 날이 없었다. 야마다라는 일본인의 노리개가 되었다. 아들을 낳았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2년이 안되어서 해방이 되었지만 그것이 진정한 해방이였던가?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얼어 붙어 있던 땅을 뚫고서 나온 새싹은 다시금 짓밟혀야 했다. 짓밟히고 짓여겨져도 살아야 했다. 그 힘든 시절에도 서민들은 바람이 불면 부는 대로 눕고 다시 일어서야 했다. 

그녀의 나이 이제 스물이였다. 길고 긴 시간을 그녀는 자식들을 키워가며 버티어 왔다. 죽으면 그만이었을지도 모른다. 자식과 함께 이대로 죽어 버린다면 그 힘든 시간을 힘겹게 살지 않아도 되었을지 모른다. <여명의 눈동자>에서 최대치와 여옥이 떠올랐다. 그 시절에 어떻게 살았을까? 싶어서 눈물이 핑 돌았다. 첫째 아들 태순은 파란눈의 동익이를 어린시절부터 못 잡아 먹어서 안달이였다. 피는 못 속인다면서 동익이를 무지 막지하게 때렸다.(그렇게 따지자면 이자식 니 몸속에도 만만치 않은 피가 흐르거든. 이라고 말하고 싶지만 태순 역시 힘들게 살아서 인간이 삐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아비가 누구인지 안다면 그 역시 고통일것이다. 어머니가 어떤 인생을 살았는지 말이다.) 그럴때마다 세영이는 동익이를 감싸안아 주었다. 한 고비 넘기고 이제 괜찮은 사람을 만나서 괜찮을꺼라 여기면 또 다시 짖꿎은 운명이 기다려 어김없이 일이 벌어졌다.

등 기댈 만한 바람벽 하나 없는 허허벌판에 선 채
시대의 비극과 모순을 온몸으로 견뎌낸 우리들 모두의 아픈 자화상(뒷장에서)

힘이 없고 나약해서 지키지 못했으면서 누구에게 돌팔매질에 손가락질을 하는지. 그놈의 손가락을 분질러 버리고 주둥이를 꼬매 버리고 싶다. 벌써 세월이 많이도 흘렀다. 요즘 전쟁은 먼나라의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그때 그 아픔을 갖고 계신 분들도 이제는 이세상에 얼마나 계실지 모르겠다. 나라가 두동강 나고 시간이 많이도 흘렀다. 우리가 한 민족이라는 것이 자꾸만 멀게 느껴진다. 같은 말을 쓰고 있는 것 같은데 말이 통하지 않는다니 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모르겠다. 알면서도 행동하지 않는 지식인이 무슨 소용인지. 배우는게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 안다면 무엇을 알고 있는지, 씁쓸한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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