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쉬러 나가다
조지 오웰 지음, 이한중 옮김 / 한겨레출판 / 2011년 4월
평점 :
절판


이 책의 느낌은 스티븐 킹의 <죽음의 무도>를 읽어 보셨다면 아시겠지만, 표현이 꽤나 재미있다. 실랄하면서도 우스꽝스럽고 다분히 세련적인 면모를 갖추고 있다. 이 책의 시대는 제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과 후, 그리고 제 2차 세계대전이 곧 발발할 시점에 있다. 전쟁이란 것은 생각만 해도 끔찍하고 고통스러운일이다. 책에서처럼 전쟁도 무섭지만, 전쟁후의 일어날 일들이 더 두려운 것이다. 책속의 조지는 아담한 키에 자신의 발등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몸매에 틀니를 끼고 있는 중년으로 45세이다. 틀니를 끼었다는 말에 더 연로하신건 아닌가 생각했지만, 지금으로부터 몇십년 전에는 그럴수도 있을꺼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런것이 별것인가? 처음에는 조지라는 중년의 심드렁하고 지루한 나날들에 대한 이야기가 지속될것만 같았다. 마누라한테 바가지 긁히고 아이들한테 치여서 그렇고 그런 남자가 되어버린 조지의 이야기를.

나는 많이 바뀌었고 부침을 겪었지만, 주로 오르막을 탄 사람이다. 그럴까 싶으실지 모르지만, 내 아버지는 지금의 나를 보게 된다면 꽤 자랑스러워  것이다. (55쪽) 그는 보통 이렇게 말하며 우리를 실소짓게 만든다. 조지는 1893년에 태어났다. 앞부분 에서 조지의 어린시절 이야기가 나온다. 뭐 다들 그렇겠지만, 어린 시절에 '무언가를 죽이는데 일력을 삼아 전투적으로 죽인다'라는 표어를 달 정도로 잔악한 수준이다. 특히 남자아이들이 그 수준이 심한데 난 남자아이가 아니였지만 꽤나 만만치 않은 소녀였다. 나땜시 죽은 개구리(개구리 뿐만 아니라 다양한 곤충들)를 생각하면 정말 마음 깊이 속죄하고 있다. 나의 어린시절에 '낚시'라는 놀이는 없었기에 '낚시'이야기가 좀 길게 나왔을때는 지루한 면이 있었다. 하지만 저자의 역량이 충분히 그것을 넘길 만큼은 되었고 그 시절 '낚시'를 사랑했던 소년과 소녀들이 많았을 꺼라 나름 예상해 본다. 이 '낚시'의 추억은 조지라는 인물에게 매우 소중하고 아련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전쟁이 일어나기 전 평화로웠던 명화같은 느낌이니까. 전쟁이 시작된 후에 연못에 앉아 낚시라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리고 주변의 풍경에 비오듯이 쏟아지는 폭탄이란. 정말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다.

1916년 가을, 내가 부상당하기 직전이었다. (119쪽) 전쟁중의 심각한 상황속에서도 우스꽝스럽기 그지 없다. 조지는 이 해 말까지는 부상을 당하지 않았다. 포탄에 당하는 사람은 반드시 그것을 안다고 하는 부분에서 자지러질 수 밖에 없었다. "너 잡으러 간다, 너 임마, 너, 너 임마, 너 ......!" (160쪽) 죽을지도 모르는 이런 상황에서 이렇게 나올 수 있다니. 그일로 인해 운좋게 갈비뼈가 한개 나가주어서 영국으로 이송될 수 있었다. 전쟁속의 조지는 만화 심슨을 보는 기분이였다. 전쟁이라는 것 자체가 바보짓이고 원치않는 싸움을 하는 이들은 죽거나 어디가 망가지거나 정신은 상하고 육체는 살아남는다. 평범하지만, 나름 운이 기대 이상으로 좋았던 조지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꽤나 난감하다. 전쟁도 겪고 만만하게 뚱보 조지라는 놀림도 받고(뚱보가 된 것은 불과 몇해전 전 일이다.) 마누라한테 바가지도 긁혀가며 조지는 중년이 되어 버린것이다. 겉모습만 보고 사람을 판단해서는 안된다. 그런말 하면 뭐하나? 뭐라고 아무리 입 아프게 말해도 사람은 자기가 알아서 보고 마음대로 판단해버리기 일쑤인데, 나도 그런편이라 할말은 없다. 부인 몰래 그에게 생긴 17파운드, 그는 이돈으로 일탈을 꿈꿔본다.

자신이 살던 로어빈필드를 찾아가 보기로 한다. 첫사랑은 그냥 그대로 남겨두는게 좋다고 말했지. 조지가 살던 동네는 예전의 모습을 찾아 보기 매우 어렵게 되어 버렸다. 자신의 아버지가 성실하고 정직하게 일했던 그 곳, 자신이 태어났던 그 집은 사라져 버렸다. 살던 동네가 통째로 사라졌다고 해도 요즘 세상에 이상할 것도 없지만 그 당시에도 마찬가지였을 꺼라 짐작된다. 사람의 심장이 멈췄을때 죽은 것이라고 보지만 뇌가 멈출때도 그 사람은 죽은것과 마찬가지라는 조지의 말에 동감한다. 생각이 변할 수 없다는 것은 전쟁 못지 않게 두려운 일이다. 그런 사람과 아무리 다른 이야기를 해보았자, 이야기는 원점으로 돌아가고 만다. 답답할 일이다. 종종 죽어있는 나를 발견하곤 한다. 심각하고 우울한 책이 되었을 수도 있었지만, 저자는 그것을 용납치 않는다. 조지가 생각하는 자신은 여전히 꽤 괜찮은 구석이 있으니까(남들이 뭐라 할지라도) 그런건 상관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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