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의 인문학 - 현장의 인문학, 생활 속의 인문학 캠페인
구효서 외 지음 / 경향미디어 / 2011년 4월
평점 :
품절


'인문학'은 어렵다. 어려운 단어도 많고 한문도 많아서 쉽지 않고 딱딱하고 지루하게만 느껴졌던게 사실이다. 이 책은 이런 통념속에 잠긴 '인문학'을 새롭게 탄생 시켰다고 해도 좋을만큼 수월하게 읽혀졌다. 보통 사람은 자신 위주로 살아가기 때문에 내가 아는 것은 남도 당연히 알꺼라고 생각한다. 최대한 쉽게 말한다고 쓰여졌던 어떤 책을 보면서 어이 없고 황당한 적이 있었다. 이건 제2외국어도 아닌데 같은 한글로 쓰여있음에도 이해하기 어려우니 힘겨울 수 밖에 없다.

인문학은 인간을 탐구대상으로 한다. 그러기에 도덕적이고 철학적이며 종교적이고 미학적이며 역사적인 자기 성찰의 경험으로 표출된다. (책표지 뒷장에서) 정말 인문학은 심오하기 그지 없구나. 어려운 학문이지만 모두가 함께 즐기길 바라는 마음에서 <길 위의 인문학>은 그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인문학의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는 일생을 의리 탐구에 바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퇴계선생이 선두로 나서고 있었다. 시작이 창대하다고 하였으니 이부분을 읽으면 고비를 넘기지 못할뻔도 하였다. '뭐 이정도같고 이러나' 할지도 모르겠지만, 평상시에는 잘 들어 보지 못하였던 말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거참 좋은 말들이지만 생소함이 묻어났다.  오죽하면 호를 '물러날 퇴(退)', '시내(산골짜기) 계(溪)' 두 글자를 써서 '시내에 물러나 조용하게 살겠다'라는 뜻으로 지었을까! (23쪽) 퇴계 선생이 말하는 공부에 임하는 자세는 요즘 현대에 배워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배울점은 많지만, 그 중에서도 이 부분이 와 닿는다. 책을 읽되 마음을 괴롭힐 정도로는 하지 마세요. 많이 읽는 것은 아주 좋지 않습니다. 마음 내키는 대로 그 맛을 즐기고, 이치를 탐구하는 것도 일상생활의 평이하고 명백한 곳에서 간파해 숙달해야 합니다. 이미 아는 것을 바탕으로 마음껏 음미하세요. 그리하여 염두에 두는 것도 아니요, 염두에 두지 않는 것도 아닌 상태에서 잊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33쪽) 책 뿐만이 아니라 모든것에 이러한 자세를 가지고 임한다면 좋을 것 같다. 그것이 쉬이 되지 않겠지만 배워 보고자 한다. 21세기에는 이 책에서도 말하듯이 '알묘조장'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무슨일을 하든지 차근히 절차를 밟아야 하는데 성질이 급해서는 모든것을 후다닥 해치우려고만 한다. 빨리만 할뿐 실과 이득을 따진다면 남는게 없을텐데 말이다. 아차 끊없는 탐욕과 돈이 남긴 하지만 말이다.

추사 김정희 선생의 이야기는 재미있게도 가상 대담 형식으로 짜여져 있었다.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추사 김정희 선생도 저런 면모를 가지고 있었을까 하는 생각에 웃음이 나왔다. 참 난처한 질문도 재미나게 해서 읽는 이를 즐겁게 해준다. 이런 부분은 좀 복잡했다. '추사 김정희 선생의 고모 할머니뻘(김정희의 조부와 삼촌 간)인 정순왕후가 영조 임금의 두 번재 아내이고, 증조모가 그 영조 임금의 따님이고, 증조부가 부마 월성위이다. (85쪽) 예전부터 계보를 따지는데 심하게 약하고 이 책에서는 이런 이야기들이 자주 나오는데 머리속이 빙 도는 느낌이다. 아마도 이 책을 읽고 나서 차분하게 마음을 비워내고 읽어 보아야 할 듯 하다. '인문학'을 배우고자 하는데 이런 부분에 연연해서는 안되겠지만, 머리속에 가지런이 정리를 해두고 싶은 기분이다. 이 글을 읽으면서 저자의 재치를 느낄 수 있었고 어쩌면 그 길에 함께 서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본다. 다산 정약용 선생의 유배지 시절의 이야기가 나온다. 18년간의 유배지 생활속에서 그의 글들을 만나 볼 수 있었다. 기나긴 유배지의 세월이 지겹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지만 그곳에서 함께 했던 풍경과 자신의 제자들과 벗에 대한 그리움이 가득차 있었다. 힘든 시절임에도 한탄하지 않고 묵묵히 걸어나가시는 모습에 '역시 일반 사람들과는 다른 면모'를 보여 주신다.

허균편의 글을 읽으면서 그의 누이 허난설헌의 결혼 후의 박복한 모습이 안타까웠다. 시대를 앞서는 자, 좋은 재주를 가지고 있어도 펼칠 수 없는 그 세월이 야속할 따름이였다. 허균 역시 지금에 말하는 명문가였으나 집안 사람들의 삶은 순탄치 못했다. 현대에는 신분제가 폐지되었지만, 보이지 않는 신분의 벽이 있다. 그 당시의 허균은 명문가의 사람이였음에도 벗을 사귀는데 신분의 높고 낮음은 따지지 않았다고 한다. 현재의 삶속에서도 은근히 명문을 따지고 그것을 부추기고 있는 사회가 씁씁하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갔다가 지금의 현재 시점으로 이야기는 다시 흘러온다. 

현대에 이르러서는 전통을 잇는 것은 왠지 고지식한 일이 되어버렸다. 전통이 불편해서 없애고자 한다면 우리의 근간은 심하게 흔들릴 것이다. 뿌리 없는 나무가 세찬 비바람에 어찌 버틸 수 있단 말인가? 과거나 현재의 이어짐은 자연스럽게 물 흐르듯이 흘러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습은 버리고 선조들의 지혜는 본받을 수 있는 마음가짐을 가져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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