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전후사의 재인식
김도연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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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꾸루꾸꾸 빨로마>라는 첫번째 단편을 읽기 시작했다. 단편 제목 중간에 ’씨’자가 빠진것은 아닌지. 꿈인지 생시인지 알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었다. 죽음과 가까워진 남자의 모습이 보였다. 공기는 좋고 한적할 것 같지만 자꾸만 사람들이 찾아와서 귀찾게 구는 곳에 남자는 머물고 있었다. 누가 입을지 알 수 없는 옷을 파는 아주머니, 다짜고짜 쳐들어온 이상한 사람들까지 지루할 틈을 주지 않고 있었다. 죽음과 가까워진 순간에 많은 것을 본다고 한다. 빨리 감겼다가 되돌렸다 리모콘을 누르는 것처럼, 자신의 인생이 영화쳐럼 펼쳐진다고 한다. 남자에게 자신과의 인연이 닿은 사람들이 나타났다. 자신이 사랑했던 옛애인도 나타났다. 별스럽고 정신없는 순간이라고 생각되었다. 정신과 몸을 괴롭혔다. 살아있다는 것이 그 괴로움을 느끼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그순간 그는 살아 있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여러편의 단편들이 있다. 전설의 고향처럼 기이한 이야기도 있고 ’가난이 죄’인 이유로 한국에 시집온 그녀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떡맛이 쫄깃쫄깃하고 맛있다고, 그외의 것도 그렇다고. ’다문화 가정’이라는 깃발을 달았다. 한번 박힌 단어는 노예의 몸에 찍힌 문신처럼 지워지지 않는다. 말이란 것이 무섭고 잔인한 이유가 거기에 있다. 한번 찍힌 글자는 의식속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부정적인 나란 인간은 책임지지 못할꺼면서 왜 그러냐고? 나약함이 무슨 자랑처럼 화를 내곤 한다.  어린나이에 이 나라에 시집와서 고생하고 사는 그녀들을 보면 안쓰럽다. 결혼해서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도 많고 나라에서 지원도 많이 한다고 뉴스에 나온다. 괜시리 한숨만 나온다.

모두가 행복해지는 그날은 아무리 소망해도 오지 않는다니, 그것이 희망일 뿐이라고, 갑자기 욱하고 화가난다. 화를 내는 사람은 나약하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난 한없이 나약한 존재인가 보다.  상황을 비관만 하기에 자살률이 높은것인지도 모르겠다. 나약한 생각이 상황을 더 나쁘게만 만들어 결국엔 살 희망을 빼앗아 버리니까. 나 역시 부정적인 생각을 버려야 겠다. 이 책에서는 삶보다는 죽음과 가까이서 이야기 하고 있다. 그 죽음이 처절할 수도 있으나, 때로는 따스한 빛이 될 수도 있다. <메밀꽃 필 무렵>에서는 아저씨의 삶의 빛이 따사로웠다. <바람자루 속에서>는 직장에서 치이고 부인과 애인사이에서 갈팔질팡 하는 위태로운 한 남자가 강원도로 가는 고속도로 위에 서 있다. 어두컴컴한 터널앞에서 내비게이션은 자꾸만 주의를 준다. 강원도로 가는 길에는 야생동물이 많이 나타난다고 한다. 치여서 납작해진 야생동물들의 시체를 본다. 그리고 자신의 어지러운 상황을 곱씹어 본다. 여기서 달라질것도 나빠질 것도 없는것 같다. 

고라니는 유리창에 바짝 붙어 말했다. 바람이 너무 세요! 이건 또 무슨 고라니 당근 갉아 먹는 소리란 말인가. 유리창을 조금 올리고 그는 고라니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고개 아래까지 좀 태워줘요! 태워달라고? (113쪽) 그는 고라니를 태우고 심한 노린내에 후회를 한다. 거기에 멧돼지까지 태우게 된다.  함께 저승길을 가게 될 줄이야. 삶이 늘 죽음과 함께 한다는 것을 의식하지 못한다. 삶과 죽음은 같은 길을 걷고 있는데, 자꾸만 그것을 외면하고 싶다. 그것 때문에 자신을 자꾸만 괴롭히고 닥달할 필요는 없다. 누구나 죽지만, 나나 내 가족은 아니길 바란다. 어느 순간이 될지 모른다. 모든 것에 준비하는 마음이 필요하다. 세상살이는 어느 시대였든 고달프다. 고달픈 순간만이 지속되는 것이 아니라 다행이다. 행복이 오면 놀랄것도 없이 불행이 찾아온다. 법륜 스님의 말씀처럼 모든것이 자신의 뜻대로 이루어진다고 해서 좋은게 아니다. 다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지만, 이 모든것이 ’ 자연의 순리’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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