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을 위로해줘
은희경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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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수를 회상하는 연우의 모습에서 손에 잡을 수 없는 아련한 안타까움이 느껴졌다. 바람을 느끼며 연우는 달리고 있었다. 그리고 생각에 잠긴다.  왠지 지친것도 같아 보이고 어른이 되어버린것도 같은 느낌이랄까.

며칠 사이에 꽤나 늙어버린 기분이 든다. 과연,방향은 일정하지만 시간이란, 밀도와 속도에서는 절대로 균일하지 않은 것. (12쪽) 
연우는 엄마와 단 둘이 살고 있다. 처음부터 어떤 시스템에 들지 않아 남들의 눈이 자꾸만 뒤통수를 내리 꽂는 느낌이였다. 만만해 보이는 사람에게는 꼭 시비를 걸어 붙이는 재활용 수거에 관련된것까지. 어린시절 작고 만만하다(그거 기준이 뭐야? 범생이 같다는 이유로, 자신보다 작은 꼬마라서, 여자라서, 아니면 비쩍 말라서, 왠지 생긴게 후져서 뭐냐고? 짜증나게) 다른 사람들도 같은 장소에 쓰레기를 갖다 버리는데 나에게만 뭐라고 하는 젊은이가 있었다. 뭐, 그 시절엔 내가 작고 어려서 일방적으로 당했지만, 지금에서 태클 걸면 가만 안둔다.  어떤 사람은 순해 보이는 사람을 가만히 놔두질 않는걸까. 건들어 보고 싶고 자기가 그 위에 서있고 싶어하는 건가. 그것이 위인지 아래인지도 구분 못하는 인간.  순한 사람들 열받으면 무섭게 빙 돌아버린답니다.

연우는 엄마를 신민아씨라고 부른다.  술을 잔뜩 마신 엄마가 일어나지 않자, "신민아씨 제발 정신 좀 차려요. " 라고 말한다. 신민아씨라는 이름이 왠지 친숙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탤런트 신민아씨를 지칭하는 줄 알았다는. 이사를 가는 날도 신민아씨는 술에 취해서 늦잠이다. 연우는 신민아씨를 깨우고 엄마와 함께 새로운 집으로 떠나고 있는 중이였다. 학교 수속을 밟으러 가는 도중에 독고 태수라는 아이를 만나게 된다. 별로 관심도 없던 연우였지만, 어느새 둘은 그렇게 친구가 되기라도 한 것처럼 친한 친구가 되어 있었다. 태수라는 아이를 통해서 처음 눈을 뜨게 된 ’힙합’ 에 연우를 푹 빠지게 된다.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듯이 자유로운 랩이 가슴에 꼭 와 닿았다. 태수는 장난스럽고 이야기도 잘하고 재미있는 친구이다. 

신민아씨에게는 오기다리 조를 닮은 남친 재욱형이 있다. 종종 집에도 놀러오고 연우도 좋아하는 눈치이다. 이혼은 아이에게 큰 충격이겠지만, 두 사람은 그 아픔을  그럭저럭 잘 지내고 있었다. 신민아씨 교육법은 매우 쿨한 방목형이었으므로. 연우에게 무언가를 강요하지도 않고, 담배를 필꺼면 이왕 좋은것으로 피라며 용돈을 올려준다고 말하는 신민아씨였다. 어른들은 아이들이 메주도 아닌데 틀안에 넣고 정형화된 모습이 되길 바란다. 아마 그것이 안전하다고, 옳다고 생각하는 거겠지만. 그것이 견딜수 없게 만들고 터지도록 미치게 만든다는 것은 알지 못하는 건지, 모른척 하는건지 모르겠다.

"좋아하는 게 있으면 사람은 달라질 수 있더라고. 강해지기도 하고, 그래서 그때 마음먹은 거야. 포기할 건 포기하고, 인생을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규모로 단출하게 꾸려서 새로 살아봐야겠다고 말야. "(79쪽)  신민아씨는 그리하여 인생의 중요한 결정, 이혼을 하게 된다. 그것이 잘못된 선택일지라도 끝까지 이끌고 가야 하는 줄 알았다고 했지만, 그러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거지. 태수는 유학파였는데 사고를 쳤는지, 담임한테 무슨짓을 했냐며 윽박당하고 자기는 그러고 싶지 않은데 자꾸만 싸움에 휘말리곤(자칫 악의를 보고는 못참는 성격)했던것 같다. 태수는 자세한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연우는 더이상 물어보지 않는다. 두 사람의 관계를 보고 남의 일에 배나라 감나라 하시는 분들, 이것저것 죄다 궁금한것은 어떻게든 해결 보시는 분들, 제발 참고 좀 하시길. 

연우는 이사온 날, 여자아이와 눈이 마주친다. 괜시리 마음이 끌리는, 가녈픈 어깨에 짧은 단발머리가 잘 어울리는 아이였다. 그 아이는 채영이였다. G-그리핀이라는 공식 앨범은 나오지 않았지만, 비공식적으로 음악이 돌아다니는(고등학생, 알고보니 자신이 이사오던 방을 썼다던 민지훈이라는 선배였다는)그 힙합에 그 한해는 푹 빠져 있었다. 신민아씨는 아들이 혼자서 설 수 있도록 눈물을 머금고 한발짝 멀리 떨어져 있으려고 노력한것 같았다. 부담을 주지 않는 관계로써 재욱형과의 관계도 신민아씨의 쿨한 연애법이였다. 쿨하다는 것은 가슴아프다. 사랑이 어떻게 달랑 "안녕 잘가"라는 말로 끝낼수 있는 일인지. 연우는 채영이를 알아가면서 점점 더 좋아지게 된다. 그 연결고리 역시 태수가 이어준 것이였다. 태수는 조잘거리며 잘 웃는 아이였지만, 가끔 말이 없을때의 모습은 매우 고독해 보였다. 처음이라서 서툴고, 말하지 않으면 아무리 수많은 암시를 주어도 알 수 없는게 사람이다. 자기 맘도 모르겠는데, 어떻게 전달해야 할지 미치겠는데 상대방이 입을 열어주지 않으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찌 아냐구요. 

연우는 채영이를 많이 좋아하게 되지만, 좋아하는 만큼 오해가 생겨버렸다. 채영이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을 바라보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였다. 그것이 사람을 얼마나 미치게 하는지. 연우는 좋아하면 끝까지 믿어 주는거라고 생각했다. 엄마와 재욱형의 연애의 끝에 서게 되었을때도 서로 힘들어 하면서도 끝까지 함께 할 수 없는건지. 자신때문인가 싶기도 하고, 나이 차이때문에 아니면 이런저런 조건들때문에. 아니라고 하면 거짓말이겠지. 우리는 그 틀안에서 빠져나오고 싶어서 발버둥 치다가도 정작 빠져나오면 불안해 한다. 적당히 무리속에 끼어있는것이 눈에 튀지도 않고 안전하고, 그냥 따라가면 되니까. 자신이 새롭게 개척을 하지 않아도 되고, 어떤 행동 행동마다 사람들의 시선을 반사시키기가 쉽지 않으니까. 이 책을 읽으면서 주저리 주저리 말을 많이 하고 싶지는 않았는데 어쩌다 보니 길어져 버렸다.  

연우의 오해가 풀릴 즈음 큰 일이 생겨버리고 만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중간 중간 암시하던 말들이, 그리고 앞에서 연우의 안타까움이 왜 그런것인지 알게 되었던 것이다. 이제는 볼 수 없다는 것이, 같은 시간에 함께 웃고 떠들었다는 것이, 꿈만 같다는 것이 자꾸만 눈물이 나게 만들었다. 그 시절에는 싫고 짜증나고 불안하고 한마디로 삐딱했는지. 지나고 보면 별것도 아닌데 말이다.  지나갔기에 별개 아닌거겠지. 내가 지금도 그 시절이라면 아마 그때와 달라진게 없을 것이다. 짜증내고 시비걸고, 별것도 아닌것에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겠지만. 
누군가의 아픔이 더 아픈것은 알지 못한다. 내게는 내 아픔이 제일 아프니까. 사람은 이기적이다. 당연한거 아닐까? 겪어 보지도 못한 일을 어떤 수치를 이용해서 아픔을 측정할 수는 없는 거니까.  서로를 따스하게 안아 줄 수는 있다. 서로의 체온이 닿아서 따스한 온기가 전해질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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