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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
노희경 지음 / 김영사on / 2008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우리가 정말 사랑했을까'를 보면서 나문희씨의 특유의 유머스러우면서도 거칠것 없는 듯한 말투에 매력을 느꼈다. "이 세상에는 세가지의 종류의 사람이 있다. 남자 여자 그리고 너같은 미친년"이런 대사였던것 같다. 사람의 기억은 충분히 조작이 가능하다. 흐렷해진 기억속에서, 그리고 내가 기억하고 싶은대로 말이다. 남자가 주얼거리는 말속에서 여자에게 던지듯이 하는 말속에서 사람의 마음을 애틋하게 하는 힘이 있었다. '불륜'이라고 꼭 집어서 조리돌림을 당해도 싸는, 당연히 그래야만 하는 그런 느낌이 아니였다. 거기엔 사람의 마음을 끌어 당길만한 안쓰러움이 그들이 살아가고 있는 세상에 대한 그런 연유가 있었다. 무엇이 정당하고 아니고 옳지 않고 하면 안되고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하지말아야 될 것들 투성이지만, 그냥 있는 그대로의 아픔을 보여주고 있었다.
인생에서 사랑을 빼면 시체고 드라마에서 사랑을 빼면 이야기는 진행되지 않는다. '사랑'이라는 것이 위대하고 순수하고 유치하고 바보 같기도 하다. 모든일이 힘들어도 조금씩 적응이 되어 간다지만, 매번 부딪치고 겪으면서도 적응이 되지 않는 감정. 이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이 되었다가 우울하고 불쌍한 사람이 되기도 한다. 사랑이 뭐길래? 정말 그게 뭐길래? 극과 극의 인생맛을 보게 만드는 걸까? 어떤이는 사랑때문에 살고 죽는다. 시련의 아픔으로 자살하는 사람은 바보같다고 단정지어 말할 수 없다. 솔직히 난 그렇게 생각했었지만, 그 사람에게는 하늘이 꺼져버리고 가슴이 찟기듯이 혹은 숨을 쉴 수 없을 만큼 고통스러울테니까. 다른 이의 신발을 내가 신어 보지 않고서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는 거니까.
그녀의 아버지 이야기를 읽고선 드라마속의 아버지에게 잔인하게 굴었던 그런 모습들이 떠올랐다. 힘들고 고되게 자식들 뒷바라지를 하면서 살아오신 어머니의 굴곡진 삶의 이야기가 있었고, 사랑에 아파하며 눈물짓던 이들이 있었다. 누군가를 용서하고 감싸안는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그리고 미워한다는것은 그 또한 어쩌면 미련한짓일지도 모른다. 미워하면서 닮고 사랑하기에 서로를 아프게 하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가족의 울타리가 철조망처럼 느껴져도 그런일들일랑 다 잊어 버린듯해 보인다. 신경쓰는것 같지도 않고 자신의 사랑을 미움이 아닌 안쓰러움으로 껴안는 사람이 있다. 나처럼 어리고 제멋대로인 사람은 그것이 너무 어렵다. 어떻게 그럴수 있는지 아직은 알지 못한다. 그래서 시간이 흐른다는 것이 나이를 먹는 다는것이 고맙게 느껴질때가 있다. 죽어도 이해 되지 못하는 것들을 지금은 구지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다. 이 세상에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리고 내가 이해하길 바라지도 않을 것이다. 모든일에 이유를 따져 묻을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모든것이 명확하게 이루어지는게 아닌것이 세상살이니까.
어리석고 무모하고 제멋대로라고 할지라도 나중엔 그렇지 않게 된다는 것이 참 신기하다. 사람은 이리도 신비한 존재인 것이다. 그러니 처음 본 남녀가 사랑에 빠지기도 하고 원하던 원치 않던 생명체가 태어나고 가족을 이루며 살아간다. 자식도 부모도 전생에 무슨 원수를 졌는지 혹은 나라를 구했다던지 해서 서로 좋은 인연이 될 수도 필시 악연이 될 수도 있다. 사람과 사람 사이는 안보고 사면 그만이지만, 가족은 (그놈의 피가 뭔지, 아니면 정이 뭔지, 아니면 사랑이 뭔지)안볼래야 안볼수 없고 끊을래야 끊을 수 없다. 남녀간의 사랑은 끝이 있을지언정, 가족관의 사랑에 끝이 있을지 모르겠다. 사람이 살아가는 일이 더 드라마틱한 경우도 많다. 드라마 보다 더 드라마.
나만이 아니라, 누구나 뒤통수를 맞는 거라고. 그러니 억울해 말라고.
어머니는 또 말씀하였다. 그러니 다 별일 아니라고.
하지만, 그건 육십 인생을 산 어머니 말씀이고,
아직 너무도 젊은 우리는 모든 게 다 별일이다. (10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