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을 범하다 - 서늘하고 매혹적인 우리 고전 다시 읽기
이정원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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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에 대해서 무엇을 알고 있을까? 교과서적인 이야기를 제외하고 그동안 고전에 대해서 생각해 본적이 없다. 고전을 읽으면 '선조들은 한이 많고 인내심이 강하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천신만고 끝에 '착한 이는 상을 받고 악한 이는 벌을 받는다.'라는 권선징악의 구조가 명확했다. 그 결과를 통해서 다행이라고는 생각했지만, 세상이 그다지 녹록치 않으므로 이야기는 이야기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충성된 신하는 간신의 참소를 믿는 임금의 명령 때문에 귀양을 가고, 간사한 첩의 말에 속아 열녀는 집에서 쫓겨난다.(80쪽) 진실은 외면되고 착한 사람들은 현실의 거대한 벽에 부딪혀 죽어나간다. 세상의 모든 부조리가 넘쳐나지 않기를, 사씨같은 사람들이 살아서 버티어주길 바라고 있다. 무엇과도 바꾸어서는 안될 우리에게는 아직 도덕과 양심이 있기 때문이다. 무엇과도 바꾸어서는 안된다지만, 어마마한 황금, 많이 주지 않더라도 한덩이만 준다고 해도 그 마음이 흔들리지 않을까.  

<토끼전>에서 토끼 또한 약자에서 별주부를 협박하는 악인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서로 이해 관계가 다른 우리들은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누군가에게 간을 내어놓으라고 요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115쪽) 이러한 사실은 씁쓸하다. 우스개 소리로 '나 역시 간을 나무 그늘에 내려놓고 왔소.' 라는 농담을 하곤 하는데 <토끼전>의 다른 이야기는 공포스럽기까지 하다. 사람의 내면은 아름다움으로 가득차 있기도 하겠지만, 그 내면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면 거부하고 싶을 정도이다. 사람의 이기심은 끝이 없고, 자신이 처해진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은 너무도 현실적이기에 간담이 써늘한 것이다.  

 
 불을 발견한 이래 자연을 고갈시키며 살아온 인류에게 '파괴'라는 생존 방식은 그 대상이 생물이든 무생물이든 따질 필요가 없는 일종의 본성이 되어버리고 말았다.(210쪽) 콜럼버스가 발견한 신대륙이라는 것 그자체로만 우리는 배워왔다. 그 저면에 저참한 살인행위 따위는 그들을 인간 이하의 생물체라는 말도 안되는 그들의 논리로 정당화 되었다. 신대륙 발견이라는 그 몹쓸 침략과 미친 살인 행위에 대해 그들은 아무런 죄책감도 갖고 있지 않다. 모든 역사는 대부분 그러한 것이였다. 승리한 자가 기록하기에, 죽은 자는 말이 없다. 그들은 말이 없다편에서 <김현감호>의 고전을 통해서 우리는 잔혹한 진실을 알아야 한다. 잔혹한 역사가 다시 반복되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현대의 우리는 처참한 살인행위라는 꼬리표를 달지 않아도 그런 일에 동참하고 있는것은 아닐까. 그것이 무기를 들고 누군가를 난폭하게 찌르는 일이 아닐지라도. 사랑을 속삭일때는 아름다운것이지만, 누군가를 비난할때는 속살포처럼 미사일을 날리고 누군가를 처참하게 만드는 그 입으로 말이다.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우리 사회의 지도자임을 자청한다. 자본의 권력이든 언론의 권력이든 정치의 권력이든 그들이 권력을 잡게 되면 그들에겐 많은 도적질 같은 특혜가 주어진다.(193쪽) 그 특혜를 개인적인 목적이 아닌 다 함께 잘살기 위해서 써준다면 감동의 눈물이 흐를 것 같다. 송나라 말기의 포대인의 청렴결백함처럼, 자신이 아닌 백성을 위해서 기꺼이 나서줄 수  있는 그런 인재가 어디 없을까. 나 역시도 그런분 발 뒤꿈치도 못 따라가겠지만 말이다. 그동안 알고 있었던 고전의 진면목을 이 책을 통해서 배울 수 있었다. 그런 깊은 뜻이 있었는지 알지 못했고 고전을 통해 바라본 현새는 한탄스럽고 억지스럽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고전을 썩은 고목처럼 방치하지 말고 진정한 면모를 배우고 실천해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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