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보면서 가장 궁금했던 왕은 연산군, 광해군, 인조였다. 폭군의 대명사로 일컬어지던 연산군에 대해서 먼저 읽어 보기로 했다. 역사는 이긴자에 의해 씌여지기에 무엇이 진실인지 알수가 없어 안타까웠다. 연산군은 폭군이 아니였다. 다만 정치를 잘하지 못한것뿐이였다. 연산군이 시대의 흐름을 조금만 읽었더라도, 연산군이 왕좌에서 밀려날 수 밖에 없었던 절대적인 이유는 재산 몰수와 공신들은 물론 사림까지 적으로 돌렸기 때문이다.
이덕일 역사평설 <조선왕을 말하다>는 목적지향성이 강한 자들에 의해 쓰여지거나 주관적인 입장이 많이 들어간 역사서가 아닌 사료를 중심으로 그 시대의 실상을 그대로 보여주기 위해서 쓰여진 책이다. 그래서 더욱 읽어 보고 싶었던 책이다. 이 책을 간단히 소개하면 1부에서는 악역을 자처한 두임금 - 태종과 세조, 2부에서는 신하들에게 쫓겨난 임금들 - 연산군과 광해군, 3부에서는 전란을 겪은 임금들 -선조와 인조, 4부에서는 절반만 성공한 임금들 -성종과 영조에 대해 나와있다.
광해군은 아슬아슬하게 왕위에 오를수 있었다. 선조는 두살인 어린 영창대군을 올리려 하였으나 자신의 병이 깊음을 알고 광해군을 올릴 수밖에 없었다. 선조가 죽지 않았다면 광해군은 왕좌에 앉아 보지도 못했을 확률이 높다. 여기까지는 왕이 될 운명이였던 모양이다. 그런데 그 다음이 문제였다.
모든 권력은 독점 추구의 속성이 있다. 그러나 국왕은 각 당의 당론을 조절하는 방향으로 왕권을 행사해야지 한 당파의 권력 독점을 허용해서는 안된다. 즉위 초 광해군은 연립정권을 구성해 전란의 상처 극복에 나섰으나 곧 소수 강경파에게 경도되어 조정자의 지위를 포기했다. 그 결과 광해군은 대북을 제외한 당파의 공적이 되었고 몰락하고 말았다. (133-134쪽) 모든것은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광해군 역시 강경파에 의해 휘둘릴것이 아니라 여러 당파의 균형을 잘 맞추어야 했다. 원래 왕좌는 힘든것이여. 그렇게 광해군은 15년(1623년) 3월 12일 쿠데타로 인해 끝나버렸다. 한치앞도 모르는 것이 인생이라지만, 왕좌 역시 참으로 허무한 것이다. 그 당시에 그들도 그렇게 스러질 줄 알았을까?
이방원은 우왕 9년(1383년) 이성계 집안에서 최초로 과거에 급제했다. 변방 무가 출신이란 콤플렉스를 갖고 있던 이성계는 이때 '대궐 뜰에서 절하고 사례하여 감격한 나머지 눈물을 흘렸다"고 전할 정도로 기뻐했다.(25쪽) 신생 조선에는 수많은 공신들이 있었고 공신들은 자신들이 법 위의 존재라고 생각했다. 태종은 법 위의 존재가 없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결심했다. 이런 결심은 수많은 측근들의 피를 요구했다.(29쪽) 공신들이라 하여도 정도를 벗어난다면 어쩔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된다. '정도'를 벗어나지 않는것이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태종은 여지를 두지 않고 공신이라는 이유만으로 넘치는 행동을 한 경우에는 가차없이 처벌했다. 그러지 않으면 나라를 바로 잡을 수 없을것이다. 하지만 너무나도 많은 피를 뿌렸다. 다른방법도 있었을텐데 죽음으로 해결하려 했던 그의 정치는 옳다고 볼 수 없다. 자신의 형제도 가차없이 죽였던 태종은 참으로 무서운 사람이다. 왕좌는 아비도 자식도 보이지 않는 자리인것 같다.
우리의 역사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잘못된 부분은 바로잡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의 잘못을 통해 배움으로써 현재에 더 나은 세상을 만들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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