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마 그 사랑을
카챠 랑게-뮐러 지음, 배정희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와 그녀의 사랑이 어땠을지, 그녀는 그의 일기장을 통해서 과거의 기억을 더듬고 있었다. "사랑이구나" 생각이 들었을때는 이미 모든것이 늦은 순간이였다. 더이상 그전의 상태로 자신을 돌릴 수 없었다. 세계사적 전환기인 독일 통일 직전의 1987년 서베를린, 숙련 식자공이자 동독 탈주민 조야는 꽃 가판대 아르바이트를 하며 외롭게 살아간다. (273쪽) 조야는 서베를린 사람, 잘생긴 연하의 해리는 서독 남자였다. 그녀의 말대로 해리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식당에서 자신을 닮았다던 어이없던 삐애로를 들고선 그걸로 끝이였다면 좋았을지도 모른다. 사랑이 찾아오는 적합한 시기라는 것이, 거기에 걸맞는 사람, 그 사랑은 그녀의 인생에 느닷없이 쳐들어온 셈이였다. 적어도 조야는 어쩌면 인생에서의 최악의 남자 해리를 사랑하게 되어버렸다.

 

아무 생각없어 보이던 해리를, 마약에 찌들어서 조야가 어떻게 해서든지 구해내고 싶었던 그 사랑을, 조야의 사랑을  지켜내고 싶었던 건지도 모른다. 해리의 내용만 적힌 노트속에서 조야는 어디에도 자신의 흔적을 찾아 볼 수 없었다. 조야의 빈정거림은 시작되었다. 조야를 머리에 아로새길정도로 자신을 사랑했거나 아니면 조야는 해리 인생에 무의미 했던것일까? 마약에 벗어나기 위해서 도와주던 사람들을 빈정거리는 투로 적어내려간 노트를 보면서 어찌 조야가 좋은 감정을 가질 수 있겠는가. .아픔이 지나고 난 뒤라 덤덤하게 이야기하고 있는 조야의 이야기는 만화의 주인공을 더빙하듯이 자신의 역할에 충실한 성우처럼 느껴졌다. 절제된 감정속에서 조야의 아픔이 느껴졌다. 그 말투는 꽤나 비관적이고 먹고있던 과자를 내게로 툭 던지는 것처럼 썩 기분이 내키질 않았다.

 

조야는 해리라는 남자를 알아가면 갈수록 충격적인 사실들을 알게 된다. 행복할때나 슬플때나 함께 한다는 말처럼 최악의 상황에서도 조야는 해리의 모든것을 받아들인다. 구렁텅이에 빠진 해리를 끄집어 올리기 위해서 조야는 무던히 수고를 아끼지 않는다. 그런 상황에서 사랑이라는 이유만으로 그 사람을 끝까지 안고 갈 수 있을지 의문이다. 조야의 공든 탑은 속절없이 무너져 내리고 만다. 해리는 조야를 사랑했던 것일까? 힘들고 아팠던 사랑이지만 조야에겐 너무 소중하고 행복했던 기억이였는지 모르겠다. 해리가 죽고 십년이라는 시간이 지나서야 조야는 자신의 사랑을 말할 수 있게 되었다. 힘들었지만, 자신에겐 너무 사랑스러웠던 해리의 노트를 통해서 그와의 시절을 재회해 본다. 시대적인 아픔, 분단이라는 아픔 그속에서 겉돌아야만 했던 그들의 이야기가 씁쓸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