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트리드와 베로니카
린다 올손 지음, 김현철 옮김 / 중앙books(중앙북스) / 2009년 12월
평점 :
절판



어디서부터 시작되는지는 모르겠으나 시작과 끝은 알 수 없다.

"이제는 나도 이해하고 있어요. 과거의 사실을 기억해내야 한다는 사실을 말이죠." (49쪽)

아스트리드와 베로니카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늙은 여자 아스트리드와 젊은 여자 베로니카의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누가 먼저 이야기를 끄집어 냈는지, 시작의 종을 치진 않았지만, 두 사람은 입을 열기 시작했다. 아스트리드와 베로니카는 주고니 받거니 하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 놓는다. 늙은 여자 아스트리드는 곧 여든을 바라보지만 그녀의 마음속 자물쇠는 어린시절의 언저리에 머물러 있는 것처럼 보였다. 아스트리드는 오랫동안 고독과 침묵하면서 지내왔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결정적인 순간이란 없는 것 같기도 해요. 시작과 끝은 유동적이니까요." (56쪽)

"모든것은 변하기 마련이예요." (107쪽)

"나는 지금까지도 사건의 실체에 대해 모르겠어요." (111쪽)

"당신도 알다시피, 기억은 절대 사라지지 않아요. 우린 그저 귀를 막고 있을 뿐이죠." (112쪽)


고통스러운 기억의 부분을 끄집어 내며 아스트리드의 이야기는 시작되었다. 아스트리드의 어머니는 아름답고 다정한 분이셨음을 느낄수 있었다. 아스트리드의 어머니가 왜 자살을 선택해야 했는지, 그것이 남편때문이었는지 난 짐작만 할 뿐이였다. 아스트리드의 이야기는 꽤 먼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야 했지만, 기억이란건 우습게도 어제의 일처럼 생생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우리의 기억은 얼마나 정확할까. 때론 흐릿한 기억이 고마울때도 있고 잊고 싶은, 잊었다고 생각했던 기억들이 우리를 놀래켜주기 위해서 어디선가 복병처럼 준비하는것 같다.

 

"그리고 그때까지 내가 알고 있던 모든 것이 사라졌어요. 나는 다른 세상으로 즉시 옮겨갔어요. 더욱더 밝은 색채로, 더욱더 선명한 소리로, 더욱더 자극적인 맛과 향기로 채워진 그런 세상으로 말이죠. 나는 그 세상이 내 것이라고 한동안 생각했어요." (114쪽) 베로니카의 이야기는 사랑으로 충만했던 시간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안타깝게도 내 것이라 생각했던 그 세상이 사라지기전까지 말이다. 다른 이들의 세상엔 별 문제가 없는것 같은데 베로니카의 세상은 더이상 그녀의 것이 아니었다.

 

언제까지나 지속될 것 같았던 두 사람의 아픔은 조금씩 아물어 가고 있었다. 아픈 가슴으로 이곳에 내려왔던 베로니카를 아스트리드가 아스트리드를 베로니카가, 그렇게 두 사람은 서로의 상처를 다독여주고 있었다. 두 사람 다 생각지도 못한 일이였다. 아스트리드는 마녀로 불리운채 차갑게 얼어붙은 심장을 그대로 간직한채 생의 마지막을 맞았을지도 모른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시간이 부족했던 게 너무나 아쉬워요. 이런 생각이 드네요. 슬픔은 나름대로 자기 시간에 맞춰 진행되나 봐요. 그 진행 과정을 착실히 거치지 않으면 슬픔은 다독거릴 수 없어요. 슬픔이 제 갈 길을 찾아갈 수 있도록 충분한 시간을 줘야만 해요. (249쪽)  아스트리드의 슬픔과 아픔을 견뎌낼 수 있는 시간은 그녀의 평생이 되어버렸다. 베로니카를 만나 아스트리드의 마음에도 사랑의 싹이 트기 시작해서 다행이였다. 아스트리드는 이 집에 자신을 평생 갇혀 나오지 못했다. 자신의 아픔과 상처를, 자신을 대면하기가 두려웠던 것이다. 나의 거칠것없는 부분까지 드러다 보고 마주볼 수 있어야 진정 자신의 모든것을 사랑할 수 있고 아픔도 이겨낼 수 있다.

 

사랑은 사전 경고 없이 우리에게 불쑥 다가옵니다. 그리고 한번 주어진 사랑은 결코 빼앗아갈 수 없습니다. 우리는 그걸 명심\해야 합니다. 사랑을 잃어버릴 순 없어요. 사랑은 측정할 수 없는 겁니다. 시간으로, 분이나 초로, 길이나 무게로 따질 수 없는게 바로 사랑입니다. 사랑은 어떤 식으로도 양을 따질 수 없습니다. 다른 사랑과 비교할 수도 없습니다. 사랑은 사랑일 뿐입니다. 진정한 사랑의 손길이 잠시 스치기만 해도 우리는 그 힘으로 평생을 견딜 수 있습니다. (360-361쪽) 어린아이의 문장력처럼 이 글은 짧게 이어져있다. 길게 말하지 않고 짧게 끊어서 대화를 이어나간다. 그속에서 깊숙한 두 여자의 아픔이 느껴졌다. 아스트리드는 생의 마지막 순간엔 두렵지 않았을 꺼라는 생각이 들었다. 숨기고 외면하고만 싶었던 깊숙한 아픔과 재회할 수 있었기에. 아스트리드 자신에게 큰 선물을 주었던 베로니카에게 마음의 선물을 남기고 떠난다.

 

만남과 헤어짐, 고통과 행복, 거쳐나가야 할 인생의 순간에 우리는 어떤 이들을 만나고 살아가게 될까? 아무것도 정해진 것이 없는 인생이라는 여정에 우리는 몸을 담고 있다. 평범한 일상이 지겹기도 하지만, 특별한 일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기대와 불안감을 안고 하루 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마음이 벅차 오른다. 아직은 표현이 불안정한 나이기에, 나역시 상처를 훌훌 털어버리기엔 내공이 부족하고 다른 사람의 아픔을 잘 다독여줄 수 있을만한 사람인지에 대해선 의문표만 여러개 따라 붙는다. 사랑하는 가족을 꼬옥 껴안아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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