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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쓰는 쥐 퍼민
샘 새비지 지음, 황보석 옮김 / 예담 / 2009년 12월
평점 :
절판
출세지향적인 측면이 싫다는 이유로 강의를 그만두고 다양한 길을 걸어온 저자의 이야기가 재미있었다. 보스턴의 팸브로크 서점 지하에서 태어난 퍼민은 젖꼭지수에 밀려나고 많은 형제들에 밀린 힘없고 나약한 쥐였다. 겉모습은 평범했지만 퍼민의 내면은 남달랐던, 그래서 무리중에서 왕따가 되어버린 존재였다. 다른 형제들처럼 쥐의 일생이란 평생 먹거나 교미를 하면서 살아간다지만, 퍼민은 책을 씹어 먹다가 읽게 되어버린 아주 특별한 경우였다. 퍼민을 책을 읽으면서 상상의 나래속에서 인간이 되어 책속의 주인공들과 춤을 추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곤했다. 퍼민이 좋아하는 일은 책뿐만 아니라 리알토극장에서 하루종일 영화를 보는것이였다. 때론 비아냥 거리기도 하고 존경에 마지 않는 퍼민의 특유의 매력적인 말투가 인상적이다.
세상밖으로 처음 나오게 된 퍼민은 스콜리 스퀘어 주변을 엄마를 따라서 생계를 찾아 나서게된다. 서점밖으로 보아온 풍경과는 사뭇 달랐다. 책방 천장에서 퍼민은 책방 주인 노먼과 많은 책을 접하게 된다. 처음엔 책을 씹었고 그 다음엔 책의 내용에 푹 빠져서 글씨를 씹는일은 하지 않았다. 가끔 공란을 씹어먹긴 했지만 말이다. 퍼민의 엄마는 술주정뱅이였고 술에 절어 있을때가 많았다. 인간세상은 만만하지 않아서 자칫 잘못하다간 다시 돌아올 수 없었다. 어느날은 자신의 형제중 한명이 도로에 눌러있는 끔찍한 경우를 보기도했다. 특별히 우애있게 지내온 형제는 아니였지만 이라고 말하는 퍼민의 의외의 덤덤함이 놀라웠다. 퍼민은 책방 주인 노먼을 사랑하게 된다. 그의 영리함에 반하게 되어 그와의 재회를 회상하면서 다양한 상상을 하지만 현실은 녹록하지 않았다. 퍼민은 자신의 망상에 빠져서 노먼과 눈이 마주쳤을때 그 역시 자신을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보았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망상이 얼마나 큰 착각이였는지, 사랑의 배신감이 얼마나 큰것인지 깨달을수 있었다. 퍼민의 망상이 딱히 퍼민에게만 한정된것이 아니였다. 사람들도 자신만의 망상에 빠져서 심한경우에 빠져나오지 못하고 헛된꿈을 꾸는 경우가 허다하다. 퍼민역시 혼자놀기에 진수를 제대로 보여주는데 누구나 혼자 세상을 살아갈순 없다.
퍼민은 자신의 지저분한 모습을 부정하고 인간과 대화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 아무리 말을 해보려고 시도를 하지만 "찍찍찍" 소리만 날뿐이다. 그래서 수화를 시도해본다. 손가락이 없어서 아무리 해보아도 잘되진 않지만 포기하지 않는다. 그런 우스꽝스러운 모습에 웃음도 나왔지만 퍼민이 애처로워 보이기도 했다. 나 역시 쥐와 눈이 마주쳤다면 노먼과 똑같은 행동을 했을것이다. 쥐덫이나 쥐약을 놓았을 것이다. <방가방가 햄토리>에서 나오는 녀석들같이 생겼다면 모르겠지만, 그럴경우는 없기에 말이다. 우연히 쥐와 정면으로 눈이 마주친적이 있었는데 그녀석의 눈빛에서 공포 혹은 두려움을 읽었다. 아무래도 덩치가 내가 몇배나 더큰데 그녀석이 더 쫄았겠지. 퍼민은 아마도 자신을 알아주는 인간을 만나지 못할꺼라는 걸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사람도 친구나 가족을 온전히 다 이해하지 못한다. 구지 모든것을 다 이해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시대적 배경은 2차세계전쟁이 일어날때고 스콜리 스퀘어가 허물어지고 옛것들이 사라지고 있었다. 암울한 시대에 퍼민 역시 자신이 좋아하던 서점도 극장도 가족이 되어준 제리도 잃어 버린다. 퍼민을 좋아해줬던 인간 제리. 제리란 이름이 흔하긴 하지만 여기에선 쥐이야기가 나와서 그런지 왠지 제리란 이름이 그냥 만들어진 인물은 아닌것같다.
제리와 퍼민은 꽤 마음이 잘맞던 친구였다. 퍼민은 제리의 소설을 좋아했고 마음속으로 지지해주었다. 퍼민에게 진정한 가족이 생겼다. 지독한 외로움이 느껴졌던 제리가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던 퍼민이였다. 그와 재즈를 연주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행복한 나날들이였다. 제리가 사라지기전까지 말이다. 퍼민은 자신의 끝을 알고 있었다. 배고픔, 고독함, 죽음 그런것들이 이젠 아무렇지가 않아졌다. 왠지 재미있다가 한구석엔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왠지 퍼민이 지저분한 잿빛 털복숭이 쥐로만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난 웃기게도 이 책의 제목처럼 퍼민이 언제쯤 소설을 쓸지가 궁금했다. 퍼민이 소설을 쓰진 않지만, 자신의 앞발을 잉크에 묻혀서 글을 써서 대화를 시도해보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그러면 퍼민이 실험실로 끌려가서 평생을 거기에 갇혀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신세가 될것 같았다.어쨋든 그런것이 중요한것이 아닌데 이상한데 끌려서 거기에 집착하는 나 역시 퍼민과 많이 닮아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