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프카식 이별 - KBS클래식FM <김미숙의 가정음악> 오프닝 시 작품집
김경미 지음 / 문학판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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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부터 시작해볼까 하다 우선은 재미있는 시부터 적어보았다. 


문명적 반성


1. 

공기청정기 

분명 청정의 파란색 불빛이었는데 


내가 가까이 다가가니 

갑자기 경고의 빨간색으로 바뀐다. 


내가 먼지라는 건가 


하긴 인간은 흙이라니까. 


먼지였으면서 먼지 아닌 척했던 

지난 한 주일의 교만을 반성했다. 


2. 

길 가면서 급한 문자 보는데 

어느 순간 갑자기 휴대폰 화면이 새까매졌다. 


한달밖에 안 됐는데 벌써 고장인가 

이것저것 눌렀더니 


캄캄한 화면 위로 갑자기 한 문장이 나타났다

'인내심 테스트 중입니다'


옆에선 초록 가로수들한테 

치명적인 결점 들킨 것 창피했다. 


문명적 반성 164-165 쪽


공기청정기가 나만 차별하나 싶을 정도로 지나가면 빨간불이 들어온다. "언니도 한번 해봐." 했는데 괜찮고 나만 유독 미워한다. 오랜만에 시집을 읽으며 마음이 싱숭생숭 하다. 전에도 시집을 읽었는데 요즘엔 시가 딱히 마음에 들어오지 않는다. 마음이 삭막해졌나 싶었는데 <카프카식 이별>을 읽으며 아직 마음이 촉촉하다는 걸 느꼈다. 일상의 이야기를 시로 표현한다는 것이, 이렇게 자연스러울수 있나 싶어서 놀랐다. 역시 글은 아무나 쓰는게 아니구나. 스마트폰이 '인내심 테스트 중입니다'라며 그런 문자가 뜨면 '이게 날 가지고 놀아.'하며 때려주고 싶을 것 같다. 허나 때리면 뭐하나, 내 마음만 상할뿐이지. 바보같은 짓인줄 알면서 꼭 하고나서 후회하는 일이 있다. 


현재 활발한 시작활동과 함께 KBS 1FM의 <김미숙의 가정음악> 라디오 작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방송 오프닝에 소개되는 '가정음악을 위한 시'를 통해 애정자들에게 행복의 전율을 전하고 있다고 한다. 전에도 김미숙님이 읽어주신 시의 구절이 종종 귓가를 맴돌았다. 들으면 들을수록 좋아진다. 그래서 이책이 더 반가웠다. 지나간 시간이 추억이 될수도 아픔이 될수도 있다. 그 모든 시간을 웅끄려뜨려서 퐁당 빠뜨리자니, 좋았던 일들이 떠올라서 그럴수 없다. '쓱싹쓱싹' 지우개처럼 나빴던 일들을 지울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럴수 없으니 사람의 기억은 흐물거리나 보다. 어떤것은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해서 안타깝고 어떤 기억은 선명한데 그 기억이 정말 맞는건지 모르겠다. 시간이 지나니 너도 흐물거리고 그 기억도 물처럼 출렁거린다. 저 물살도 매냥 같은 물살이 아닌데, 볼때마다 다른데. 



'대신'이라는 말 


지난 사람 잊으려 

날 대신 만나는 건 아닌가하고 (중간 생략)

 

나팔꽃과 나팔을 간다고 생각하지 않듯이 


당신은 당신이라는 계절 

당신이라는 처음이자 마지막 이름일 뿐 


당신을 대신 사랑한 적 없다. (62쪽)




시를 읽으며 웃었다 울었다 했다. 엉덩이에 뿔이 났을지도 모르겠다. 처음에 마상이라는 말이 무슨 말인지 몰라 당황했다. '마음의 상처'라는 말을 줄여서 마상이라는 말. 낯선 단어였는데 줄임말처럼 마음의 상처도 바짝 줄 수 있다면 '마상'인들 어떠하리. 요즘에 사람을 보면 우선 '멀리 돌아가자' 라는 생각부터 하게된다. 서로 조심해야 하는게 맞는데 그런 부분이 안타깝다. 자연스러운 거리감이 부쩍 멀어진 지금, 마음까지 멀리 돌아서고 있는게 아닌가 싶어 아쉽다. 우리는 1+1을 좋아한다. 태국의 시골 마을에서는 욕심내지 말라서 '3-1 세 개 사면 한 개 빼고 드려요'라고 한다. 그래서 마지막 구절이 확 와닿는다. 나이도 태국식으로 '40-5, 사십 년 살면 오 년 빼드려요. 욕심없이 구입하고 싶은 저자의 맘처럼 함께 동참하고 싶다. 한참일때는 아이들이 별 거 아닌 한 살 차이에도 발끈했었다. 그럴때면 "나중엔 너보다 어린애들이 친구하자고 해도 않해준다.'' 라고 말하곤 했다. 그러자 콧방귀 꼈던 친구들, 지금은 몹시 아쉬울 것이다. 예전과 비교했을때 지금의 신체 나이는 나이에 0.8을 곱해주어야 한다고 한다. 그게 실 나이라고. 이말을 듣고 기쁜걸 보니 역시 나이들었구나 싶다. 


2020년 봄의 무릎바지라는 글을 읽으면 공감하는 분들이 상당할 듯 하다. 세상놀라게 한 역병 때문에 아내가 종일 입고 있는 무릎 나온 바지가 눈에 거슬린다고 한다. 딴 것 좀 입으면 안되냐고, 보통은 그런 모습을 보면 좀 짜증스러워하는 분들이 많다. 미혼의 직장동료 시절 자신의 옛 모습을 추억하며 남편분은 알았다. 어려운 시험 도전중이라 후즐근한 모습을 그녀는 늘 멋있다고 응원해주었다. 그 사이에 잊어버린것이다. 가만히 떠올려보면 아련했을 그 시간들. 한번씩 돌이켜 생각해보면 막상 입밖으로 나올 말들이 다시 입 속으로 들어간다. 머리, 손, 입중 제일 빠른 것은 입인듯 하다. 뭐가 그리 급해서 쓸데없는 말들을 후두둑 뱉어버렸을까. 그렇게 뱉어도 좋은 것은 수박씨밖에 없더라.


목련 나뭇가지들도 다 

무릎 튀어나온 흰 바지들을 입고 있다. (206쪽) 

목련을 보며서 요런 생각을 할 수 있다니, 놀랍다. 꽃이 이쁜 줄 알았지만 청소하시는 분들 성가시겠다 생각했다. 꽃이 지는 것이 아쉬울 법도 한데 그것보다는 바닥위에 나부끼는 목련잎이 성가시기만 했다. 내가 청소하는 것도 아니지만. 


멀게만 느껴졌던 시가 생활속으로 뛰어오는 기분이였다. 천천히 오라고, 이런 감정이 지속되면 좀 복잡하다 말하고 싶다. 시를 쓴다는 것은 멋진 일이며 축복이구나 싶은 생각. 길지 않은 글에서 함께 공감하며 웃고 웃을수 있는 것이 감사하다. 굴러가는 돌멩이를 보면서 아무생각 없이 '꺄르르' 웃고 싶어졌다. 그냥 아무일도 없었던 것처럼. 




<이책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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