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백한 불꽃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77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지음, 김윤하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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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삶이란 난해한 미완성 시에 붙인 주석 같은 것. 추후에 사용하려고 적어둔다. (89쪽) 예전부터 이부분이 퍽 마음에 든다. 저자의 이 문장이 마음에 들어서 오랫동안 붙잡아 두고 있었다. 시라고 하기엔 일상같은 느낌도 들고 때로는 만화속 한 장면처럼 느껴진다. 앤이 쓴 소설에서 사랑하는 여인의 마차가 절벽으로 내달리고 우스꽝스러운 남자주인공이 그 마차에 뛰어든다. "오오 사랑하는 그대 나를 두고 떠나가지 마오." 그 장면을 보면서 얼마나 웃었는지 모르겠다.

 

모든 색채가 나를 즐겁게 했다. 잿빛조차도.

나의 눈은 문자 그대로

사진을 찍었다. 기분이 내키는 대로 바라보거나,

혹은, 말없이 가슴을 설레며 주시하기만 하면 언제나

내 시야에들어온 모든 것이―

실내 정경, 히커리 나뭇잎, (40쪽)

 

이책은 머리글도 주석도 읽기에 버거웠다. 머리글은 시끌벅적한 연회장에 온 것 같은 기분이라서 그안에서는 들썩이는데 읽는 사람은 주저앉고 싶은 심정이였다. 의미도 모른체 '좋은 시였다.' 하며 책을 덮고 싶었으나, 그토록 긴 주석이 기다리고 있을지 몰랐다. 아마 그랬다면 시작하지 않았을 것이다. 예전에 읽을때는 주석이 따로 되어 있거나 우선은 시가 두껍지 않아서 마음만은 편했는데 읽지 않고 넘어가려니 뭔가 찜찜하다.

 

주석을 읽어보니 찰스 킨보트의 마지막 말이 떠올랐다. 좋든 나쁘든 최후의 말을 하는 이는 바로 주석자다. 저자가 동의했을지 모르겠지만 주석이 말하고자 하는 시는 또 다른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 그냥 두길 바랬는데 말이다.

 

42행 알아볼 수 있었는데 부분에서 대략 자신의 천재적인 면을 알아볼 수 있었는데란 느낌이 들었다. 저자의 천재성을 흡사 주석을 쓴 찰스 킨보트가 이끌어낸 것처럼 보인다. 그 시절 옆에 있지 않았기에 잘 모르겠지만 이런 내용이 용인 되었다는 의미일테니 자신만만할 이유가 있다.

 

시인 존 셰이드가 자신이 살고 있는 풍경에 대해서 설명하려 할때는 실상 앞의 이야기와 이어지는 줄 알았는제 주석에서는 이미 딴 나라로 향하고 있다. 이상하게도 시는 어색하지 않고 물 흐르듯이 흘러가는데 주석의 방향이 더 수상하게 돌아가고 있다. 마법의 문을 어떻게 열어야 할지, 그저 어리둥절하다. 주석을 읽으면 잠깐이라도 이 한 단어, 한줄에 이렇게 긴 의미가 있었다는게 놀랍다. 진정으로 저자의 마음을 헤아린것인지, 킨보트가 저자보다 더한 작가인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다. 시야 마음대로 해석도 가능하니까, 그 부분이 매력적이다. 주석에서는 '아는게 많은 것이 독자를 참 힘들게 한다.' 는 뜻 쯤으로 해석해본다. 그라두스는 현란한 빛에서 왕에게서 온 편지 한통을 통해 그 문제의 주소가 드러났다. 이쯤되면 첩보영화 못지 않게 그라두스의 뒤를 따라온 것으로 생각된다. 시인은 시를 쓰고 스파이는 첩보활동을 열심히 한다. 이 연결의 흐름을 홈즈는 탐탁치 않게 생각하겠지. 자신을 끌어 들였음에도 이 상황에 대해서 명확한 설명을 해주지 않고 있으므로.

 

그는 끝까지 시를 지켜냈다. 사람은 죽었지만 시를 지켜냈고 결국 그의 왕국도 지켜냈다. 지금까지의 시간이 그라두스처럼 쫓아오는 기분이 들었다. 누군가는 이미 출발했고, 그 어디선상에 서있을 것이다. 초인종이 울리는 순간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그것을 바라고 있는지 모른다.

주석을 먼저 시작한다면 시가 주는 그 자체의 의미를 빼앗겨 버릴지도 모른다. 때론 있는 그대로 느껴보라고 말할지도 모르니까. 한 단어, 한 문장을 그저 글자로 음미하는 것도 괜찮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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