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급매물 투자 요령

타이밍 맞추고 권리관계 챙겨라

박원갑 중앙일보 조인스랜드 기자

정부의 강도높은 부동산 투기억제책이 이어지면서 급매물이 꽤 나오고 있다. 자금 압박이나 이사 등이 배경이다. 관심 지역의 부동산업소와 친분을 쌓아두고 자금 계획을 잘 짜둔다면 한 번 노려볼 만한 투자 대상이란 분석이다.
부동산 급매물 시장이 주목받고 있다. 정부의 메가톤급 투기억제책으로 거래 두절 사태가 지속되면서 시세보다 싸게라도 처분하려는 사람들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초만 해도 찾아볼 수 없던 현상이다. 요즘 급매물은 특정지역이나 평형, 종류에 관계없이 골고루 나온다. 실수요자 입장에선 그만큼 선택의 폭이 넓다는 뜻일 수 있다. 하지만 값이 싸다고 덜컥 매입을 해선 안 된다. 하자 있는 물건이 아닌지, 시세가 오를 만한 곳인지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아파트 급매는 시세보다 10% 이상 싸야=직장인 박모(42)씨는 지난 8월 초 급매로 나온 서울 서초구 잠원동 H아파트 34평형을 4억4,000만원에 매입했다. 시세보다 5,000만원 정도 쌌다. 인근의 롯데캐슬 아파트에 입주하는 집주인이 입주기한이 지나 연체료를 내야 하자 시세보다 싸게 내놓은 매물이었다. 박씨는 “지난해 가을 최고 시세에 비하면 1억원 가량 빠진 것이어서 ‘무릎’이라고 생각하고 매수를 했다”고 말했다.

박씨처럼 요즘 이런 급매물을 매수하는 수요자들이 제법 된다. 아파트값이 떨어진다 해도 매수가격에서 크게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한 수요자들이 사자에 나선 것이다. 급매물 시장이 형성돼 있는 곳은 단기간에 가격이 많이 내린 서울 강남권 지역이 많다. EBS수능 방송과 내신 위주의 대학입시 발표 이후 휘청거리고 있는 강남구 대치 ·도곡동 지역은 시세보다 최고 1억원 싼 급매물도 나온다.

대치동 석사부동산 김선옥 대표는 “예년 같으면 시세보다 1,000만∼2,000만원 정도 싸면 급매물 축에 끼었지만 지금은 5,000만원 이상 낮아야 급매물 대접을 받는다”고 말했다. 그만큼 시장이 경색돼 있다는 뜻이다. 요즘 급매물은 은행에서 무리하게 돈을 빌렸거나 이사를 가야 하는데 팔지 못해 내놓은 매물들이 대부분이다. 강철수 부동산컨설팅 대표는 “투자수요가 많았던 재건축 아파트일수록 과다한 금융비용을 견디다 못해 내놓는 매물이 주류를 이룬다”고 말했다.

그런데 급매물은 생각만큼 많지 않다. 단지별로 많아야 1~3개 정도다. 지난 8월 콜금리 인하 조치 이후 급매물은 상당수가 팔렸기 때문이다. 주목할 만한 점은 이런 급매물이 팔려도 다른 매물 호가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외환위기 때만 해도 급매물이 소화되면 곧바로 다른 매물도 호가가 낮아졌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금리가 워낙 낮다 보니 규제완화책이 나올 때까지 버티겠다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기 때문이다.

송파구 잠실동 송파공인 최명섭 대표는 “내년 양도세 ·보유세 중과조치를 앞두고 올 가을에도 급매물은 꾸준히 나올 것”이라며 “시세보다 10% 이상 싸지 않은 매물은 굳이 급히 살 필요가 없다”고 설명했다.
특히 재건축 대상 아파트는 개발이익환수제 등 아직 악재가 잠복해 있으므로 매수 여부는 잘 판단해야 한다. 정부의 정책 집행 과정을 봐가며 투자해도 늦지 않다. 잠원동 양지부동산 이덕원 대표는 “재건축 열풍이 한 번 식은 만큼 단기간에 쉽게 달아오르겠느냐”고 말했다.

◇주택거래신고제 지역은 분양권 급매물 유망=강남구 등 주택거래신고제 지역에선 분양권의 취득 ·등록세 부담이 기존 아파트보다 덜하므로 적극 노려볼 만하다. 다만 입주일이 많이 남아있는 데도 급매물이라고 해서 급히 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예년 같으면 분양권은 입주 6개월 전부터 상승세를 보이지만 요즘은 입주가 임박하면서 값이 되레 내리는 경우가 흔하다.

다주택자에 대한 세제상 불이익을 받지 않기 위해 주택 수에 포함되지 않는 분양권 상태에서 처분하려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주로 중도금 무이자나 이자후불제를 적용한 단지들에서 이런 현상이 심하다.
강북권 재개발구역에도 요즘 급매물이 제법 나온다. 태형컨설팅 김종기 사장은 “재건축 초기단계로 바람을 안탄 곳일수록 급매물을 쉽게 잡을 수 있다”며 “이런 매물을 잡기 위해선 중개업소에 1,000만원 정도를 예치해둬야 한다”고 말했다.

◇상가 ·오피스텔은 신중 또 신중=상가 ·오피스텔 ·원룸주택은 공급과잉 쇼크에 시름을 앓고 있는 대표적인 상품이다. 급매로 나온 매물을 섣불리 샀다가는 두고 두고 속병을 앓을 수 있다. 상가의 경우 저금리 바람을 타고 우후죽순으로 들어서면서 세입자를 구하지 못해 텅텅 비어 있는 곳이 많다. 수도권 인기지역으로 꼽히는 분당 백궁 정자지구를 가보면 주상복합 아파트 내 상가들이 많게는 절반 이상 비어 있다.
상가114 유영상 소장은 “상가는 경기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상품인데 당분간 경기가 좋아질 가능성이 없으므로 급매물 매입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급매보다는 시공사 부도 등으로 많이 나올 법원 경매 시장을 주목하는 게 더 낫다는 것이다.

오피스텔은 요즘 강남권 테헤란로 지역에서도 분양가보다 500만~2,000만원 싼 매물들이 많이 나온다. 하지만 오피스텔은 앞으로 값이 오를 가능성이 작고, 세입자를 구하기도 어렵기 때문에 투자 매력이 크지 않다. 건국대 부동산학과 조주현 교수는 “오피스텔은 공급과잉 후유증에서 벗어날 때까지 투자대상에서 제외해두는 게 좋다”고 말했다.

요즘 투자 1순위로 꼽히는 토지는 사기에 쉽게 휘말릴 수 있으므로 조심해야 한다. 충남 천안시 퍼스트 디앤시 백성일 사장은 “천안 등 충청권에서도 농가들이 빚을 청산하기 위해 급히 내놓은 매물이 제법 된다”며 “하지만 급매물이라도 중개업자의 말만 믿고 매수하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라고 밝혔다. 땅 시세는 입지에 따라 천차만별이고 전문가들이 아니면 적정가를 제대로 파악하기 힘들다.

때문에 믿을 만한 토지전문가를 통해 평가를 받은 뒤 매수를 해야 한다. 레피드코리아 권대중 사장은 “다리품을 많이 팔아 어느 정도 ‘땅 냄새’를 맡은 뒤 땅을 사는 게 좋다”며 “중개업자에 의존하지 말고 직접 지적도 등본 ·토지대장 ·국토계획이용확인원을 떼 용도를 확인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런 건 꼭 명심=어느 상품이든 급매물은 권리관계가 복잡한 경우가 많다. 저당, 사채, 가압류 등이 얽혀 있는 매물은 소유권을 넘겨받는 데 어려움이 생길 수 있다. 또 급매물을 내놓는 주요한 이유가 급전 마련인 만큼 매도자가 계약금~잔금 지급 시기를 앞당겨 줄 것을 요구할 수 있으므로 미리 자금계획을 짜 두는 게 좋다. 일시금으로 대금을 치르면 값을 더 깎을 수 있다.

부동산 정보업체들은 아파트를 중심으로 급매물을 따로 분류해 놓고 있으므로 참고할 만하다. 하지만 중개업소들은 돈이 될 만한 급매물은 인터넷에 띄우지 않고 알음알음으로 파는 경우가 많아 한계가 있다. 이런 매물을 잡기 위해선 믿을 만한 중개업소와 친분을 쌓아둬야 한다. 그만큼 다리품을 많이 팔아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국민은행 PB사업단 박합수 과장은 “급매물이 나오면 연락해달라며 미리 예약을 해두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말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