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폐개혁이 되면 부동산값은 어떻게 될까. 화폐개혁을 둘러싼 논란이 부동산 시장으로 옮겨 붙을 조짐이다.
아직 정책 방향이 결정되지 않았는데도 부동산 중개업소와 인터넷 사이트 등에는 관련 문의가 부쩍 늘었다.
그만큼 실물 자산의 대표격인 부동산에 미치는 영향이 클 것이기 때문이다.
부동산값 상승에 호재가 된다는 의견이 있는 반면 외국의 사례 등을 미뤄볼 때 시장에 별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주장도 만만찮다.
요즘 거론되는 화폐개혁 방식은 리디노미네이션(redenomination)이다.
돈의 실질가치는 그대로 두고, 화폐 단위를 동일한 비율의 낮은 숫자로 바꾸는 것이다.
신한은행 고준석 부동산재테크팀장은 "화폐개혁에 대한 고객들의 관심이 의외로 크다"며 "화폐개혁이 현실화할 경우의 부동산시장 향방과 투자 방식을 주로 묻는다"고 전했다.
?부동산 시장에 호재?=부동산 전문가들은 리디노미네이션을 하면 부동산의 선호도가 높아질 것이라는 데 무게를 둔다.
이들은 '화폐환상(money illusion)'에서 그 근거를 찾는다.
돈의 가치가 낮게 느껴지는 착시현상을 통해 부동산 등 자산 가치가 실제보다 부풀려진다는 경제이론이다.
건국대 부동산학과 조주현 교수는"합리적인 현상은 아니지만 부동산이 싸게 보여 구매 심리가 발동할 수 있다"며 "제한적이나마 부동산 시장에 돈이 유입되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부동산값 상승에 대한 부담감이 무뎌질 것이란 주장도 있다.
예컨대 1000분의 1로 화폐 단위가 낮아졌다면 3억원짜리 아파트가 3억5000만원으로 오르는 것보다 리디노미네이션을 통해 30만원이 된 아파트가 35만원으로 뛸 경우 겉보기에는 심리적 부담이 작다는 것. KTB자산운용 안홍빈 부동산팀장은 "주식시장의 액면 분할처럼 절대가치 변동 없이 액면가만 낮아진 종목을 투자자들이 싸다고 착각해 사들이는 현상이 부동산 시장에도 나타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새 화폐로 교환하는 과정에서 개인 정보가 드러나는 것을 꺼려 부동산을 구입하는 '숨은 부자'들이 늘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주택주거문화연구소 김승배 소장은 "1953년과 60년의 화폐개혁 때처럼 자산 노출을 기피하는 부유층이 화폐 교환 대신 부동산 투자를 통해 자산 갈아타기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막연한 환상은 금물=리디노미네이션을 염두에 두고 무리하게 부동산 투기에 가담할 경우 낭패를 볼 수 있다고 지적하는 전문가도 많다.
화폐개혁은 경제.사회적 파장이 워낙 커 공론화 과정이 필요하고, 추진한다 해도 시행까지는 3~5년 이상이 걸리므로 막연한 기대는 위험하다는 것이다.
홍기택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는 "화폐 단위가 바뀌더라도 돈의 실질 가치는 변하지 않는다.
우리의 경제 규모로 보아 화폐환상에 따른 불합리한 소비행동이 부동산 시장에 나타날 가능성은 작다"고 말했다.
또 외국계 투자회사인 딜로이트FAS 부동산팀 임승옥 전무는 "화폐개혁을 했던 남미.독일 등도 부동산 시장은 별다른 변동이 없었다"며 "화폐 단위 변경보다 부동산 시장 내부의 수급 상황이나 정책 변수에 따라 가격이 결정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부동산값이 더 떨어질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한국금융연구원 최공필 박사는 "화폐환상이 거꾸로 작용할 경우 돈의 가치가 오히려 낮게 느껴져 부동산 가치가 동반 하락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리디노미네이션을 실시할 경우 부동산 규제가 더 강화될 것으로 내다봤다.
주택산업연구원 권주안 박사는 "장기적으로 보유세 등 세금 증가와 부동산 전산망 정비로 투기요인이 줄어들어 화폐개혁에 따른 부동산값 상승은 현실화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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