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나 
김사과 (지은이) | 창비(창작과비평사)

이상한 소설이 도착했다. '도착했다'고밖에는 말할 수 없는 소설이다. 간혹 어떤 소설은 작가를 앞질러, 작가도 미처 짐작하지 못하는 어떤 운명을 탑재한 채, 미래에서 온 터미네이터처럼 이 세상에 나타난다. <미나>는 십대 소녀의 성장담처럼 보이지만 실은 우리의 집단무의식이 머물고 있는 병리학적 지점에 대한 이야기이다. 우리는 여전히 그곳에서 누군가를 거듭하여 살해하고 있으며 악몽은 끝내 우리는 놓아주지 않는다. 그곳을 '학교'라 부를 수도 있고 그 누군가를 '미나'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무엇을 호명하든 <미나>를 읽는 건 실로 놀라운 경험이었다. 다 읽고 나면 안온한 가짜 리얼리티의 세계에서 너무 오래 살아왔다는 생각에 머리가 띵해지고 주변이 문득 낯설고 기괴해 보인다. 정말 이상한 소설이다. - 김영하 (소설가)

이것은 혁명이다. 그리고 반란이다. 김사과의 소설 <미나>는 우리가 질서라고 부르는 기존의 모든 것을 전복하고 무너뜨린다. 이 소설은 '에로틱 파괴어린' 자들의 선언서이며 찌꺼기가 낀 오래된 모든 것을 무너뜨리는 새로운 신의 탄생기이다. 그러니 만일 당신 자신을 상식적인 인간이라고 여긴다면, 지금, 당장, 책장을 덮어도 좋다. <미나>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세상이 거대한 음모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세상이라 부르는 제도나 질서를 더러운 쓰레기더미로 취급한다. 그들은 세상과 소통할 만한 기본적인 코드를 지우고 자신들만의 언어로 소통한다. 김사과의 소설은 상쾌한 도덕이며 배반의 윤리이다. 파괴를 통한 생성, 지금 한국소설은 유례없던 새로운 도발을 목격중이다. - 강유정 (문학평론가)

: 무언가 무너뜨렸다는 것, 지웠다는 것에 솔깃한 반응을 보인다. 제도권 밖의 일상이 펼쳐지려나, 일단 갸웃한다. '낯설고 기괴한 주변'도 으레 궁금해지고, '이상한 소설' 영역의 영향이 어디까지 이어지나 들춰보고 싶어진다.

한자의 미래 
노무라 마사아키 (지은이), 송영빈 (옮긴이) | 커뮤니케이션북스

일본어 한자를 종합적으로 분석한 책. 지은이는 일본어의 유래와 역사를 살펴보면서 한자가 일본어에서 사용되는 양상을 분석하고 있다. 나아가 언어의 바람직한 발전 방향도 제시한다.
일본은 우리와 한자 수용의 역사를 많은 부분에서 공유한다. 그래서 한자의 역사를 새롭게 평가한 『한자의 미래』는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소수에 의해 문자를 독점하던 시대는 지났다. 현대사회는 대중이 문화의 중심이고 국가경쟁력이다. 대중의 지식수준은 문자를 얼마나 자유롭게 사용하느냐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쓰기 어렵고 외우기 힘든 한자로는 경쟁력을 갖기 힘들다고 말한다. 지식의 보편화라는 사회 흐름을 한자도 거스를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책은 한자의 과거를 말하지만 동시에 미래 한자의 운명을 예견한다.

: 국어의 한계는 없다고 믿으며, 일본어를 독학해 음악을 즐겨 들으며, 중국어 독학 단계를 밟는 중이다. 그래서인지 자연히 눈길이 갔다. 거창한 소개(=엄청난 띄워주기)에, 꼴딱 넘어가겠다. 진짜 그리 대단해?, 라고 은근히 묻는 단계에까지 갔다. 오늘 교보 인문코너에서는 발견을 못했는데, 곧 진열되면 확인과정을 거쳐야겠다. 벌써부터 호기심은 팍팍 채워져 감당이 어렵다.


저녁 6시 - 창비시선 282 
이재무 (지은이) | 창비(창작과비평사)

이재무 시는 실팍하다. 속이 꽉 찬 뿌리식물처럼 단단하다. 이재무 시에 내재된 야생의 정신이 나는 부럽다. 그는 고통 없는 가축의 삶을 향해 길들여져 가기를 거부한다.
- 도종환 시인

12월 저녁 6시는 싸늘한 어둠을 조용히 흘려놓는다. 그 속에서 야성적인 시인의 감각이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마치 두껍게 얼어붙은 어둠을 깨고 살아나는 별처럼. 명징한 삶의 방향을 제시하기도 한다. '깊은 눈'으로 닦지 않으면 결코 얻을 수 없는 언어의 빛,『저녁6시』에는 때로 부드럽고, 때로 날카로운 별빛이 가득하다. 오래오래 간직할 별자리가 마음에 돋아나는 것 같아 기쁘다. - 길상호 시인

: 먼저 마음에 드는 부분을 골라 붙였다. 오늘 영풍문고에서 발견해 사려다 말았다. 책에 흠집이 있고, 어느 페이지가 접혀있었던 터라 도로 집어넣으며 급기야 인상까지 잔뜩 찌푸리고 말았다. 책 관리를 소홀히 한 건지, 출판에 문제가 있었던 건지, 아무튼 맘 상했다.(-_-)
그래서 집에 와 보관함에 일단 집어넣고, 적립금이 쌓이면 한꺼번에 다른 책이랑 주문하려고 대기(;)하는 중이다. '상처의 무늬'가 그리는 흔적이 시집 곳곳에서 발견될 때, 아찔하게 선 밖으로 밀려날 때, 희미하게 묻혔던 화살표가 지면에 떠오르거나 허공에 둥둥 뜰 수 있으려나.


운명의 딸 - 세계문학전집 163 | 원제 Hija de la Fortuna  
이사벨 아옌데 (지은이), 권미선 (옮긴이) | 민음사

폭력과 탐욕이 지배하는 세계에서 자신의 운명을 새롭게 개척해 나가는 여인의 모습을 그린 작품으로, 작가 특유의 '마술적 리얼리즘'과 '에로티시즘'이 이야기 속에 절묘하게 어우러져 있다.

 

: '마술적 리얼리즘', '에로티시즘', '예측할 수 없는 모험'
더 망설일 것 없이, 내가 좋아하는 유형의 세 가지가 다 스며들어 있다. 무엇보다도, 절판되었다가 [민음사 세계문학]에 포함되어진 것에 제일 환호한다. 마르케스와 더불어 가장 뛰어난 중남미 소설가 어쩌고는 살짝 무시하며. [시대와 장소를 확장하여 시도된 문학적 전환]_ 출판사의 이 소개가 무척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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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표범 여인 - 민음의 시 144

질주하는 언어는 확실히 검은 표범을 닮았다. 시가 달릴 때, 그 검은 가죽 아래서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근육과 뼈의 움직임까지 전달하는 시인의 저력이 생생하게 느껴진다.

*관능적이면서도 문명 저편의 야성의 부름을 담고 있다. - 남진우 (시인, 문학평론가)
*흘러넘치는 피처럼 야성의 냄새를 풍기는 언어들, 때때로 외설스러울 정도로 대담한 성적 표현들, 우리가 감추려고 하는 본능을 거침없이 표출한다. 공격적이고 도발적이다. - 최승호 (시인)

: 소개와 평 중에서, 개인적으로 유독 끌리고 마음에 드는 부분만 골라(;) 붙였다. 미끈한 검은 표범의 라인과 저돌적이고 매서운 사냥 영상이 깜짝할 새에 가로지른다. 이토록 자자한 칭찬, 수상작품이란 것, 과연 어느 정도이기에… 시큰둥하면서, 내심 어쩌면, 하고 생각하게 된다. (곧잘 무너졌음에도, 번번이 마찬가지로.) 뼛속까지 찌릿찌릿한 쾌감을 느낄 수 있을까, 부쩍 기대. 주문을 했으니까, 이번 주 안으로 손에 쥘 수 있겠지. 


선인장 크래커 - Aguantar Report 
봄로야 (지은이) | 리더스컴

그림과 소설, 그리고 음악이 함께 어우러진 책. 스물다섯 살 회화 전공생인 '나'는 자신이 앓고 있는 범불안장애의 원인을 찾기 위해, 자신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하기 시작한다. 보고서에는 열네 살 때의 심한 따돌림으로 인한 특정공포증, 스물두 살에 겪은 사랑으로 알게 된 섹스 강박증과 부모님과의 애증. 소멸관계, 스물네 살에 겪은 우울증 등에 관한 이야기가 담긴다. 마지막으로 자신의 고통과 연관된 주변의 각기 다른 고통을 인터뷰하고 수집함으로써 보고서는 마무리된다.
아픔을 드러내 햇빛에 닿게 하는 순간 치유는 시작된다. 세포 분열처럼 빠르게 자라나는 모든 20대의 영혼의 성장통을 그리고 노래한 아주 진실한 목소리. 모두가 알고 있지만 모두가 숨기려 했던 20대의 상처를 치유받도록 들여다보게 하는 아름답고 독특한 현미경. - 이상은 (가수)

: 책 소개에 더 나아가 이상은의 추천 평에도 마음이 끌린다. 그녀에게서 퐁퐁 생겨난 표현이 여러 가지 모양으로 벽에 달라붙는다. 아무도 들이지 않았던, 들일 생각마저 없었던 공간. 벽으로 막아놓은 그 굳건함마저 흐물흐물 녹아내리는 것 같다. 꽁꽁 숨겨둔, 고등학교 2학년 어느 즈음&대학 초의 조각조각을 흩어놓아 슬그머니 내밀었다 허겁지겁 도로 감추기도 한다.

붕대 클럽 | 원제 包帶クラブ (2006)  
텐도 아라타 (지은이), 전새롬 (옮긴이) | 문학동네

도쿄 외곽 변두리 마을에 살고 있는 평범한 여고생 와라. 이혼한 부모님과 철없는 남동생, 진학 문제로 뿔뿔이 흩어진 친구들 사이에서 심란한 나날을 보내던 어느 날, 어린 시절 가족들과의 추억이 담긴 병원 옥상에 올라갔다가 환자복 차림에 괴상한 오사카 사투리를 쓰는 소년 디노를 만난다. 수수께끼 같은 이야기와 함께 그가 남기고 간 것은, 옥상 난간에 리본 모양으로 묶여 바람에 휘날리는 새하얀 붕대.
기존의 중후한 작품 이미지와는 달리 이번 <붕대 클럽>에서는 웃음을 선사하려는 작가의 노력도 엿보인다. 대폭소를 자아낸다기보다 소소한 혼자웃음에 가깝겠지만, 앞으로 작가 자신도 독자들 앞에 좀 더 부담 없이 나올 수 있고, 독자들의 입장에서도 이전보다 쉽게 텐도 아라타의 작품을 접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갖게 해준다. - 전새롬 (옮긴이)

: 오사카 사투리라니까, 가느다랗게 찢기는 소리, 아주 가벼운 자국을 남기며 누군가 튀어나온다. 댕글댕글한 눈동자의 그 누군가는 소설을 읽기도 전에 풋, 하고 ‘소소한 혼자웃음’을 짖게 도와준다. 그 녀석의 분위기와 흡사하게, 보통 흐느적흐느적 가라앉은 듯 보이지만(그렇게 평가받지만) 작은 불꽃을 튀며 열정을 뿜어낼 때, 모두의 놀란 눈을 감추지 못하는 걸 보며 속으로 킥킥거릴 수 있는 것이다. 최근, 소설로 별다른 감흥을 얻지 못했는데, 이번 신간 리스트의 소설에 무작정 기대를 걸고 있다.

삼엽충 - 고생대 3억 년을 누빈 진화의 산증인, 오파비니아 04 | 원제 Trilobite 
리처드 포티 (지은이), 이한음 (옮긴이) | 뿌리와이파리

삼엽충의 독특한 겹눈을 통해 바라본 흥미로운 고생물학의 세계와 진화 이야기를 다룬다.
지은이 리처드 포티는 삼엽충을 통해 까마득히 머나먼 지구의 옛 모습을 멋지게 재창조해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철학과 개인적인 이야기, 과학계의 숨겨진 일화 등을 곁들여 자칫 현실과는 많이 동떨어진 학문이라고 여겨질 법한 고생물학의 세계를 흥미롭게 풀어냈다.
또한 지은이는 이 책에서 삼엽충이야말로 전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탁월한 ‘지질학적 시계’의 가치가 있다고 지적하면서, 10년도 채 지나기 전에 낡은 것이 되어버리는 핵물리학이나 생리학 분야와는 대조적으로 삼엽충 분야에서는 역사 전체를 살펴볼 수 있으며, 삼엽충을 척도로 삼으면 과학적 과정의 창조적인 부분을 조금 더 명확히 설명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말한다.

: 이제 한계라 느꼈던 그 감각을 뒤엎고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을 계기를 잡은 것 같다. ‘독특한 겹눈’에 비칠, 그 속을 비집고 유유히 날아가며 전해지는 모습. 곁들인 여러 가지 일화에 펑펑 솟아날 궁금증을 애써 감추지도 않으며, 제멋대로 헤집어질 전체와 부분에 은밀히 신호를 보내면서. 

용의 이 
이영수(듀나) (지은이) | 북스피어

<용의 이>는 수입된 번역 SF의 모방물이 아닌 순전히 우리말로 쓰인 '우리 동네에서도 일어날'(예를 들면 ‘부천’이라든지) 법한 사건들을 그리면서도 그동안 한국 SF에서 목격하지 못했던 새로운 풍경을 만들어낸다. 듀나 외에도 그것을 실천하는 SF 작가들이 있지만 그만큼 독자들과 평론가들에게 동시에 인정받은 작가는 없다. 그것은 그가 장르문학의 상상력을 작가주의적 가치로 끌어올리려는 시도를 멈추지 않기 때문이다.
이야기들을 머릿속에 담아두고 방치하면 어떻게 되나? 그것들은 새끼를 친다. <용의 이> 앞에 실린 세 편의 단편들은 모두 당시 완성되지도 않았던 장편에서 파생되었다. 슬쩍 봐도 아이디어나 문구들이 흩어져 독립한 것이 보인다. 이 정도는 괜찮다. 하지만 조금만 더 방치했다면 난 장편을 쓸 핑계를 만들어 내지도 못했을 거다. 이미 단편 재료로 다 써먹은 뒤였을 테니. - 듀나

: ‘방치되는 이야기’ 어라, 하고 딱 멈춘다. 꼬물거리며, 방향을 정하지 않은 이야기는 어디든 날아갈 수 있다. 내게 잡힐 수도 있고, 스르르 퍼져 허공에 흩어진 이야기는 순간 자취를 감출 수도 있다. 그전에 노트를 펼쳐 쓱쓱 재빨리 기록해두거나, 창을 켜고 조각 메시지나 파편 아이템이라도 끼적여둬야 한다. 단편과 장편, ‘파생’되었다가, 경계를 넘나드는 정의할 수 없는 ‘재료’들을 언제든 꺼내보며, 나 또한 분발할 것이라 새삼 다짐한다.


보이즈 비 Boys be | 원제 ボ-イズ.ビ- (2004) 
가쓰라 노조미 (지은이), 양윤옥 (옮긴이) | 에이지21

한 가지 일에 평생을 바쳐온 할아버지와 죽음을 이해하기에는 너무 어린 소년의 우정을 그린 이야기. 고집불통 구두 직인 소노다 에이지와 초등학교 6학년 가와바타 히야토, 사랑스러운 두 인물을 주인공으로 한 장편소설이다. 이야기의 배경은 도쿄에서 전차로 세 시간 거리의 작은 도시, 대형 터미널 뒤에 자리 잡은 지상 6층짜리 건물.
작가는 두 사람이 서로의 마음을 헤아리고 친구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따뜻하고 섬세하게 그려나간다. 심성 고운 등장인물을 통해 삶을 긍정하고 희망하는 메시지를 전하는 이 소설은, 자칫 흔한 이야기로 치부될 수 있으나 결코 평범하지 않다. 그것은 삶의 어려움과 고통의 깊이를 헤아리는 작가의 시선에서 기인한다. 2003년 데뷔한 일본 작가 가쓰라 노조미의 작품이다.

: 신간으로 기록해두기 전, 이미 매장에서 발견하여 슬쩍 들춰본 기억이 있다. 번역된 문장이 생생한 풍경으로 가득 그려졌기에, 당장 사고 싶은 마음을 꾹꾹 눌러 참았다. 같은 소재를 끌어와도 ‘작가의 시선’이 따라가는, 주목을 모으는 지점이 어떠한가에 따라 각각의 양상은 다르게 펼쳐진다. ‘결코 평범하지 않다’는 소개. 어떤 파동을 전해줄 지 기대를 모은다. 오랜만에 심취하는 [따뜻하고 섬세한, 희망의 스토리]라는 걸 생각해내고, 힘내자는 입 모양을 만든다.

거짓말의 진화 - 자기정당화의 심리학 
엘리엇 애런슨, 캐럴 태브리스 (지은이), 박웅희 (옮긴이) | 추수밭(청림출판)

지은이는 실수를 저지른 현실과 자신의 자기존중감이 충돌할 때 인지부조화가 일어나고,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 자기정당화가 작동한다고 말한다. 자기정당화는 책임을 면제해주는 허구의 이야기를 지어내어 자신이 똑똑하고 도덕적이며 옳다는 믿음을 되찾게 한다. 거짓된 믿음이 거짓말이 진화하는 자양분이 되며, 우리를 어리석고 부도덕하며 그른 행로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한다는 분석 아래 우리 사회의 ‘거짓말 시스템’을 통쾌하게 바라보고 있는 책이다.

: 인물의 심리를 좀 더 세밀히 하기 위해, 살까 싶은 책이다. 스스로 까다롭게 정한 M과 T의, 대비되는 두 주인공의 심리를 자연스럽게, 억지로 쥐어짠 느낌이 남지 않도록. 관계를 어려워해 속이는, 어쩌면 속여야만 하는. 심리학에 관해 찜한 책 중 첫 번째로 구실을 달아 소개하는 책이 아닌가 싶다.

마사 퀘스트 - 세계문학전집 162 | 원제 Martha Quest (1952)  
도리스 레싱 (지은이), 나영균 (옮긴이) | 민음사

식민지 아프리카의 영국 여성이 자아를 발견하는 과정을 그린, 도리스 레싱의 체험이 다분히 녹아들어 있는 자전적 소설이다. 구세대와 신세대, 지배 세력과 피지배 세력 간의 불화의 세기인 20세기가 키워 낸 세대, 그들이 겪어야 했던 성장통과 그들이 발견한 새로운 세계를 묘사한 작품.
부모와 농장과 어린 시절의 구속에서 벗어나려고 온 도시는, 아프리카라는 대륙과 마찬가지로 거칠고 광대하지만 뚜렷한 한계가 그어져 있다. 표면적으로는 민주주의로 보이나 인종적 긴장감과 적대감이 짙게 깔려 있는 것. 마사는 공산주의 모임에서 여러 사람들을 만나는데, 새로이 맛본 자유는 그녀에게 충격과 혼란을 준다. 자신을 둘러싼 세상뿐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서도 모순을 발견한 마사는 마침내 작가가 되기로 결심한다.

: 작가가 되기로 결심한 데 계기를 심어준, ‘그녀가 발견한 모순’ 마찬가지로, 나 자신, 그리고 나의 주위 환경, 지인들에게도 그녀가 발견한 모순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스스로의 모순은 깨닫지 못한 채, 자기와 다른 어떤 것에 대해 왈가왈부 함부로 떠들고 있지 않을까 하고. 언뜻 지나쳐간 성장하면서 겪은 통증, 그 당시 입은 충격에 이보다 더한 건 없을 거야 싶었던, 지금에서 되돌아보면 피식 웃을 수 있는. 그때보다 더한 타격, 끙끙하면서도 하나하나 차근차근 헤쳐보일 거라 불끈 주먹을 쥐는, 더욱 강해진 자신과 마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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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배는 나의 힘 - 창비시선 281  
황규관 (지은이) | 창비(창작과비평사)

시인을 동경하며 시를 쓰기 시작한 때가 20년 전이다.
그래서 나는 시인이 되었는가?
까짓 혼자 끙끙대며 쓴 시가 활자화되었느냐를 따진다면 아니라고 말할 필요는 없겠지만, 사실 너무 오래 결핍에 괴로웠었다.

그것은 내 콤플렉스 때문이었다. 태생과 어린 시절이 그 배경이었다. 그래서 나의 이력서는 지금도 허름하고 심지어 영혼마저 누추하기 그지없다. 혹 내 시에서 ‘선한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했다면 아마도 나의 남루가 빚어낸 어떤 왜곡 때문이리라. 그러나 지금은 변두리에서 혼자 강물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면, 괜찮은 일 아닌가? 혹은 어스름과 통속적인 주점이라면?

‘나’라는 물건은 숱한 인연의 다른 이름이므로 여기까지 오게 한 인연들께, 그리고 책이라는 형태로 만들어 준 모든 산파들께 따뜻한 자동판매기 커피 한잔 드린다. 다들 양지바른 곳으로 가시자. - 황규관

: 시인과 커피를 한 잔 마시며, 대화를 나누고 싶다는 생각을 문득 한다. ‘허름하고 누추한 영혼’ 에 가려진 ‘선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시인의 콤플렉스와 결핍, 감히 들여다보고 싶어지는.

리스본行 야간열차 - 문학과지성 시인선 341 

언어의 혼동, 목소리의 혼란 속 틈새의 발견이 사물이나 관계의 명징함을 깨우치는 것 이상으로 근사하고 의미 있는 작업임에 주목하게 한다. 물리적 시간의 무게도 가뿐히 압축하고 지나쳐버리기 쉬운 순간의 기억을 올올히 새긴다. 단지 주어와 술어가 자리를 바꿔 앉거나 과감하게 생략되거나 건너뛴 그 자리에서 얄밉도록 짤막한 그러나 긴요한 시구를 뽑아내는 시의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의 실체를 확인하는 찰나다.

: ‘지나쳐버리기 쉬운 순간의 기억’을 헤집어본다. 기록해두지 않은, 사소하다 넘기고 마는 그 찰나의 풍경 속에서 보물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을 한다. 그런 의미를 동동 띄우며, 연결고리를 만든다.

 
차가운 웃음 - 랜덤시선 032 
유승도 (지은이) | 랜덤하우스코리아(랜덤하우스중앙)

유승도 시인의 주인공은 자연이다. 숲도 나무도 청설모도 흑염소도 바람도 그가 부르면 친구처럼 온다. 그러나 이번 시집 속의 자연은 앞선 시집과는 사뭇 다른 자세를 취하고 있다. 이번 시집에서의 자연은 입을 벌려 웃고 있는 채다. 그 웃음은 너무도 차다.

: 차가운 웃음의 너머에 새긴 조각은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지, 사뭇 궁금해진다. 표면에 차가운 웃음이 서려있다고 해도, 자연을 노래한, 자연을 친구로 둔 시인의 따뜻한 마음씨를 건져낼 수 있을 것 같다.

 


 


작별 - 외로운 너를 위해 쓴다 
정이현 (지은이) | 마음산책

소설 작업 뒷이야기와 소설가로서의 고민, 그리고 다른 작가의 작품을 읽고 내놓은 공감의 언어가 담겼다. 문학하는 자로서의 자의식이 담긴 글과, 책들을 읽은 뒤 느낀 감상들, 때로는 외로움을 지탱하기 위해 책을 읽는 작가의 모습을 볼 수 있다.

*
상처받고 싶지 않은 마음과 상처받을 수밖에 없는 현실이 맞부딪칠 때, 나는 책을 읽는다. 철저히 외로워지도록. 내 안에 꽁꽁 유폐된 나를 아무도 발견할 수 없도록. 그리하여 어떻게도 훼손하지 못하도록.
여기, 문학하는 자로서의 자의식이 담긴 글 편과, 타인이 쓴 책들을 훔쳐본 뒤 느낀 단상을 모았다. 이것으로 내가 누구인지 증명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러나 이 책을 덮은 독자가 문득 나직한 '안녕'을 읊조리고 싶어진다면, 당신에게 나도 당신이 될 수 있다면, 그걸로 족하다. - 정이현

: 내 안의 웅크린 나는, 외로움을 꾸역꾸역 삼키고 있는 나는, 겉으로 아무렇지 않은 듯 실실 웃을 때가 많다. 주위에서 웃음을 터뜨리면 덩달아 웃게 되는 경우가 그렇다. 반면, 웃을 이유가 없을 때는, 섬뜩할 정도로 무표정이라는 얘기도 들었다. 나의 아이템을 손에 쥐고 있을 때는 무언가 탐구하듯 번뜩이는 눈동자를 굴리고 있겠지. 그럴 때, 외로움마저, 아니 외로움을 느낄 여유마저 달아나버린다. 작가는, 더욱 자신을 구석으로 몰면서 외로움을 뭉개는 것처럼 느껴진다, 개인적으로.  

 
풍선 - 명랑한 사랑을 위해 쓴다 
정이현 (지은이) | 마음산책

젊음의 날들이 미숙하면서도 아름답고, 암울하면서도 풋풋한 것은 언젠간 반드시 터져버리고 말리라는 예민한 긴장감이 바탕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구름 위에 달콤한 풍선들을 띄워 멀리멀리 날려 보내기 위해서는 후우, 후우, 풍선 부는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못 견디게 두렵다면 눈을 꼭 감아도 좋다. 위태로워 더 황홀한 그 설렘의 힘으로 나는 오늘을 살겠다.

명랑한 청춘의 사랑아, 마음껏 풍선을 불자. 날리자. 날려버리자.
저기, 시력으로 가늠할 수 없는 세상의 끝에 살며시 닿도록.

이곳에 실린 글들은 소설을 쓰는 틈틈이 썼다. 소설 쓰기가 고통이었을 때, 산문 쓰기는 고통을 다독여주는 사랑스러운 알약이었다. - 정이현

: 바탕의 긴장감을 바닥에 늘어놓고, 달콤한 풍선을 확보한다. 그 간격의 시간을 손에 가득 쥐는 것이다. 두려움을 멀리 던지기보다 조각조각내서 흡수하기도 하고, 작가의 말처럼 풍선을 불어 날려버리기도 하자. 그렇게 다짐하며 보관함에 넣었다.

 
차가운 밤에 | 원제 つめたいよるに   
에쿠니 가오리 (지은이), 김난주 (옮긴이) | 소담출판사

<냉정과 열정 사이>, <반짝반짝 빛나는>, <도쿄 타워>의 작가 에쿠니 가오리의 테마 단편집. 총 스물한 편의 소설이, 작품의 성격에 따라 두 파트에 나뉘어 실렸다. 1부 '차가운 밤에'에 수록된 단편들은 독특하고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음식을 소재로 쓴 단편을 모은 2부 '따스한 접시' 역시 흥미롭다. 에쿠니 가오리 특유의 동화적 상상력과 섬세한 묘사, 삶과 죽음에 대한 따뜻하고 긍정적인 시선이 돋보이는 소설집이다.

: 원서를 가지고 있는 책, 이제야 번역본이 나오는구나. 예약주문을 하던데, 적립금이 모이는 대로 지를 생각이다. 가오리 작가의 소설은 흥미를 끄는 소재라던가, 파격적인 전개, 엄청난 반전이 기다리거나 하는 스타일은 아니다. 당연히, 평소의 취향과는 거리가 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김없이 읽게 되는 건, 그녀가 그리는 풍경에서 어린 시절을 재생시키거나 때마다 각기 다른 느낌을 받게 되는 것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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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랑하라 팜 파탈 - 문학과지성 시인선 340 
김이듬 (지은이) | 문학과지성사

시인의 감성 실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육체였다. “육체의 감각 밑에서 시를 발굴한다.”는 평을 받기도 했다.
“내 이름은 ‘이듬’입니다. ‘언제’라고 말하려 해도 규정하기 어려운 ‘그때’이지요. ‘지금’이라고 발음하는 동시에 ‘과거’가 되는, 닿지 못할 미래라고 말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요? 고정되어 있지 않고 불확정적인 것들을 사랑해요. 그러나 ‘사랑’이라는 단어는 언제까지나 ‘오해’를 남기는 것 같아요. 나에 관해 말하는 것도 그렇겠지요. 그래도 다행인 것은, 우리들은 변해가고 죽어간다는 것이지요.”
자신에게 ‘이듬’이란 이름을 붙인 것처럼, 그녀가 쓰는 시들은 규정하기 어려운, 고정되어 있지 않고 불확정적인 느낌이 강하다. 그녀의 시가 다소 불편하게 느껴지고, 그것의 새로움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다는 반응을 불러일으키는 이유도 그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 불편함 뒤에는 그녀의 시에서만 느낄 수 있는 커다란 울림이 있다.
따로 창작 수업을 받은 적도 없고, 대학 문학 동아리 활동을 했지만 늘 데모 대열에 끼어 대자보와 문건 작성에만 필력을 쏟았던 시인은 그래서 오히려 틀에 박히지 않은, 제멋대로의 시가 탄생할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말한다. 좋은 시, 잘 읽혀지는 시를 따라 가지 않고 자신의 화법대로 쓰다 보니까 나름대로의 시 세계가 형성됐다는 것이다.
시인은 첫 시집 발표 이후 “어지럽고 난해한 감수성 저변에 현실 인식이 미묘하게 깔려 있다”는 주변의 반응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했다.
“저는 쓸데없이 자의식이 강하고, 무의식적인 자기 방어와 통제에 익숙한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사랑을 하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비틀어버리는 것, 한 편의 시를 쓰다가 갑자기 또 다른 화자가 등장해서 훼방을 놓는 거죠. 믹싱과 스크래치가 일어나요.”
규정되지 않고 불확정적인 것들을 노래한 시인의 시는 다양한 상황의 시적 재현에 공들이는, 철저하게 개별화된 시적 담론을 추구하며 시단의 한 그룹을 형성했다. 그녀의 두 번째 시집이 더욱 기대되는 이유이다.
팜 파탈은 이 세계의 상징질서에 깊고 날카로운 틈을 파고드는 이상한 나라에서 온 세이렌의 움직이는 초상이다. 우울, 강박, 히스테리, 분열증 너머의 시적 에너지를 암시한다. 자기 몸 깊은 구멍과 얼룩에서부터 고통을 다른 쾌락으로 만드는 시적 체위이다.

: 틈을 좋아한다. 사이사이 여러 가지 다양한 사건이 일어나고 있을 듯해서, 미묘한 관찰을 시도한다. 한눈을 팔다 보면, 저만치 달아나고 마는 ‘틈’은 때때로 바로 옆자리에서 마냥 바라보고 있기도 한다. 쥐어질 듯 말 듯 아슬아슬한 그 거리가 좋다. 아릿한 통증이 좋다. 나는 이 시집을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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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보객 책속을 거닐다 - 장석주의 느린 책읽기 
장석주 (지은이) | 예담

장석주는 말한다. “책은 밥이자, 참을 수 없는 없는 유혹”이라고. 그래서 먹을 수밖에 없고 유혹당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세끼 밥을 꼬박 챙겨먹듯 그는 몸과 마음의 끼니로 책을 먹고, 읽고, 써왔다. 책으로 더욱 풍성해진 삶, 그래서 더없이 행복하다는 그는 이렇게 기막힌 인생의 보물인 ‘책’을 먹지 않고 읽지 않는 사람이 오히려 손해라고 당당히 말한다. “책의 매혹은 최소경비로 필요한 모든 것을 그 안에서 구할 수 있다는 데 있다. 책읽기는 아무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는 청정한 취미요, 행복한 삶의 기술이다. 그랬으니 문자를 해독한 이래로 책을 벗 삼아 평온함과 높은 집중 속에서 보낸 날들은 쾌락과 일과 수행의 시간들이었다. 지금도 여전히 책읽기는 내게 버릴 수 없는 취향이고, 뿌리치기 힘든 유혹이고, 벗어나기 힘든 중독이다.”

: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아저씨가 다 하셨다. -_-; 책장 빽빽한 나의 아이템들을 보면서, 하루에도 몇 차례 뿌듯해하고, 거듭 나오는 신간들을 사고 싶어 안달하면서, 매장을 돌아다니기 일쑤. 그러다 몇 번 확인한 결과, 기대 이하면 실망을 감추지 못하고, 시무룩해 있다가, 번뜩하는 세계를 그린 책들에 다시 환호하고 방방거리고.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나의 일상. 장면은, 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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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국동울음상점 - 랜덤시선 033 
장이지 (지은이) | 랜덤하우스코리아(랜덤하우스중앙)

시란 ‘지도에도 없는 별로 찾아가는 길’이다. 개인적인 취향이나 체험들을 즐겨 시로 형상화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체험들을 시에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한 단계 비틀어서 현대문명이 낳은 기형적인 요소나 우울함, 병적 상실 등을 예리하게 노래한다. - 강우식 (시인)

장이지의 내부에는 ‘잊혀진 별 명왕성’의 ‘어린 왕자’가 살고 있다. 모질고 사나운 세상에 상심한 왕자는 화려한 감각과 현학의 소품들로 인공 낙원을 만들고, 짐짓 그에 탐닉하는 듯이 세상과의 대면을 지체시키거나 흐트러뜨린다. - 김사인 (시인)

: 작가가 그린 명왕성의 이미지, 작가가 담은 소품, 작가의 체험과 취향. 알쏭달쏭 수수께끼를 풀 듯, 곱씹고, 더듬고, 여기저기 휘둘러보며 미로를 따라가는 그 과정을 좋아한다. 이 시집도 아마 그렇지 않을까 예상하고 주문, 얼른 택배가 오기를 바라고 있다. (웃음)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 세계문학전집 161 | 원제 A Streetcar Named Desire (1947) 
테네시 윌리암스 (지은이), 김소임 (옮긴이) | 민음사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는 현실을 현장감 있게 그려 내려는 사실주의에 기초하면서도 풍부한 상징과 시적 이미지가 넘친다. 제목뿐 아니라 소품으로 사용된 ‘종이 등’도 상징성을 지닌다. 종이 등은 알전구 앞에서 자신의 초라한 실체를 보이고 싶지 않은 블랑시의 마음을 상징한다. 하지만 극의 마지막으로 가면서 종이 등은 찢겨 나가 알전구가 다시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블랑시의 환상이 깨지고 자신의 실체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것과 맥을 같이 하는 것이다.
이러한 극의 상징은 곧 테네시 윌리엄스의 삶이다.

: 리스트에 옮기는 건 늦었지만, 알라딘에서 즉각 발견하여 일찌감치 주문했던. 보관함에 미리 담아두었던 책이랑 12월 2일에 주문해서 5일 택배 도착. 선호하는 카테고리에 [풍부한 상징과 시적 이미지]가 높은 순위로 자리하고 있기에, 더 이상의 망설임도 없이, 장바구니에 담았던 것이다.  

도끼와 바이올린 - 텍스트의 한계를 초월하여 무한한 울림을 만들어 내는 음악 소설 | 원제 La Hach et le violon 
알랭 플레셰르 (지은이), 임호경 (옮긴이) | 열린책들

총 3부로 구성된 이 소설은 생명력을 잃고 종말로 치달아 가는 서구 세계의 운명과 그 속에서 부침하는 개인의 삶을 현실과 악몽, 희망을 교차시켜 그려 낸다. 각기 <소설>과 <역사>, <헛소리>라고 이름 붙인 3부는 모두 <우연히도 세계의 종말은 나의 창문 아래에서 시작되었다>라는 동일한 문장으로 시작되며, 이 소설의 중요한 소재인 음악이 그러하듯이 하나의 이야기가 다른 이야기를 비추고 변주시키며 그 의미를 확장시킨다.
생명의 잉태와 새로운 세대의 탄생을, 도끼와 바이올린이 하나로 통합되는 진정한 연주를 그리고 있다.
모든 기호의 의미는 중의적이고 복합적이며, 항상 다른 곳에 충격적인 비밀로서 감추어져 있다. 그리고 그 내밀한 의미를 찾아내어, 아름다운 멜로디로 솟아나게 하는 것은 텍스트의 여러 지점들을 연결시키는 독자의 고된 해석 작업, 즉 연주를 통해서이다. 그런 의미에서 『도끼와 바이올린』은 음악의 힘을 텍스트로 실현해 낸 진정한 음악 소설이라 할 것이다.

: 단순히 쓰인 경치만이 아니라, 파노라마 풍경으로 그려졌기를. 그리하여 시시각각 새로운 의미를 부여할 수 있고, 갖가지 진기한 영상으로 연주될 소설이기를 바란다. 아직 확인 과정을 거치지 않은 터라, 문장이나 묘사에 관해서는 이렇다하게 적을 수가 없다. 다만, 소개 글귀를 통해 굉장히 기대 중이다. (예전에 풀 파워 기대했다가, 번번이 실망을 감춘 경험이 여럿이지만, 이번에는 과연? 이란 생각을 가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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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밭 위의 돼지 
김태용 (지은이) | 문학과지성사

2005년 봄 문단에 데뷔한 김태용의 첫 소설집 <풀밭 위의 돼지>는 '그로테스크한 풍경 속에 흔적 없이 해체 되는 전통 가족 서사'로 요약할 수 있을 듯하다. 기괴하다. 뚜렷한 서사를 제시하지 않는 점, 이야기 맥락의 전과 후를 일부러 해치는 동어반복과 뛰어넘기, 단어의 의미를 재구성하고 무의미화 시키는 작업 등 구성과 형식 상의 특징 또한 낯설다.

죽은 아내가 살아 있다고 생각하는 치매에 걸린 노인의 이야기 '풀밭 위의 돼지', 친구의 아내와 욕망관계에 있는 사내가 주인공인 '검은 태양 아래', 죽은 아빠가 들어 있는 병과 함께 살아가는 이상한 가족들의 이야기 '오른쪽에서 세번째 집', 절대로 침낭에서밖에는 잠들 수 없는 남자가 등장하는 '잠'을 포함해, 총 10편의 소설이 수록되었다.

*

불안과 부끄러움의 나날들이었다.
수도꼭지를 틀면 어김없이 녹물이 쏟아져 나왔다.

나는 취미가 없어요.
라고 당당하게 말하지 못하는 자신에게
연민과 공포를 가졌다.

오독의 과정이 곧 글쓰기라고
말한다면 다시 그대들은 오독을 하고 말 것이다.

내가 오독한 글들을 조용히 떠올려본다.
수면 위에 간신히 떠 있는 글들
수면 아래 구태여 가라앉아 있는 글들
그리고 스스로 늪이 되어버린 글
어쨌든 살아 있어주어 고맙다

아내와 두 아이 현울, 현담으로부터
지상의 유일한 양식 같은 사랑을 받고 있다.
언제나 받은 만큼 돌려주지 못해 미안할 따름이다.
나의 첫번째 문장은 그들의 것이다.

두 아이 역시 언어를 찾고 나면 나의 글을 오독하겠지.
그 생각이면 또 다시 불안과 부끄러움이다.

보이지 않는 독자로 살아가고 싶었던 적이 있었으나
이제 보이는 작가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
두려운가요.
묻는다면
그렇지만 흥미롭지요.
세계는 여전히 농구공 같으니까요.
라고 대답하고 싶다.

21세기가 조금만 더 간절히 나를 원했으면 좋겠다. - 김태용

*

: 작가로서 자신의 글을 제대로 읽어내는 독자를 만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부터, 작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의식을 제대로 건져낸 것인지 의문의 과정을 거듭하고 있으니까. 진실에 가까운 건 오직 작가만이, 아니 그 자신도 모를 경우도 있지 않을까 조심스레 추측해본다. 어쭙잖은 글을 쓰면서 간혹 그런 짚어내기를 반복하고 있다.


피아노 - 문학과지성 시인선 339 
최하연 (지은이) | 문학과지성사

"누군가 엿듣기를 바라는 독백, 혹은 누군가와 함께 발견하고 싶은 독백"이라는 평가와 함께, 2003년 제3회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문단에 데뷔한 최하연 시인의 첫 시집. 시인은 언어의 자유와 의미의 질서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잡으며 참신한 화법으로 매혹적인 연주를 한다.

피아노

눌러도 소리가 나지 않는 건반을 책상 위에 그려놓고, 가만 귀 기울이고 있어요. 당신의 소원은 검은건반에서 뛰어내리는 것, 그리항 일생일대의 화음으로 나를 부활시키는 것, 당신의 경전마다 엉터리 활자를 찍어놓고, 페이지를 봉인하고 있어요, 나는 나의 다음 페이지가 무조건 될 수 없다는 것, 우주를 한 바퀴 돌아 신발을 벗으며 '그것 참'이라고 고백할 수 있다면, 당신이 떨어지고 있는 바로 그 순간, 나도 당신이 있던 그곳을 향해 뛰어오를 수 있다면, 당신의 멈칫함이 나를 일깨우는 바로 그 주문이길, 두들겨라, 두들겨라, (나의 건반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어요) 나의, 나를 위한 마침표는, 언제나 나의 시작 전에 찍히고 있어요, 도돌이표 마디마다 당신은 돌아오고 있겠지요, 가로지르는 모든 것들로 하여금, 당신을 향한 나의 좌표를 잃게 만들고 싶어요, 당신은, 또다시 그 높은 절벽, 검은건반에 올라서서 눈을 감고 있네요,

*

시를 배달하러 나간다. 처방전은 태고부터 지금까지 달랑 한 장. 누구의 사인도 들어 있지 않은 처방전을 받아 들고, 그 언니, 시를 지으시네, 배달을 나가시네. - 최하연

*

:시집의 내용과는 별다른 관련이 없지만, 어디까지나 시집이 계기로 작용하여 오늘, 특별 에피소드가 생겼다. 궁금한 사람은 슬쩍 찔러봐요.(웃음)
중*고등학교 때는 지지리도 싫어했던(;) 피아노, 지금은 기타*베이스*드럼만큼이나 좋아진 악기.

개를 돌봐줘 | 원제 Prenez Soin Du Chien (2006) 
J.M. 에르 (지은이), 이상해 (옮긴이) | 작가정신

마주 보는 두 아파트 주민이 서로를 관음증 환자로 오해하면서 벌어지는 소동극. 기기묘묘한 등장인물들이 서로 얽혀들면서 만들어내는 에피소드로 이루어져 있다. 프랑스 소설가 장 미셸 에르의 데뷔작. 세련된 유머와 송곳 같은 반전이 공존하는 미스터리 장편이다.


*

:일단,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이 퍽 흥미롭다. 자기 식의 판단이 부르는 결과라던가,
저기 위의 소개에서 다양한 캐릭터들이 얽히고설키는 모습을 관찰하며, 막판의 반전이 뭘까 이리저리 더듬어나가는 과정의 재미가 쏠쏠할 듯. &경악하고 말 결말이 뭘까.
적립금도 있겠다, 주문해야지~

:아니, 음반 소개에, 이 사람들을 엄청 띄워주고 있다.
팬이지만, 가끔, 터무니없다 느껴질 때가 있어.
몇몇 최고니 어쩌니, 최초니 어쩌니,(그럴 리가 없잖아-_-)
하는 이야기. -_-
이미 들은 적이 있는 곡이라 그리 새로울 건 없지만,
신보라니까, 그냥 소개해본다-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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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11-24 1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풀밭 위의 돼지...끌리는군요.^^ (독특하고 괴상한게 좋은 외계인)

302moon 2007-11-25 2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주문했지요. 내일이면, 도착할 것 같은데. 방방 뛰며 기다리고 있답니다. (웃음)
독특하고 괴상한 건 좋은 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