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랑하라 팜 파탈 - 문학과지성 시인선 340 
김이듬 (지은이) | 문학과지성사

시인의 감성 실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육체였다. “육체의 감각 밑에서 시를 발굴한다.”는 평을 받기도 했다.
“내 이름은 ‘이듬’입니다. ‘언제’라고 말하려 해도 규정하기 어려운 ‘그때’이지요. ‘지금’이라고 발음하는 동시에 ‘과거’가 되는, 닿지 못할 미래라고 말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요? 고정되어 있지 않고 불확정적인 것들을 사랑해요. 그러나 ‘사랑’이라는 단어는 언제까지나 ‘오해’를 남기는 것 같아요. 나에 관해 말하는 것도 그렇겠지요. 그래도 다행인 것은, 우리들은 변해가고 죽어간다는 것이지요.”
자신에게 ‘이듬’이란 이름을 붙인 것처럼, 그녀가 쓰는 시들은 규정하기 어려운, 고정되어 있지 않고 불확정적인 느낌이 강하다. 그녀의 시가 다소 불편하게 느껴지고, 그것의 새로움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다는 반응을 불러일으키는 이유도 그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 불편함 뒤에는 그녀의 시에서만 느낄 수 있는 커다란 울림이 있다.
따로 창작 수업을 받은 적도 없고, 대학 문학 동아리 활동을 했지만 늘 데모 대열에 끼어 대자보와 문건 작성에만 필력을 쏟았던 시인은 그래서 오히려 틀에 박히지 않은, 제멋대로의 시가 탄생할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말한다. 좋은 시, 잘 읽혀지는 시를 따라 가지 않고 자신의 화법대로 쓰다 보니까 나름대로의 시 세계가 형성됐다는 것이다.
시인은 첫 시집 발표 이후 “어지럽고 난해한 감수성 저변에 현실 인식이 미묘하게 깔려 있다”는 주변의 반응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했다.
“저는 쓸데없이 자의식이 강하고, 무의식적인 자기 방어와 통제에 익숙한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사랑을 하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비틀어버리는 것, 한 편의 시를 쓰다가 갑자기 또 다른 화자가 등장해서 훼방을 놓는 거죠. 믹싱과 스크래치가 일어나요.”
규정되지 않고 불확정적인 것들을 노래한 시인의 시는 다양한 상황의 시적 재현에 공들이는, 철저하게 개별화된 시적 담론을 추구하며 시단의 한 그룹을 형성했다. 그녀의 두 번째 시집이 더욱 기대되는 이유이다.
팜 파탈은 이 세계의 상징질서에 깊고 날카로운 틈을 파고드는 이상한 나라에서 온 세이렌의 움직이는 초상이다. 우울, 강박, 히스테리, 분열증 너머의 시적 에너지를 암시한다. 자기 몸 깊은 구멍과 얼룩에서부터 고통을 다른 쾌락으로 만드는 시적 체위이다.

: 틈을 좋아한다. 사이사이 여러 가지 다양한 사건이 일어나고 있을 듯해서, 미묘한 관찰을 시도한다. 한눈을 팔다 보면, 저만치 달아나고 마는 ‘틈’은 때때로 바로 옆자리에서 마냥 바라보고 있기도 한다. 쥐어질 듯 말 듯 아슬아슬한 그 거리가 좋다. 아릿한 통증이 좋다. 나는 이 시집을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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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보객 책속을 거닐다 - 장석주의 느린 책읽기 
장석주 (지은이) | 예담

장석주는 말한다. “책은 밥이자, 참을 수 없는 없는 유혹”이라고. 그래서 먹을 수밖에 없고 유혹당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세끼 밥을 꼬박 챙겨먹듯 그는 몸과 마음의 끼니로 책을 먹고, 읽고, 써왔다. 책으로 더욱 풍성해진 삶, 그래서 더없이 행복하다는 그는 이렇게 기막힌 인생의 보물인 ‘책’을 먹지 않고 읽지 않는 사람이 오히려 손해라고 당당히 말한다. “책의 매혹은 최소경비로 필요한 모든 것을 그 안에서 구할 수 있다는 데 있다. 책읽기는 아무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는 청정한 취미요, 행복한 삶의 기술이다. 그랬으니 문자를 해독한 이래로 책을 벗 삼아 평온함과 높은 집중 속에서 보낸 날들은 쾌락과 일과 수행의 시간들이었다. 지금도 여전히 책읽기는 내게 버릴 수 없는 취향이고, 뿌리치기 힘든 유혹이고, 벗어나기 힘든 중독이다.”

: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아저씨가 다 하셨다. -_-; 책장 빽빽한 나의 아이템들을 보면서, 하루에도 몇 차례 뿌듯해하고, 거듭 나오는 신간들을 사고 싶어 안달하면서, 매장을 돌아다니기 일쑤. 그러다 몇 번 확인한 결과, 기대 이하면 실망을 감추지 못하고, 시무룩해 있다가, 번뜩하는 세계를 그린 책들에 다시 환호하고 방방거리고.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나의 일상. 장면은, 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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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국동울음상점 - 랜덤시선 033 
장이지 (지은이) | 랜덤하우스코리아(랜덤하우스중앙)

시란 ‘지도에도 없는 별로 찾아가는 길’이다. 개인적인 취향이나 체험들을 즐겨 시로 형상화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체험들을 시에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한 단계 비틀어서 현대문명이 낳은 기형적인 요소나 우울함, 병적 상실 등을 예리하게 노래한다. - 강우식 (시인)

장이지의 내부에는 ‘잊혀진 별 명왕성’의 ‘어린 왕자’가 살고 있다. 모질고 사나운 세상에 상심한 왕자는 화려한 감각과 현학의 소품들로 인공 낙원을 만들고, 짐짓 그에 탐닉하는 듯이 세상과의 대면을 지체시키거나 흐트러뜨린다. - 김사인 (시인)

: 작가가 그린 명왕성의 이미지, 작가가 담은 소품, 작가의 체험과 취향. 알쏭달쏭 수수께끼를 풀 듯, 곱씹고, 더듬고, 여기저기 휘둘러보며 미로를 따라가는 그 과정을 좋아한다. 이 시집도 아마 그렇지 않을까 예상하고 주문, 얼른 택배가 오기를 바라고 있다. (웃음)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 세계문학전집 161 | 원제 A Streetcar Named Desire (1947) 
테네시 윌리암스 (지은이), 김소임 (옮긴이) | 민음사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는 현실을 현장감 있게 그려 내려는 사실주의에 기초하면서도 풍부한 상징과 시적 이미지가 넘친다. 제목뿐 아니라 소품으로 사용된 ‘종이 등’도 상징성을 지닌다. 종이 등은 알전구 앞에서 자신의 초라한 실체를 보이고 싶지 않은 블랑시의 마음을 상징한다. 하지만 극의 마지막으로 가면서 종이 등은 찢겨 나가 알전구가 다시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블랑시의 환상이 깨지고 자신의 실체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것과 맥을 같이 하는 것이다.
이러한 극의 상징은 곧 테네시 윌리엄스의 삶이다.

: 리스트에 옮기는 건 늦었지만, 알라딘에서 즉각 발견하여 일찌감치 주문했던. 보관함에 미리 담아두었던 책이랑 12월 2일에 주문해서 5일 택배 도착. 선호하는 카테고리에 [풍부한 상징과 시적 이미지]가 높은 순위로 자리하고 있기에, 더 이상의 망설임도 없이, 장바구니에 담았던 것이다.  

도끼와 바이올린 - 텍스트의 한계를 초월하여 무한한 울림을 만들어 내는 음악 소설 | 원제 La Hach et le violon 
알랭 플레셰르 (지은이), 임호경 (옮긴이) | 열린책들

총 3부로 구성된 이 소설은 생명력을 잃고 종말로 치달아 가는 서구 세계의 운명과 그 속에서 부침하는 개인의 삶을 현실과 악몽, 희망을 교차시켜 그려 낸다. 각기 <소설>과 <역사>, <헛소리>라고 이름 붙인 3부는 모두 <우연히도 세계의 종말은 나의 창문 아래에서 시작되었다>라는 동일한 문장으로 시작되며, 이 소설의 중요한 소재인 음악이 그러하듯이 하나의 이야기가 다른 이야기를 비추고 변주시키며 그 의미를 확장시킨다.
생명의 잉태와 새로운 세대의 탄생을, 도끼와 바이올린이 하나로 통합되는 진정한 연주를 그리고 있다.
모든 기호의 의미는 중의적이고 복합적이며, 항상 다른 곳에 충격적인 비밀로서 감추어져 있다. 그리고 그 내밀한 의미를 찾아내어, 아름다운 멜로디로 솟아나게 하는 것은 텍스트의 여러 지점들을 연결시키는 독자의 고된 해석 작업, 즉 연주를 통해서이다. 그런 의미에서 『도끼와 바이올린』은 음악의 힘을 텍스트로 실현해 낸 진정한 음악 소설이라 할 것이다.

: 단순히 쓰인 경치만이 아니라, 파노라마 풍경으로 그려졌기를. 그리하여 시시각각 새로운 의미를 부여할 수 있고, 갖가지 진기한 영상으로 연주될 소설이기를 바란다. 아직 확인 과정을 거치지 않은 터라, 문장이나 묘사에 관해서는 이렇다하게 적을 수가 없다. 다만, 소개 글귀를 통해 굉장히 기대 중이다. (예전에 풀 파워 기대했다가, 번번이 실망을 감춘 경험이 여럿이지만, 이번에는 과연? 이란 생각을 가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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