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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왕자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지음, 이정서 옮김 / 새움 / 2017년 9월
평점 :
-어렸을 적 부터 <어린왕자>를 좋아했다. 여전히 가장 좋아하는 책 한 권을 뽑으라면 고민없이 선택하는 책이기도 하다. 기존에 가지고 있던 책은 표지는 잃어버리고 양장이 뜯어져 너덜너덜하고 속지가 바랠 정도로 많이 읽으며 손에서 놓질 않았었다. 그러다 새움판 어린왕자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정서 번역가의 번역은 어떻게 다를지 호기심이 샘솟아 손에 집어들게 되었다. 그리고 이번 독서로 깨닫게 되었다. 이 책은 죽기전에 꼭 한 번은 읽어야 하는 명작이다.
-소행성 B612에 살던 어린왕자는 어느날 여행을 결심한다. 사랑하는 장미와 이별하고 여러 별을 여행하다 지구의 사막에 이르게 된다. 독특한 생명체가 살고있는 황량한 땅에서 외로운 여행을 하던 어린왕자는 여우와 친구가 되고, 길들인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또 다시 이별하고 길을 걷던 중 ‘나’와 만나게 된다. 어린왕자는 나에게 자신의 별에 데려갈 양을 한 마리 그려달라고 요청한다. 나는 황당한 요청에 자신의 보아뱀 그림을 어린왕자에게 보여주게 되고, 한 번에 그 그림이 어떤 그림인지 맞춘 그에게 놀라움과 순수를 느끼며 두 사람은 친구가 된다.
-이전에는 단지 신비한 느낌의 동화같기도 하고 소설같기도 한 책이라서, 어린왕자의 순수함이 나에게까지 온전히 와닿는 것 같아서 좋아했다. (사실 굉장히 단순한 이유다. 순수하고 신비한 느낌에 끌린 것이니까) 그러나 역시 이정서 번역가의 번역을 읽으니 더 짙은 맛을 느낄 수 있었다. 사실 <이방인>이나 <위대한 개츠비>를 읽으면서는 문장의 어색함이나 (영어를 한국어로 직역하면 어색함이 생길 수 밖에 없다고 생각 한다.) 불편함이 느껴져 이정서 번역가가 번역한 책들을 읽고 놀라움에 빠졌으면서도 그의 번역 철학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했었다. 그런데 <어린왕자>는 다르다. 불편함도 어색함도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원작이 얼마나 대단한지 더 크게 느껴졌다. 단순하고 소박하게 큰 지혜를 건넨다는 사실을 느끼곤 전율이 흘렀다. 이정서 번역가가 더 많은 일을 했으면 하는 마음이 든다.
-누군가 ‘왜 <어린왕자>를 살면서 한 번은 꼭 읽어야 하나요?’ 하고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삶과 자아 사랑과 우정 이별과 죽음이 이 짧은 한 권 속에 가득 담겨있기 때문’ 이라고.
삶과 자아 - 어린왕자는 ‘자신의 별’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살아간다. 그의 별은 곧 그의 자아가 되는 것이다. 그는 여행을 하며 다른 별들을 둘러보게 되는데, 그 별들에도 한 사람씩 살고 있다. 모두들 자신의 생각을 고집하며 살아간다. 수 많은 별들은 곧 수 많은 사람들의 자아인 것이다. 태어나고, 살아가며, 자신의 삶의 방식을 만드는 곳. 또한 그곳에서 어른들의 사는 방식을 보면서 어린왕자는 생각한다. ‘어른들은 참 이상해’하고. 그들의 별에는 순수함이 없고 숫자와 욕심 나태와 아무런 생각 없이 주어진 일을 반복하는 일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스스로의 별을 그렇게 만들어간 것이다.
사랑 - 여행을 시작하기에 앞서 그는 자신이 사랑하고 아끼던 장미와 이별을 한다. 사실 그는 장미의 변덕과 까칠함에 질려 있었고 그로인해 여행을 결심하게 된 것이다. 이 장면을 보면, 주마등처럼 여성과 남성의 연애가 그려진다. 그렇게 여행을 떠난 어린왕자는 여행 내내 장미를 떠올린다. 그녀의 행동에 지쳐 떠난 여행이었지만, 그녀를 끊임없이 떠올리며 후회하고, 그리워하고, 아이러니하게도 더욱 사랑한다. ‘나의 장미는 하나 뿐이야’ 하고 말하며. 그리고 깨닫기도 한다. 그녀가 어떤 마음으로 자신에게 그렇게 해왔던 것인지.
우정 - 어린왕자는 지구에서 여우를 만난다. 여우는 자신을 길들여달라고 말하지만, 그는 자신은 여행을 떠나야 하니 안 된다고 말한다. 잠시라도 좋으니 자신을 길들여달라는 여우의 말을 들어준 후 다시 길을 떠나려는 어린왕자를 바라보며 여우는 가슴 아파한다. 그는 언젠가 이별할 것을 알면서도 우정을 만들고 싶어한 여우를 바라보며 우정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깨닫게 되고, 나와 그가 헤어질 때 말한다. ‘수 많은 별들 중 한 곳에 내가 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 별들을 바라보면 웃음이 나올 것이야’ 그러니 슬퍼할 일이 아니라고. 진정한 우정이 가져다주는 선물을 알게 된 것이다.
이별과 죽음 - 결국 모든 만남에는 이별이 존재하며, 모든 생에는 죽음이 붙어 있다는 것. 인간이 삶을 살아가면서 그것들은 필연적인 것이라는 것을 그는 우리에게 전한다. 장미와 여우와 나와 이별하고, 지구상에서 죽음을 맞이하며 그 모든 아픔과 슬픔은 또한 아름다운 것이며, 언제 어느 순간에라도 이별한 누군가를 어디에서든 떠올리며 미소지을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그의 이별과 죽음은 순수함 그 자체이다.
-인간에 있어 가장 크고 어려운 고민들이 한 곳에, 그것도 쉬이 읽히는 단순함 속에 꾹꾹 눌려담겨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느껴지는 감정을 어떤 단어로 설명할 수 있을까. 생텍쥐페리에게 천재라는 단어는 너무 진부하게만 느껴진다. 이토록 순수하고 아름답게 또 조금도 복잡하지 않게 이 많은 것을 전하는 그는 도대체.. 누군가 나에게 순수함에 대해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물어볼 것이다. ‘당신은 어린왕자를 알고 계십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