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문장을 만나기 전 공교롭게도 당명을 바꾸고자 하는 열망이 담긴 플랫카드를 봤다..산책길에.

이름만 바꾼다고,자신들의 죄가 사라지는 것도 아닐텐데...딜지의 마음과는 다르게 누군가는 이름을 바꾸면 운수가..달라질수 있다고 믿는 모양이다.^^


나 참 딜지가 말했다. 이름 바꿔도 도움 되는 것 없어. 이름이 해를 끼치지도 못하고 이름을 바꾼다고 운수가 달라지지는 않아.내 이름은 내가 기억하기 전부터 딜지였고 사람들이 날 잊은 지 오래되도 딜지일 거야/8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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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회
윌리엄 트레버 지음, 김하현 옮김 / 한겨레출판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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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에게서 종종 윌리엄 트레버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때마다 읽어야지 생각은 했는데, 막상 이야기했던 책들은 자신 없어 단편집을 구입 했던 게 아닌가 싶다. 그렇게 시간만 흘려 보내고 있었다는 뜻이다. 최근 에밀졸라의 <사랑의 한 페이지>를 읽다가 '밀회' 단어가 유난히 눈에 들어왔다. 이제는 윌리엄 트레버의 <밀회>를 읽어야 할 시기가 온 것일까 생각했다. 놀랍게도 두 책의 표지가 닮은 것도 신기했다.



이야기를 관통하는 주제가 비슷할 거란 생각을 하다가, 표지 느낌이 달라서 <밀회>를 읽으면서 표지의 이미지가 닮은 지점을 찾아볼 수 있다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졌다. 졸라선생의 작품 표지도 그랬으니까... 


"(...) 자신의 죄로 결국 얼굴을 벽 쪽으로 돌려야 했던 여자 때문에 아내가 있는 한 남자 때문에 울었다.이제 학생도 연인도 방문하지 않을 집에 남겨진 모두스비벤디 때문에 부버리 씨를 배신하기에 충분했던 언뜻 본 비밀 때문에 울었다.관계가 지루해지면 바람을 피울 친구와 사고를 잘 치는 친구 너무 많은 것을 내주는 로맨틱한 친구 세상을 불신하는 친구 때문에 울었다.어머니의 사람 좋은 웃음과 아버지의 쾌활함과 자기 역활을 찾아낸 제이슨의 부서지기 쉬운 겉모습 때문에 울었다. 자기 앞에 펼쳐진 창창한 시간 언뜻 보게 될 다른 비밀과 배신들 때문에 울었다"/200쪽 '로즈울다'



소설집이었다. 심지어 '밀회'는 목차에서도 한참 뒤에 있었다. 마음 같아선 '밀회' 부터 읽어야겠지만 차례차례 읽었다. 덕분에 서로 다른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크게 다르지 않은 이야기라는 사실을 알았다. 우리는 저마다 가슴 한켠에 채울 수 없는 구멍이 있다는 사실. 결핍이라 말할수도 있겠고. 그 결핍을 채우기 위해 애쓰는 사람, 그냥 결핍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 삶은 예측불허다. 생각한대로 결코 흘러가지 않는다. 후회해도 소용없다는 뜻이다. 그렇지만 질문을 통해 알게 되는 경우도 있다, 붙잡는 것이 아니라, 그냥 지금을 살아갈것. 그런데 나이 어린 로즈에게는 예측할 수 없는  앞날이 두렵다. 산전순전 겪은 이들은 지금을 받아들이는 것이 최선이란 사실을 알게 된다. 그라일스처럼.



"(...) 그녀는 사랑의 까다로운 특성을 잘 알았다. 사랑은 거의 언제나 잘못된 대상을 향했다"/269쪽 '밀회' 부분


책 읽기가 마무리 되어 갈 즈음 자연스럽게 조지클라우센의 '전등옆에서 책 읽기' 그림이 떠올랐다. 윌리엄 트레버 소설의 느낌이 딱 저런 느낌이었던 거다. <밀회>를 읽기 전 단순히 책 읽는 그림으로만 각인되었던..그런데 어떤 책을 저렇게 몰입해서 읽을까.. 정도의 궁금함이었는데, 윌리엄 트레버의 <밀회> 속 이야기가 저와 같은 느낌이었다.고독하고 쓸쓸하지만, 마냥 외롭기만 한 것도 아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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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회
윌리엄 트레버 지음, 김하현 옮김 / 한겨레출판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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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대로 흘러가지 않는 것이 인생이라서 우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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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엔 서머싯 몸의 단편들을 다시 읽고 있어요. 전 그의 장편보다 단편이 더 좋은 것 같아요.특히 <연>을 가장 좋아해요"

"영화로도 만들어졌잖아요"/149쪽 '고독'부분











최근 <달과6펜스>를 읽으면서, 다시 읽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지만 <케이크와 맥주>는 두 번 다 재미나게 읽었는데..생각해보니깐, 나는 아직 몸선생의 단편집을 만난적은 없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모파상하고 순간순간 착각했던 모양이다. 졸라선생의 <사랑의 한 페이지>를 읽다가 '밀회'라는 단어가 윌리엄 트레버의 <밀회>를 읽게 만들었으니, 이제는 몸선생의 단편을 읽어볼까 하는 마음.. 그런데 무려1,2편으로 나온 민음사에 '연'은 없다. 빛소굴에서 출간해주면 좋을텐데 하는 바람...우선 민음사에서 나온 단편집부터 읽어봐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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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수가 힘들었던 시절 울프의 소설 '댈러웨이 부인' 은 자신을 버틸수 있는 무언가가 되었더랬다. 오로지 연수밖에는 알 수 없었던 이유가.그런데 국내 번역본 어디에도 '중국 앵무새가 있는 방' 이란 표현은 없었다.


"(..) 한국어로 가지런히 놓인 문장 어디에도 중국 앵무새는 없었어. 아무리 뒤져봐도 흔적조차 없었지. 중국 앵무새가 있어야 할 자리에 오직 차갑고 하얀 '도자기 앵무새'만 있었어.(..) 도자기를 뜻하는 'china'를 중국으로 오해한 거였어. 중국 앵무새였다면 'chinese cockatoo'  라고 했어야 한다는 생각도 뒤늦게 떠올랐고 상상에서 기억이 되어버린 중국 앵무새가 있는 집조 산산조각이 나버렸어.내가 오래도록 사랑하고 의지했던 중국 앵무새는 처음부터 존재하지도 않았던 거야(...)"/66쪽 


자신이 믿고 있었던 것이 무너졌다는 사실만으로 그녀가 좌절하지는 않았을 텐데..무튼 <중국 앵무새가 있는 방>을 읽고 나서,나는 그냥 오늘을 잘 살아가는 것이 좋겠다, 라는 소감을 남겼더랬다. 그리고 윌리럼 트레버의 소설 '그라일리스의 유산' 에서 그냥 지금을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느낌을 받은 것이 신기했다. 우연처럼 나타난 도자기도 그렇고^^


"(...) 기억 속에서는 모든 것이 영원히 그곳에 있었고 아무것도 변할 수 없었다.분관 도서관에서 은퇴해도 돈은 많지 않을 것이므로 오늘의 행동은 일종의 표현이었다.(...) 그 이상은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장식품도 받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현실을 속이게 되기 때문이었다.도자기 한점도 받지 않을 거라고 그는 그렇게 편지를 쓸 것이다. 비밀의 그림자 속에 겨울 꽃이 흩어져 있었고 기만이 조용한 사랑을 기다렸다./120쪽













서로 다른 이야기에서 비슷한 감정을 느끼는 건 언제나 즐겁다.더 정확하게 말하면, <중국 앵무새가 있는 방>을 읽으면서 혼잣말 처럼 했던 생각을,'그라일리스의 유산'에서 마주한 것이 반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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