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거서 크리스티의 추리 소설 두 편(애크로이드 살인사건,서재의 시체)을 읽는 동안 '진실' 과 '증명'이란 화두를 마주했다. 해서 또다른 책들을 찾아보다 제목에서 부터 '진실'이 들어간 책 발견.스토리도 흥미롭고 해서 전자책으로 구입했다.그러나 이런 책은 전자책보다 종이책으로 읽는 것이 훨씬 좋다는 결론을..(해서 도서관에서 엎어왔다.^^)


범인이 누구인지 누가봐도 알 수 있는 사건들이 일어난다.적어도 사건에 깊숙이 관여했을 것 같은 의혹은 충분하다.그러나,문제는 심증만 있을 뿐,물증이 없다는 거다.게다가 증거가 드러나려고 하면 그때마다 어김없이 진실 앞에 다가간 인물들은 살해 당한다.캐주얼한 느낌의 추리소설이란 느낌보다 그것이알고싶다 프로와 닮은 느낌의 소설이란 느낌을 받았다. 권력을 가진자가,힘 없는 자들에게 할 수 있는 형태가 여러 퍼즐조각으로 그려진다.읽는 내내 화가 좀 많이 난 이유일터.우리나라 거대기업들이 하는 짓도 이와 다르지 않을테니 말이다.1910년대 스페인의 시간적 배경은 그러니까 큰 의미가 없는 것일수도 있겠다.오히려 그때나 지금이나,서양이나,동양이나 가진자들이 그렇지 않은 이들에게 하는 힘이란 것이 무섭다는 느낌을 받게 했을 뿐이니까.그런데 이야기는 권력을 가진 자들만이 문제가 아니라 배신과 변절을 수없이 하는 기생충 같은 네메시오 같은 인물도 있다는 사실을 그린다.이럴때면 어김없이 80이 20에 지배당하는 구조가 변하기 어려운 이유가 보여 답답해진다.그런데 소설은 또 너무 흡인력이 있어 잘 읽혀서  놀라고...그알(그것이 알고 싶다)에 가까운 소설이었지만 추리적인 장치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라서  두 번의 반전에 맙소사..했다.적어도 소설 후반까지 르프랭스와 코르타바녜스의 관계가 생각보다 깊은 이유를 고민하지 않았다.그런데 르프랭스의 죽음마저도 물음표가 따라오게 할 줄이야.자살인가,타살인가,...그리고 또 하나,소설에서 유일(?)하게 긴장감을 느끼게 했던 법정 신문 묘사가,사볼타 사건의 진실을 밝히는 과정에만 오로지 집중된 것인 줄 알았는데..아니었다ㅡ는 사실이 놀라웠다.물론 소설을 다 읽기 전까지 눈치채기 쉽지 않았을지 모른다는 변명도 해보지만.뻔한 듯 뻔하지 은 구조로 씌여진 이야기란 생각을 했다.다시 그알느낌으로 돌아와 생각해 보면,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을 어째서 미란다만 몰랐을까..에 대한 질문이 따라왔다.결국,미란다처럼 이상주의자로 머무는 것이 세상을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가 아닐수 있다는 생각. 그러니 막연한 희망을 품기 이전에 정신 바짝 차리는 것 부터가 중요한 것일지도...










민음사 고전 계속 읽기를 잘하고 있다는 생각을 갖게 했던 책이다.그럼에도 이 책은 비교적 늦게 읽었다. 왜 읽게 되었는지도 알겠고, 스토리 전개도 대충 알겠다.비교적 최근에 읽은 책이라서.제르미날 덕분에 다시 소환(?)된 기념으로 재독해 볼 생각이다. 스포일러를 대략적으로 알고 읽어도 잘 읽혀질지도 궁금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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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로주점>을 읽을때만 해도 에밀졸라 선생의 책들을 차례로 찾아 읽게 될 줄 몰랐다.이어 읽은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이  조금 싱거운 느낌이 있었기 때문이다.그런데 어찌어찌하다 <인간짐승>을 읽게 되였고,다시 졸라 선생의 소설은 좀 천천히 읽어야 겠다고 생각했다.사람의 폐부를 적나라하게 찌르는 글을 읽는다는 것은 그저 소설로 생각하게 만들지 않았다. 그런데  도서관에 꽂혀 있는 <나나>를 보는 순간 자연스럽게 그곳으로 향했고.영화 개봉을 핑계(?) 삼아 <테레즈 라켕>까지 읽고 말았다.그런데 졸라선생의 소설 전부를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 건 <에밀졸라 전진하는 진실> 때문이였던 것 같다.소설에서는 작가의 옹골찬 고집이 소설에 반영된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싶을때가 있었는데 '전진하는 진실'을 읽으면서 졸라선생의 세계관을 조금은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던 거다.누군가는 끝없이 대중을 흔들어줘야 하는 위치에 있어야 한다는 것.졸라 선생은 그것을 분명하게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제르미날> 1권에서도 졸라 선생의 흔들기 정신은 유효했다.어느 방향으로 정의 내릴수 없고 무엇이 더 옳고 그른지를 선택해야 하는 문제 앞에서도 정신을 차릴수 없었다.눈앞에 보여지는 모든 것이 다 오른 것도 아니며,정의라는 이름을 걸고 싸우는 이들에게서도 항상 진정한 희생의 정의가 따르지 않는다는 것을 보면서 우리가 무엇을 선택할 수 있을까? 정의를 이해 싸워본 적도 없고 누군가를 위해서는 더더욱 싸워본 적이 없는 나에게 탄광촌에서 벌어지는 저들의 상황을 이해하기란 결코 녹록지 않았다.다만 소설 마지막으로 가는 단계에서 장랭의 도둑질 사건을 목도 하는 부분이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자본가들의 온갓 도둑질 앞에서는 어쩔수 없는 일로 치부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그럴수 밖에 없는 까닭을 들이대면서.그런데 장랭이 하는 도둑질은 어떤가? 그건 그야말로 나쁜 짓이 되며 혼나야 할 이유가 되는 거다. 장랭의 도둑질에 자본가들의 이름을 올려놓으면 같은 상황인데 말이다.










다시 목로주점, 아니 <아소무아르>를 읽고 있다.천천히 읽을 생각이었는데, 너무 잘 읽혀져서 아소무아르와 제르미날을 함께 읽어야 하나 고민 중..이다. <제르미날>을 아소무아르 보다 더 최고의 소설이라 생각했으면서 정작 도서관 찬스를 이용했던 모양이다. 민음사 버전으로 구입할까 고민중인데  함께 읽을 책으로 나란히 소개된 책들이 <나는 고백한다>를 제외하고 모두 인상적으로 읽은 책들이라, <나는 고백한다>도 읽어야 할 리스트에 올려 놓아야겠다. 중남미문학은 워낙 힘겨워 하는 경향이 있어서 망설이고 있었는데. 일단 구입부터 하게 되면, 시작이 반이니까 시작하는 샘이 되는 걸까.. 왠지 겨울에 읽기 안성맞춤일 것 같다는 생각이..겨울까지 기다려봐야 겠다.우선 십년주기로 찾아(?)온 <제르미날> 부터 읽어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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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3주가 지난 어느 화창한 날 열한시 반경,제르베즈와 함석공 쿠포는 콜롱브 영감네 주점에서 함께 브랜디에 절인 자두를 먹고 있었다.보도에서 담배를 피우던 쿠포는 길을 건너던 그녀를 억지로 주점으로 끌고 들어갔다"/59쪽












"삼 주가 지난 어느 맑은 날 11시 30분쯤에 제르베즈는 함석공 쿠포와 함께 콜롱브 영감의 아소무아르에서 술에 절인 자두를 먹고 있었다. 세탁물을 가져다주고 돌아오다가 길을 건너는데 거리에 서서 담배를 피우고 있던 쿠포가 다가와 억지로 데리고 들어온 것이다"/57쪽



<목로주점>을 민음사에서는 <아소무아르>로 번역한 이유가 궁금했다. 다행(?)히 목로주점은 읽고 리뷰로 남겨 놓지 않은 까닭에, 다시 읽고 싶기도 해서, 민음사 버전으로 읽고 있는데, 주점과, 아소무아르의 느낌은 너무 다르다. 문동에서 임의로 '주점'으로 번역된 느낌. 세탁물도 사라지고.. 민음사 번역에 대해 말이 많은 걸로 알고 있는데...목로주점으로 알고 있었던 졸라선생의 소설은 <아소무아르>가 더 괜찮은 느낌이다. 이제 시작이지만^^


(역, 술집이름인 '아소무아르'는 '때려눕히다'라는 뜻의 동사에서 파생된 용어로 18세기 초부터 사람을 때려눕힐 정도로 힘든 일을 뜻하는 보통명사로 사용되었다.19세기 중엽 파리의 벨빌 지역에 가난한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알코올로 사람을 때려눕히는 곳'이라는 뜻의 아소무아르라는 이름의 술집이 처음 생겼고 이후 많은 술집이 같은 이름을 내걸었다.(...)19세기 말쯤에는 '선술집'을 지칭하는 보통 명사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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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무계획 속에 계획(?)을 만들어 읽는 스타일인데..

아직 오지도 않은 시월 읽을 책을 당당히 올려 놓기로 했다.^^

해서, 일년에 한 권씩 읽어볼 생각이었던 형제의 책은,

벽돌책을 예외로 삼아야겠다.

이런 이벤트를 핑계삼아 읽기에 딱 좋은 책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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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랑한 이시봉의 짧고 투쟁 없는 삶
이기호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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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라 배우러 가는 층에 애견유치원이 있다는 사실을 얼마전에 알았다. 동물농장은 애청하지만,동물을 가족으로 받아들여 함께 살고 싶지 않은 1인이다. 책방 갈때마다 만나는 냥이들은 이쁘지만, 나와 그들의 거리는 딱 그만큼이다. 아낌없이 사랑을 줄 자신도 없지만, 무엇보다 그들을 책임질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책임 지고 싶지 않은 것과, 책임 질 자신이 없는 것의 차이는 알 수 없지만... 동물농장을 보면서 드는 존경의 마음은, 애견유치원과 호텔을 마주할 때는 묘하게 아이러니한 기분이 든다. 


"이것만 잊지 마. 강아지 입장에선, 인간과 같이 사는 게 썩 좋은 일만은 아닐 수도 있다는 걸.. 아무리 인간이 잘해준다고 해도 말이야"/123~124쪽



저마다의 사정이 있다는 것도 알고 있지만, 강아지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정말 고민할 문제가 많아 보인다는 생각을 저절로 하게 된다. 더불어 내가 강아지들과 함께 살 자신이 없는 이유도 분명해 지는 것 같고... 말랑말랑한 제목 속에 말랑말랑한 이야기만 담겨 있지 않을 거라 예상은 했는데, 그래서 잘 읽혔다. 시봉이라 부르면 쳐다보지 않지만, 이시봉이라고 부르면 아는 척(?) 하는 비숑. 시봉의 출생을 따라 올라가는 여정 속에 스페인 역사와 마주하게 될 줄이야. 그것도 실존인물...이라니. 고야의 그림은 익숙했지만, 그림 속 강아지 존재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지 못했다. 물론 고도이와 비숑의 관계는 어느 정도의 상상이겠으나, 나는 여기서 어쩔수 없이 오류에 빠지게 되었던 것 같다. 동물을 사랑하는 이들이라면, 마음도 선해야 할 것 같은데 꼭 그렇지 않다는 사실. 종교를 가진 이들도 그러한데, 동물을 애정하는 이들에게서 절대적 선을 기대한다는 건 애시당초 무리하는 걸 알면서도...그가 베로를 사랑한 마음은, 베로가 이뻐서 일수도 있겠지만, 이뻐하는 자신의 마음이 더 좋아서 였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아니면  고도이를 등장시킴으로써 개보다 못한 사람도 있다는 이야기하고 싶었던 걸까...


"고도이는 그런 끝도 나쁘지 않겠다고 마음먹고 있었다. 투쟁도 없고 변화도 없는 삶 단지 나폴레옹 앞에서 약간의 치욕과 수치 모욕과 모멸을 감당하기만 하면 될 뿐.그정도는 충분히 감당할 수 있었다. 인간은 늘 그런 것들을 감당하면서 사는 존재들인 걸 뭐(...)"/405쪽



작가의 반려견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은 마음에서 시작된 소설이라고 했다.개보다 못한 사람이 있다는 걸 동물들이 알게 된다면 지금보다 세상은 더 정신없는 전쟁을 치르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인간들 마음대로 순수 혈통을 만들고, 미용을 하고,병들면 버리기도 하고, 무엇보다 생명이 아닌 물건으로 취급되는 걸 어떻게 받아들일수 있을까? 인간과 동물의 관계에 대해 생각할 수록 어렵다는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라 생각했다. 페미니즘이 어렵다고 말하는 이들에게 남자와 여자가 아닌, 사람대 사람으로 서로를 존중하면 어려울게 없다고 생각하는 1인이다. 동물과 인간의 관계도 마찬가지 아닐까. 물건이 아닌, 생명을 가진 존재로 바라본다면 지금보다는 잔인한 뉴스를 덜 접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인간은 그런 식으로 오해하고 오독하면서 동물들의 삶에 관여한다.그것이 인간의 유일한 장점이자 집사로서의 자격 요건이다. 집사란 직위는 대개 그런 사람들 자기애가 충만하지만 그걸 잘 모르는 사람들 그 사람들이 세상을 살아나가는 한 방식이다"/46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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